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모바일이 탄생하기까지... -1부 북서니 10-31 조회 31,810 공감 -2 3

"표절 개발자 이원술"

악플러의 악의넘치는 댓글이 아니다. 손노리 팬들, 국산게임에 추억이 있던 팬들의 분노였다.

 

손노리의 리더로서 국산게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원술이 어쩌다가 이런 말까지 듣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이원술이 갑자기 180도 돌변하여 화이트데이 모바일을 성공모델을 답습하지 않은 유료게임으로 판매하려는 이유는 뭘까.

 

손노리의 팬이자 이원술에게 실망했던, 그리고 지금은 이원술을 응원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화이트데이 모바일이 어떤 산통을 겪으며 탄생했는지 적어보려 한다.

 

 


밑으로 적을 글들은 '겉으로 드러난'것들의 나열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나는 손노리 관계자가 아니고 이원술 본인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자세한 상황까지 알 방도는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을 나열하다 보면 의외로 명확한 진실이 보일지도 모르는 일.

 

천천히. 그 과정을 한걸음씩 따라가 보자.

 







#1.
2007년 2월 23일.

 

패키지시장의 몰락 이후 연거푸 삽질만 하고 있던 손노리가 드디어 칼을 뽑아든다.


다름이 아니라 어스토니시아를 온라인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관련기사:: 손노리, 어스토니시아 온라인 발표!(/webzine/news/nboard/4/?n=4700)

 

어스토니시아라는 이름이 손노리와 팬들에게 어떤 무게감을 주는지는 이미 다들 알고 있던 사실...


뭐 이미 여기저기 리메이크로 단물 다 빨리고 PSP버전의 2까지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았던 어스토 프렌차이즈지만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여전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스토는 손노리의 상징과도 같은 게임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발표한 작품일 뿐, 어떤 형태로 나올지 아무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팬들 입장에서야, 그저 손노리가 오랜 악몽에서 깨어나길 바랄 뿐이었고.

 

 

 

 

 

#2.
2008년 어느날.


손노리의 개발자 이규호대표가 화이트데이 부활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야기쓰는데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밟힌 이규호대표는 실제로 이야기에 꽤 공을 들이는 스타일인지 화이트데이의 후속작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폐교에서 한달보름간 생활했다고 밝혔다.

 

▲가치온소프트 이규호대표​
(이규호: 일단 내 자신이 애착이 너무 많았다. 손노리 시절에는 <화이트데이2>를 개발하려고 폐교에서 한 달 보름간 시나리오를 작업한 적도 있었고....)
/webzine/news/nboard/5/?n=57621

 

 

사실 이 때 이규호대표가 기획했던 후속작은 PC판이었다.

지만 알다시피 손노리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고, PC판 화이트데이를 만드는 일 자체가 배부른 짓이었다.

점점 손노리의 상황이 안좋아지자 결국 이규호대표의 가치온소프트는 손노리와 분사되어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

(참고로, 손노리는 2003년 12월에 엔트리브와 손노리로 나누어졌고, 다시 2006년 9월에 손노리와 아이언노스로 나누어졌다. 여기에 가치온소프트까지 분사되면서 총 4개의 회사가 손노리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나눠진 셈인데, 다행스럽게도 이 회사들은 서로 사이가 매우 좋은 듯 보인다.)

▲손노리와 가치온소프트​

(이원술 : 2008년도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사실 PC버전이었다. 모바일 플랫폼으로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 손노리 시절부터 시작했던 것인데, 상황이 안좋아지면서 현재 이규호 가치온 소프트 대표가 분사, 가치온 소프트에서 진행했다.)
//www.inven.co.kr/webzine/news/?news=145547

 

 

 


#3
2010년 1월 5일.

어스토온라인의 티저사이트가 공개된다.

손노리 팬들은 오래 기다려온 손노리의 재기를 반겼고, 열정적인 팬들은 홈페이지의 연도까지 지적하면서 오랜 팬임을 과시한다.

 

 

▲대표적인 손노리의 열혈팬 구름해님의 공식홈 년도오류 분석글

 

그리고 이원술 본인 역시 카페에 찾아가 댓글까지 남기며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준다.


▲'패스맨'아이디를 쓰는 이원술이 보인다. 

보기 드문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원술의 행보도 그렇고, 당시의 정황으로 봐선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손노리와 이원술은 어스토온라인에 꽤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듯 보였다.

이것은 물론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부활할 것인가. 어스토마저 말아먹고 사라질 것인가. 어쩌면 어스토온라인에게 손노리의 운명자체가 걸려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였다.

 

 


#4
2011년.


어스토 티저사이트를 열고 불과 1년정도 지난 후 손노리는 다시 위기를 겪는다.

바로 어스토를 퍼블리싱하던 구름의 재정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여기엔 구름이 퍼블리싱했던 게임들의 연속된 실패와 경영진 비리사건이 겹친 탓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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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해당 기사는 손노리가 구름을 떠난 후에 게재된 기사지만 당시 구름의 노답분위기를 충분히 전하고 있기에 링크한다.) //www.dailygame.co.kr/view.php?ud=45531

 

이대로 손노리는 구름과 같이 추락할 뻔 하지만,

그 때 구세주가 등장하니 그가 바로 넷마블로 유명한 방준혁 대표였다.
 

└관련기사: [단독] 방준혁 대표, 손노리 인수 (/webzine/news/nboard/4/?n=23697)

2011년 6월 2일. 과거 로커스홀딩스 시절을 함께 겪었던 방준혁대표의 하나로드림이 손노리를 인수했고, 덕분에 어스토온라인도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개발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운빨 더럽게 없는 손노리라고 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 생각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방준혁은 손노리를 인수한지 얼마 안되어 넷마블의 경영진으로 복귀하며, 넷마블을 다시 이끌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이어온 손노리의 불운. 방준혁과 넷마블이라는 거대한 스폰서를 만나 드디어 끝날까?

자. 이야기는 아직 이어진다.

 

 


#5
2012년.

한편, 손노리에서 분사된 이규호대표의 가치온소프트는 관광어플을 개발하면서 연명한 모양이다.

 


(...이후에는 관광관련 어플을 개발 중이었는데 이쪽 시장이 너무 안 맞더라.)
/webzine/news/nboard/5/?n=57621 

 

하지만 게임개발의 꿈을 접을수 없었던 이규호대표는 오랫동안 준비해둔 시나리오를 현실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무작정 이원술대표를 찾아가 조르기 시작했다.

이규호대표의 꿈. 바로 화이트데이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이규호대표의 열정적인 제안은 이미 패키지시장에 데일대로 데인 이원술에겐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모바일에서 화이트데이의 퀄리티를 살릴리가 없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하고...

 

 

 



▲이규호대표의 이 설정들이 빛을 못 볼 뻔. ​

(사실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모바일에서 퀄리티를 충분히 살릴 수 있겠느냐...)
/webzine/news/nboard/5/?n=57621

그러나 이규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화이트데이를 모바일로 옮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이원술에게 다시 가져갔고, 이원술은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퀄리티가 나오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규호는 가치온소프트에 있었고, 이원술은 넷마블 산하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어느덧 화이트데이의 부활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2012년. 화이트데이 모바일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안쪽에서 화이트데이 모바일을 남모르게 지휘하던 이원술은 같은년도 12월에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흑역사를 밖으로 배출하고 만다.

 

그래. 그 유명한 '다함께 차차차'가 바로 그것이다.

12월 31일 발매된 다함께 차차차는....

...2013년도 파트에서 이어서 말하기로 하자.

 

 

 

#6
2013년.


다함께 차차차는 나온지 5일만에 다운로드1위, 게임매출순위 10위에 오른다. 5일만에 기록한 도합 다운로드 수는 무려 100만건...

 

 


└관련기사: '어스토' 개발한 손노리표 모바일게임 통했다

(//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715626&g_menu=020531&rrf=nv)

 

언론은 이 차차차의 개발자가 다름아닌 손노리의 이원술임에 주목했다. 이원술이 옛날의 감각을 살려 뛰어난 성공작을 만들고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어스토온라인의 소식만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은 다소 당황했지만, 그래도 간만에 나온 손노리의 성공작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물론, "돈 벌었으니 빨리 어스토좀!" 이라는 속내가 있었을 테지만은....)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찬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차차차가 발매된지 보름만에 차차차는 표절의혹으로 여론의 폭격을 맞게 된 것이다.

자... 드디어 차차차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불과 2년전의 사건이고, 이후의 이원술과 손노리의 이미지를 '표절'로 낙인찍어버리는 엄청나게 커다란 사건이다.

직 차차차가 뭔지, 뭘 표절한건지 모르시는 분들은 역사공부(?)하는 셈 치고 밑의 기사를 참고해보자. 

다함께 차차차 논란, 뭐가 닮았고 뭐가 다를까?

(/webzine/news/nboard/4/?n=40635)

기사를 요약하자면,

다함께차차차는 소니가 2010년에 발매한 '모두의 스트레스팍'과 흡사하다는 표절의혹을 받았고, 여기에 소니는 넷마블에 서비스중지까지 요청했다는 것.

 

여기서 한술 더 뜨는 사건도 일어나니, 넷마블 관계자가 "한국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게임에 대해 일본 회사가 '다함께 차차차'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라는 희대의 개소리명대사를 날린 사건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대사를 이원술이 날렸다고 하던데 그건 왜곡이다.)
(//stock.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11531816)

 

표현 그대로 '쪽 팔리는'사건이었다.

본 뿐 아니라 국내 게이머들도 분노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게임을 개발한 이원술에 대한 분노는 더더욱 컸다. 그가 만들던 게임을 하며 자란 세대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던 손노리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손노리 팬카페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어떤 팬의 분노.



어떤 손노리 팬이 당시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 밑에 장문의 글이 이어지는데, 개인의 신상정보 보호를 위해 블로그주소는 밝히지 않기로 하겠다.

내용은 뭐... 손노리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건 비단 저 블로거의 개인문제가 아니었다. 손노리 팬들은 모두 이원술의 변질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니 어쩌겠나. 애정이 배반당했을 때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

구름의 추락에도 버틴 손노리는, 그렇게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부적으론, 여전히 화이트데이는 개발되고 있었다. 단지 아무도 몰랐을 뿐....​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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