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카드뉴스] 1994년, 신입 사원의 노트 한 권이 블리자드의 운명을 뒤집었다

너부 (김지현) | 2018-08-23 16: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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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신작 개발 인력을 뽑기 위한 블리자드 사내 오디션이 진행되던 중.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 일러스트레이터가 꺼낸 두툼한 노트 한 권이 임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단 한 장의 그림 없이 무수한 글만이 적힌 낡은 노트. 노트를 펼친 임원은 콧방귀를 꼈고 오디션을 보던 다른 직원들 역시 그를 무시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훗날 이 노트가 일러스트레이터의 인생뿐 아니라 회사의 운명까지 뒤집게 된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매번 훌륭한 성과를 보이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던 동료들과 달리 노트의 주인은 단 한 번도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그저 그런 직원 중 하나' 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노트를 꼼꼼히 살펴본 블리자드 공동 창립자 앨런 애드햄은 그 자리에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자네는 게임에 필요한 무언가를 그리는 재능은 확실히 없어. 대신 게임의 기반이 되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에서 자네만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네. <워크래프트 2>의 스토리 작업을 맡아주지 않겠나? 크리스 멧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신입 사원 크리스 멧젠의 유일한 즐거움. 회사가 낸 게임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써보는 것.

 

누군가 시킨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게임을 기반으로 여러 갈래의 스토리를 작성하는 건 기본

퇴근하는 것도 잊고 밤새 설정집을 만들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앨런 애드햄의 과감한 결정으로 스토리 기획의 주축으로 참여하게 된 것.

 

크리스 멧젠은 타락과 정의로움을 오가는 인물, 갈수록 극에 달하는 종족 간 갈등, 반전이 연속되는 전개를 게임에 입혀 다소 평면적이었던 전작의 밋밋함을 메꾸고 다채로움과 입체감을 더해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독자적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렇게 출시된 <워크래프트 2>는 <듄 2> 아류작이라는 오명을 씻는 건 물론 유저와 게임 전문지로부터 압도적 호평을 받게 된다.

 

<워크래프트 2>의 성공은 단순히 게임 하나에서 그치지 않았다. '워크래프트' 시리즈 자체가 당대 걸작이라 불리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RTS 장르 주축으로 성장. 블리자드는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미국의 대표 게임회사로 자리하게 된다.

 

크리스 멧젠 역시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게임 시나리오와 퀘스트는 물론 게임의 세계관 전체를 기획할 기회까지 얻게 된다.

 

이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이야기. 선과 악을 나눌 수 없는 각기 다른 세 종족이 등장하는 미래 배경의 우주 전쟁. 가상의 왕국 칸두라스를 배경으로 '디아블로'라 불리는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다크 판타지. 그리고 공존할 수 없는 두 진영의 갈등이 담긴 방대한 역사극까지.

 

“스토리 작가는 단순히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개발팀을 위한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야 하죠. 때로는 암울한 개발 기간 동안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며, 비전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치어리더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나지만 영원한 블리자드의 아버지로 남은 '크리스 멧젠'. 가치를 알아본 단 한 사람의 지지와 안목으로 펼쳐진 그의 노트는 이제 수천만 유저를 울리는 장엄한 대서사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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