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미술관] 몰입과 감동을 고민하는 작가, '트릭아트 던전' 지원이네 오락실 최은실

백야차 (박준영) | 2019-08-19 11:17:13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뭐든 그대로 믿는 편인가요?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같은 사물이나 풍경이라고 할지라도 보는 각도나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생각 등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는 사람의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다른 형상이 나타나는 이른바 '눈속임의 예술'인 '트릭아트'는 관람하는 사람에게 신기함과 흥미를 모두 자아내는 신비로움 그 자체를 그린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트릭아트 던전>은 트릭아트가 주는 착시현상을 소재로 한 모바일 어드벤처 게임으로, 지난 6월 2일 출시했습니다. 해당 작품은 지난해 4월 개최한 '2018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탑 3에 오르는 등으로 유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지요.

 

게임 속 주인공인 '에이든'은 현실과 상상 세계를 오가며 각종 모험을 경험하고 트릭아트로 구현된 퍼즐을 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유저는 지형이나 사물 등의 외형이 보는 방향에 따라 바뀌는 신기한 현상을 마주하죠.

 

이처럼 트릭아트를 소재로 활용한 어드벤처 게임인 <트릭아트 던전>. 게임미술관 28화에서 만나볼 인물은 <트릭아트 던전> 속 세계를 한층 더 돋보이게 살려낸 최은실 아트 디렉터입니다. 

 

지원이네 오락실 최은실 아트 디렉터

 

 

#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한 게임에 디테일을 고민하는 작가가 함께하기까지

 

<트릭아트 던전>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나 꿈속에서 만나볼 법한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각종 트릭아트가 녹아있는 게임입니다. 사실 <트릭아트 던전>은 개발사인 지원이네 오락실 한상빈 대표가 떠올린 영감을 시작으로 개발하게 된 작품으로, 본래 1인 개발로 시작했습니다.

 

한상빈 대표는 과거 가족과 함께 트릭아트 전시장을 찾았다가 유독 좋아하던 딸 모습에 감명을 받고 '트릭아트를 소재로 게임을 만든다면 분명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한상빈 대표는 부푼 꿈을 안고 1인 개발을 시작했지만, 개발 단계서 각종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혼자서 게임을 만든다는 일 자체도 벅찼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트릭아트를 심도 있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팀에 합류한 것이 최은실 디렉터였습니다. 최은실 디렉터는 <트릭아트 던전>이 보여주는 신기한 요소들을 한층 더 돋보일 수 있게 각종 아트를 다듬는 데도 힘썼지만, 무엇보다도 게임이 유저 기억에 남고 인상적일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등 작은 요소들도 신경 쓰며 하나씩 차근차근 디테일을 올리는 데 힘을 썼습니다. 

 


 

 

# '단 한 순간의 경험도 망치지 않기 위해' 최은실 디렉터가 고민한 완성도와 몰입감

 
최은실 디렉터는 <트릭아트 던전> 그림을 총괄하며 배경부터 캐릭터 디자인 등 게임에 쓰이는 모든 그림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지 배경과 트릭아트 등 게임에 쓰이는 요소들을 만들기도 했으며, 한상빈 대표나 다른 팀원들의 작업물을 다듬어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죠.
 
<트릭아트 던전>은 카툰풍 그래픽으로 구현된 건 물론, 파스텔톤 색으로 수놓아진 차분한 분위기의 세계가 연속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며 엔딩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2시간 내외이기 때문에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게임 속 등장하는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통일된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아트팀은 무수한 수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스테이지 한 곳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달 정도. 이마저도 대략적인 시간일 뿐 실제로는 더 걸린 스테이지도 있다고 합니다.
 

"스테이지 배경을 만드는 데 2주~4주 정도 시간이 걸려요. 여기에 캐릭터와 조명을 넣고 애니메이션과 색감 등을 조정하다 보면 이보다 시간이 더 걸리죠. 더구나 게임에 쓰인 아트 대부분이 스케치 없이 그려진 그림이어서, 여느 그림들처럼 스케치를 먼저 그리고 시작하기보다 머릿속에 있는 구상을 그대로 그려내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스케치 없이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내가 상상하는 구도는 휘황찬란했던 반면, 손으로 그린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트릭아트 던전>에 등장하는 트릭아트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뭐였을까요?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해 보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조금이라도 신기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걸까요? 다양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지만, 최은실 디렉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어떤 조건에서도 이상해지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트릭아트는 평면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보는 시점에 따라 입체감이 생겨 형태가 달라 보이는 눈속임의 예술입니다. 때문에 <트릭아트 던전> 아트팀은 2D로 그려진 트릭아트를 3D 세계에 그대로 구현해야 하는 건 물론, 트릭아트가 착시 효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인 각도와 빛을 고려하고 주변 풍경과 색감을 맞추는 등 여러 조건을 모두 지켜야 했습니다.
 

"사실 3D 게임을 만드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트릭아트라는 소재를 활용한 게임이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과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았지 않았나 싶어요. 예를 들어 트릭아트를 3D 세상에 구현하면 조명이나 반사광에 따라 그림이 달라 보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여기에 카메라 위치나 유저 시점에 따라서도 착시 효과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생기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림을 그리면서 쉐이더를 선택할 때도 신중해지더라고요"

 



최은실 디렉터가 <트릭아트 던전>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균형'입니다. 이는 트릭아트가 주는 신비로움과 트릭아트가 성립하기까지 필요한 조건을 고려하는 건 물론, 아름다운 배경에 자칫 캐릭터나 다른 오브젝트가 묻히지 않게 만드는 일도 신경 썼습니다. 
 
이를 위해 색 배합이나 오브젝트 구성이 어느 한쪽으로 튀지 않게 구현하면서도, 게임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기획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더불어, 최은실 디렉터는 본래 원색이나 네온 계열 색상 등 눈에 띄는 강렬한 색을 좋아하지만, <트릭아트 던전> 속 등장하는 요소들의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파스텔 톤을 유지하는 등 작가 본인의 취향 역시도 균형을 맞췄죠.
 
최은실 디렉터가 이렇게 균형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보는 사람의 '몰입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한 쪽만 돋보이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몰입감을 해친다는 게 최은실 디렉터의 의견입니다.
 

"배경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아무리 판타지 세계라고 할지라도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예를 들어, <트릭아트 던전>에는 버려진 탄광을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가 있는데, 아무리 이곳이 판타지에 나오는 탄광이라 할지라도 '탄광'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없을 법한 요소가 있으면 그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몰입감을 해치죠. 때문에 광산에 있을 만한 오브젝트를 배치하는 건 물론 모든 구성요소가 일관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색과 배치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움직임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될 수 있어

 
'유저 몰입감'을 중요시하는 최은실 디렉터. 이처럼 최은실 디렉터가 몰입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림에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은실 디렉터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포켓몬스터> 덕분이었는데, 당시 같은 반 친구들이 '피카츄' 등 다양한 캐릭터를 따라그리는 모습을 보며 '더 잘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화가를 꿈꾸며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한 최은실 디렉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최은실 디렉터는 만화를 그리고 싶을 뿐 애니메이션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 그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그림을 연속으로 그려야 하는 지루한 작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만들다 보니 가상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마치 살아 숨 쉬는 존재를 만드는 듯한 일이라 느껴졌고, 아무리 작은 요소라고 할지라도 움직이는 순간 인상 깊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때 느낀 감명은 최은실 디렉터가 향후 그림과 게임 속 움직임(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에 영향을 줍니다. 디테일이 살아있으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도를 올릴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죠. 
 

"디테일과 애니메이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들이 '몰입도'를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이에요. 유저가 작품에 몰입하지 못하고 게임도 감성이나 감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유저는 게임에 대한 경험을 망치게 되죠. 예를 들어, 캐릭터 움직임이나 공격 모션이 이상하다면 유저는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그 순간으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인상을 망치게 돼요. 이런 점에서 제작자는 유저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즐기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작품 완성도를 올리고 디테일을 살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최은실 디렉터가 몰입감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번 이유는 게임 아트 디렉터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평소 <다크소울>이나 <블러드본>처럼 어둡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그린 게임을 좋아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라스트 오브 어스>를 플레이하게 됐는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스토리에 빠져들고 몰입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죠. 이는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몰입감이었는데, 이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며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멀리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직접 플레이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덕분에 몰입감도 올라가죠. 이렇게 게임이 주는 몰입감에 감동을 받고나니 게임 개발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애니메이션 제작자에서 게임 아트 디렉터의 길을 택한 최은실 디렉터. 최은실 디렉터는 여태까지 애니메이션 <아기종벌레 포포>, 게임 <포트리스 M> 그리고 <조선 메디컬 센터>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최은실 디렉터가 디자인에 참여한 게임 <조선 메디컬 센터>. 이 밖에도 애니메이션 <아기종벌레 포포>나 게임 <포트리스 M>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게임 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해당 질문에 최은실 디렉터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전했습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일을 처음 시작하는 초년생이라면 현재하는 일을 제대로 공부하고 '1인분'을 해낼 수 있을 때 다른 일을 공부하는 게 좋다는 의견입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이런저런 일을 하나씩 공부하고 경험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림도 그리고 애니메이션도 만드는 등 업무를 짬뽕으로 하고 있어서 그러는 경향이 없지 않나 싶어요.(웃음) 그래도 이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 한 분야를 제대로 알거나 공부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이유로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경험하면 어느 순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방황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목표를 정하지 않고 욕심을 냈기에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는 셈이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고 거기서 1인분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다른 일을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최은실 디렉터의 목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관람객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물론, 심금을 울려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을 말이죠. 다만, 아직 그림도 게임도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하고 공부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최은실 디렉터는 지원이네 오락실에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직접 게임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은 <큐브냥>이라는 이름으로 고양이 큐브를 높이 쌓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다만,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에 있어 공개는 아직이라고 합니다. 귀여운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큐브냥>과 최은실 디렉터의 개인작을 끝으로 이번 인터뷰를 정리합니다. :)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