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카드뉴스] 어느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찰스 (황찬익) | 2017-07-11 15: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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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장' 장재호, '세계최강오크' 박준' 등, 과거 <워크래프트 3> 프로리그는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하며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많은 사람이 아는 건 아니지만 아는 사람은 모두 기억했던 선수가 있습니다.  그가 나오는 경기는 팬이 아니라도 관심 가지고 응원을 하게 됐죠. 그만큼 그의 플레이는 특별했습니다. 

 

어떤 선수인지, 카드뉴스로 만나보시죠. / 디스이즈게임 황찬익 기자


 

 

 

어느 프로 게이머가 있었다.

 

종목은 워크래프트 3.

종족은 언데드.

 

모든 대회를 휩쓸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고

최고의 선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플레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오래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치병 환자였다.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 박승현 선수는 

전신의 근육이 점점 줄어드는 근위축증 환자였다.

 

이동 시에는 항상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고,

보호자가 팔 위치부터 의자의 기울기까지 

조절해줘야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악화되는 병

근위축증

 

한창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2008년,

박승현 선수는 이미 

손가락과 목밖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그의 플레이를 좋아했던 건

환자에 대한 얄팍한 마음이나 동정심이 아니었다.

 

당시 프로 리그에서 언데드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오크와 나이트 엘프 같은 종족이 너무 강했고 언데드 선수는 거의 없어서,

종족 설계가 잘못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 상황에서 언데드를 들고 나타난 박승현 선수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

 

박승현 선수가 처음 주목받은 이유가 바로,

순수한 실력으로 천적 오크를 이긴 언데드 선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승현 선수가 이긴 상대는 08년도 블리즈컨 우승자이자,

지금도 역대 최고의 워3 오크 플레이어로 손꼽히는 박준 선수였다.

 

또 한가지.

스타크래프트가 그렇듯, 

워3 역시 키보드 숫자 1번에서 0번까지 단축키를 지정해 쓸 수 있는데

 

손가락이 자유롭지 못한 박승현 선수는 오직 4번까지만 누를 수 있었다. 

 

그만큼 제약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박승현 선수가 가장 뛰어났던 점은 바로 

 

컨트롤

 

남들보다 조작키가 6개 모자라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은 

사람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발휘한 실력으로 그는 화려한 전적을 남겼고

 

NicegameTV GWL Season1 1위

NicegameTV AWL Season1 4위

NicegameTV AWL Season3 2위

NicegameTV AWL 왕중왕전 4위

아프리카 워크래프트3 리그(AWL) 4위

아프리카 워크래프트3 리그 III 2위

XP League Season 5 4위

ZotacCup 55회차 1위

ZotacCup 70회차 1위

ZotacCup 78회차 1위

 

당시 ‘언데드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병이 점점 진행됨에 따라 

누를 수 있는 단축키는 4개에서 3개,

 

2개로 줄어들었고

 

워크래프트 자체의 인기 하락이 겹쳐,

결국 그는 리그를 떠나게 됐다.

 

박승현 선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딱 서른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왜냐고 묻자,

 

“게임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사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근위축증이라는 불치의 신체.

그 안에 머무르던 정신은 게임을 만나야 비로소 자유로웠다.

 

이후에도 게임을 계속했던 박승현 선수.

 

마지막 순간까지 게임을 즐겼을 그는

 

2013년 5월 6일 월요일 새벽.

 

15년의 투병 생활, 7년간의 선수 생활을 뒤로 한 채

 

향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

 

만약, 만에 하나 

 

그가 불편한 몸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을지

 

하다못해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오래 머물렀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경기를 남겨놓고 갔을지.

 

그리고

방금 이 생각을

 

박승현 선수 본인은 얼마나 많이 속으로 되뇌이고

또 되뇌었을지

 

얼마나 더 살고 싶었을지.

 

박승현 선수가 살아생전 썼던 워크래프트 아이디,

SPACE

 

‘우주를 날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지었다는, 그 아이디.

 

이제는 신체의 고통에서 해방된 그가, 

 

바라던 우주뿐만 아니라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마음껏 하며

고통 없이 지내기를 바란다.

 

SPACE

 

Please, GO to SPACE

 

당신은 나한테 있어 여전히 최고의 프로게이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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