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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MMORPG를 플레이하지 않게 된 이유 : 리뷰
[요즘게임] 내가 MMORPG를 플레이하지 않게 된 이유 : <검은사막(2014)> 리뷰 마루노래 12-30 조회 13,098 0

안녕하세요. 네이버에 취미로 작은 블로그(https://blog.naver.com/junho5017)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문학 전공자로서 인문학의 지평에서 게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중입니다.

 

글을 쓰는 주기가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가끔씩 부족한 리뷰에 비평이라는 이름을 달고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글을 재밌게 읽으신 분들께선 한번쯤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MMORPG를 플레이하지 않게 된 이유 : <검은사막(2014)> 리뷰

블로그 원문 : https://blog.naver.com/junho5017/221173350278


1. 시대를 초월한 그래픽과 기술력

 

 2014라는 출시연도가 무색하게 현존 MMORPG 중 최고 수준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이 국산 게임은, 펄어비스라고 하는 신생 개발사에 의해 제작되어 최근 3주년을 맞았다. 심지어 안그래도 좋았던 그래픽은 벌써 리마스터링이 준비 중이다.

 

 2012년 <블레이드 앤 소울>, <테라>가 공개된 이후, 논타겟팅 액션이라는 장르 특징은 더 이상 콘솔/싱글 플레이어 게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펄어비스의 창립자이기도 한 김대일이 제작한 <C9>, 뿐만 아니라 <마비노기 영웅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MMO 게임들이 콘솔 게임을 방불케하는 액션성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액션성을 심리스 오픈 필드로 이식해낸 것은 아직까지 <검은사막>이 유일하다.<검은사막>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로딩 뿐이며, 이러한 심리스 방식은 이미 이른 시기에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로 강조된 바 있다. 유려한 그래픽과 획기적인 전투 시스템. <검은사막>이 보여주는 가능성과 잠재력은 가히 AAA급 비디오게임에 견주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이 글은 오히려 이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녔던 어떤 장르에 대한 개인적인 장송곡이다.

 

2. 현실적인 것과 게임적 허용, 그 경계에서

 

 <검은사막>을 제작한 것은 펄어비스지만, 현재 그 운영 주체는 악명높은 카카오게임즈다. 일반적으로 과금 방식, 수익모델의 설계가 게임의 기획단계에서 레벨디자인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검은사막>의 수익모델을 생각해낸 것이 카카오게임즈인지 아니면 펄어비스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무게를 판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게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아이템에는 무게가 있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무게에는, 당연하지만 제한이 있다. 이 무게 제한은 기본적으로 매우 낮고 심지어 인벤토리도 기본적으로 작게 설계되어 있어, 10~15분만 몬스터를 죽이고 다녀도 금방 한계에 도달한다. 가능한 운반 무게를 초과하면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모두 느려지는 패널티를 받게 되며 이 패널티는 초과한 무게가 많으면 많을수록 같이 증가한다. 빠른이동, 순간이동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플레이어는 매번 걷거나 말을 타고 마을로 돌아가 인벤토리를 비우고 몸을 가볍게 해야한다.

 

 혹은, 지갑을 열거나.

 

 그렇다. 이 게임은 무게를 판다. 한 캐릭터당 최대 500까지 추가가 가능하며, "밸류 패키지"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상품을 구입하면 150이 한번 더 추가된다. (밸류 패키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다.) 이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수치의 약 2~3배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프리미엄 상품으로 제공되는 무게를 제외하고 500의 추가 무게를 사는 비용이 약 1200펄(펄 : 현금으로만 구매 가능한 게임 내 화폐 단위), 가장 많은 추가 펄을 제공하는 1600+160펄 상품이 100000원이므로, 대략 계산하면 이는 약 69000원에 해당한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 익숙한 가격표는 AAA급 비디오게임에 붙어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새 이러한 편의성 기능의 판매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 되었다. 대체로 "타임세이버"로 소개되어, 문자 그대로 플레이어로 하여금 시간을 아끼게 해주는 이러한 방식의 편의성 상품은 더 없이 흔하다. 하지만 무게를 파는 게임이라니.

 

3. 모든 돈은 카카오로 통한다

 

 <검은사막>은 매우 노골적으로 돈이 곧 힘인 세계다. 기본적으로 모든 아이템은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가능하며 그 흔한 귀속 시스템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된다. 아이템에 레벨 제한도 달려있지 않다. 이론적으로 돈과 매물만 있다면, 플레이어는 게임 내 최강의 아이템조차 클릭 한번으로 얻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당장 현금으로 구매 가능한 이른바 "펄 의상"은 구입하여 장착하지 않고 거래소에 등록할 수 있다. 현실 화폐와 게임 내 화폐인 은화 사이에 사실상 공식적 환전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은화 : 원의 환율은 대략 2000 : 1이다. 고레벨이 되면 아이템이 좋지 않아도 사냥을 통해서 한 시간에 천만 은화 정도는 우습게 벌 수 있으며, 그외에 확률적으로 드랍되는 아이템 등을 생각하면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수입이다.

 

 그러나 <검은사막>에는 개인간 거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 시스템인 거래소를 이용하여 거래할 수밖에 없으며, 아이템의 가격은 게임 사에 의해 일정한 폭에서 제한되어있다. 아이템의 가치는 운영주체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된다. 이러한 게임의 이른바 "계획경제"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거래 수수료다. 거래소는 30%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아이템은 그대로 있는데, 플레이어들이 발생시킨 게임 내 화폐 가치의 30%가 매일같이 심연에 잠든다.

 

 게임 내에서 발생한 은화는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회수된다. 개인거래가 불가능하니 이른바 "매니아질"(아이템매니아 등의 중개 사이트를 통해 현금으로 게임 내 화폐를 사는 것)도 할 수 없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쌀먹"(게임에서 돈을 벌어 그것을 현금으로 팔아 쌀을 사먹는다는 뜻)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게임 안에서 발생한 가치는 게임 안에 고스란히 남으며, 모든 수익은 거의 온전하게 운영주체로, 카카오와 펄어비스에게 돌아간다.

 

4. 현실적인, 너무나도 현실적인

 

 몰입에는 여러가지 구성요소가 있지만, 어쨌든 이는 주로 현실의 행위나 관계를 어떻게 게임의 일부로서 단순화하느냐 달려있다. 특히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물건의 무게에 제한을 두는 것은 TRPG에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매우 오래된 시스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에서 재미는 우리가 "규칙"이라고 부르는 "불편함"에서 오며, 달성의 기쁨은 성취의 "지연"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TRPG의 룰 제작자들은 성취를 지연시키기 위해 룰북(문자 그대로, 게임의 규칙을 써놓은 책자)에 "현금을 지불하면 캐릭터의 힘이 강해져 더 많이 들 수 있다"라고 쓰지 않았다. 그들은 책을 10장 넘길 때마다 3시간 쉬어야한다거나, 쉬는 것이 싫으면 추가로 비용을 내라고 플레이어들을 겁박하지도 않았고, 돈을 낸다고 해서 게임에 재미를 부여하는 현실적인 불편함을 제거해주지도 않았다.

 

 <검은사막>은 매우 현실적인 게임이다. 앞서 소개한 무게 제한, 빠른 이동 시스템의 부재, 뿐만 아니라 서버, 인스턴스 등이 나뉘어 있지 않고 인기가 좋은 사냥터도 한정되어 있어 자리를 두고 싸우는 약육강식의 세계도 매일같이 펼쳐진다. 시간과 노력이 곧 돈이고 돈이 곧 힘이다. 강화 시스템에는 약간의 운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많은 돈과 끈기가 필연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다.

 

 어쩌면 이 게임에서 대규모 레이드와 같은 협동 요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플레이어는 그저 한 명의 경제적 주체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인 상태로 <검은사막>의 세계에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협동해야 달성할 수 있는 콘텐츠는 희소하며, 거점전, 점령전 역시 궁극적으로는 단체간의 경쟁에 불과하다. 무한 성장과 무한 경쟁의 세계로서 <검은사막>은 정말이지 사막처럼 삭막하다. 그리고 펄어비스와 카카오는 사막의 입장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의 물을 조금씩 떠다 판다.

 

5. 나는 왜 MMORPG를 플레이하는가/하지 않는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게임을 즐기는 형태는 말할 것도 없다. "원사운드" 박도빈의 "오락 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는 언제 들어도 명언이며 그 발언의 취지 역시 매우 공감하는 바이나, 이와는 약간 별개로, 사실 깊게 고민하고 알아챌 필요가 딱히 없을 뿐이지 모두에게는 각자의 원인과 동기가 있다.

 

 내 주위 지인들이 자주 하곤 하는 말이 "어디 재미있는 RPG 없나?"다. 이 RPG의 앞에는 대체로 MMO가 생략되어 있다. MMORPG를 다 풀어서 쓰면,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역할 수행 게임이다. 재미있는 RPG는 PC, 콘솔, 인디, AAA를 가리지 않고 넘쳐나므로, 대체로 이 발언의 방점은 MMO에 찍혀있다고 보는 것이 옳아 보인다.

 

 대규모 다중사용자 게임의 제작자들은 재미를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 내지는 관계 그 자체를 복제하려 한다. 이 복제는 게임 내 외부에서 모두, 게임을 플레이하는 구성원에 의해 수행된다. 그렇다면 <검은사막>이, 아니 사실 거의 모든 MMORPG가 은연중에 복제해내는 것은 실은 무엇인가? 이는 다소 동어반복적 선언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다름아닌 근대성 그 자체다.

 

 <검은사막>은 경쟁과 성장으로 대변되는 근대적 가치체계가 노골적으로 명목화된 세계이며, 제작사는 이를 그다지 숨기려 하지 않는다. <검은사막>의 메뉴는 온갖 종류의 레벨과 순위표로 가득하다. 어쩌면 오히려, <검은사막>을 비롯한 현대의 MMORPG는 현실 세계의 근대적 이데올로기를 현실 세계보다 더욱 "리얼"하게 재현하는 것은 아닌가.

 

 게임에서 모든 가치는 곧 수치로서 존재한다. 모든 것을 수직으로 배열하는 것이 가능한 이 일목요연한 세계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검은사막>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성장"이라는 명백한 동기를 부여하며, 스스로 "시간과 노력은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명제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된다.

 

 그리고 이는 내가 MMORPG를 플레이하게된, 그리고 하지 않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고도로 수치화, 서열화된 체계는 구성원들을 자극하여 도전과 성취욕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러한 첨단의 체계, 강해져야 한다 - 더 높은 숫자를 지녀야 한다 - 는 당위로 무장한, 이 오직 숫자로만 이루어진 가공의 세계가, 개인의 "경험"조차 너무나도 쉽사리 교환 가능한 어떤 것으로 치환해버린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힘이 너무나도 약하기 때문일까.

 

 <위처 3>를 플레이하면서 내가 사랑하게된 상상의 경험들이 있다. 로취의 등에 앉아 황량한 들판을 달릴 때 을씨년스럽게 울부짖던 나무들, 스켈리게의 고요하고 또 고독한 바다, 포물선을 그리며 붉은 피를 흩뿌리던 익사체들의 머리와, 주춤주춤 돈주머니를 건네던 가난한 농부들의 우울한 얼굴 - 그리고 그것을 애써 거절하는 흉터투성이의 늑대. 그런 것들은 <검은사막>의 세계에는 아쉽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태어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게임이 지녔던 잠재력은 너무나도 많은 레벨들, 숫자들에 밀려 심연(Abyss)으로 가라앉아버렸다.

 

6. 사막에 발을 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검은사막>은 분명 괜찮은, 잘 만든 게임이다. 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현금이 분명하게 보상받는, 그리고 가끔은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짓기도 하는, 그래서 결국엔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는 그런 게임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사막의 목마름, 성장을 향한 갈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충족되는 순간은 저 멀리에 신기루처럼 아른거리고, 카카오는 당신의 지갑을 열어본 뒤 그 신기루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당겨올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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