예술의 맥락에서 본 게임 속 '시점'들의 간단한 역사 Danto 06-05 조회 31,221 0

시드 마이어는 게임과 과학의 관계를 논하는 한 대담회에서 게임을 "그간 쌓아온 인류의 모든 생각들에다 상상의 색칠을 입히고 이걸 통해서 가능한 모든 조건들을 시뮬레이션해보는 매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시드 마이어의 이런 정의에 십분 공감하지만 이런 시뮬레이션을 게임에 설득력 있게 구현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그래픽 기술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러한 그래픽 기술과 시뮬레이션을 연결 시켜줄 어떠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그러한 연결고리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게임에서의 시점이다. 이것은 여타 매체와 다른 독특한 게임의 특징 중 하나다. 가령 전통적 시각매체인 회화는 단지 그래픽 기술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그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회화를 관람하는 관찰자는 기본적으로 캔버스의 틀 속에 만들어진 회화 세계 바깥에서 자신이 가진 연결고리인 눈만으로도 작품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그 본령은 기본적으로 계산기로부터 연원하는 0과 1의 프로그램 언어인 바, 그것을 일반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수단으로 구현하고 또 그렇게 구현된 요소를 개발자의 의도에 맞게 제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게임 속에는 다양한 시점이 존재한다. 탑뷰, 사이드뷰, 1인칭, 3인칭 등등. 물론 게임에서 이것이 단지 단일하게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게임 에서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시점이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동시에 2가지 시점을 지원하는 게임도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시점들이 어떤 장단을 가지고 또 프로그래밍적으로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 논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 본인이 그런 것을 서술할 능력도 없거니와 솔직히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로 살펴볼 것은 이런 다양한 시점들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라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각 문화의 역사 혹은 예술사다. 

 


작자미상, 모우티에 그랜드발 성경, 840년경, 영국박물관
 


안견, 몽유도원도, 1447, 덴리대학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예술사에서 조차 아주 먼 옛날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까 한다. 중세유럽에서 예술은 많은 경우 기독교의 교리에 의거한 예술이었다. 이 시기의 장인들은 기독교의 이야기를 필사본 삽화로 넣고 조각으로 제작했으며 건축으로 구현했다. 르네상스라는 미술계의 대격변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 예술에서 시점이라는 것은 아직 낯선 무엇에 다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중세의 예술에서 시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9세기경 그려진 한 삽화는 시점이 없는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구약 속 아담과 이브의 얘기를 묘사한 작품 속에서 주요한 인물인 아담, 이브 그리고 미카엘은 한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이 세 인물은 동일한 공간에 중복되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맨 아래 장면, 천사가 아담과 이브를 추방하고 아담과 이브가 필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장면이 동일한 공간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각적 논리로는 불가능 하다. 당연한 것이 한 공간에는 동일한 인물이 두 명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 예술에서 애초에 시각적인 엄밀함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기독교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이 기독교의 이야기를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했는지가 중요했다. 이 회화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지 그것이 얼마나 시각적으로 합리적으로 구현되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양에서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니다 가령 조선 세종~단종 연간에 활약했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화가 안견의 그림에서도 이러한 표현법이 나타난다. 안견은 그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명작을 창조했다. 어느 날 안평대군이 낮잠을 자는데 세종조 유명한 문신이자 이후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 신숙주와 함께 동양 선비들이 꿈꾸는 이상세계인 도원세계로 여행을 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안평대군은 그 생생한 꿈을 간직하고자 자신이 아끼던 화원인 안견을 불렀고 안견은 그의 말을 토대로 상상의 세계를 긴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 속에서 안평대군과 신숙주로 추정되는 남자는 깍아지른 구릉을 올라가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이상세계에 도착한 모습으로 중복해서 그려졌다. 하지만 그림 속 공간은 엄연히 하나의 통일된 공간이기에 인물들이 중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시각적인 합리성으로 보았을 때 모순적인 것이 된다. 물론 위 두 작품을 시점의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작품은 사이드뷰로 동양의 작품은 쿼터뷰와 탑뷰가 혼재된 작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대인들이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러한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 속 내러티브가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되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당대인들은 회화 속 그래픽 기술이 잘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으나 그것을 전달하는 시점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시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미술은 게임의 역사와 결부시켜 볼 때도 흥미롭다. 게임도 그것이 프로그래밍 언어 속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이러한 시점의 부재를 겪었기 때문이다. 가령 구술과 간단한 시각적 도구들로 진행되는 trpg의 경우 시점 없는 게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게임 속 마스터는 룰과 자신이 짜온 시나리오에 의거해 플레이어와 게임을 진행한다. 게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오롯이 말과 주사위로 진행되는데 이 때 이런 상황은 뇌라는 단일한 캔버스에서 상상으로 구현된다. 플레이어가 던전에 탐험하고 다이스갓의 가호를 받아 함정을 통과하고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 적어도 머리 속에서는 동일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만약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자신이 플레이 했던 trpg 속 주인공의 행보를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면 분명 위의 성경 삽화본과 같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 그들의 시각장 속에 시점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이야기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그들이 상상한 것을 그림으로 옮겨보라고 하면 분명 중세인의 그것과는 다르게 그릴 것이다. 설사 그 묘사 수준이 중세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더라도 그들은 적어도 한 공간 안에 동일한 인물을 반복해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근법의 도해. 중앙에서 문을 열고 있는 남자를 주목해서 볼 것. 
 

 


안드레아 만테냐, 그리스도의 죽음, 1470-1474, 브레라 미술관
 

 

중세인과 현대인의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은 14세기에 들어서였다. 이 시기부터 시점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술사에서 이 문제는 주요한 학문적 탐구 영역이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시점에 대한 논의는 작품에 환영성을 불어넣는 것와 맞물려 있었다. 환영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그려진 그림이 마치 실제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작품이 어떤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창문을 통해서 보는 현실로 믿도록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근법은 그러한 고민 끝에 서양 문명이 낳은 발명품이었다. 원근법의 기본적인 기획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본다는 것은 인간의 눈에서 어떤 가상의 선을 쏘아 보내 그 선 위에 대상들을 위치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때 가상의 선은 물체를 투사하고 한 점으로 수렴되는데 바로 그것이 소실점이다. 우리가 멀리 있는 풍경을 볼 때 대상이 조금씩 작아지다가 마침내 지평선 즈음에 이르면 대상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원리는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가들도 인간이 보는 것과 같이 캔버스에 가상의 선과 소실점을 만들고 그 선에 따라 대상을 배치하면 실제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런 기획은 기존의 중세 예술과 비교했을 때 큰 변화였다. 르네상스에 들어서 서구 세계는 그림을 단순한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고 관람자가 보는 작품으로 생각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술 작품이 한 개인의 시점에서 어떻게 사실적으로 보일까를 고민했던 것이 바로 시점의 출발이었다. 물론 이런 시점은 분명 작위적이다. 기본적으로 1점 원근법은 하나의 눈을 통해서 본 세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하지만 인간의 눈은 두 개이기 때문에 1점 원근법의 개념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물체도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다. 가령 만테냐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은 극단적인 단축법으로 예수의 죽은 모습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분명 뛰어난 원근법을 구현해 냈지만 실제로 이 장면을 본다면 이렇게까지 왜곡되어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1점 원근법은 그 자체로 여러 한계가 있는 방법이었지만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미술사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의 시각 예술가들은 이제 자신이 그릴 대상을 어떻게 정확히 그릴까의 문제를 넘어 이렇게 그린 대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까의 문제를 동시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고민이 시작되면서 오늘날 게임 속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모호하게 처리되었던 시점이라는 것이 이제 환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화가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이런 시점의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던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였다. 그는 오늘날 미술사적, 철학적으로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화가지만 시점의 문제를 대담하게 건드렸다는 점에서 게임을 논의하는 글에서도 언급될 가치가 있는 화가라고 생각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프라도 미술관
 


메달오브아너 : 얼라이드 어썰트(2002)의 한 장면. 스샷은 /webzine/community/tboard/?n=158943&board=37

여기서 가져왔습니다.  

 

 

17세기 화가였던 그는 왕실의 가족들과 그 시녀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 그림이 오늘날까지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것은 단지 이쁘고 멋지게 그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그림은 일반적인 왕실 초상화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좌측 화가 본인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앞에 놓인 판자는 분명히 그림을 그리던 캔버스일게다. 그렇다면 누구를 그렸을까? 그 해답은 가운데 거울에 있다. 실제 그림을 보면 희미하게 나마 왕과 왕비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추측해 보건데 왕과 왕비는 그림이 잔뜩 걸린 이 방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공주와 그 시녀들을 보러 왔을 것이다. 왕과 왕비가 왕실소장품이 걸려있는 공간으로 들어온 그 순간 방안에 있던 인원들은 일제히 그들을 보았고 그 장면이 오늘날 화가의 그림으로 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대상으로 추정되는 왕과 왕비는 동시에 그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관객이 아니라 스페인 왕족의 시선에서 작품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관객은 일시적으로나마 17세기 스페인을 지배했던 왕 혹은 왕비와 시선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fps 게임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2차 세계 대전의 생지옥을 겪었던 어느 소련 병사나 배반한 미치광이 장군을 막아야 하는 특수부대 요원의 시점을 공유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주제에 있어 왕실초상화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림을 통해서 관객의 시각과 당대인의 시각을 연결해주고자 하는 시각적인 기획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유명한 해석 중 하나가 되어버린 이러한 관점은 후일 영화계에서도 활용되었다. 영화에서는 단지 이 그림을 볼 때 사용되는 관객의 눈을 카메라로 바꾸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앞서 잠깐 얘기 했듯 이것을 게임으로까지 적용한다면 이러한 '시점'은 FPS라는 장르에서 다시 변용되어서 나타나게 된다. 

 

 


장택단, 청명상하도 부분, 1120, 북경고궁박물원
 


롤러코스터 타이쿤(1999)

 

 

시점 논의에 있어 일대 변화를 겪은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서양보다 훨씬 오래되었는데 중국의 한족 왕조 중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북송과 남송대에 이르러 그 논의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이르면 중국의 도시는 규모면에서 동서양의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성장하게 되었다. 십만 단위의 거대 도시가 양자강에 접하는 강남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곳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고갔다. 불야성의 어원이 시작되는 송대의 도시들은 동시에 왕조 번영의 상징이기도 했다. 때문에 북송이 더 북쪽의 금나라에 쫓겨 남송으로 천도한 시점에서 도시를 그린 그림은 옛날의 찬란한 번영의 시대를 추억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도 그러한 목적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장택단은 이제는 빼앗겨버린 옛 수도 개봉의 청명절 모습을 긴 두루마리 형식의 종이 위에 상세하게 그렸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악단들, 세계 각지에서 온 상인들과 북적이는 다리 위의 상점이 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시점의 측면에서 이 그림은 동양에서 원근을 어떠한 방식으로 묘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서양의 1점 원근법의 기준에서 보면 오류 투성이다. 선들을 그어 보았을 때 하나로 수렴하는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에도 이 그림의 원근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동양의 화가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 멀고 가까움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가 날아서 지상을 보듯이 각각의 선들이 평행하게 사선으로 후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부감법이라 불리는 이러한 방법은 동양 예술에서 원근을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그리드 위에 한정된 방식으로 그래픽을 표현해야 하는 게임에서도 널리 활용되었다. 가령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는 원근과 입체감 표현을 위해 동양의 부감법과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점은 비단 롤러코스터 타이쿤 뿐만이 아니라 쿼터뷰 방식을 사용하는 몇몇 게임들에서 빈번하게 보이는 표현법이 되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7, 함부르크 미술관

 



엘더스크롤 :스카이림(2011)
 

 

다양한 시점이 어디에서부터 연원했는지를 살펴보면 게임이라는 것이 시각 문화의 역사에서 전혀 동떨어진 별개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로 게임은 알게 모르게 이전에 유행했던 시각문화의 유산을 답습하고 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전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의 몫이다. 가령 서구의 미술사에서 19세기에 솔더뷰가 도입되었을 때 미술가들은 인물의 뒷모습을 그림으로서 관객에게 쓸쓸함, 허무함, 무력함을 전달하고자 했다. 화가들은 인물의 뒷모습과 방대하게 펼쳐진 자연풍광을 어떠한 중간 소재 없이 직접적으로 맞닿아버림으로서 광대한 자연과 그에 비해 미천한 인간의 지위를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좌절에 빠졌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의 멘탈리티 속에서 이런 시점은 당대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기에 더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에서 도입되면서 이러한 점은 더 이상 강조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화가의 특정한 감정 상태를 전달하기위에 도입된 시점이 게임에 와서는 기능적인 목적에서 도입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점이 가지는 의도가 아니라 이렇게 도입된 요소가 무에서부터 탄생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매우 창조적으로 보이는 시점이라도 그것의 연원을 추적하는 것은 서구 예술사의 흐름 속에서 그리 어렵지 않다. 비단 시점이 아니더라도 게임 속에 존재하는 많은 요소들은 그 이전 시대에 성취했던 여러 성과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시각적인 요소 이외에도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이전 소설들의 묘사법이 게임의 스토리를 풀어가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찾다보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단순한 즐길거리가 아닌 인문학 혹은 예술의 맥락 위에 위치한 무엇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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