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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OOI 2018] 게임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상상하게 할 뿐. '베스트럭' 리뷰

그루잠 (박수민 기자) | 2018-10-23 17: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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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개성 넘치는 실험작이 가득했던 ‘아웃 오브 인덱스 2018’. 지난 20일(토요일)에 개최된 OOI 시연장에는 유난히 긴 줄을 늘어뜨린 게임이 있습니다. 현장 스태프가 게임 시연에 10분의 제한시간을 둬야 했을 정도죠.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게임의 이름은 <베스트럭>(Bestluck)입니다. 꿈 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게임은 특유의 그래픽과 음향효과에서 나오는 서정성을 인정받아 여러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진행한 10분 간의 시연은 그런 서정성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게임을 해 본 기자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 투성이었죠. 게임 안에는 그 흔한 텍스트도 없고, 성우의 나레이션이나 설명도 없었습니다. 개발자 유재현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대로 ‘숲 속을 헤메는’ 기분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끌리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OOI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베스트럭>을 설치했습니다. 직접 해 보니 이 게임, 끝까지 한 마디도 안 하더군요. /디스이즈게임 박수민 기자

 


 

 

 

현실과 꿈 속을 구분하는 경계선, '문'을 이용한 퍼즐 트릭

 

일단 <베스트럭>은 퍼즐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유저는 캐릭터를 넓은 맵에서 움직이다가, 눈 앞에 마주친 퍼즐을 풀면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베스트럭>은 볼륨이 큰 게임은 아닙니다. 퍼즐에서 실수를 어느 정도 반복한다고 해도, 플레이타임은 한 시간 남짓이죠. 퍼즐 또한 ‘문’과 ‘문 너머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컨셉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퍼즐에는 여러 개의 문이 등장하고, 이 문을 열고 닫으며 퍼즐을 진행하게 됩니다. 

 

<베스트럭>의 퍼즐은 '문'이라는 오브젝트를 십분 활용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의 퍼즐이 쉽게 질린다거나 시시하지는 않습니다. 문과 시선이라는 컨셉 하나만으로 다양한 퍼즐 기믹을 선보였거든요. 

 

대부분의 기믹은 눈 앞에 놓인 문을 모두 열면 풀립니다. 다만 모든 문을 아무렇게나 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을 정해진 순서대로 열어야 합니다. 문을 순서대로 열어내지 못하면 그 동안 열어 놨던 모든 문이 닫혀버리죠. 

 

이 열어야 하는 순서를 알려주는 방법이 꽤 다양합니다. 문을 열 때 마다 발자국으로 순서를 알려 주거나, 일일히 직접 문을 열어보고 순서를 알아내야 합니다. 이 때 유저는 문 너머로만 이 단서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문틀 밖에서는 그 단서가 보이지 않죠. 

 

단순히 문을 여는 순서만 찾으면 되니까, 게임의 퍼즐이 꽤 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접 해 보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베스트럭>은 정말 말 그대로, 퍼즐이나 게임에 대해 어떤 말도 해 주지 않거든요. 

 

분홍색 발자국을 따라 문을 순서대로 열어야 하는 퍼즐. 발자국은 열린 문 뒤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스트럭>은 말하지 않는다

 

<베스트럭>은 유저에 따라서 불친절한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베스트럭>의 퍼즐을 풀러 이동하는 과정이나, 게임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코멘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스트럭>은 유저가 얻을 수 있는 단서를 극도로 제한합니다. 다른 게임은 흔히 중요 오브젝트를 빛나게 처리한다거나, 화살표로 표시해 놓거나, 캐릭터의 음성이나 나레이션으로 유저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 주죠. 그런 일종의 ‘표지판’들이 <베스트럭>에는 없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유저는 어느 방에 덩그러니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어떤 걸 해야 하는지 게임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유저는 버그인가 싶어 게임을 껐다 켜 보기도 하고, 안내 문구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움직여 보기도 하죠. 기자 또한 시연 때, 방 안에서 5분 정도를 돌아다녔던 것 같네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게임은 유저가 침대를 눌러 캐릭터가 잠에 빠져드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앞서 소개했던 퍼즐들이 시작되는 지점이죠. 이 때에도 게임은 말이 없습니다. 어떤 나레이션이나 행동 지시도 없으며, 유저들에게 주어지는 단서는 단 두 가지, 꿈 속에서 만난 소녀의 손가락 방향과 특정 물체에서 새어 나오는 빛입니다. 이 두 단서를 통해 유저는 ‘눈치껏’ 게임을 진행해야 하죠. 

 

게임을 통해 풀어나가는 <베스트럭>의 스토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베스트럭>의 스토리는 텍스트나 컷씬, 대화 등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연출은 존재하지만, 그 연출이 스토리를 감상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죠. 캐릭터의 얼굴에는 표정이 그려지지도 않아, 캐릭터의 표정을 관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스토리에 관한 짤막한 단서를 각 퍼즐 마다 제시해 줄 뿐입니다. 문으로 구성된 퍼즐을 풀고, 이후 소녀와 함께 문을 여는 곳에 도달하면 각 부분별로 일러스트 한 장이 화면에 드러납니다. 

 

퍼즐을 풀고 나면 스토리의 조각들이 이렇게 노출됩니다. 그리고 곧 사라져 버리죠.

 

이 이미지가 소녀와 주인공의 기억인지, 아니면 소녀가 주인공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스토리 일러스트를 보고 게임을 진행하려면 빛나는 물체에서 힘을 세 번 흡수해 소녀의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데(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때 수집하는 에너지의 의미도 설명해 주지 않죠.

 

<베스트럭>의 모든 스토리와 설정은 그저 제시만 될 뿐이고, 스토리의 자세한 내막이나 사정은 유저가 직접 생각해야 합니다. 말로만 들었을 땐 불친절하고, 정체불명이며, 답답하고 짜증날 것 같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길 '상상력'

 

<베스트럭>을 플레이할 때 느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게임에 대한 숱한 궁금증이고, 하나는 그 궁금증을 풀었을 때 느끼는 깨달음입니다. 

 

게임은 언뜻 봤을 때, 내용물(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이라든지, 게임의 스토리와 같은 것들) 없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임이 ‘비어 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게임 속 비어 있는 공간은 유저의 상상력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궁금증은 유저의 상상력을 끄집어 내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궁금해 하며, 그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죠. 주어진 단서가 충분치 않아 ‘알고자 하는 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사람은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장치인 셈 입니다. 

 

간간히 출력되는 아주 조금의 텍스트마저도 '보입니다'라는 말을 사용해 상상의 여지를 두었습니다.

텅 비어 있던 것 같은 게임 속에는 상상력을 적절히 자극해 주는 두 가지 장치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 주목 받은 바 있는 ‘그래픽’과 ‘사운드’입니다. 

 

<베스트럭>의 그래픽은 꿈 속을 걷는 듯 한 푸른 색감과 ‘로우 폴리곤 그래픽’(그래픽 캐릭터를 채우고 있는 '폴리곤'의 각진 형태가 드러나도록, 적은 수의 폴리곤을 사용하는 그래픽 기법)을 이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그래픽 특징은 ‘현재 캐릭터가 꿈 속에 있다’는 게임 내 설정을 유저가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후 유저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넌지시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죠. 

 

유저는 <베스트럭>이 제시한 그래픽을 통해 ‘내가 지금 꿈 속에 있으니, 무언가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도 큰 무리가 없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미지나 정체 불명의 인물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덕분에 유저는 ‘어떤 걸 상상해야 하는 지’ 대략적인 분위기를 통해 인지하게 되죠. <베스트럭>의 게임 그래픽은 유저의 머리속에 있는 ‘상상력’이라는 그래픽을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둡고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어쩐지 무섭지는 않은 꿈 속 세계를 잘 표현했습니다.

 

그래픽이 상상력을 펼치기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면, ‘사운드’는 상상력을 발휘해 게임을 이해하고 있는 유저를 자극해 그 상상력에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증폭기의 역할을 합니다. 길을 걷는 사박사박 하는 소리나 비 오는 소리, 천둥 소리 등은 상황에 맞게 제시돼 유저가 떠올린 상상력을 뒷받침하고 그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죠. 

 

특히 게임 스토리가 하이라이트에 달할 때 등장하는 노래는 위와 같은 음향효과보다 더 깊은 감정을 유저에게 전달합니다. 단조로 이뤄진 선율은 대체로 슬프거나 아련하게 들립니다. 노래는 이 선율을 이용해 유저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일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법은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니어: 오토마타>같은 게임이 있죠.

 

<베스트럭>의 개발자 유재현은 OOI와의 인터뷰에서 “유저들이 ‘애매모호’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캐릭터의 형태가 모호할 때 더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그런 것. 형태가 분명치 않아서 갭을 메우기 힘들고, 그 간극이 오히려 애착을 일으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게임 안에는 분명한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간극이 유저 개인의 ‘상상력’이라고 기자는 생각했습니다. 기자의 머리속에는 기자의 상상력대로 채워진 <베스트럭>의 스토리가 있죠. 

 

제 생각대로 이미지를 판단하고, 짜 맞춘 결과로 나온 <베스트럭>의 스토리는 모호하면서도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나 좋을 대로’ 상상해 낸 스토리니까요. 지나치게 모호하고 어려운 퍼즐 패턴, 짧은 게임 볼륨 등 적지 않은 단점도 지적 받은 <베스트럭>이지만 그 단점을 뛰어넘는 재미도 분명히 쏠쏠한 게임이었습니다. 

 


 

올해에도 개성 넘치는 실험작이 가득했던 ‘아웃 오브 인덱스 2018’. 지난 20일(토요일)에 개최된 OOI 시연장에는 유난히 긴 줄을 늘어뜨린 게임이 있습니다. 현장 스태프가 게임 시연에 10분의 제한시간을 둬야 했을 정도죠.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게임의 이름은 <베스트럭>(Bestluck)입니다. 꿈 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게임은 특유의 그래픽과 음향효과에서 나오는 서정성을 인정받아 여러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진행한 10분 간의 시연은 그런 서정성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게임을 해 본 기자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 투성이었죠. 게임 안에는 그 흔한 텍스트도 없고, 성우의 나레이션이나 설명도 없었습니다. 개발자 유재현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대로 ‘숲 속을 헤메는’ 기분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끌리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OOI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베스트럭>을 설치했습니다. 직접 해 보니 이 게임, 끝까지 한 마디도 안 하더군요. /디스이즈게임 박수민 기자

 


 

 

 

현실과 꿈 속을 구분하는 경계선, '문'을 이용한 퍼즐 트릭

 

일단 <베스트럭>은 퍼즐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유저는 캐릭터를 넓은 맵에서 움직이다가, 눈 앞에 마주친 퍼즐을 풀면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베스트럭>은 볼륨이 큰 게임은 아닙니다. 퍼즐에서 실수를 어느 정도 반복한다고 해도, 플레이타임은 한 시간 남짓이죠. 퍼즐 또한 ‘문’과 ‘문 너머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컨셉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퍼즐에는 여러 개의 문이 등장하고, 이 문을 열고 닫으며 퍼즐을 진행하게 됩니다. 

 

<베스트럭>의 퍼즐은 '문'이라는 오브젝트를 십분 활용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의 퍼즐이 쉽게 질린다거나 시시하지는 않습니다. 문과 시선이라는 컨셉 하나만으로 다양한 퍼즐 기믹을 선보였거든요. 

 

대부분의 기믹은 눈 앞에 놓인 문을 모두 열면 풀립니다. 다만 모든 문을 아무렇게나 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을 정해진 순서대로 열어야 합니다. 문을 순서대로 열어내지 못하면 그 동안 열어 놨던 모든 문이 닫혀버리죠. 

 

이 열어야 하는 순서를 알려주는 방법이 꽤 다양합니다. 문을 열 때 마다 발자국으로 순서를 알려 주거나, 일일히 직접 문을 열어보고 순서를 알아내야 합니다. 이 때 유저는 문 너머로만 이 단서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문틀 밖에서는 그 단서가 보이지 않죠. 

 

단순히 문을 여는 순서만 찾으면 되니까, 게임의 퍼즐이 꽤 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접 해 보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베스트럭>은 정말 말 그대로, 퍼즐이나 게임에 대해 어떤 말도 해 주지 않거든요. 

 

분홍색 발자국을 따라 문을 순서대로 열어야 하는 퍼즐. 발자국은 열린 문 뒤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스트럭>은 말하지 않는다

 

<베스트럭>은 유저에 따라서 불친절한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베스트럭>의 퍼즐을 풀러 이동하는 과정이나, 게임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코멘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스트럭>은 유저가 얻을 수 있는 단서를 극도로 제한합니다. 다른 게임은 흔히 중요 오브젝트를 빛나게 처리한다거나, 화살표로 표시해 놓거나, 캐릭터의 음성이나 나레이션으로 유저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 주죠. 그런 일종의 ‘표지판’들이 <베스트럭>에는 없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유저는 어느 방에 덩그러니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어떤 걸 해야 하는지 게임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유저는 버그인가 싶어 게임을 껐다 켜 보기도 하고, 안내 문구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움직여 보기도 하죠. 기자 또한 시연 때, 방 안에서 5분 정도를 돌아다녔던 것 같네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게임은 유저가 침대를 눌러 캐릭터가 잠에 빠져드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앞서 소개했던 퍼즐들이 시작되는 지점이죠. 이 때에도 게임은 말이 없습니다. 어떤 나레이션이나 행동 지시도 없으며, 유저들에게 주어지는 단서는 단 두 가지, 꿈 속에서 만난 소녀의 손가락 방향과 특정 물체에서 새어 나오는 빛입니다. 이 두 단서를 통해 유저는 ‘눈치껏’ 게임을 진행해야 하죠. 

 

게임을 통해 풀어나가는 <베스트럭>의 스토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베스트럭>의 스토리는 텍스트나 컷씬, 대화 등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연출은 존재하지만, 그 연출이 스토리를 감상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죠. 캐릭터의 얼굴에는 표정이 그려지지도 않아, 캐릭터의 표정을 관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스토리에 관한 짤막한 단서를 각 퍼즐 마다 제시해 줄 뿐입니다. 문으로 구성된 퍼즐을 풀고, 이후 소녀와 함께 문을 여는 곳에 도달하면 각 부분별로 일러스트 한 장이 화면에 드러납니다. 

 

퍼즐을 풀고 나면 스토리의 조각들이 이렇게 노출됩니다. 그리고 곧 사라져 버리죠.

 

이 이미지가 소녀와 주인공의 기억인지, 아니면 소녀가 주인공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스토리 일러스트를 보고 게임을 진행하려면 빛나는 물체에서 힘을 세 번 흡수해 소녀의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데(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때 수집하는 에너지의 의미도 설명해 주지 않죠.

 

<베스트럭>의 모든 스토리와 설정은 그저 제시만 될 뿐이고, 스토리의 자세한 내막이나 사정은 유저가 직접 생각해야 합니다. 말로만 들었을 땐 불친절하고, 정체불명이며, 답답하고 짜증날 것 같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길 '상상력'

 

<베스트럭>을 플레이할 때 느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게임에 대한 숱한 궁금증이고, 하나는 그 궁금증을 풀었을 때 느끼는 깨달음입니다. 

 

게임은 언뜻 봤을 때, 내용물(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이라든지, 게임의 스토리와 같은 것들) 없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임이 ‘비어 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게임 속 비어 있는 공간은 유저의 상상력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궁금증은 유저의 상상력을 끄집어 내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궁금해 하며, 그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죠. 주어진 단서가 충분치 않아 ‘알고자 하는 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사람은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장치인 셈 입니다. 

 

간간히 출력되는 아주 조금의 텍스트마저도 '보입니다'라는 말을 사용해 상상의 여지를 두었습니다.

텅 비어 있던 것 같은 게임 속에는 상상력을 적절히 자극해 주는 두 가지 장치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 주목 받은 바 있는 ‘그래픽’과 ‘사운드’입니다. 

 

<베스트럭>의 그래픽은 꿈 속을 걷는 듯 한 푸른 색감과 ‘로우 폴리곤 그래픽’(그래픽 캐릭터를 채우고 있는 '폴리곤'의 각진 형태가 드러나도록, 적은 수의 폴리곤을 사용하는 그래픽 기법)을 이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그래픽 특징은 ‘현재 캐릭터가 꿈 속에 있다’는 게임 내 설정을 유저가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후 유저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넌지시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죠. 

 

유저는 <베스트럭>이 제시한 그래픽을 통해 ‘내가 지금 꿈 속에 있으니, 무언가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도 큰 무리가 없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미지나 정체 불명의 인물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덕분에 유저는 ‘어떤 걸 상상해야 하는 지’ 대략적인 분위기를 통해 인지하게 되죠. <베스트럭>의 게임 그래픽은 유저의 머리속에 있는 ‘상상력’이라는 그래픽을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둡고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어쩐지 무섭지는 않은 꿈 속 세계를 잘 표현했습니다.

 

그래픽이 상상력을 펼치기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면, ‘사운드’는 상상력을 발휘해 게임을 이해하고 있는 유저를 자극해 그 상상력에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증폭기의 역할을 합니다. 길을 걷는 사박사박 하는 소리나 비 오는 소리, 천둥 소리 등은 상황에 맞게 제시돼 유저가 떠올린 상상력을 뒷받침하고 그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죠. 

 

특히 게임 스토리가 하이라이트에 달할 때 등장하는 노래는 위와 같은 음향효과보다 더 깊은 감정을 유저에게 전달합니다. 단조로 이뤄진 선율은 대체로 슬프거나 아련하게 들립니다. 노래는 이 선율을 이용해 유저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일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법은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니어: 오토마타>같은 게임이 있죠.

 

<베스트럭>의 개발자 유재현은 OOI와의 인터뷰에서 “유저들이 ‘애매모호’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캐릭터의 형태가 모호할 때 더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그런 것. 형태가 분명치 않아서 갭을 메우기 힘들고, 그 간극이 오히려 애착을 일으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게임 안에는 분명한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간극이 유저 개인의 ‘상상력’이라고 기자는 생각했습니다. 기자의 머리속에는 기자의 상상력대로 채워진 <베스트럭>의 스토리가 있죠. 

 

제 생각대로 이미지를 판단하고, 짜 맞춘 결과로 나온 <베스트럭>의 스토리는 모호하면서도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나 좋을 대로’ 상상해 낸 스토리니까요. 지나치게 모호하고 어려운 퍼즐 패턴, 짧은 게임 볼륨 등 적지 않은 단점도 지적 받은 <베스트럭>이지만 그 단점을 뛰어넘는 재미도 분명히 쏠쏠한 게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