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신 사쿠라대전, 한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게임으로 옮기다

깨쓰통 (현남일) | 2019-12-27 17:24:21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세가(SEGA)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지만, 근 10년이 넘게 이렇다할 신작이 발매되지 않아 사실상 끝난 프랜차이즈, 혹은 연륜이 깊은(?) 게이머들의 ‘라떼 팔이’ 대상으로만 회자되던 ‘사쿠라 대전’(サクラ大戦) 시리즈가 정말 오랜만에 신작을 발매했다. 지난 12월 12일 판매를 시작한 PS4용 <신 사쿠라대전>이 그 주인공으로, 이전 마지막 넘버링 작품인 <사쿠라대전 5>가 2005년 발매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그만치 14년 만에 돌아온 셈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신 사쿠라대전>은 ‘사쿠라대전’ 시리즈 특유의 ‘감성’과 ‘게임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신’(新)이라는 게임명이 붙은 만큼, 사실상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하는 타이틀이기 때문에 전작들을 해보지 않은 유저라고 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게임

 

게임을 소개하는 데 있어 ‘한편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이라는 수식어는 다소 남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쿠라대전> 시리즈만큼 이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게임 내 여러 요소는 물론이고, ‘감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일본의 TV 방영 애니메이션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는 <신 사쿠라대전> 또한 마찬가지다. ‘오프닝 애니메이션’(+오프닝 곡)으로 시작하는 도입부 부터 2D 애니메이션 컷씬과 무비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이벤트 씬, 스토리 진행, 한 챕터(한 화)가 끝나면 나오는 ‘차화 예고’까지. 모든 것이 정말 ‘한 편의 TV 방영 애니메이션’ 같은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게임 내에서는 2D 애니메이션 컷씬이 적극 활용되고, TV방영 애니메이션 처럼 오프닝무비나 차화 예고도 나온다.

저장 및 잠깐 쉬어가는 포인트로 활용되는 아이캐치


이전 시리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2D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풀 3D 그래픽을 적극 활용하는 이벤트 연출도 많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기술의 발전으로 3D 그래픽의 퀄리티가 향상되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의 괴리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 편. 다만 캐릭터 모델링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카툰풍 풀 3D 그래픽은 이벤트 컷씬 등에서 적극 활용된다. 사실 퀄리티가 아주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게임의 분위기를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

<신 사쿠라대전>은 증기기관 등 일부 과학 기술이 비상식적으로 발전한 가상의 20세기 초 일본을 무대로 한다. 플레이어는 악의 무리로부터 도시를 지키지만, 한 편으로는 ‘가극단’으로 활동하는 조직 ‘제국 화격단’의 대장으로 부임해서 미지의 적 ‘강마’와 싸움을 하게 된다. 주인공을 제외하면 화격단의 다른 단원들은 전부가 여성이기 때문에, 단원들과의 ‘유대’, 그리고 ‘연애’가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체 역사물이기는 하지만,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 배경과 소재가 껄끄럽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이 게임은 소위 ‘우익적인 요소’와는 철저하게 무관하다. 이 게임 속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패했다는 설정이기도 하고.

게임은 구체적으로 주인공이 화격단의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과 교류를 나누며 호감도를 올리고, 또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어드벤처 파트’, 그리고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 등과 싸움을 반복하는 ‘전투 파트’로 나뉘어서 진행된다. 

이 중 어드벤처 파트에서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과의 이벤트가 쉴 새 없이 벌어지고, 플레이어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선택지’ 또한 끊임 없이 등장한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특정 캐릭터의 호감도가 오르고 내리는데, 어떠한 선택을 하냐에 따라 캐릭터 별 스토리 진행이 조금씩 달라지고, 엔딩 또한 달라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따로 없을 정도다.

선택지 시스템은 제한시간 내에 주어지는 보기 중에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시리즈 전통의 ‘LIPS’ 시스템으로, 형태나 방식 모두 과거의 시스템과 동일하다. 

 

어드벤처 파트 자체의 진행은 매우 쉽다. 그저 스마트폰(20세기 초에?!)에 표시되는 느낌표만 찾아 가서 버튼만 누르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이벤트를 볼 수 있다. 

캐릭터 별 호감도 상황은 중간중간 ‘아이캐치’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 14년이 지나도 전혀 발전이 없는 모습…? 하지만 그래서 좋다?!

과거에 <사쿠라대전> 시리즈를 즐겨본 유저라면, 아마 여기까지만 보면 “응? 이전 작품들하고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축하한다. 정답이다. 이 게임은 그 구성이나 요소들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과거의 <사쿠라대전> 시리즈에서 달라진 점이 없다. 삐딱하게 보면 “14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네?”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작들과 유사한 모습이다. 

단순히 겉보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감성’도 그대로다. 그러니까 특유의 ‘유치뽕작’에 닭살 그 자체인 시나리오 진행도 건재해서, 혹시라도 PS4가 온가족이 함께 보는 거실에 있다면, 아마 게임을 하는 내내 주변 시선 걱정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적당한 항마력(?)이 없다면, 게임을 하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시리즈 전통의 욕탕 이벤트도 건재하다… 참고로, 온가족의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인 만큼 많은 기대는 하지말자(?)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발전이 없다’는 것이 꼭 단점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리즈 특유의 감성이 잘 살아 있다는 것은, 과거 이 시리즈에 열광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그 시절 그 느낌’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게임이 과거의 영광을 그저 우려먹기만 하는 게임이냐 하면, 그것도 분명히 아니다. 등장 캐릭터도 싹 바뀌었고,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밑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게임의 또다른 축인 ‘전투’ 파트는 액션 게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긍정적인 의미에서 신선함을 안겨준다. 그저 과거의 영광에 기대기만 하는 작품이라는 느낌은 받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2019년 현재 시점에서, <신 사쿠라대전>은 시리즈 그 자체의 색깔을 유지하기만 해도 다른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과 확실하게 차별화가 된다. 그만큼 유니크한 소재의 게임이며, ‘특유의 재미’를 가진 작품이기 때문에 주목해 볼만하다. 
대체 역사물이라고 해도, 20세기 초에 이런 공중 전함이 날아다니는 게임이다. 어떻게? 인지는 따져봐야 의미 없다(...)

과거 작품들은 대부분 전투가 SRPG 방식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액션으로 바뀌었다.

# 절반만 성공한 액션 게임으로의 변신

게임의 본질은 과거의 시리즈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지만, <신 사쿠라대전>은 딱 하나. 완전히 바뀐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게 바로 적들과의 ‘전투’ 파트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대부분 전투가 SRPG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이번 작품은 플레이어가 직접 증기기관 로봇들(영자 갑주/영자 전투기)을 조작해서 싸우는 ‘액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도 다양한 적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소위 ‘무쌍류 액션’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전투 시스템의 변경은 첫 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보면 아쉬운 점을 더 많이 남기고 있다.

플레이어가 하나의 로봇을 조작해서 다수의 강마들과 싸우는 방식의 ‘무쌍류’ 액션이다. 플레이어 외에 화격단의 다른 로봇들은 AI가 조작하거나, 플레이어가 수시로 ‘태그 플레이’ 방식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싸우게 된다.

일단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여러 갑주들은 저마다 전투 방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맵 진행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교체해가면서 싸우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가령 원거리 공격형 적들이 많은 구간에서는 마찬가지로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로봇을 이용해서 대응하고, 반대로 근거리 공격형 로봇이 필요하면 이로 교체하는 식으로 싸운다는 식. 그저 단순히 버튼 연타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 전투마다 긴장감이 살아 있는 편이다.

스테이지 구성이 제법 아기자기(?)해서, 그냥 단순 무식하게 버튼만 연타하는 게임은 아니다.

문제는 ‘액션’ 그 자체의 완성도와 기본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무쌍류 액션 게임에서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상쾌함’을 느끼기 힘들다는 점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갑주들은 투박한 외형에서도 알 수 있지만, 모든 모션들이 둔탁하고 경직이 심하며, 날렵하거나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물론 갑주들이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이면 그건 그 나름대로 ‘설정 붕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액션 게임’ 이라는 게임의 장르를 놓고 봤을 때, 각 로봇들의 설정을 살린 것이 오히려 이 게임에서는 방해만 되고 있다. 그렇다고 <신 사쿠라대전>이 본격적인 액션 게임을 표방하는 것도 아니고, 이벤트를 제외하면 각 로봇들의 육성이나 강화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게임에서는 이 ‘전투 파트’ 자체가 무언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무쌍류 액션 게임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액션에서 무언가 특별한 경험이나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다.

필살기가 존재하지만, 캐릭터 별 컷인을 감상하는 것 외에 특별한 임팩트를 받기 어렵다.

# 즐길 거리는 많지만, 어디까지나 ‘가볍게’ 접근해야 할 작품

 

기본적으로 <신 사쿠라대전>은 총 8챕터(8화)까지 이루어진 시나리오 파트를 ‘외길 진행’으로 클리어해서 엔딩까지 보면 그걸로 1차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 게임을 진행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약 20~30시간 이내에 엔딩을 볼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한 번의 플레이만으로 게임의 기본적인 시나리오는 깔끔하게 끝을 맺는다. 

 

물론 그 이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준비되어 있기는 하다. 게임 곳곳에 숨어져 있는 ‘브로마이드’ 수집부터, 전투 파트의 리플레이 모드, 시리즈 전통의 ‘코이코이’ 모드, 여기에 각 캐릭터 별 엔딩 수집까지… 즐기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50시간, 혹은 100시간 가까이 즐길 수도 있다는 뜻.

  

화투를 이용한 미니게임 모드인 '코이코이'. 게임 시나리오와 별개로 제법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모드다.
 
게임 내 다양한 브로마이드를 모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부차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도, 게임의 특성상 <신 사쿠라대전>은 한 번 엔딩을 보면 그 이상 즐기기에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무언가 ‘몰입하면서’ 오랜 시간 즐기기에는 무리라는 뜻으로, 그보다 이 게임은 TV 방영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이다. 

 

그렇기에 <신 사쿠라대전>의 최대 장벽은 결국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게임의 소재 (20세기 초 일본의 분위기, 시대극, 스팀 펑크, 다소 과장된 만화와 같은 연출과 닭살 돋는 연애물 등)에 거부감이 없다면 가볍게, 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과거 시리즈를 해보지 않은 유저라고 해도, 시나리오상 전작들의 내용이 아주 크게 중요하게 본 작품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전작을 즐기지 않았다고 해도, 그냥 게임 내 설명만 봐두면 게임을 하는 데 딱히 문제가 없다.

 

다만 과거 <사쿠라대전> 시리즈를 정말 깊은 애정으로 즐긴 팬이라면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무엇보다 일부 캐릭터들은 전작들에 이어서 본 작품에도 재등장하는데, 캐릭터의 변화가 ‘납득’이 되는 수준임에도 ‘팬심’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세가는 <신 사쿠라대전>을 통해 한동안 명맥이 끊겨 있었던 ‘사쿠라대전’ 프랜차이즈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과연 이 작품이 잘되어서 이후로도 계속해서 후속작이 나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 이후의 행보가 기대된다.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