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과 권력] ⑤ 개신교 근본주의와 게임규제 (1/2)

시몬 (임상훈) | 2014-03-10 12:52:18

'근본주의'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흔히 종교에서 전통적 교리를 고수하며, 다른 종교는 물론 개혁적인 변화에 반대하는 사조를 뜻합니다. 일부로부터 편협성과 배타성, 전투적 성격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죠. 국내 게임규제 논의와 관련해, '개신교 근본주의' 또는 '전투적 복음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게임중독법을 종교와 연결해 관철하려는 시도들도 발생하고 있고요. 그래서 들여다 봤습니다. /시몬

  

[게임과 권력] ① 게임규제 법안의 역사 (과거형)

[게임과 권력] ② 게임규제 법안의 역사 (19대)

[게임과 권력] ③ 뉴라이트와 게임규제 (1/2)

[게임과 권력] ④ 뉴라이트와 게임규제 (2/2)

[게임과 권력] ⑤ 개신교 근본주의와 게임규제 (1/2)

[게임과 권력] ⑥ 개신교 근본주의와 게임규제 (2/2)

  

 

'셧다운제' 관철의 1등 공신, 권장희 소장의 고군분투


게임규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가장 열심히 활동한 개신교 인사는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입니다. 1994년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참가한 이후, 대중문화 전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게임업계에 그가 알려진 것은 2002년~2005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심의위원 활동을 하면서입니다. 당시 게임은 영등위 심의를 받아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심의위원의 영향력과 위상은 실로 막강했죠.


2004년 여름, 그 위력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영등위가 부분유료화 모델에 대한 규제안을 발표했습니다. 게임 업계는 떨었습니다. 두려움과 분노로.


규제안에 따르면 <카트라이더>는 18세 이상만 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카트나 부스터를 유료로 팔기 때문이었죠. ‘전체 이용가’를 받던 다른 게임들도 줄줄이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권장희 위원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아직 판단력이 약하므로 과도한 소비구조를 유도하는 아이템 유료화는 막아야 한다. 영등위는 정액 요금제를 유도하고 있다.

업계는 뒤집어졌습니다. 강한 반발을 불렀습니다. 규제안은 적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권장희 위원의 존재감은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당시 일부 업계인들은 권 위원을 ‘권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이때까지 그는 주로 업계에만 알려진 존재였습니다. 그의 이름 석자가 대중적으로 회자된 것은 2011년 3월 16일입니다.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게임회사에게 돈을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처음 나왔던 날이죠. 권장희 소장은 게임회사 수익의 10%를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게이머들은 이런 숫자에는 뜨악하면서도, 금방 까먹습니다. 대신 자신들을 모욕하는 ‘단어’에는 더욱 분노하고, 잊지도 않죠. 이날 그 유명한 ‘짐승뇌’가 나왔습니다. 권장희 소장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전두엽의 발달이 늦어져 모든 일에 반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짐승과 비슷한 상태로 변한다. 지금 (한국의) 교실에는 게임 때문에 얼굴은 사람인데 뇌 상태가 짐승 같은 아이들이 있다.

약 한 달 뒤, 그는 MBC <100분 토론>에 등장했습니다. ‘셧다운제’ 도입을 놓고 마지막 샅바싸움이 치열하던 때였습니다. 권 소장은 “셧다운 대상을 19세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 쿼터제까지 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쿼터제는 하루 일정 시간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정하는 제도입니다.

 


권 소장은 상대편을 이렇게 쏘아붙임으로써 ‘토론’이라는 형식을 무안하게 했습니다.

 

셧다운제가 불만이라면 투쟁을 해서 반대쪽에서도 법을 만들어서 대처하라.

‘투쟁’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셧다운제’의 입법화 과정을 투쟁의 장으로 봤습니다. 그는 맨 앞에서 선 ‘투사’였고, ‘투쟁’을 통해 ‘셧다운제’을 밀어붙였습니다. 이겼습니다. 2011년 4월 28일,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권장희 소장의 행동 원천: 개신교 문화소비자운동론


권장희 소장은 왜 이런 활동에 투신하게 됐을까, 궁금했습니다. 그의 강연과 책을 찾아봤습니다. 주목할 만한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1998년 11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문화전략위원회에서 엮은 <대중문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였죠. 권 소장은 실천적 제안을 담은 5장 ‘정보·문화시대의 문화소비자운동’을 썼습니다.


아직 온라인게임이 뜨기 전이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비판의 대상은 대중문화 전체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권 소장의 ‘개신교 근본주의적’ 시각과 ‘전투적 복음주의적’ 실천의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장에서 나온 시각과 실천의지는 이후 꾸준히 드러났고, 오롯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권 소장은 당대 대중문화가 ‘인간의 규범과 가치를 파괴할 개연성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며 개신교인은 다음과 같은 자세로 나설 것을 요청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깨어 있어서 반규범적인 가치들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야 함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왜곡되고 파괴적인 규범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112p)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이 땅을 회복시켜 나가야 할 책임이 있고, 그 범위가 우리 일상을 포함하여 문화 전반에 미치는 것이라면 정보·문화산업 시대의 문화상품들이 쏟아내는 왜곡된 가치와 규범을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만들어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113p)

권 소장은 이런 활동과 관련해 개신교 교회의 강점을 언급했습니다. 활동가로서 실행적 면모가 읽힙니다. 최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과 황우여 대표 등이 교회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공익을 지향하는 교회가 그 어느 사회보다 많다는 데 희망이 있다. 교회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조직화된 인적 자원과 풍부한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어느 시민단체도 교회만큼 회원이나 재정을 보유하지 못하고, 이념적 결속도 가질 수 없다. 정부와 기업이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거나 올바로 인도하지 못할 때 맞서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교회이다. (121p)

교회가 조금만 힘을 쓰면 반규범적인 대중문화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낼 수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도덕성은 교회의 도덕성을 가능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121p)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가치관과 규범을 주장하는 문화상품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생산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123p)

권 소장은 구체적인 전략의 하나로, 대중문화 생산자에게 그 책임을 묻게 하자고 주장합니다. 학교 현장의 교육활동도 강조합니다. 1998년 이 책이 쓰였습니다. 게임업체의 수신자부담 주장이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2011년입니다. 전국 모든 유치원, 초·중·고과 공공기관에서 인터넷중독 예방과 해소를 위한 교육을 매년 1회 이상 실시하는 ‘국가정보화 기본법(일부 개정)'이 발의된 것은 2012년 7월 24일입니다. 권 소장은 이미 10여 년 이상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담배 소비로 인한 건강상의 폐해를 소비자에게 묻지 않고 담배 생산자에게 책임을 돌려 무려 33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담배 회사가 배상하도록 법원의 판결을 얻어낸 경험을 정보/문화산업 분야에도 동일하게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만화와 같은 대중매체를 접한 후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피해에 대한 그 책임과 보상을 가해자에게만 지우지 않고 그 원인을 제공한 문화 생산자에게도 마땅히 물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123p)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초·중·고교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대중문화 수용자 교육을 실시하여 학교 현장에서 특별활동을 통해 정보·문화 수용자 교육을 실시하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주일학교 교육에서도 교육과정에 포함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124p)

권장희 소장은 이 장의 마지막에서 ‘전투적 싸움에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최근 게임중독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교회의 동참을 요구하는 신의진 의원이나 황우여 대표의 활동은 권 소장의 주장을 카피한 느낌이 듭니다.

 

대중문화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해야 할 청지기의 사명을 인식한다면, 또 타락한 문화적 지형을 창조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으려면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겠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훈련에 동참해야 한다. 이 싸움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문화전쟁에서 우리는 문화 생산자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문화가 생산되도록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125p)

 

2가지 실행 방법: 정부기관 의사결정 참여와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 소장은 본인의 책에서 주장한 ‘문화전쟁’의 전투적 싸움에 투신했습니다. 매우 전략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투 트랙이었습니다. 정부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고, 학교와 교회 교육활동에 매진했습니다. 미디어의 인터뷰나 토론회 참여 등은 부수적으로 따라왔죠.


문화산업과 관련돼 우리나라는 국가의 영향력이 꽤 강한 편입니다. 정책이나 법률에 따라 문화산업이 좌지우지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정책 수립과 법률 발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권 소장의 생각을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쉽게 이룰 수 있었을 겁니다. 문화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한다면 이런 기회를 잡아야죠.


1999년 이후 권장희 소장의 국가기관 관련 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국가청소년위원회 정책자문위원(1999~2007년)

-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부위원장 (2002~2005)

- 교육부 학교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2005~2007년)

-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자문위원(2004년~2007년)

-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현재)


제가 알기로는 게임업계에서 이렇게 많은 정부기관 '감투'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권장희 소장은 국무총리실, 문화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등 각종 국가 기관에 종횡무진 참여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런 경력을 쌓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가 나서서 구했을 수도 있고, 정부기관에서 그를 모셨을 수도 있습니다. 양자의 필요가 서로 어울렸을 수도 있죠.


게임과 관련된 규제정책을 원하는 부서는 '입맛'에 맞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관련된 인력풀은 제한돼 있습니다. 영등위에서 게임물에 대해 심의위원까지 한 규제 전문가, 귀합니다. 더불어 시민사회 운동을 한 '스펙'도 고려가 됐겠죠. 본인도 마다하지 않으니, 겹겹이 감투가 쌓였을 겁니다.

 

권 소장은 자신의 소임을 잘 했습니다. 그가 정부기관의 자문위원 등으로 있던 2000년대 중후반 ‘셧다운제’를 중심으로 벌어진 청소년보호법 개정 논의가 가장 활발했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을 규제하기 위한 여러 법안들이 속속 나왔고요. 권 소장은 각종 토론회와 인터뷰 등의 단골 출연자었죠.


정부기관 자문위원 등은 그의 주업이 아니었습니다. 권 소장의 주 업무는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사업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에서 손을 떼고, 인터넷중독 예방교육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2005년 2월 이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문성호 씨는 연세대 대학원 석사논문 <국내 게임중독 담론의 역사>(2013년)에서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는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 출신 및 소속의 인물들이 기초가 된 사회단체이다. 권장희 소장은 현재 이 기윤실의 이사회에 소속되어 있고, 이들의 주요 사업활동은 교회와 학교에 있다. 이들은 2012년 1월에서 7월까지 총 43,276명을 대상으로 강의활동을 하였고 그 중 32,545명이 교회에서 강의할 대상이다. 7개월 동안 194개의 교회에서 강의를 했다고 하니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개의 교회에서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82p)

 


 

권 소장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인터넷중독 예방 교육사업을 펼쳤습니다. 또한 이를 위한 교재와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YP(Youth Patrol, 청소년지킴이) 프로젝트 교재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전국 초··고등학생의 유해매체·유해환경 대응력 강화를 위해 2003년부터 시행해온 프로그램입니다.

권 소장은 2003~2004년, 2006년 YP청소년스스로지킴이 운영교재(국가청소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개발한 교사용 지도서는 교육감 인정도서로 인증 받아 전국적으로 배포됐습니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의 최근 활동을 찾아봤습니다. 올해 1~2월에만 교회와 학교 등에서 85번의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포커스는 예방, 이제는 스마트폰

 

게임규제와 관련된 권장희 소장의 목소리가 최근에는 조금 주춤한 인상입니다. 이슈가 되는 신의진 의원의 ‘게임중독법’ 정국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일 겁니다. 투사적인 그의 성향에 비추어보면 당연히 앞장섰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게임규제 방식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신 의원과 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 의원의 법안은 중독에 대한 대응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토론회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주요 패널로 법안을 보위하고 있죠. 권 소장의 관점은 다릅니다. 대응보다 '예방'에 포커스를 두고 있죠.


2011년 국회 토론회에서 권 소장은 “인터넷(게임) 중독은 알코올중독이나 도박중독보다 훨씬 치료가 어려워 예방교육에 치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적극적으로 관철했던 셧다운제도 예방에 관련된 활동입니다. 반면, 중독 대응은 그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습니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의 교육사업과도 별 상관이 없는 편입니다. 담당부서도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입니다.


최근 권 소장은 스마트폰과 관련된 목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현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첫 페이지에 올라있는 동영상의 제목은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구하라!'입니다. 어쩌면 권 소장은 4대 중독이 아니라, 5대 중독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 교회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청소년의 증가 등에 따라 권 소장의 관심사도 가파르게 그쪽으로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 권 소장의 연혁과 책에서 봤듯이 그의 관심사는 게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강의를 보면 '재미있는 미디어' 그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2012년 '미디어의 위험을 알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그는 게임의 재미, TV의 재미가 하나님이 주신 창의력과 힘을 날려버린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중음악은 구정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새롭게 재미있는 것은 스마트폰입니다. 게임을 결코 떠난 것은 아니지만, 권장희 소장의 주요 전장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대신 더 영향력이 센 인물이 들어섰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꼭지에서 다루겠습니다.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