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핵잠수함부터 군사훈련까지, 미국이 게임을 국가 안보에 활용하는 방법

가나 (최영락 기자) | 2017-10-12 14: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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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게임화)과 같은 용어가 널리 퍼진지는 오래됐지만, 일부에서는 아직까지 게임의 실용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위 인식과 달리, 게임은 생각보다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플레이 요소부터 게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의료나 건축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도 게임은 목격된다. 

 

대표적으로 게임이 활용되고 있는 전문분야가 바로 '안보' 영역이다. 세계 군사력 순위 1위를 자랑하는 미국은 국방·안보 분야에 게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미 최신 핵잠수함에 Xbox 컨트롤러가 장착된 사실이 알려지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국은 안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곳에 게임을 활용하고 있을까? CIA부터 미 해군까지 곳곳에 스며든 게임의 진면목을 알아봤다. / 디스이즈게임 최영락 기자


 

 

 

# 중앙정보국의 진지한 보드게임

 

미국 중앙정보국(이하 CIA)은 미 전략사무국(OSS)를 전신으로 1947년 국가보안법과 함께 설립된 국가정보기관이다. 창립 이래 70년 동안 16개 정보공동체(FBI, 국가안보국 등) 일원으로 협력하며 테러, 방첩, 군축 등 안보 문제 관련 비밀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런 CIA가 지난 3월 컨퍼런스 행사(SXSW)에서 자신들의 게임 활용 현황을 공개했다. CNN, 폴리곤 등 외신을 통해 관련 내용이 보도되면서 CIA의 보드게임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CIA는 이전부터 보드게임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지만, 실제 개발로 이어진 것은 지난 2008년부터의 일이다. 보드게임 개발과 관련 교육을 위해 게임 디자이너와 선임 분석 요원을 기용했으며, 단순 기성 제품이 아닌 정교한 보드게임으로서 설계됐다. 방대한 룰과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단순 즐기기보다는 상당한 학습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CIA 보드게임 개발에 참여한 디자이너 '볼코 뤼케'의 작품 <라비린스: 대 테러전>
보드판 안에 다양한 정보와 요소가 담겨있다(출처: GMT 게임즈)

 

각 보드게임은 실제로 존재하거나 실존했던 인물, 지형, 조직, 사건, 역사 등을 배경으로 개발됐다. 물론 일부 가상의 요소가 포함되긴 하지만, CIA의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상식을 연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킹핀: 엘 차포 사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약조직(시날로아 카르텔) 수장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CIA 보드게임이다. 실제 인물과 지명, 활용 가능한 수단과 전략 등이 보드게임에 등장한다. 

 

보드게임에 정리된 차트와 지도, 용어 등은 복잡한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 게임 내 삽입된 다양한 요소들(세력, 수단 등)은 복잡 다분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플레이하는 요원이 여러 시나리오를 동시에 처리하도록 만들어 복잡한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요원들은 셔먼 켄트 스쿨(정보 분석 학교)에서 보드게임을 이해하고 직접 플레이하며 훈련한다. CIA의 보드게임은 한정된 단기간 동안 지식을 주입하고, 또 얼마나 이해했는지 테스트하기에 최적화됐다. 훈련에는 외부에서 제작된 보드게임이 활용될 수 있다. 

 

다만, CIA에서 보드게임의 역할은 앞으로 기술 발전 등에 맞춰 VR(가상현실)게임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CNN은 CIA 분석가들이 훈련 프로그램에서 VR 게임을 사용하기 기대한다고 전했다. CIA 디지털 혁신위 레이첼 그룬스팬 전략 기획관은 "VR은 지적인 질문과 답변에 빠져들게 만드는 일을 놀랍도록 잘 해낸다"면서 VR을 활용한 훈련에 기대감을 표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미 중앙정보국(CIA)

 

 

# 군사훈련과 과학수사에 활용되는 게임, 게임 엔진

 

게임을 군사훈련에 활용한다는 것은 대중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아메리카 아미>(아메리카즈 아미). <아메리카 아미>는 미 국방부에서 제작한 미군 홍보용 게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전쟁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02년부터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해 신병 훈련교재 등으로 활용됐다.

 

<아메리카 아미>는 실제 미군에 입대하는 것처럼 군사 교육 훈련의 모든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특수, 공수, 의무 등 각 병과마다 훈련도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어, 실제 훈련처럼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미국인 '팩스턴 갈바넥'은 운전 도중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아메리카 아미>에서 배운 응급처치를 활용해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군사 훈련 게임으로는 <아메리카 아미>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후에도 게임 엔진을 활용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은 계속됐다. 지난 2007년에는 엔비디아의 실시간 물리 엔진 피직스로 개발한 <VBS2>(Virtual Battlespace 2)가 개발되어 미 해병대와 주방위군, 호주군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이용됐다.

 

스팀에 판매 중인 <아메리카 아미: 프로빙 그라운즈>
개발, 배급사가 미 육군(U.S Army)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미 육군은 5,700만 달러(당시 약 627억 원)을 투자해 크라이 엔진 3를 활용한 <DSTS>(Dismounted Soldier Training System: 보병훈련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360도 시야를 제공하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시스템과 휴대용 컴퓨터 시스템이 합쳐진 세트로 구성됐다. 현실적인 그래픽과 사실적인 물리 효과로 실제 기상 조건과 분대 기반의 상호 작용을 구현했다. 공개 당시 미 육군은 DSTS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막과 같은 현실 지역은 물론, 동굴 지역이나 숲과 같은 가상의 전장을 정확한 비율과 형태로 구현해 군인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게임 엔진은 군사훈련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FBI는 몇 년 전부터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과학 수사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FBI를 비롯한 미 정부 기관들은 지난 2012년 언리얼 엔진 사용에 대한 라이선스를 취득했으며, 이를 활용한 군 위생병 마취 실습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도입됐다.

 

<DSTS>​(보병훈련시스템) 예시(출처: 미 육군)

 

 

# 훈련? 이제는 실전이다! 최신 무기와 게임기기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들은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Xbox 컨트롤러가 장착됐다고 밝혔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미 해군의 최신예 원자력 잠수함으로 지난 2004년부터 미 해군에 배치됐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지속적으로 건조되어 현재 운용 중인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을 대체할 예정이다.

 

미 해군은 최근 시험운행 중인 버지니아급 잠수함(개량 3형)에 30달러(약 3만 4,000원) 짜리 Xbox 360 컨트롤러를 부착했다. 이 잠수함은 전통적인 회전식 튜브 잠망경 대신 360도로 회전하는 두 개의 포토닉스 마스트(디지털 카메라, 대형 모니터 등)로 대체되어 있는데, 이를 조종하는 장치로 Xbox 컨트롤러를 부착한 것. 미 해군은​ 이전까지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개발한 3만 8,000달러(약 4,315만 원) 짜리 조종장치를 사용했다.

 

해군은 Xbox 컨트롤러를 도입한 시스템을 지난 2년 동안 테스트했으며, 향후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위한 시스템의 일부로 포함될 전망이다. 앞으로 Xbox 컨트롤러를 비롯해 터치스크린 등 젊은 장병들의 손에 익숙한 기술을 개발, 도입한다는 것이 미 해군의 입장이다.

 

잠수함에 부착될 Xbox 360 컨트롤러 예시 (출처: 록히드 마틴)

 

게임기기를 활용한 최신 무기 운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항공우주기업 보잉사는 미군과 협력해 지난 2014년 레이저 무기 HEL MD(The High Energy Laser Mobile Demonstrator) 공개했다. HEL MD의 특징 중 하나는 무기 조종을 Xbox 컨트롤러와 연결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보잉은 무기의 기동력을 위해 단 한 명의 조종사가 한 대의 컴퓨터와 컨트롤러로 HEL MD를 조작할 수 있게 개발했는데, 여기에 Xbox 컨트롤러가 선택된 것​이다.

 

HEL MD는 10kW의 레이저를 발사해 공격하는 고출력 레이저 무기로, 날아오는 박격포탄이나 무인 비행기(UAV)를 격추하기 위해 개발됐다. 초속 약 18만 6,000마일의 속도를 보여주는 이 무기는 500마력의 대형 전술 트럭(HEMTT)에 탑재되어 높은 기동력을 보여준다. 

 

레이저 무기 HEL MD (출처: 보잉)

 

 

# 최신 무기와 교육 훈련에 게임이 활용되는 이유

 

그렇다면 미국은 게임의 어떤 부분에 주목해서 이를 국가 안보에 활용했을까? 게임이 국가 안보와 같은 전문 분야에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적 특성'과 '대중적 친숙함' 때문이다. 물론 각 사례마다 그 모양과 배경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게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 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게임은 재미와 현실감이 맞물려 이뤄지는 콘텐츠다. 게임 개발과 플레이는 현실적인 내용들을 가상에 재구성하는 과정인데, 여기에 경쟁과 협력, 이벤트와 같이 흥미를 지닌 요소들이 포함된다. 똑같은 일이라도 게임 속에서 하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꺼운 책으로 남미 지역 반란군의 특징을 암기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반란군이 되어 보는 것이 지식 습득에 유리하다. 

 

여기에 게임에서는 빠른 손놀림이나 판단, 제스처와 같은 행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직접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은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빨리 익힐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직접 해보는 것이 익히는 관점에서는 게임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군사·안보 관련 실전이나 훈련에는 막대한 비용과 수많은 인력, 그리고 혹시 모를 각종 위험이 많다. 실제 헬기 훈련보다 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한 조종 훈련이 훨씬 저렴하고 안전하다.

 

 
아파치 헬리콥터 훈련 유형별 비교 자료

또한 게임이 사용되는 도구와 기술이 무기 등에 활용되면서 저비용 고효율을 낸다는 점이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적 특성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게임에 사용된 도구나 기술도 자연스레 친숙해졌다. 더불어 게임이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이에 필요한 도구나 기기의 가격도 일정 수준으로 대중화됐다. 이를 통해 게임 관련 도구나 기술은 가격과 접근성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을 가지게 됐다.

 

실제로 록히드 마틴이 잠수함 선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존 잠망경 조종기를 익히는데 걸리던 몇 시간이 Xbox 컨트롤러 교체되면서 불과 몇 분으로 줄어들었다. 효율 면에서 3만 원짜리 컨트롤러가 4,300만 원의 조종장치를 앞지른 것이다.

 

위와 같은 특징들은 군사, 안보 영역에서의 게임에 활용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전 영국 왕립 공군(RAF) 작전 사령관을 지낸 그레그 벡웰 예비역 중장은 "침대에서 PS(플레이스테이션)를 즐기는 18~19세 유저 중에서 리퍼 드론 조종사를 선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비용 측면에서 저렴하고, 인력 측면이나 교육면에서 효율적이라는 해석이다. 개인의 단순 사견일 수 있지만, 이를 무시하기에는 관련 사례나 도입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게임이 대중화를 넘어 군사·안보와 같은 전문분야로 그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에게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게임화)과 같은 용어가 널리 퍼진지는 오래됐지만, 일부에서는 아직까지 게임의 실용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위 인식과 달리, 게임은 생각보다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플레이 요소부터 게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의료나 건축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도 게임은 목격된다. 

 

대표적으로 게임이 활용되고 있는 전문분야가 바로 '안보' 영역이다. 세계 군사력 순위 1위를 자랑하는 미국은 국방·안보 분야에 게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미 최신 핵잠수함에 Xbox 컨트롤러가 장착된 사실이 알려지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국은 안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곳에 게임을 활용하고 있을까? CIA부터 미 해군까지 곳곳에 스며든 게임의 진면목을 알아봤다. / 디스이즈게임 최영락 기자


 

 

 

# 중앙정보국의 진지한 보드게임

 

미국 중앙정보국(이하 CIA)은 미 전략사무국(OSS)를 전신으로 1947년 국가보안법과 함께 설립된 국가정보기관이다. 창립 이래 70년 동안 16개 정보공동체(FBI, 국가안보국 등) 일원으로 협력하며 테러, 방첩, 군축 등 안보 문제 관련 비밀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런 CIA가 지난 3월 컨퍼런스 행사(SXSW)에서 자신들의 게임 활용 현황을 공개했다. CNN, 폴리곤 등 외신을 통해 관련 내용이 보도되면서 CIA의 보드게임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CIA는 이전부터 보드게임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지만, 실제 개발로 이어진 것은 지난 2008년부터의 일이다. 보드게임 개발과 관련 교육을 위해 게임 디자이너와 선임 분석 요원을 기용했으며, 단순 기성 제품이 아닌 정교한 보드게임으로서 설계됐다. 방대한 룰과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단순 즐기기보다는 상당한 학습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CIA 보드게임 개발에 참여한 디자이너 '볼코 뤼케'의 작품 <라비린스: 대 테러전>
보드판 안에 다양한 정보와 요소가 담겨있다(출처: GMT 게임즈)

 

각 보드게임은 실제로 존재하거나 실존했던 인물, 지형, 조직, 사건, 역사 등을 배경으로 개발됐다. 물론 일부 가상의 요소가 포함되긴 하지만, CIA의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상식을 연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킹핀: 엘 차포 사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약조직(시날로아 카르텔) 수장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CIA 보드게임이다. 실제 인물과 지명, 활용 가능한 수단과 전략 등이 보드게임에 등장한다. 

 

보드게임에 정리된 차트와 지도, 용어 등은 복잡한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 게임 내 삽입된 다양한 요소들(세력, 수단 등)은 복잡 다분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플레이하는 요원이 여러 시나리오를 동시에 처리하도록 만들어 복잡한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요원들은 셔먼 켄트 스쿨(정보 분석 학교)에서 보드게임을 이해하고 직접 플레이하며 훈련한다. CIA의 보드게임은 한정된 단기간 동안 지식을 주입하고, 또 얼마나 이해했는지 테스트하기에 최적화됐다. 훈련에는 외부에서 제작된 보드게임이 활용될 수 있다. 

 

다만, CIA에서 보드게임의 역할은 앞으로 기술 발전 등에 맞춰 VR(가상현실)게임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CNN은 CIA 분석가들이 훈련 프로그램에서 VR 게임을 사용하기 기대한다고 전했다. CIA 디지털 혁신위 레이첼 그룬스팬 전략 기획관은 "VR은 지적인 질문과 답변에 빠져들게 만드는 일을 놀랍도록 잘 해낸다"면서 VR을 활용한 훈련에 기대감을 표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미 중앙정보국(CIA)

 

 

# 군사훈련과 과학수사에 활용되는 게임, 게임 엔진

 

게임을 군사훈련에 활용한다는 것은 대중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아메리카 아미>(아메리카즈 아미). <아메리카 아미>는 미 국방부에서 제작한 미군 홍보용 게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전쟁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02년부터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해 신병 훈련교재 등으로 활용됐다.

 

<아메리카 아미>는 실제 미군에 입대하는 것처럼 군사 교육 훈련의 모든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특수, 공수, 의무 등 각 병과마다 훈련도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어, 실제 훈련처럼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미국인 '팩스턴 갈바넥'은 운전 도중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아메리카 아미>에서 배운 응급처치를 활용해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군사 훈련 게임으로는 <아메리카 아미>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후에도 게임 엔진을 활용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은 계속됐다. 지난 2007년에는 엔비디아의 실시간 물리 엔진 피직스로 개발한 <VBS2>(Virtual Battlespace 2)가 개발되어 미 해병대와 주방위군, 호주군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이용됐다.

 

스팀에 판매 중인 <아메리카 아미: 프로빙 그라운즈>
개발, 배급사가 미 육군(U.S Army)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미 육군은 5,700만 달러(당시 약 627억 원)을 투자해 크라이 엔진 3를 활용한 <DSTS>(Dismounted Soldier Training System: 보병훈련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360도 시야를 제공하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시스템과 휴대용 컴퓨터 시스템이 합쳐진 세트로 구성됐다. 현실적인 그래픽과 사실적인 물리 효과로 실제 기상 조건과 분대 기반의 상호 작용을 구현했다. 공개 당시 미 육군은 DSTS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막과 같은 현실 지역은 물론, 동굴 지역이나 숲과 같은 가상의 전장을 정확한 비율과 형태로 구현해 군인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게임 엔진은 군사훈련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FBI는 몇 년 전부터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과학 수사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FBI를 비롯한 미 정부 기관들은 지난 2012년 언리얼 엔진 사용에 대한 라이선스를 취득했으며, 이를 활용한 군 위생병 마취 실습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도입됐다.

 

<DSTS>​(보병훈련시스템) 예시(출처: 미 육군)

 

 

# 훈련? 이제는 실전이다! 최신 무기와 게임기기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들은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Xbox 컨트롤러가 장착됐다고 밝혔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미 해군의 최신예 원자력 잠수함으로 지난 2004년부터 미 해군에 배치됐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지속적으로 건조되어 현재 운용 중인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을 대체할 예정이다.

 

미 해군은 최근 시험운행 중인 버지니아급 잠수함(개량 3형)에 30달러(약 3만 4,000원) 짜리 Xbox 360 컨트롤러를 부착했다. 이 잠수함은 전통적인 회전식 튜브 잠망경 대신 360도로 회전하는 두 개의 포토닉스 마스트(디지털 카메라, 대형 모니터 등)로 대체되어 있는데, 이를 조종하는 장치로 Xbox 컨트롤러를 부착한 것. 미 해군은​ 이전까지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개발한 3만 8,000달러(약 4,315만 원) 짜리 조종장치를 사용했다.

 

해군은 Xbox 컨트롤러를 도입한 시스템을 지난 2년 동안 테스트했으며, 향후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위한 시스템의 일부로 포함될 전망이다. 앞으로 Xbox 컨트롤러를 비롯해 터치스크린 등 젊은 장병들의 손에 익숙한 기술을 개발, 도입한다는 것이 미 해군의 입장이다.

 

잠수함에 부착될 Xbox 360 컨트롤러 예시 (출처: 록히드 마틴)

 

게임기기를 활용한 최신 무기 운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항공우주기업 보잉사는 미군과 협력해 지난 2014년 레이저 무기 HEL MD(The High Energy Laser Mobile Demonstrator) 공개했다. HEL MD의 특징 중 하나는 무기 조종을 Xbox 컨트롤러와 연결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보잉은 무기의 기동력을 위해 단 한 명의 조종사가 한 대의 컴퓨터와 컨트롤러로 HEL MD를 조작할 수 있게 개발했는데, 여기에 Xbox 컨트롤러가 선택된 것​이다.

 

HEL MD는 10kW의 레이저를 발사해 공격하는 고출력 레이저 무기로, 날아오는 박격포탄이나 무인 비행기(UAV)를 격추하기 위해 개발됐다. 초속 약 18만 6,000마일의 속도를 보여주는 이 무기는 500마력의 대형 전술 트럭(HEMTT)에 탑재되어 높은 기동력을 보여준다. 

 

레이저 무기 HEL MD (출처: 보잉)

 

 

# 최신 무기와 교육 훈련에 게임이 활용되는 이유

 

그렇다면 미국은 게임의 어떤 부분에 주목해서 이를 국가 안보에 활용했을까? 게임이 국가 안보와 같은 전문 분야에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적 특성'과 '대중적 친숙함' 때문이다. 물론 각 사례마다 그 모양과 배경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게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 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게임은 재미와 현실감이 맞물려 이뤄지는 콘텐츠다. 게임 개발과 플레이는 현실적인 내용들을 가상에 재구성하는 과정인데, 여기에 경쟁과 협력, 이벤트와 같이 흥미를 지닌 요소들이 포함된다. 똑같은 일이라도 게임 속에서 하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꺼운 책으로 남미 지역 반란군의 특징을 암기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반란군이 되어 보는 것이 지식 습득에 유리하다. 

 

여기에 게임에서는 빠른 손놀림이나 판단, 제스처와 같은 행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직접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은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빨리 익힐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직접 해보는 것이 익히는 관점에서는 게임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군사·안보 관련 실전이나 훈련에는 막대한 비용과 수많은 인력, 그리고 혹시 모를 각종 위험이 많다. 실제 헬기 훈련보다 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한 조종 훈련이 훨씬 저렴하고 안전하다.

 

 
아파치 헬리콥터 훈련 유형별 비교 자료

또한 게임이 사용되는 도구와 기술이 무기 등에 활용되면서 저비용 고효율을 낸다는 점이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적 특성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게임에 사용된 도구나 기술도 자연스레 친숙해졌다. 더불어 게임이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이에 필요한 도구나 기기의 가격도 일정 수준으로 대중화됐다. 이를 통해 게임 관련 도구나 기술은 가격과 접근성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을 가지게 됐다.

 

실제로 록히드 마틴이 잠수함 선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존 잠망경 조종기를 익히는데 걸리던 몇 시간이 Xbox 컨트롤러 교체되면서 불과 몇 분으로 줄어들었다. 효율 면에서 3만 원짜리 컨트롤러가 4,300만 원의 조종장치를 앞지른 것이다.

 

위와 같은 특징들은 군사, 안보 영역에서의 게임에 활용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전 영국 왕립 공군(RAF) 작전 사령관을 지낸 그레그 벡웰 예비역 중장은 "침대에서 PS(플레이스테이션)를 즐기는 18~19세 유저 중에서 리퍼 드론 조종사를 선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비용 측면에서 저렴하고, 인력 측면이나 교육면에서 효율적이라는 해석이다. 개인의 단순 사견일 수 있지만, 이를 무시하기에는 관련 사례나 도입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게임이 대중화를 넘어 군사·안보와 같은 전문분야로 그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