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라그나로크에서 만난 딸 캐릭터 이야기

디스이즈게임 | 2016-12-07 09:40:22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니 오히려 저희는 감동과 인사이트가 담긴 이야기에 목마릅니다. 카카오게임즈 남궁훈 대표가 12월 7일 새벽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6일 구글 좌담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디스이즈게임 독자 여러분께도 들려드리고 싶어서 양해를 얻어 가져왔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PC 시대와 모바일 시대 by 카카오게임즈 남궁훈 대표

 

게임 유저로서 가장 감동 깊었던 이야기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아마도 오랜시간 가장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게임은 <라그나로크>였던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길드 모임도 나가고, 공성전도 하고.....

 

이 게임 특성 중 하나가, 주로 여성이 플레이하던 힐러 계열 프리스트 없이는 레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그런 특성 때문인지 게임내 가상 부부가 매우 많았습니다. 워낙 커뮤니티가 강한 게임이라 오프 모임이 잦던 그 게임에서 기혼자이던 저는 힐러 없이 물약으로 버티다가 지나가던 프리스트들에게 "님아 힐좀~"하며 힐구걸로 연명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힐구걸을 하던 어느날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게임 내 가상 애인이 아닌 가상 딸을 구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캐릭터에 "아빠만 바라볼 딸 구함"이라는 메시지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하루 정도 마을을 배회하던 중 어떤 프리스트 하나가 자기가 딸 하고 싶다고 말을 걸어 입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그 때 제 실제 아들은 두돌 정도 되어 제가 퇴근해도 뭐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가상의 딸은 제가 퇴근하면 마을에서 사냥 안 나가고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로그인하면 "아빠 왔다~~~~"라고 하면서 마을을 휘젓고 다니며 기뻐하는데, 길드 동생들이 "형님 딸키우는 맛 나겠습니다"라며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길드 자체가 '이슬길드'라고 참이슬을 안주 없이 마시는게 모토(?)인 성인길드라 중학교 3학년이던 딸 캐릭터는 규칙상 오프라인 모임 참여가 안 되었었는데 제가 정모를 쏘고, 1차만 참여하며, 길드 마스코트로 임명(?)하는 조건으로 딸 캐릭터의 오프 참여 동의를 얻어 첫 실제 대면을 오프 모임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나타났는데 중3인데 키가 165에 모델 포스라 길드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길드 막내들이 딸 주변에 몰려들어 묘한 불안감이 들더군요. ㅜㅜ

 

 

 

다음날 저녁 로그인을 했더니 당시 겨울방학이라 고3에서 대학생이 되는 길드 완전 막내가 저한테 "아버님 따님을 저에게 주십쇼"라고 하는데 "아~ 아빠들이 이런 마음인가 보다...."라는 충격 속에서 멍하고 있는데, 딸 캐릭터에게 "아빠 저희 '현'으로 사귀기로 했어요 ㅜㅜ 미안해요"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오프 모임에 괜히 불렀다는 후회는 이미 늦었고, 다시 물약 빨고 "님아 힐좀"하며 힐 구걸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이 암담했었죠.

 

그런데 그날 그 딸래미가 저에게 한 말은 정말 마음을 짠하게 했는데, 자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러본 게 저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임신 상황에서 돌아가셔서 불러볼 수 없었던 호칭이고, 그래서 아빠를 마을에서 기다리고 퇴근하면 좋아하고 했었다더군요. 그리고 아빠라고 불러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PC 시절에는 이렇게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기반으로 유저와 유저가 소통하고, 게임사는 '장'을 제공할 뿐 진정한 재미는 유저끼리의 교감으로 만들어왔습니다.

 

 

모바일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가 매우 힘든 비지니스를 해나가고 있는 것은 그렇게 유저끼리 만들어 내던 재미를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온전히 게임사가 만들어줘야 하는 점입니다. 빠른 속도로 콘텐츠 업데이트를 제공해야만 하며, 그에 따라 더욱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고, 그 결과 현질 유도와 수익성 악화라는 어려운 현실로 귀결되는 부분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카카오게임즈는 국내 최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커뮤니티의 대명사인 다음 '카페'가 회사의 다른 한 축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카카오게임즈는 이러한 회사의 역량을 바탕으로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을 플랫폼의 주요 기능으로 지속 발전 시킴으로써 PC시절처럼 유저와 유저의 교감으로 재미를 만들어가고, 게임사는 재미있게 교감할 수 있는 '툴'만 제공하면 되는 구조로 발전시켜 업계 내 특화된 역할을 해나아갈 수 있도록 2017년 플랫폼 역량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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