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접칼럼] 모바일게임 생태계의 현실과 유혹, 그리고 무과금 운동

시몬 (임상훈) | 2017-06-06 20: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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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생태계에는 ‘무과금 운동’이라는 유저들의 의사표현이  있습니다. 개발사의 운영에 불만이 쌓이고 쌓였고, 공식 카페에 올린 항의가 통하지 않는 경우, 다수의 유저들이 ‘더 이상 돈을 쓰지 않겠다’며 개발사를 압박하는 운동(movement)이죠.

 

# 무과금 운동의 어려움

 

무과금 운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려지기도 어렵고, 성공하기도 녹록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1. 버그나 운영 실수 등이 있으면 유저들은 공식카페 게시판에 그때그때 항의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2. 개발사는 해명, 사과, 개선, 불만해소형 이벤트 등을 통해 무과금 운동까지 번지는 걸 막는 게 일반적입니다.

3. 무과금 운동이 일어날 정도라면, 이미 게임을 접은 유저가 많습니다. 무과금 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에 망한 게임이 많다는 거죠. 무과금 운동이 일어나려면 게임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4. 무과금 운동은 몇 명이서 시작한다고 확산되기 어렵습니다. 다수의 유저가 동의하고, 참여해야 가능합니다.

5. 개발사는 ‘안 사고는 못 배겨’라는 듯, 결제를 유혹하는 이벤트를 통해 무과금 운동의 동력을 떨어뜨리려 합니다.

6. 모바일게임은 많습니다. 대부분 작은 게임은 무과금 운동을 해도 외부에 알려지기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력이 떨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세븐나이츠> 같은 대형 인기 게임은 달랐습니다. 워낙 인기 게임인 덕분에 1년 반 전 있었던 ‘과금 보이콧’은 해당 게임 유저는 물론 외부에까지 큰 이슈가 됐죠. 

 

[관련 기사] 세븐나이츠 30개 길드연합의 과금 보이콧. 그들이 행동에 나선 진짜 이유는?

 

 

# 5월 17일부터 시작된 <킹덤스토리>의 무과금운동

 

지난주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5월 17일부터 한 모바일게임의 주요 군단(길드)들이 나서서 ‘무과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6개월 이상 쌓이고 쌓인 ‘불만’이 개발사의 거듭된 ‘불통’을 막혀있다 터져버린 거었죠. 그간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과금 운동에까지 이르게 된 사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모바일게임 생태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죠.

 

해당 게임은 피크네코 크리에이티브(대표 임춘근)가 개발하고, NHN엔터테인먼트㈜(대표 정우진)가 서비스하고 하는 <킹덤스토리>였습니다. 삼국지 기반의 RPG로, 지난해 4월 28일 론칭했고, 국내는 물론 중국, 태국, 일본 등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국내에서는 매출 기준 구글 플레이 70~120위 권을 기록 중이죠.

 

공식 카페에서 5월 17일부터 시작된 무과금 운동에는 다수의 유저가 참여했습니다. 킹스맨, 강성, KOREA, 칠곡, 직장인, 강자존, 추억팔이, 춘추전국시대, 형제, 하나로, 키잉스, 킹덤스카이, 패천 등 13개 주요 길드와 다수의 무길드 유저들이 동참했습니다.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있지만, 핵심은 개발사와의 ‘소통’입니다. 개발사가 유저 간담회를 열어주기를 원하고 있죠.

 

 

# <킹덤스토리> 무과금 운동의 주요 배경

 

그들은 왜 무과금 운동의 깃발을 들었을까요? 주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1. 이례적인 캐릭터가 추가됐다. 그런데 1위 고과금 길드 멤버의 요청이었다면...

 

2016년 8월 29일 촉나라 조운이 S급 영웅으로 추가됐습니다. 위, 오, 촉 등 각 국가 별로 S급 캐릭터가 하나씩 있는데, 촉만 2개 됐죠. 그 배경이 수상했습니다. 1위 군단인 킹덤 군단의 유저가 군단톡(게임내 채팅프로그램)에 ‘조운을 S급으로 내달라고 개발사에 메일을 보냈다’고 자랑했다는 당시 킹덤 군단 유저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개발사는 2016년 8월 30일 개발노트에서는 ‘S급으로 올려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내부 이견이 존재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유저들의 불만이 잇따르자, 2016년 11월 29일 공지에서 ‘최초 장수 등급 결정 때부터 인지도와 호감도를 참조해 결정했다’는 해명을 내놓았죠. 두 공지가 서로 달라 유저들의 의심을 오히려 부추겼습니다.

 

 2016년 8월 30일 개발노트

  

2016년 11월 29일 공지

 

 

2. 개발사 대표가 1위 길드 대표와 만나서 업데이트 내용을 알려줬다면...

 

2016년 11월 25일 개발사 피크네코는 아프리카TV BJ (세렌티아)와 ‘게임 공식 BJ 계약’을 위해 만났습니다. 이때 한 명의 지인이 동참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게임 내 랭킹 1위 킹덤 길드의 대표였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계기로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미팅 다음날, 술을 마신 그 BJ가 27일 새벽 1시께 아프리카TV 방송 중 업데이트 내용을 발설해버린 거죠. 일종의 ‘취중진담’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이 알려지자, 해당 BJ는 그런 사실을 부인했지만, 그날 방송을 캡처한 이미지가 공식 카페에 올라오면서 ‘팩트폭격’을 당했습니다. (아래 이미지 속 BJ의 채팅 내용을 읽어보세요.)






개발사는 28일 “현재 공개된 개발노트 범위에서만 이야기했다”고 해명하고 “BJ와 예정돼 있는 계약을 파기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유저와 개발사가 대화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죠.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29일) 더 큰 사건이 터집니다. 1위 군단 대표가 자신의 길드원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게임 공식카페에 폭로된 거죠. 군단 대표는 11월 15일 이미 개발사 대표와 만나 콘텐츠 및 비전에 대해 상의할 예정이라고 공지했습니다. 미팅 후에는 대표에게 들은 업데이트 내용이 군단 채팅을 통해 공유됐죠. 개발사 대표가 1위 군단 대표를 만났다는 것과 거기서 구체적인 업데이트 정보가 미리 전달됐다는 사실이 빼도박도 못하게 드러났습니다. 

 

 



 

개발사는 다시 해명했습니다. 길드 대표와 미리 알고 만난 것이 아니며, 개발노트나 패치노트 범위라고 이야기했던 부분을 상세하게 적지 않아 의혹이 더 커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3. 돈을 쓰게 해놓고, 이후 결제이벤트에는 소급 적용을 안 해준다면...

 

2017년 1월 25일부터 31일까지 설날 복주머니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복주머니를 100% 얻기 위해 유료 아이템인 쌀을 사야했습니다. 쌀 20개를 사야 복주머니 하나를 얻었죠. 그런데 다음날부터 35만 원을 결제하면 복주머니 2,000개를 주는 복주머니 이벤트가 시작했습니다. 25일 쓴 결제액은 소급적용되지 않았죠.

 

2017년 2월 10일부터 23일까지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해 ‘초콜렛 드랍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결제가 필요한 건 설날 때랑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다시 17일부터 35만원을 결제하면 초콜릿 3,000개를 받는 결제 이벤트(15일 공지)가 시작됐습니다. 발렌타인 이벤트 첫날부터 7일 동안 결제한 유저를 위한 소급적용은 없었습니다. 이 역시 설날 이벤트와 마찬가지였죠. 

 

 

과금 유저들은 월 1회 구매 가능한 효율성 좋은 패키지 상품을 매달 구매합니다. 개발사는 매달 결제이벤트를 실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유저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월초에 구매한 결제액은 이후 시작한 결제이벤트에 소급적용되지 않으니까요. 

 

2016년 12월의 경우, ‘12월 원보 충전 이벤트’이라는 결제이벤트를 15일 공지하고, 16일부터 22일까지 진행했습니다. 15일까지 결제한 금액은 소급적용되지 않았죠. 소급 적용 문제로 유저들의 불만이 많자, 2017년부터는 ‘XX월 결제이벤트’ 대신 그냥 ‘원보 충전 이벤트’로 제목을 바꾼 채 소급적용 없는 결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4.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 공지 없이 캐릭터의 밸런스가 바뀌어 있다면...

 

제보를 한 유저는 “매일매일 물밑에서 일어나는 ‘잠수함 밸런스 패치’들 때문에 오늘 완벽하게 이기던 상대에게 내일은 완벽하게 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밝혔습니다. 공식 카페 게시판에는 하루 사이 밸런스가 바뀐 캐릭터들의 대결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영웅들의 공격력, 방어력 등이 올라가는 코스튬의 신규 업데이트 패치도 대부분 적용에 1시간도 안 남은  시점에서 공지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2017년 5월 15시에 적용될 신규 코스튬 업데이트는 당일 14시 24분에 공지됐고, 5월 18일 14시 업데이트는 당일 13시 45분에 공지됐습니다. 각각 36분과 15분 전에 공지된 셈이죠.

 

 

# 작은 모바일게임 개발사의 현실과 유혹

 

1%의 유저가 90%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는 모바일게임 생태계의 실정. 특히 상위 고과금 유저가 몰려 있는 길드의 경우 발언권과 영향력이 큰 경우가 꽤 있습니다. 특히 매출의 대부분을 그들에게 의존하는 작은 게임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킹덤스토리> 1위 군단인 킹덤군단도 고과금 유저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죠.

 

1위 고과금 군단을 우대한다는 의혹이 있는 와중에 개발사 대표가 1위 군단 대표를 따로 만났습니다. 그것을 숨기고 있었는데, 결국 들통이 나버렸죠. 공식 카페에는 1위 군단 대표가 상세한 업데이트 내용을 자기 군단원들과 공유하는 내용이 공개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개발사는 적극적인 사과 대신 ‘해명이 부족해 오해를 불렀다’ 수준으로 땜질 처방을 했습니다.

 

1위 군단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의심되는 일은 이후에도 발생했습니다. 매월 신규 장수를 등용하는 그 수에 따라 아이템을 주는 미션 이벤트를 해왔는데, 아이템 보상 전 신규 장수를 재물로 써버리면 미션 횟수에서 차감되는 게 룰이었습니다. 그런데, 12월 9일 킹덤군단 유저가 ‘재물로 쓴 장수도 미션 횟수로 넣어달라’의 의미의 게시물을 버그/신고 게시판에 올렸죠. 32분 뒤, 운영자는 ‘1회에 한해 이미 사용한 장수도 미션 카운트에 넣어주겠다’는 답변을 댓글로 썼습니다. 

 

 

작은 모바일게임 개발사의 경우 여력이 충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정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죠. 유저들에게 안 알려주고 캐릭터나 아이템의 능력치 등을 조절하는 ‘잠수함 패치’의 유혹에 빠지고, 일정 공지를 갑작스럽게 하는 이유입니다.

 

<킹덤스토리> 개발진도 해외에 진출하느라 바빴을 겁니다. 지난 겨울 이후 지속적으로 해외 서비스를 확대해 왔으니까요. 국내 유저들은 그 사이 소외됐고, 그 때문에 불공정성 이슈와 함께 불투명한 운영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 무과금 운동의 목적은 ‘소통’, 그 시작은 ‘유저 간담회’

 

무과금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제보자는 “게임은 엄청 재밌는데, 운영 자체가 너무 불만족스럽다”며 “유저들이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다. ▲공평한 정보 공유 ▲정상적인 결제 이벤트 ▲정기적인 패치가 과연 무리한 요구인가”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무과금 운동을 '킹덤살리기 운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대응, 무소통’으로 대응한다고 비판을 받은 개발사는 무과금 운동 이후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신규 영웅 5종을 추가했고, 기존에 하지 않던 현황 안내 등을 진행했죠. 소통의 강화로 여길 수도 있지만, ‘무과금 운동’의 구체적인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무과금 운동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물타기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무과금 운동을 하는 유저들은 “게임이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유저 간담회’ 같은 개발사와 소통을 원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일부에서는 과거 서비스했던 <워스토리>에도 무과금 운동이 있었고, 그때 손을 들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개발사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안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시간 끌기와 과금 유도 이벤트를 통해 무과금 운동을 좌절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이긴다고 이기는 건 아닙니다. 멸치가 떠난 바다에 고래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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