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접칼럼] 중국 게임 개발자 감금되고, 폭행당한 사연은

시몬 (임상훈) | 2017-03-08 11:41:25

감금과 폭행.

 

게임회사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월 6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벌어진 막장 활극 스토리입니다. 중국 게임계도 이 황당무계한 사건에 매우 놀라고 있습니다. 사건도 재미(?)있고, 한국과 연결된 끈도 있어 소개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2014년 6월 청두 쓰촨성 청두의 IT 산업단지에 王苏(Wang Su)라는 인물이 모바일게임 회사(成都乐满多)를 차립니다. 개발자 15명 가량을 모아 8월부터 농구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죠.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프리스타일> 스타일의 농구게임이었습니다. 게임 이름은 <가람>(街篮, street basket). 1년 가까이 만들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이듬해 6월 개발자들을 모두 가볍게 해고했습니다.

 

좀더 고급 개발팀을 세팅한 Wang 사장은 8월부터 다시 게임 제작을 재개했습니다. 크게 다를 것 없었습니다. 초기 결과물은 버그 투성이었죠. 보통 고생하는 개발팀이 겪는 것처럼 '갈았다', '뒤집었다'를 여러 차레 반복했습니다.

 

<동방불패> 속 신비의 무림 비전 '규화보전'

 

그러다 무슨 무협영화에서 본 듯한 '무림 비전' 스토리로 상황이 확 바뀝니다. 중국 매체에서 '신비의 소스코드'라고 언급된 코드를 확보하면서 상황이 반전된 거죠. 프로그램의 고민이 풀렸습니다. 

 

마침내 2016년 6월 게임에서 가장 핵심적인 3:3 대결 모드가 구현된 CBT를 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모바일 농구게임에 반응이 무척 뜨거웠죠. <가람>은 이후 몇 차례 테스트를 거친 뒤 11월 2일 퍼블리셔 자이언트를 통해 공식 론칭을 했습니다. 

 

 출처: 뭐시여이겜 유저 유투브 사이트(바로가기)


첫달 매출은 1.2억 위안(약 200억 원). 작은 개발사의 첫 게임으로서는 엄청난 성적이었습니다. 자이언트로서도 오랜 만의 성과가 반가웠을 거고요. (참고로 자이언트라는 퍼블리셔는 그해 8월 넷마블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소셜카지노 업체인 '플레이티카'를 44억 달러(약 5조 원)에 인수한 콘소시엄의 주축 업체입니다. 모바일 환경 변화 이후 큰 힘을 못 썼는데, 지난해 꽤 분발했네요.)

 

하지만 무시무시한 심리적 압박이 다가옵니다. 텐센트가 <프리스타일> 정식 라이선스 게임 <가두농구>(街头篮球, street basketball)를 이듬해 1월 초에 공식 론칭할 예정이었거든요. 중국 온라인게임의 역사를 보면 <카트라이더>나 <오디션> 류의 장르에서 QQ가 들어간 텐센트 게임이 먼저 나온 게임들을 사정없이 찌그러뜨리고 시장을 장악한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텐센트가 2017년 1월 초 서비스를 시작한 <가두농구>

비슷한 그래픽의 농구 게임, 게다가 <프리스타일> IP로 무장된 게임, 거기에 무려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게임이니, 자이언트는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개발사 사장에게 계획된 업데이트를 종용합니다.​

 

하지만 개발자들 사정은 달랐습니다. 16개월 동안 몇 번씩 게임을 뒤집고 엎었고, CBT와 론칭 시기를 보내느라 계속 크런치모드로 달렸을 테니까요. 게임도 성공했으니, 이제 좀 '정상적으로' 일하고 싶었겠죠.  

 

사장은 개발자들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질러야 됐습니다. 일단 12월 말 2개월분 급여를 보너스로 줬죠. 그리고 파격적인 보너스 약속을 했습니다. 

 

'3월 퍼블리셔 수익배분 후 회사 이익의 20%.'

 

개발자들은 제대로 스팀팩을 맞았습니다. 연말, 연초, 춘절까지 다 반납하고 꾸준히(라고 쓰고 '빡세게'라고 읽는다) 업데이트를 했고, 그 노력은 매출 성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가람>은 텐센트의 <가두농구>를 제치고 모바일 농구게임 1위 자리를 확고히 지켰습니다.

 

(참고로 두 게임은 그래픽은 유사하지만, 스타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가두농구>는 <LOL> 스타일의 성장방식에 공정한 PVP가 핵심 콘텐츠인 반면, <가람>은 수집형 RPG 스타일로 PVE를 통해 캐릭터와 레벨 등의 레벨업이 중요한 게임이죠. 이 차이가 매출 성적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가람>은 월 1억 위안(약 170억 원) 이상의 매출을 3개월 이상 기록했습니다. 장기 순항의 기회를 잡은 셈이었죠. 드디어 3월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개발자들이 약속된 성과급을 받을 따뜻한 봄이 오고 있었죠. 개발자들을 대표해서 CTO와 부사장이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보너스 언제 주실 거에요?' 그런데 사장 반응이 황당했습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 

 


헐~

옥신각신 후 CTO는 바로 연차 휴가를 떠나버렸습니다. 국내 업데이트는 물론, 한국, 대만, 동남아 버전 개발로 회사가 가장 급한 시기였죠. 사장도 안달이 났습니다. 연차에서 돌아온 CTO와 다시 이야기를 나눠야했죠.

 

사장: 무엇을 원하냐?

CTO: 팀을 대표해서 협상하러 왔다. 약속한 보너스를 언제 나눠줄 것이냐?

사장: 너는 팀을 대표할 수 없다.

CTO: 대표할 수 있다.

사장: 알겠다. 그럼 상세하게 어떻게 나눠줄지 계획표를 짜서 와라.

 

CTO는 팀원들에게 연차를 쓰라고 했습니다. 보너스를 안 주면 더 이상 버전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죠.

 

뿔이 난 사장은 전체회의를 소집했습니다. CTO와 부사장의 해임을 통지하고, 회사의 모든 네트워크와 그룹채팅에서 지워버렸죠. 직원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연달아 '멘붕'을 겪은 수석 개발자, 서버 개발자, 기획팀장 등 주요 개발자들은 단체로 사직서를 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파란만장하지만, 꽤 많이 들어왔던 스토리입니다. 초기 허리띠 졸라매고 어려움을 극복한 뒤 성공하면 보상하겠다는 회사의 약속이 뒤집어지는 일은 흔히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막장'은 여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사장은 단체 사표를 CTO가 사주한 것으로 생각하고,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서 사장실에 가둬버렸죠. (덕분에 사장이 조폭 출신이다, 조폭과 친분이 있다 등의 소문이 인터넷에 돌고 있습니다.) 나가려는 직원들도 붙잡았습니다. 업데이트와 버전 개발을 계속 해야 했기 때문이죠. 

 

배신감과 분노로 마음이 떠난 CTO와 개발자들이, 게다가 감금까지 당한 상태에서 사장 말을 제대로 들을 리가 없었을 겁니다. 막가파식 사장은 폭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감금된 상태에서 맞아가며 업데이트를 하던 개발자들이 조폭들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위챗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실상을 외부에 알렸습니다.

 


'사장이 때리고, 직원을 떠나지 못하게 하다'(成都乐曼多,,老板打人,,不让员工离职)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는 3월 6일 오후 3시 무렵 사장에게 맞았다는 내용과 함께 핏자국이 보이는 오른손 사진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이런 글과 사진은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죠.

 

이같은 감금 및 폭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뒤 감금은 풀렸습니다. 3월 6일, 한국에서는 '사드 배치로 인한 신규 판호 금지' 이슈로 시끄러웠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란을 일으킨 개발사의 이름은 成都乐满多(청두러만뚜어)입니다. '즐거움이 가득 차고 많다'는 뜻입니다. '근혜'(槿惠)가 '끝없이 어진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합니다.

 

 

(사족 1) 아, 참고로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는 누가 입을까요? 텐센트의 <가두농구>에게는 역전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라이선스 계약을 한 조이시티에게도 나쁜 소식은 아닐 듯하고요.​

 

(사족 2) 황당한 폭행과 구금, 그리고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쓱쓱 닦고 보면, 모바일게임 환경에서 개발자들이 처한 상황은 중국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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