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차이나랩] 혼란한 중국 IT 업계를 바라보며

모험왕 (김두일) | 2018-06-08 18:26:31

김두일(모험왕) 퍼틸레인 고문의 페이스북 글을 편집해 다시 소개합니다. 외부 연재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 1

 

얼마 전 한국언론에서도 보도가 되었던 <포트나이트>의 중국 내 서비스가 유력해졌다는 기사의 근거는 중국 문화부비안(文化部备案)에 통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비안이 나왔으니 판호도 곧 나오지 않겠냐'는 추측이었다. 그런데 문화부비안(文化部备案)은 업체가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올리는 것으로 대다수의 캐주얼 게임들은 신청 즉시 발급되는 것이다. 사전 심의를 엄격하게 받아야 하는 판호와는 발급 난이도 면에서 비교할 바가 안 된다. 다만 중국의 대형 안드로이드 마켓에 올리려면 판호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필수서류이긴 하다. 난이도가 낮으니 판호를 우선 받고 나서 신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다. 

 

그런데 최근 뜬금없이 해당 문화부 사이트에서 비안 신청을 하는 창구(국산 게임 녹색 채널)를 닫아 버렸다. 신청만 하면 발급되는 평범한 서류이지만 필요한 서류의 신청 채널을 막아 버리자 게임 서비스를 준비하는 회사들은 일대 혼란이 찾아왔다.

 

 

# 2

 


 

중국의 대다수 관련 매체에서는 이 이슈가 텐센트와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의 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도했다. 최근 텐센트를 가장 힘들게 하는 회사는 알리바바도 아니고 넷이즈도 아닌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인데 이 회사는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공급하는 뉴스 앱으로 뜬 회사이다. 중국 IT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텐센트나 알리바바 한 곳에 줄을 서야 생존하는데 이 회사는 독자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 면에서 텐센트를 위협하는 지경까지 성장해 버린 것이다. 

 

서비스의 성격상 모바일 결제와 쇼핑이 주력인 알리바바보다는 콘텐츠 서비스 중심의 텐센트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편인데 텐센트의 게임을 제외한(위챗 생태계 중심의) 앱 서비스 분야에서 처음으로 사용자가 정체되기 시작한 핵심적인 원인이 바로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 때문이다.

 

텐센트의 강점인 (고양이를 보고 사자를 그리는 모방의) 똑같은 서비스를 해도 이상하게 사용자들이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쪽으로 몰린다. 그게 텐센트를 진심으로 짜증 나게 하는 이유이다. 아주 오래전 제일제당(현 CJ)이 미원을 잡지 못해 이병철 회장을 매우 화나게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 3

 

심지어 텐센트는 차이나유니콤과 손잡고 텐센트대왕카드(腾讯大王卡)라는 통신서비스를 출시했다. 텐센트대왕카드(腾讯大王卡)는 텐센트의 모든 서비스 구체적으로는 소셜(위챗, 큐큐), 동영상, 음악, 게임, 소설, 만화, 심지어 자체 브라우저를 사용하면 검색이나 기타 인터넷 사용 서비스까지 데이터 사용을 공짜로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영화 <킹스맨>에서 무료로 데이터 유심카드를 뿌리면서 사용자들을 끌어들여 한 방에 죽이려는 악당 사무엘 잭슨이 생각날 정도였다.

 

이건 정말 엄청난 서비스이다. 한국에서 카톡과 유튜브, 각종 모바일게임과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는 서비스는 설령 삼성전자나 SK텔레콤이라도 엄두도 낼 수 없는 서비스일 테니까 말이다. 그걸 텐센트는 해냈는데 이 무시무시하면서도 통 큰 서비스를 내놓은 이유는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로 인해 처음으로 자사의 앱 서비스 사용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에서 통신 3사가 데이터 요금 가지고 경쟁(사실은 조삼모사 하는 장난)을 하는 것이 정말 하찮게 보인다.

 

 

# 4.

 

텐센트의 이 공격적인 서비스 앞에 영문도 모르고 직격탄을 맞은 것은 중국 굴지의 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이다. 차이나모바일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언제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자사의 서비스 사용자의 증가를 가져왔다.

 

 



 

3G, 4G, 5G의 기술적 사용허가를 후발주자인 유니콤에 주로 (비자발적인) 양보를 해 오면서도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비싼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선점으로 인한 꿀 빠는 포지션은 늘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리기만 했다. 단 한 번도 긴장감 없이 회사는 성장의 성장을 거듭해 왔는데 텐센트의 이 무지막지한 대왕카드 서비스 앞에서는 처음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분기 차이나모바일의 사용자는 처음으로 200만 명의 사용자가 빠져나갔고 그 사용자는 고스란히 유니콤에 붙었다고 추산된다. (내가 사용하는 차이나텔레콤도 사실상 무제한 요금제에 가깝다. 한 달 204위안에 말이다)

 

 

# 5

 

일단 차이나모바일은 이번 러시아월드컵 기간 자사의 사용자들에게 21기가의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명목은 '자사의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불편 없이 러시아 월드컵을 감상하라'는 것인데 사실 중국팀이 출전도 안 하는 축구 중계를 챙겨볼 정도의 마니아들은 TV로 중계를 감상하지 누가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고 있겠는가? 내가 보기엔 계속 이탈하는 고객들을 일단 임시방편으로 잡아 놓고 본격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너희들도 그동안 꿀 빨았으니 고민 좀 해야지…

 

 

# 6

 

다시 문화부의 비안으로 돌아오자면 왜 대다수의 IT매체들은 이번 신청 채널이 막힌 이유가 텐센트와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의 분쟁으로 보는 것일까? 이유는 최근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 산하의 더우인(抖音)이라는 서비스가 또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더우인은 짧은 동영상(일명 짤)을 사용자들이 올리는 서비스인데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 산하의 '内涵段子'라는 잘 나가던 유머 커뮤니티 서비스 앱이 한 방에 날아갔는데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측에서는 아무래도 텐센트가 뒤에서 힘을 발휘했다고 의심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텐센트와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는 상호 비방전을 펼치다가 심지어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 전으로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게임이 더 유해하다는 주장과 통제되지 않는 동영상이나 뉴스가 더 위험하다는 주장이 법정까지 가게 된 셈인데 한심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 7

 

정작 문화부에서는 (공식적인 입장발표는 아니지만) 텐센트와 진뤄터우탸오(今日头条)의 분쟁과는 무관한 조직개편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7월쯤에 다시 공식적으로 신청 접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그때 가봐야 아는 것이고 문제는 판호는 받았는데 문화부 비안을 받지 못한 회사들의 서비스 때문에 일선에서는 또 한 번 혼란의 아노미 상태가 이어진다. 어떤 플랫폼에서는 '판호만 있으면 서비스할 수 있다'고 어떤 곳은 '둘 다 있어야 한다'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회사들이 불쌍하다. (우리도 하나 서비스를 앞두고 있는데 우리는 다행히 둘 다 받았다. 간발의 차이로 말이다. )

 

 

# 8

 

한편 중미간의 무역전쟁에 이슈로 IP 저작권 침해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판호를 심사하는 광전총국 애들이 열심히 (그것도 매우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다. 최근 판호신청 중인 (사실은 무난하게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내가 저작권 일체를 받아와서 서비스 준비 중인 어떤 게임이 해당 회사가 직접 서비스하는 글로벌 버전의 게임 상표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1차 반려를 당했다. 그 둘은 다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영문상표와 중문상표는 완전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중국의 기관은 남의 상표권과 저작권을 침해해도 모른 척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인데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찾아내서 보강해 오라고 시킨다니 십수 년 중국에 살면서 처음 겪는 신기한 일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현재 위메이드가 중국에서 벌이고 있는 수많은 IP 관련 소송들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유리해질 공산이 매우 커졌다. (위메이드나 웹젠이나 운이 정말 잘 따르는 회사들이다)

 

물론 상당 부분 트럼프의 무지막지한 똘끼 탓이다. 트럼프 만세다… 이 트럼프의 똘끼로 주변국 대부분이 반대하는 심지어 자국 내 대다수 여론(전쟁과 긴장 관계로 먹고사는 군수업체와 밀접한 공화당의 주류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 재선을 두려워하는 미국 내 진보언론마저 환영하지 않는)이 반대하는 북미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본문과 상관없지만 정말 무사히 잘 끝나길 바란다.

 

 

 

나도 이 혼란한 중국 IT업계에서 그럭저럭 잘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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