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접칼럼] 디스이즈게임이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을 편애하는 4가지 이유

시몬 (임상훈) | 2018-05-13 15: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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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My Child Lebensborn)이 출시됐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편파적입니다. 이 게임이 잘 되기를 적극 응원합니다. 출시 이후 리뷰와 카드뉴스, 제작 스토리 등을 몰아서 써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디스이즈게임은 관계가 1도 없는 노르웨이 인디게임 개발사의 게임을 이렇게 편애하며 열심히 다루고 있을까요? 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는 이유에 대해서요.

 

곰곰이 들여다봤습니다. 저의 속마음에 대해서요. 네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더군요. 이 허접한 글을 통해 자가진단한 내용을 이실직고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 디스이즈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특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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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임이 역사의 비극에 대항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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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작 스토리: 역사의 망각에 맞서는 게임

[칼럼] 디스이즈게임이 이 게임을 편애하는 4가지 이유

1. 견물생심(見物生心): 트래픽을 기대하며

 

딱 1년 전이네요. 지난해 5월 디스이즈게임은 이 게임에 관한 카드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인지도가 1도 없는 게임이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페이스북에서만 1,000번 가까이 공유될 정도였으니까요. 지난해 ‘디스이즈게임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기사‘ 4위에 오르기도 했죠.

 

한창 게임을 만들고 있던 개발사도 느닷없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카드뉴스 이후 갑자기 한국으로부터 뉴스레터 가입자가 급증해버렸죠. 개발사는 크게 감동받았다며 저희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1년 후, 이런 국내의 관심은 로컬라이제이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출시 직전까지 한글화 계획이 없었습니다. 영어에 이어 노르웨이어와 독일어 번역까지는 진행했지만, 추가적인 로컬라이제이션을 위한 자금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출시 전날 로컬라이제이션을 위한 새로운 자금 지원이 확정됐고, 한국어는 최우선 순위에 올라갔죠. 덕분에 구글 플레이스토어 화면에서 턱 하니 한글화를 약속할 수 있었죠.

  

출시와 함께 이루어진 한글화 소식. 개발자들을 감동시킨 한국 유저들의 열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리뷰도 좋습니다. 노르웨이 매체인 ‘Level Up’의 리뷰어 라르스는 “내가 체험한 가장 강력한 게임"이라고 평했습니다. 다른 매체인 ‘Pressfire.no’에서는 6점 만점에 5점을 줬고요. 4시간 남짓의 게임 플레이에 영어권 리뷰도 호평 일색입니다.

 

지난해 조회수 4위의 위용을 가진 게임이 마침내 출시했고, 반응도 좋고, 한글화까지 한다고 하니, 디스이즈게임은 다시 열심히 다룰 수밖에 없겠죠. 다시 한 번 트래픽 유입을 기대하면서요.

 

그러니, 부디 링크 많이 공유해 주세요. ^^

 

6점 만점에 5점. 심각한 얘기를 다루면 재미없을 거란 편견도 깼습니다.

  

 

2.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런 게임은 부디 잘 되기를

 

그런데 지난해 카드뉴스는 왜 이렇게 조회수와 공유수가 많았고, 많은 유저들은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개발사 뉴스레터를 신청했을까요? 세 가지 추론을 해봤습니다.

 

먼저, 잘 모르고 있던 레벤스보른의 사연 자체가 무척 놀라웠을 겁니다. 나치의 잔재로 멸시받던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을 거고요. 최근에도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Boko Haram)이나 중동의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s) 등이 저지르는 납치와 강간 관련 뉴스가 들리지만,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과 그들이 평생 겪을 고통에 대한 인식은 적은 편이니까요. 빈곤한 삶 속에 숨어 혹은 감춰져 살고 있을 테니까요.

 

분쟁 중 섹스 폭력에 대한 관심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책은 단기적인 도움에 집중돼 있죠. 전쟁 중 태어난 아이들은 그런 관심에서 일반적으로 밀려난 상황입니다. 

“이 게임은 무고하지만, 적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어린 아이들의 상황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게임은 1951년 노르웨이에서 시작하지만, CBOW(Child Born of War, 전쟁으로 태어난 적군의 아이들)의 운명은 모든 문화와 연령대, 모든 갈등 시기와 그후 모두에서 동일하다. 모든 국가가 이것과 관련된 역사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게임이 전세계의 이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일일 것이다.”

 

개발사의 이런 메시지가 게이머들에게 공감을 일으켜 반응이 좋았다고 추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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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많은 분들이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게임의 가치’에 대해 공감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게임은 늘 동네북 신세였으니까요. 게임에 대한 멸시와 비난을 걷어찰 수 있는 이런 게임 뉴스를 공유하며 게이머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똑똑이 보세요. 이런 마약을 본 적 있습니까?.’

‘맨날 뻔한 게임 말고, 이런 게임도 만들어주세요.’

 

마지막으로는, 저희 카드뉴스가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습니다. 자뻑입니다.

 

저희도 게임의 전하는 메시지와, 사회적 의미를 담는 미디어로서 게임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사를 썼죠.

 

또 하나 다른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그들의 사정을 어렴풋이 아니까요. 노르웨이는 인구 500만의 작은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고, 개인 투자자나 퍼블리셔가 없는 곳입니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무상교육과 공공 펀딩 시스템 덕분에 제작됐지만, 로컬라이제이션을 하려면 자금 지원을 받아야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잘 됐으면 합니다.

 

 

3. 동병상련(同病相憐):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개발사의 이야기처럼 CBOW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저는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을 보며 우리 역사 속에 세 가지 슬픈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병자호란 후 많은 조선인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귀환한 남자와 달리 대다수의 여자들은 환영받지 못했죠. ‘화냥년’이라는 욕설의 유래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뜻의 ‘환향녀’이라는 설, 그들이 낳은 아이를 ‘호로자식’(오랑캐의 자식, 후레자식의 어원)으로 불렀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사회적으로 멸시 당하던 존재들이었니까요.

 

베트남의 ‘라이 따이한’(來大韓)은 ‘한국에서 온’이라는 뜻입니다. 촌락 공동체의 베트남 사회에서 그들과 그들의 엄마는 멸시와 조롱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했습니다. 라이 따이한과 그 자녀까지 얼굴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아빠, 할아버지 때문에 사회 저층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죠. 베트남은 승전국이어서 국가 단위의 사과를 받지 않는다지만, 우리가 저지른 전쟁 범죄에 고통받는 이들은 우리가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 들어 벌써 네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는 총 스물여덟 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생존에 그분들의 한을 풀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 시기, 유럽에 레벤스보른이 있었다면, 아시아에는 정신대가 있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낯선 이국으로 끌려가 위안부(섹스 노예)가 됐던 수많은 우리의 소녀들.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고향땅으로 돌아와서도, 고국의 무관심과 사회의 냉담 속에서 살았던 세월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숨어서 살았습니다. 아이도 낳지 못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 이용수 할머니(나문희 연기)가 그랬던 것처럼요.  ​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 더 공감하고, 더 많이 알리고 싶었던 데에는 라이 따이한이나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마음의 빚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4. 오매불망(寤寐不忘): 이런 게임이 한국에서 나왔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같은 게임이 거의 나오지 않을까요? 앞서 예를 들었던 <아이 캔 스피크>나 <귀향>,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처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나 <26년>, <화려한 휴가>처럼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은 꽤 나오고 있는데 말이죠.

 

 

 

성급하게 한국 게임 회사나 개발자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대화를 나눠보면, 게임 개발자 중에도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은 분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죠. 한국 게임 생태계가 희망에 넘치던 2000년대 중반이었다면 좀 달랐겠지만요. 

 

만들기 어려운 사정은 많습니다. 생태계 전체와 연결된 문제니까요. 그 이슈만 가지고도 별도의 허접칼럼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쓰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시도를 통해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처럼 성공적인 사례가 있음을 한국 게임 업계와 개발자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협회와 단체 등에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젊은 세대, 특히 글로벌 밀레니얼 세대에게 우리의 역사, 이를 테면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좋은 방법이 있음을 말이죠.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의 개발사는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분들과 대화해서 목소리를 매우 주의깊게 듣고, 가능한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최대한 진실하게 다뤄야 한다. 이 작업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이야기와 거기서 나오는 힘을 믿어야 한다. 이 게임의 강점은 플레이어와 진실한 이야기 간의 유대감이지, 액션이 아니다.”

 

한국의 많은 게이머들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게임 개발자들이 우리 이야기를 다룰 용기를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협회와 단체들로 이런 게임에 대한 지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디스이즈게임은 앞으로 계속 이런 게임을 대놓고 편애하고 힘닿는 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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