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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오리와 도깨비불', 더 커진 탐험과 안식의 세계

민초 (이소현 기자) | 2020-03-20 10:33:03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성공한 게임의 후속작이 연이어 성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리와 도깨비불>처럼 전작의 장점은 확실히 이어받으면서도 카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기란 더 어렵죠. 

'전편만 한 속편 없다'는 말처럼 후속작이 전작보다 부실한 현상을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고 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다거나, 전작과 다른 개성을 넣어보려다가 기획이 이상하게 됐거나, 안주해서 발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리와 도깨비불>은 메타크리틱 평점 90점을 받으며 88점을 받은 전작을 뛰어넘었습니다. 게임 전문 매체의 호평이 줄을 이었고 유튜버들도 질세라 플레이와 리뷰 영상을 올렸습니다. 뜨거운 기대에 부응해 게임은 출시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만 개가 넘는 스팀 리뷰가 작성되며 화제작임을 증명했습니다. 

전작을 재미있게 했던 기자도 출시되자마자 엔딩까지 봤습니다. <오리와 도깨비불>은 전작과 느낌이 아주 달랐습니다. 게임이 크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제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작을 했던 것은 2년 전 한창 취직 준비로 힘들었던 시기였거든요. 

지금은 사회 초년생이 되었고요. 작은 가정을 벗어나 새로운 숲,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 오리가 저와 겹쳐 보였습니다. 제가 두 게임을 비교하며 느꼈던 변화를 나름대로 풀어보았습니다.

 

* 주의: <오리와 도깨비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니웬의 어둠을 밝혀가는 오리의 여정


'오리' 시리즈는 '메트로배니아' 게임입니다. 메트로배니아는 가시덤불 같은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플랫포머'에 맵 곳곳을 탐색하는 모험을 섞은 장르입니다. 탐험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메트로배니아의 초반 지도는 ​전장의 안개처럼 가려져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조건을 활용해 호수, 동굴, 설원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지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맵의 어둠을 지우면서 숨겨진 공간까지 샅샅이 뒤져 탐사도 100%를 채우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전작의 초반, 후반 지도입니다. 초반 지도는 텅 비어 보이죠? 자신이 갔던 곳만 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곳이 어디인지 지도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답답하지 않고 재미있으려면 단순히 맵만 넓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지역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꼼꼼한 레벨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전작 <오리와 눈먼 숲>의 초반 지도.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게임 클리어 후. 모든 지역이 한 눈에 보입니다


메트로배니아의 넓은 맵은 초반에 갈 수 없는 길투성이입니다. 너무 높고, 멀고, 막혀 있죠.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스킬을 얻으면 점점 길이 열립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올가미' 스킬을 얻으면, 파란 열매에 사용해 높은 장소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템이 있는 것을 보고도 닿을 수 없었던 애타는 마음이 풀릴 때의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리와 도깨비불>은 메트로배니아에서 흔하지 않은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인공 앞에 놓인 많은 길에 딱히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보통 메트로배니아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 특정 기술이 있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내도록 탐험의 순서를 정해 놓습니다. 

 

이 게임은 길의 순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길로 먼저 가도 그 지역의 필수 스킬은 거기서 얻을 수 있고 기본 스킬과 약간의 컨트롤을 더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의 큰 그림은 정해져 있습니다. 빛이 사라지고 '썩음병'으로 시들어가는 숲을 되살리기 위한 여정이죠. 그러나 어디로 먼저 갈지, 막힌다면 어떤 스킬이 필요한지,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지나갈 수 없을지 고민하고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선형적인 스토리지만 비선형적인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능력을 습득하게 됩니다

올가미 능력을 얻으면 이단 점프로도 닿지 않았던 곳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길 찾기와 탐색이 주가 되는 까닭에 메트로배니아는 그래픽과 사운드,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공감이 되어야 탐험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오리' 시리즈가 좋은 메트로배니아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이러한 연출적 요소를 잘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빛의 연출을 잘 사용한 그래픽으로 각 지역을 개성 있게 그려냈고, 영국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Philharmonia Orchestra)'과 협업한 음악은 감미롭습니다.​ 아름다운 배경과 선율이 시작부터 플레이어를 사로잡아 홀로 숲을 헤매며 부엉이 '쿠'를 찾는 오리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합니다.

 

 

# 넓어진 세상의 중심에서 자립을 외치다


① 자립의 1단계, 사회로 들어서기 - 새로운 세계 니웬


전작 <오리와 눈먼 숲>의 등장인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리와 나루, 구모 모두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는 겁니다. 전작은 숲을 살리는 동시에 상처 입은 인물들이 모여 또 다른 가족을 이루고 서로 보듬는 치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리와 도깨비불>의 프롤로그부터 오리는 혼자서 '니웬'이라는 낯선 숲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롭고 쓸쓸한 것도 잠시, 오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됩니다. 오리와 비슷하지만 검은색의 털을 가진 '모키'족이나 늪을 지키는 거대한 두꺼비 '쿠올록', 그리고 숲의 많은 주민들입니다.​ 오리가 더 넓은 세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오리는 새로운 숲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 자립했다는 것을 실감하셨나요? 저는 자취하면서 세금을 직접 낼 때였습니다. 오리도 돈의 개념을 알고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지 게임은 상점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돈으로 쓰이는 '정령의 빛'은 몬스터를 물리치거나 빛구슬을 모아 얻을 수 있습니다.

첫 상점은 새로운 무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원숭이, 오퍼입니다. 전작에서는 경험치를 모아 포인트로 새로운 스킬을 배웠지만 후속작에서는 구매를 하게 됩니다. 가격이 조금 있지만 좋아하는 무기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죠.

아이템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습니다. 가장 비싼 것은 삼단 점프로 가격은 2,000빛이 넘습니다. 최대 두 번까지 가능했던 점프가 이 스킬을 장착하면 세 번으로 늘어납니다. 플랫포머에서 점프의 횟수는 게임의 난이도를 좌우합니다. 삼단 점프의 가격을 본 기자는 돈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고, 한동안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지도도 구매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지역을 돌아다니다 지도 제작자 루포를 만나면 해당 지역의 대략적인 지도를 살 수 있습니다. 숲에 떨어진 지도를 찾아 끼우던 전작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지역의 구석에서 지도를 판매하는 루포

탐험하면서 만나게 되는 주민들이 단지 상점이나 배경의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 퀘스트를 받거나, 흘려 말하는 소문을 듣고 목적지를 정할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를 풀어가는 역할도 합니다. 닿지 않는 스위치를 눌러주거나,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주는 식으로요. 툭툭 던지는 대사에서 막혔던 길의 힌트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NPC들과 상호작용하며 오리는 '관계'를 배웁니다. 서로 다른 모습만큼이나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있는 인물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이해하게 됩니다. 최종 보스인 칼날소리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듣게 되면서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주민들과의 잡담으로 게임의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리는 남을 도와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며 새로운 관계를 쌓습니다

 

스토리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기능을 하는 NPC도 있습니다. 오리를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관찰자​ '모타이'입니다. 

 

오리 시리즈는 전작부터 '아름다운 다크소울'로 유명했습니다. 엔딩을 보면서 몇 번이나 오리를 죽였는지 마음 아프기까지 합니다. 개발사는 후속작에서 기록을 더 상세하게 만들었습니다. 모타이는 활공 시간, 회복 횟수, 모은 아이템을 전부 기록하고 보여줍니다. 적에게 죽은 것과 함정에 죽은 것도 따로 기록됩니다.​

 

관찰자 모타이
기록이 전작보다 상세해졌습니다

넓어진 인물관계와 더불어 전작과 이번 작의 공통 요소인 '회복'도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숲을 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하니까요. 마을을 살리는 것이죠. 

하지만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안식처의 수리에는 총 40개의 광석과 6개의 씨앗이 필요하거든요. 게다가 맵의 곳곳에 숨겨져 있고 유독 어려워 보이는 장소에 놓여 있습니다. 엔딩까지 봤는데도 남아있는 아이템을 보고 있노라면 귀찮음이 슬쩍 고개를 듭니다.

그래도 집을 만들고,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식물을 심을수록 점점 변해가는 안식처의 모습이 플레이어를 격려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아이템을 죽고 또 죽다가 얻을 때의 뿌듯함을 한 번 경험하면, 어느새 안식처를 완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광석을 사용하여 안식처를 수리합니다

  

구한 씨를 심으면 안식처에 식물이 자랍니다

 

② 자립의 2단계, 성장 - 어엿한 '빛의 정령'이 된 오리

 

오리가 마주하는 세계만 넓어진 것이 아니라 오리도 성장했습니다. 오리는 전작의 프롤로그에서 태어났습니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숲을 되살리는 대장정에 뛰어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전작의 오리 곁에는 항상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니벨' 숲의 영혼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빛의 정령 '사인'입니다. 

 

사인은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현상의 의미를 해석해주고, 공격의 주역이었습니다. 오리가 적을 짓밟거나 쳐내는 것은 있었지만, 기본 공격은 사인의 '정령 불꽃'이었죠. 

 
전작 <오리와 눈먼 숲>에서는 빛의 정령 '사인'이 공격을 맡았습니다

오리가 5살이 된 후속작에서는 다릅니다. 중반부터 숲의 목소리가 함께 하기는 하지만, 전작의 사인만큼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오리는 숲의 주민들과 이야기하고 소문에 귀를 기울여가며 스스로 정보를 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무기로 적과 싸워야 합니다. 검과 망치, 활과 창, 폭탄 등 정령의 무기를 손에 들고요.

강화된 액션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것은 보스전입니다. 전작에서 보스전은 최종 보스 '쿠로'와의 추격전뿐이었습니다. 오리가 쿠로를 공격할 방법은 전혀 없어서 피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긴박감 넘치기는 했지만 액션성은 조금 부족했죠.

후속작에서 무기를 든 오리는 이제 보스와 직접 맞서 싸웁니다. 전작의 쿠로처럼 거대하고 강해 보이는 보스들이지만 패턴을 파악하고 배운 스킬들을 활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가 조금 아쉽습니다. 개발사가 액션 게임의 경험이 부족해서 밸런스를 못 맞췄다는 느낌입니다. 강한 공격 한 방에 보스의 HP가 쑥쑥 닳거든요.

전작의 시그니처였던 추격전은 여전히 '아름다운 <다크소울>'이라는 평가에 걸맞은 난이도를 보여줍니다. 배운 스킬들을 완벽하게 활용하지 못하면 깰 수 없습니다. 기자가 가장 많이 죽은 곳도 최종 보스전이 아니라 사막에서 벌이는 마지막 추격전이었습니다.

오리가 직접 망치를 휘두르고
창을 던집니다

2번째로 만나는 보스, 뿔딱정벌레
가장 긴 마지막 추격전

전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장비 시스템도 추가되었습니다. 전작에서는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지만 이제 오리는 자신의 전투방식을 분석하고 좋아하는 무기를 고르고, 필요한 '정령 조각'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활을 자주 쏜다면 활을 강화하고, 적이 너무 세다면 맷집을 올리는 식입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오리는 정령 조각들을 모으고 원하는 대로 장착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를 통해 오리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작과 차별을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리'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존재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게임의 초반부터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은 오리의 정체성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니웬 숲의 주민들은 오랜만에 보는 정령이라며 오리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새로운 종족 '모키'는 '너의 안에 태고의 빛이 빛나고 있다'라고 말했죠. 기자는 가볍게 넘겼던 이 대사의 의미를 섬광 스킬을 얻을 때 깨달았습니다. 짓누르는 어둠을 밀어내는 오리를 보면서요. 

 

전작에서 갓 태어났던 오리는 이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어엿한 '빛의 정령'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자신의 빛을 내는 '빛의 정령' 오리
 

 

# 나의 환경이 막막할지라도, 길은 보인다

순환을 얘기하는 빛의 정령 세이르
<오리와 도깨비불>의 끝

빛의 정령으로 각성한 오리의 이야기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숲을 되살리며 끝이 납니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해 보이지 않나요? 1편의 시작, 오리가 태어나는 장면과 거의 흡사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래픽은 발전했어도 본질은 같습니다. 새 이야기의 시작이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게임은 순환 구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조금 허무한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마무리입니다. 다시 살아난 영혼의 나무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 먼 훗날 아직 미숙하지만 언젠가는 빛의 정령으로 자라날 새로운 '오리'의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게임의 엔딩까지 보면서 난관에 절망하고 시간에 쫓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서문에서 밝혔듯, 오리에게서 종종 사회 초년생인 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익숙했던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을 마주해야 하고, 내 기술은 너무 부족하고, 세상은 지나치게 넓어 보입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개념을 습득해야 하고 높은 벽을 만나 돌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능력을 얻고 경험을 쌓는다면 길은 분명 보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처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직 부족하지만 또 새로운 이야기를 쌓으며 성장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둠에 휩싸인 오리
너무 강해 보이는 최종 보스 칼날소리

개발 : 문 스튜디오   출시 : 2020년 3월 11일   장르 : 메트로배니아 플랫포머   

플랫폼 : 엑스박스, 스팀   한국어 지원 : O

 

성공한 게임의 후속작이 연이어 성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리와 도깨비불>처럼 전작의 장점은 확실히 이어받으면서도 카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기란 더 어렵죠. 

'전편만 한 속편 없다'는 말처럼 후속작이 전작보다 부실한 현상을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고 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다거나, 전작과 다른 개성을 넣어보려다가 기획이 이상하게 됐거나, 안주해서 발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리와 도깨비불>은 메타크리틱 평점 90점을 받으며 88점을 받은 전작을 뛰어넘었습니다. 게임 전문 매체의 호평이 줄을 이었고 유튜버들도 질세라 플레이와 리뷰 영상을 올렸습니다. 뜨거운 기대에 부응해 게임은 출시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만 개가 넘는 스팀 리뷰가 작성되며 화제작임을 증명했습니다. 

전작을 재미있게 했던 기자도 출시되자마자 엔딩까지 봤습니다. <오리와 도깨비불>은 전작과 느낌이 아주 달랐습니다. 게임이 크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제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작을 했던 것은 2년 전 한창 취직 준비로 힘들었던 시기였거든요. 

지금은 사회 초년생이 되었고요. 작은 가정을 벗어나 새로운 숲,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 오리가 저와 겹쳐 보였습니다. 제가 두 게임을 비교하며 느꼈던 변화를 나름대로 풀어보았습니다.

 

* 주의: <오리와 도깨비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니웬의 어둠을 밝혀가는 오리의 여정


'오리' 시리즈는 '메트로배니아' 게임입니다. 메트로배니아는 가시덤불 같은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플랫포머'에 맵 곳곳을 탐색하는 모험을 섞은 장르입니다. 탐험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메트로배니아의 초반 지도는 ​전장의 안개처럼 가려져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조건을 활용해 호수, 동굴, 설원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지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맵의 어둠을 지우면서 숨겨진 공간까지 샅샅이 뒤져 탐사도 100%를 채우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전작의 초반, 후반 지도입니다. 초반 지도는 텅 비어 보이죠? 자신이 갔던 곳만 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곳이 어디인지 지도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답답하지 않고 재미있으려면 단순히 맵만 넓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지역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꼼꼼한 레벨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전작 <오리와 눈먼 숲>의 초반 지도.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게임 클리어 후. 모든 지역이 한 눈에 보입니다


메트로배니아의 넓은 맵은 초반에 갈 수 없는 길투성이입니다. 너무 높고, 멀고, 막혀 있죠.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스킬을 얻으면 점점 길이 열립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올가미' 스킬을 얻으면, 파란 열매에 사용해 높은 장소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템이 있는 것을 보고도 닿을 수 없었던 애타는 마음이 풀릴 때의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리와 도깨비불>은 메트로배니아에서 흔하지 않은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인공 앞에 놓인 많은 길에 딱히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보통 메트로배니아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 특정 기술이 있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내도록 탐험의 순서를 정해 놓습니다. 

 

이 게임은 길의 순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길로 먼저 가도 그 지역의 필수 스킬은 거기서 얻을 수 있고 기본 스킬과 약간의 컨트롤을 더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의 큰 그림은 정해져 있습니다. 빛이 사라지고 '썩음병'으로 시들어가는 숲을 되살리기 위한 여정이죠. 그러나 어디로 먼저 갈지, 막힌다면 어떤 스킬이 필요한지,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지나갈 수 없을지 고민하고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선형적인 스토리지만 비선형적인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능력을 습득하게 됩니다

올가미 능력을 얻으면 이단 점프로도 닿지 않았던 곳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길 찾기와 탐색이 주가 되는 까닭에 메트로배니아는 그래픽과 사운드,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공감이 되어야 탐험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오리' 시리즈가 좋은 메트로배니아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이러한 연출적 요소를 잘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빛의 연출을 잘 사용한 그래픽으로 각 지역을 개성 있게 그려냈고, 영국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Philharmonia Orchestra)'과 협업한 음악은 감미롭습니다.​ 아름다운 배경과 선율이 시작부터 플레이어를 사로잡아 홀로 숲을 헤매며 부엉이 '쿠'를 찾는 오리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합니다.

 

 

# 넓어진 세상의 중심에서 자립을 외치다


① 자립의 1단계, 사회로 들어서기 - 새로운 세계 니웬


전작 <오리와 눈먼 숲>의 등장인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리와 나루, 구모 모두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는 겁니다. 전작은 숲을 살리는 동시에 상처 입은 인물들이 모여 또 다른 가족을 이루고 서로 보듬는 치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리와 도깨비불>의 프롤로그부터 오리는 혼자서 '니웬'이라는 낯선 숲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롭고 쓸쓸한 것도 잠시, 오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됩니다. 오리와 비슷하지만 검은색의 털을 가진 '모키'족이나 늪을 지키는 거대한 두꺼비 '쿠올록', 그리고 숲의 많은 주민들입니다.​ 오리가 더 넓은 세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오리는 새로운 숲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 자립했다는 것을 실감하셨나요? 저는 자취하면서 세금을 직접 낼 때였습니다. 오리도 돈의 개념을 알고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지 게임은 상점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돈으로 쓰이는 '정령의 빛'은 몬스터를 물리치거나 빛구슬을 모아 얻을 수 있습니다.

첫 상점은 새로운 무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원숭이, 오퍼입니다. 전작에서는 경험치를 모아 포인트로 새로운 스킬을 배웠지만 후속작에서는 구매를 하게 됩니다. 가격이 조금 있지만 좋아하는 무기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죠.

아이템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습니다. 가장 비싼 것은 삼단 점프로 가격은 2,000빛이 넘습니다. 최대 두 번까지 가능했던 점프가 이 스킬을 장착하면 세 번으로 늘어납니다. 플랫포머에서 점프의 횟수는 게임의 난이도를 좌우합니다. 삼단 점프의 가격을 본 기자는 돈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고, 한동안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지도도 구매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지역을 돌아다니다 지도 제작자 루포를 만나면 해당 지역의 대략적인 지도를 살 수 있습니다. 숲에 떨어진 지도를 찾아 끼우던 전작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지역의 구석에서 지도를 판매하는 루포

탐험하면서 만나게 되는 주민들이 단지 상점이나 배경의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 퀘스트를 받거나, 흘려 말하는 소문을 듣고 목적지를 정할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를 풀어가는 역할도 합니다. 닿지 않는 스위치를 눌러주거나,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주는 식으로요. 툭툭 던지는 대사에서 막혔던 길의 힌트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NPC들과 상호작용하며 오리는 '관계'를 배웁니다. 서로 다른 모습만큼이나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있는 인물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이해하게 됩니다. 최종 보스인 칼날소리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듣게 되면서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주민들과의 잡담으로 게임의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리는 남을 도와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며 새로운 관계를 쌓습니다

 

스토리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기능을 하는 NPC도 있습니다. 오리를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관찰자​ '모타이'입니다. 

 

오리 시리즈는 전작부터 '아름다운 다크소울'로 유명했습니다. 엔딩을 보면서 몇 번이나 오리를 죽였는지 마음 아프기까지 합니다. 개발사는 후속작에서 기록을 더 상세하게 만들었습니다. 모타이는 활공 시간, 회복 횟수, 모은 아이템을 전부 기록하고 보여줍니다. 적에게 죽은 것과 함정에 죽은 것도 따로 기록됩니다.​

 

관찰자 모타이
기록이 전작보다 상세해졌습니다

넓어진 인물관계와 더불어 전작과 이번 작의 공통 요소인 '회복'도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숲을 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하니까요. 마을을 살리는 것이죠. 

하지만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안식처의 수리에는 총 40개의 광석과 6개의 씨앗이 필요하거든요. 게다가 맵의 곳곳에 숨겨져 있고 유독 어려워 보이는 장소에 놓여 있습니다. 엔딩까지 봤는데도 남아있는 아이템을 보고 있노라면 귀찮음이 슬쩍 고개를 듭니다.

그래도 집을 만들고,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식물을 심을수록 점점 변해가는 안식처의 모습이 플레이어를 격려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아이템을 죽고 또 죽다가 얻을 때의 뿌듯함을 한 번 경험하면, 어느새 안식처를 완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광석을 사용하여 안식처를 수리합니다

  

구한 씨를 심으면 안식처에 식물이 자랍니다

 

② 자립의 2단계, 성장 - 어엿한 '빛의 정령'이 된 오리

 

오리가 마주하는 세계만 넓어진 것이 아니라 오리도 성장했습니다. 오리는 전작의 프롤로그에서 태어났습니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숲을 되살리는 대장정에 뛰어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전작의 오리 곁에는 항상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니벨' 숲의 영혼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빛의 정령 '사인'입니다. 

 

사인은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현상의 의미를 해석해주고, 공격의 주역이었습니다. 오리가 적을 짓밟거나 쳐내는 것은 있었지만, 기본 공격은 사인의 '정령 불꽃'이었죠. 

 
전작 <오리와 눈먼 숲>에서는 빛의 정령 '사인'이 공격을 맡았습니다

오리가 5살이 된 후속작에서는 다릅니다. 중반부터 숲의 목소리가 함께 하기는 하지만, 전작의 사인만큼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오리는 숲의 주민들과 이야기하고 소문에 귀를 기울여가며 스스로 정보를 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무기로 적과 싸워야 합니다. 검과 망치, 활과 창, 폭탄 등 정령의 무기를 손에 들고요.

강화된 액션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것은 보스전입니다. 전작에서 보스전은 최종 보스 '쿠로'와의 추격전뿐이었습니다. 오리가 쿠로를 공격할 방법은 전혀 없어서 피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긴박감 넘치기는 했지만 액션성은 조금 부족했죠.

후속작에서 무기를 든 오리는 이제 보스와 직접 맞서 싸웁니다. 전작의 쿠로처럼 거대하고 강해 보이는 보스들이지만 패턴을 파악하고 배운 스킬들을 활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가 조금 아쉽습니다. 개발사가 액션 게임의 경험이 부족해서 밸런스를 못 맞췄다는 느낌입니다. 강한 공격 한 방에 보스의 HP가 쑥쑥 닳거든요.

전작의 시그니처였던 추격전은 여전히 '아름다운 <다크소울>'이라는 평가에 걸맞은 난이도를 보여줍니다. 배운 스킬들을 완벽하게 활용하지 못하면 깰 수 없습니다. 기자가 가장 많이 죽은 곳도 최종 보스전이 아니라 사막에서 벌이는 마지막 추격전이었습니다.

오리가 직접 망치를 휘두르고
창을 던집니다

2번째로 만나는 보스, 뿔딱정벌레
가장 긴 마지막 추격전

전투의 비중이 커진 만큼 장비 시스템도 추가되었습니다. 전작에서는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지만 이제 오리는 자신의 전투방식을 분석하고 좋아하는 무기를 고르고, 필요한 '정령 조각'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활을 자주 쏜다면 활을 강화하고, 적이 너무 세다면 맷집을 올리는 식입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오리는 정령 조각들을 모으고 원하는 대로 장착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를 통해 오리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작과 차별을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리'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존재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게임의 초반부터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은 오리의 정체성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니웬 숲의 주민들은 오랜만에 보는 정령이라며 오리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새로운 종족 '모키'는 '너의 안에 태고의 빛이 빛나고 있다'라고 말했죠. 기자는 가볍게 넘겼던 이 대사의 의미를 섬광 스킬을 얻을 때 깨달았습니다. 짓누르는 어둠을 밀어내는 오리를 보면서요. 

 

전작에서 갓 태어났던 오리는 이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어엿한 '빛의 정령'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자신의 빛을 내는 '빛의 정령' 오리
 

 

# 나의 환경이 막막할지라도, 길은 보인다

순환을 얘기하는 빛의 정령 세이르
<오리와 도깨비불>의 끝

빛의 정령으로 각성한 오리의 이야기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숲을 되살리며 끝이 납니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해 보이지 않나요? 1편의 시작, 오리가 태어나는 장면과 거의 흡사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래픽은 발전했어도 본질은 같습니다. 새 이야기의 시작이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게임은 순환 구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조금 허무한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마무리입니다. 다시 살아난 영혼의 나무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 먼 훗날 아직 미숙하지만 언젠가는 빛의 정령으로 자라날 새로운 '오리'의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게임의 엔딩까지 보면서 난관에 절망하고 시간에 쫓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서문에서 밝혔듯, 오리에게서 종종 사회 초년생인 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익숙했던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을 마주해야 하고, 내 기술은 너무 부족하고, 세상은 지나치게 넓어 보입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개념을 습득해야 하고 높은 벽을 만나 돌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능력을 얻고 경험을 쌓는다면 길은 분명 보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처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직 부족하지만 또 새로운 이야기를 쌓으며 성장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둠에 휩싸인 오리
너무 강해 보이는 최종 보스 칼날소리

개발 : 문 스튜디오   출시 : 2020년 3월 11일   장르 : 메트로배니아 플랫포머   

플랫폼 : 엑스박스, 스팀   한국어 지원 :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