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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식빵 투혼'부터 '해설진 토크쇼'까지, 되돌아본 아시안게임 e스포츠 이모저모

그루잠 (박수민 기자) | 2018-08-31 18: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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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e스포츠계 최대 화두는 아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의 e스포츠 시범 종목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 등 6개 게임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e스포츠 종주국이라 불리는 한국은 한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에 처했지만, 각 부처의 기민한 대처로 대표팀을 꾸릴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선별해 대표팀을 꾸렸고, 그 중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크래프트2> 대표팀은 전승 우승으로 아시안게임 본선에 진출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8월 30일, <스타크래프트2> 종목 조성주 선수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한국 e스포츠 대표팀 일정이 모두 끝났다.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은 8강부터 준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승리하며 값진 은메달을 따냈고, <스타크래프트2> 조성주 선수는 '전승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해 내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만큼 많은 e스포츠 팬들이 기대하기도 했던 아시안게임.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쳤던 아시안게임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리그 오브 레전드> 본선 경기부터 시작해 아시안게임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디스이즈게임 박수민 기자




 



'식빵 투혼'과 '열악한 경기장', 속상한 팬과 의연한 선수들

 

1.

지난 8월 27일, 국내 e스포츠 팬을 속상하게 할 만한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국가대표에게 점심으로 제공된 '식빵 세 봉지' 사진이다. 

 

당시 선수들에게 제공된 빵 (출처: 한국e스포츠협회, 연합뉴스)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은 첫 날 점심시간과 맞물린 경기 시간 때문에 현장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이 때 주최측이 제공한 식사가 바로 '식빵 세 봉지와 음료'였다. 선수들은 한국에서 따로 챙겨온 부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도핑테스트'도 처음 겪어본 대표팀은 식사를 따로 먹으면 혹여 도핑테스트에 문제가 생길까봐 주최측에서 제공한 식빵만 먹은 채 경기를 치렀다. 

 

※ 참고: 도핑테스트는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등, 금지된 방법을 사용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도핑테스트에 의해 도핑이 적발됐을 경우 메달을 박탈당하거나 출전 금지, 실격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흔한 잼이나 버터도 없이, 한 눈에도 퍽퍽해 보이는 식빵 세 봉지를 e스포츠 팬들은 억하심정으로 바라봤으리라. 많은 팬들이 SNS 등을 통해 "국내 리그도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주는데, 국제 대회인 아시안게임의 식사 제공이 너무 빈약하다"며 성토했다. 

 

 

2.

e스포츠 팬들이 아쉬운 목소리를 낸 건 비단 '식빵' 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실력을 뽐낼 경기장의 환경도 열악했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e스포츠 경기장은 '메인 스테이지'와 '서브 스테이지'로 구성돼 있었다. 주요 경기가 치러진 메인 스테이지는 화려한 조명과 넓은 무대를 갖춰 문제될 부분이 없어 보였다.

 

아시안게임 e스포츠 경기장 서브 스테이지 모습 (출처: KBS 스포츠 유튜브 채널)

문제는 서브 스테이지의 모습이었다. 현지 사정으로 중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서브 스테이지의 모습이 여러 매체의 취재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조성된 경기장의 환경이 터무니없이 열악했던 것. 

 

긴 테이블에 서로 마주보는 형태(경기때엔 가운데에 가림막이 설치됐다)의 스테이지는 사방이 개방돼 있었고 각 선수들간의 거리도 매우 짧았다. 선수들의 집중을 보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귀맵'(게임이 아닌 외부 소리를 듣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 같은 의도치 않은 페어플레이 위반도 우려되는 환경이었다.

 

 

3. 

현지 사정에 따른 퍼즈(일시정지)도 화두에 올랐다. 처음으로 공중파에 중계된 대한민국 vs 중국 <리그 오브 레전드> 조별예선 경기에선 초반부터 간헐적으로 퍼즈가 걸렸다. 그러다가 결국 대형사고가 터졌다. 경기장 장비와 인터넷 문제로 30분 가까이 퍼즈가 걸린 것이다. 

 

경기 도중 퍼즈가 걸린 모습

 

e스포츠에서 장시간의 퍼즈는 선수들의 흐름을 끊을 뿐 아니라 관람자의 몰입도 방해하기 때문에 만전을 기해 방지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이후 경기에서는 긴 시간의 퍼즈가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를 관람하던 e스포츠 팬들은 '언제 다시 퍼즈가 걸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4.

한켠에서는 인터뷰 통역 방식 때문에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그 경기의 MVP 선수와 현장 MC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과거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짧은 인터뷰가 이뤄지는 메인 스테이지 무대

 

MC가 영어와 중국어로 질문하고, 통역가가 이를 한국어로 통역하면 한국 선수가 한국어로 답했다. 이를 통역가가 중국어로 통역해 MC에게 전달하고, MC는 영어로 이를 다시 한번 말하는 방식이었다. 질문 하나 하나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을 뿐 아니라 질문이나 답변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았다.

 

 

5. 

열악한 환경에 불구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은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긴 퍼즈로 집중력을 잃었을 법 한 8강 중국전에서 승리를 따냈고, 중국에 아쉽게 패배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에도 “(경기장 시설이)열악한건 사실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저희가 노력했다면 이겼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뛰어난 기량으로 은메달을 획득한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대표팀

 

한국에서는 자카르타의 열기를 그대로 즐길 수 있었을까?

 

1.

그렇다면 아시안게임의 현장을 안방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계’는 어땠을까? 

 

첫 중계부터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한국대 중국 8강 1차전에서부터 경기 송출화면이 자꾸 멈추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게임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를 한국에 전달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e스포츠 경기 중계에 쓰이는 국제 신호가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송출된다고 결정됐을 때부터 예견된 현상이었다. 국내 지상파 방송국들이 e스포츠 중계를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SBS는 아프리카tv를 통해 경기를 중계했다. 사진은 SBS의 e스포츠 해설진. 왼쪽부터 강승현 해설, 박상현 캐스터, 김동준 해설

 

결국 우려대로 경기 중계 도중 잦은 송출 끊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과 <스타크래프트2> 종목 모두에 해당됐다. 결승전에서까지 송출 끊김이 있었다. 해설진은 멈춘 화면을 앞에 두고 시청자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고군분투했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화면이 멈춰 아쉬운 비명을 지르는 풍경도 연출됐다.

 

 

2.

우리나라의 중계 환경은 어땠을까? 우리나라에서는 KBS가 자사의 인터넷 중계 플랫폼인 My K에서 모든 경기를 송출했고, SBS는 아프리카 tv를 통해 한국 출전 e스포츠 경기를 모두 중계했다. 특히 8월 29일 펼쳐진 <리그 오브 레전드> 결승전은 두 방송사 모두 지상파로 생중계 하기도 했다. 

 

KBS 또한 자사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 My K를 통해 경기를 중계했다. 
사진은 KBS의 해설진. 왼쪽부터 성승헌 캐스터, 이현우 해설, 고인규 해설

 

그러나 결승전의 모든 경기가 지상파로 중계되진 못했다. 각 방송사의 중계 편성 문제로 일부 세트만 지상파 중계를 하고, 나머지 세트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중계했기 때문이다. 중계진을 통해 안내를 하긴 했지만, 인터넷 환경이 익숙지 않은 시청자나 잠시 자리를 비워 소식을 듣지 못한 시청자는 갈피를 잃고 헤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KBS의 인터넷 플랫폼인 My K에는 순간적으로 사용자가 몰려 원활한 이용에 지장이 생기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그래도 즐거웠다, e스포츠 축제

 

1.

여러모로 부족한 경기 운영이 눈에 띄었지만 많은 유저를 웃게 하는 장면들도 포착됐다. 선수들의 가족이 경기장에 찾아와 환한 얼굴로 응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고, <스타크래프트2> 결승전에서는 조성주 선수의 소속팀 ‘진에어 그린윙스’ 감독과 코치진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카자흐스탄 대표팀의 'Fakelover' 선수와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FakeFriend' 선수는 우리나라 이상혁 선수의 Faker 닉네임을 연상케 하는 'Fake' 단어를 닉네임에 넣어 해설진의 흥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경기장에 직접 찾아와 열띤 응원을 펼친 이상혁 선수의 가족

 

 

2.

국내 e스포츠 해설진으로 수년간 내공을 다져온 해설진의 재치 있는 입담도 화제가 됐다. e스포츠를 처음 접한 시청자를 위해 맞춤 해설을 하거나 송출 끊김 때문에 생긴 공백을 채우기 위한 ‘드립’들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진 어록

 

(오리아나의 궁극기가 사용된 직후 화면이 멈추자) "오리아나의 '공기 팡!'으로 화면까지 멈췄어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오리아나의 충격파가 모니터로 떨어졌습니다!"


(송출 문제로 화면이 검게 변하자 홀로 떠 있는 My K 로고를 보며) 

"녹턴의 궁극기를 맞아도 My K는 여러분을 환하게 비춰 드립니다!"


(바론에 합류해야 하는데 바론 앞에 와드가 없어 미드 라인에 텔레포트를 사용한 상황)

"서울에 가야 하는데 천안 쯤에 내린 꼴 이거든요?"


(게임이 매우 불리하다고 해설했는데 한국 팀이 교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포기해서 죄송합니다! 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맨 오브 매치에 선정된 스코어 선수의 이름이 한왕호-피넛 선수 본명-로 출력되자)

"역시! 대한민국의 정글러 두 명은 한 몸이나 다름 없다는 거죠! 일심동체!"

 

(맨 오브 매치에 선정된 중국 원거리 딜러 Uzi 선수의 국기가 태극기로 출력되자)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탐을 낼 만한, 그런 뛰어난 선수란 거죠?"


3.

KBS(My K)의 <리그 오브 레전드> ‘용어 설명’ 또한 많은 유저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본래 용어 설명은 e스포츠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이 쉽게 게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용어 설명은 ‘라인’ ‘미니언’ 등 섬세한 요소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 중계가 지상파에서 인터넷 플랫폼으로 옮겨가자 용어 설명에는 ‘My K/ 우리 마음대로 한다.’ 라는 말이 실리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 e스포츠 팬이라면 눈치챌 법한 문구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유명 해설가의 3 화염 용에 대한 무한 신뢰(끝났죠?)를 언급하거나 챔피언 ‘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인터넷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많은 e스포츠 팬들은 이런 재치 있는 문구들에 환호하며 수많은 채팅으로 화답했다.

 

 

My K 용어 설명 어록

 

마이케이 MyK/ 

우리 마음대로 한다.


페리아나/ 

페이커+오리아나. "6레벨만 되면 충격파로 폭탄을 날릴 텐데…"

(Faker 이상혁 선수의 할머니가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한 말)


용(드래곤) Dragon/ 

4가지 속성(화염, 대지, 바다, 바람)이 있으며 화염과 대지가 제일 맛있다.


3화염/ 

화염드래곤을 3마리 먹었을 때를 뜻한다. "끝났죠?"


강타/ 

몬스터의 체력을 대량 뺏는 기술. 고동빈 선수가 사용한다. 

(참고: Score 고동빈 선수는 '강타 싸움'에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별명은 '강타의 신')

 

"6레벨만 되면 충격파로 폭탄을 날릴 텐데" (출처: OGN 유튜브 채널)

 

 4.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슈퍼플레이도 빛났다. 

 

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은메달을 획득한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은 8강전부터 준결승전까지 모두 8경기를 내리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 4강전 경기에서는 ‘롤드컵’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특별 스킨을 다섯 선수 모두 착용해 화제가 됐다. 1세트에서는 ‘젠지 e스포츠’(전 삼성)의 2017년 우승 스킨을 착용했고 2세트에서는 ‘SKT T1’ 우승 스킨을 착용했다. 경기에서 스킨을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Faker' 이상혁 선수도 이 때 만큼은 스킨을 착용했다. 

 

10전 10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스타크래프트2> 종목 금메달을 획득한 조성주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성주 선수는 모든 경기를 15분 이내에 끝낼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또한 자신의 시그니쳐 빌드인 ‘전진 병영’ 빌드는 물론이고 ‘빠른 전투순양함(배틀크루저) 빌드’와 테란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전술 핵’까지 선보이면서 경기를 관람하는 <스타크래프트2>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타크래프트2> 조성주 선수. 결국 압도적인 실력차를 뽐내며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지난 5월, e스포츠계 최대 화두는 아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의 e스포츠 시범 종목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 등 6개 게임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e스포츠 종주국이라 불리는 한국은 한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에 처했지만, 각 부처의 기민한 대처로 대표팀을 꾸릴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선별해 대표팀을 꾸렸고, 그 중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크래프트2> 대표팀은 전승 우승으로 아시안게임 본선에 진출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8월 30일, <스타크래프트2> 종목 조성주 선수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한국 e스포츠 대표팀 일정이 모두 끝났다.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은 8강부터 준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승리하며 값진 은메달을 따냈고, <스타크래프트2> 조성주 선수는 '전승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해 내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만큼 많은 e스포츠 팬들이 기대하기도 했던 아시안게임.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쳤던 아시안게임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리그 오브 레전드> 본선 경기부터 시작해 아시안게임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디스이즈게임 박수민 기자




 



'식빵 투혼'과 '열악한 경기장', 속상한 팬과 의연한 선수들

 

1.

지난 8월 27일, 국내 e스포츠 팬을 속상하게 할 만한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국가대표에게 점심으로 제공된 '식빵 세 봉지' 사진이다. 

 

당시 선수들에게 제공된 빵 (출처: 한국e스포츠협회, 연합뉴스)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은 첫 날 점심시간과 맞물린 경기 시간 때문에 현장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이 때 주최측이 제공한 식사가 바로 '식빵 세 봉지와 음료'였다. 선수들은 한국에서 따로 챙겨온 부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도핑테스트'도 처음 겪어본 대표팀은 식사를 따로 먹으면 혹여 도핑테스트에 문제가 생길까봐 주최측에서 제공한 식빵만 먹은 채 경기를 치렀다. 

 

※ 참고: 도핑테스트는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등, 금지된 방법을 사용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도핑테스트에 의해 도핑이 적발됐을 경우 메달을 박탈당하거나 출전 금지, 실격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흔한 잼이나 버터도 없이, 한 눈에도 퍽퍽해 보이는 식빵 세 봉지를 e스포츠 팬들은 억하심정으로 바라봤으리라. 많은 팬들이 SNS 등을 통해 "국내 리그도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주는데, 국제 대회인 아시안게임의 식사 제공이 너무 빈약하다"며 성토했다. 

 

 

2.

e스포츠 팬들이 아쉬운 목소리를 낸 건 비단 '식빵' 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실력을 뽐낼 경기장의 환경도 열악했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e스포츠 경기장은 '메인 스테이지'와 '서브 스테이지'로 구성돼 있었다. 주요 경기가 치러진 메인 스테이지는 화려한 조명과 넓은 무대를 갖춰 문제될 부분이 없어 보였다.

 

아시안게임 e스포츠 경기장 서브 스테이지 모습 (출처: KBS 스포츠 유튜브 채널)

문제는 서브 스테이지의 모습이었다. 현지 사정으로 중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서브 스테이지의 모습이 여러 매체의 취재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조성된 경기장의 환경이 터무니없이 열악했던 것. 

 

긴 테이블에 서로 마주보는 형태(경기때엔 가운데에 가림막이 설치됐다)의 스테이지는 사방이 개방돼 있었고 각 선수들간의 거리도 매우 짧았다. 선수들의 집중을 보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귀맵'(게임이 아닌 외부 소리를 듣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 같은 의도치 않은 페어플레이 위반도 우려되는 환경이었다.

 

 

3. 

현지 사정에 따른 퍼즈(일시정지)도 화두에 올랐다. 처음으로 공중파에 중계된 대한민국 vs 중국 <리그 오브 레전드> 조별예선 경기에선 초반부터 간헐적으로 퍼즈가 걸렸다. 그러다가 결국 대형사고가 터졌다. 경기장 장비와 인터넷 문제로 30분 가까이 퍼즈가 걸린 것이다. 

 

경기 도중 퍼즈가 걸린 모습

 

e스포츠에서 장시간의 퍼즈는 선수들의 흐름을 끊을 뿐 아니라 관람자의 몰입도 방해하기 때문에 만전을 기해 방지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이후 경기에서는 긴 시간의 퍼즈가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를 관람하던 e스포츠 팬들은 '언제 다시 퍼즈가 걸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4.

한켠에서는 인터뷰 통역 방식 때문에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그 경기의 MVP 선수와 현장 MC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과거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짧은 인터뷰가 이뤄지는 메인 스테이지 무대

 

MC가 영어와 중국어로 질문하고, 통역가가 이를 한국어로 통역하면 한국 선수가 한국어로 답했다. 이를 통역가가 중국어로 통역해 MC에게 전달하고, MC는 영어로 이를 다시 한번 말하는 방식이었다. 질문 하나 하나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을 뿐 아니라 질문이나 답변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았다.

 

 

5. 

열악한 환경에 불구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은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긴 퍼즈로 집중력을 잃었을 법 한 8강 중국전에서 승리를 따냈고, 중국에 아쉽게 패배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에도 “(경기장 시설이)열악한건 사실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저희가 노력했다면 이겼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뛰어난 기량으로 은메달을 획득한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대표팀

 

한국에서는 자카르타의 열기를 그대로 즐길 수 있었을까?

 

1.

그렇다면 아시안게임의 현장을 안방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계’는 어땠을까? 

 

첫 중계부터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한국대 중국 8강 1차전에서부터 경기 송출화면이 자꾸 멈추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게임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를 한국에 전달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e스포츠 경기 중계에 쓰이는 국제 신호가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송출된다고 결정됐을 때부터 예견된 현상이었다. 국내 지상파 방송국들이 e스포츠 중계를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SBS는 아프리카tv를 통해 경기를 중계했다. 사진은 SBS의 e스포츠 해설진. 왼쪽부터 강승현 해설, 박상현 캐스터, 김동준 해설

 

결국 우려대로 경기 중계 도중 잦은 송출 끊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과 <스타크래프트2> 종목 모두에 해당됐다. 결승전에서까지 송출 끊김이 있었다. 해설진은 멈춘 화면을 앞에 두고 시청자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고군분투했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화면이 멈춰 아쉬운 비명을 지르는 풍경도 연출됐다.

 

 

2.

우리나라의 중계 환경은 어땠을까? 우리나라에서는 KBS가 자사의 인터넷 중계 플랫폼인 My K에서 모든 경기를 송출했고, SBS는 아프리카 tv를 통해 한국 출전 e스포츠 경기를 모두 중계했다. 특히 8월 29일 펼쳐진 <리그 오브 레전드> 결승전은 두 방송사 모두 지상파로 생중계 하기도 했다. 

 

KBS 또한 자사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 My K를 통해 경기를 중계했다. 
사진은 KBS의 해설진. 왼쪽부터 성승헌 캐스터, 이현우 해설, 고인규 해설

 

그러나 결승전의 모든 경기가 지상파로 중계되진 못했다. 각 방송사의 중계 편성 문제로 일부 세트만 지상파 중계를 하고, 나머지 세트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중계했기 때문이다. 중계진을 통해 안내를 하긴 했지만, 인터넷 환경이 익숙지 않은 시청자나 잠시 자리를 비워 소식을 듣지 못한 시청자는 갈피를 잃고 헤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KBS의 인터넷 플랫폼인 My K에는 순간적으로 사용자가 몰려 원활한 이용에 지장이 생기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그래도 즐거웠다, e스포츠 축제

 

1.

여러모로 부족한 경기 운영이 눈에 띄었지만 많은 유저를 웃게 하는 장면들도 포착됐다. 선수들의 가족이 경기장에 찾아와 환한 얼굴로 응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고, <스타크래프트2> 결승전에서는 조성주 선수의 소속팀 ‘진에어 그린윙스’ 감독과 코치진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카자흐스탄 대표팀의 'Fakelover' 선수와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FakeFriend' 선수는 우리나라 이상혁 선수의 Faker 닉네임을 연상케 하는 'Fake' 단어를 닉네임에 넣어 해설진의 흥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경기장에 직접 찾아와 열띤 응원을 펼친 이상혁 선수의 가족

 

 

2.

국내 e스포츠 해설진으로 수년간 내공을 다져온 해설진의 재치 있는 입담도 화제가 됐다. e스포츠를 처음 접한 시청자를 위해 맞춤 해설을 하거나 송출 끊김 때문에 생긴 공백을 채우기 위한 ‘드립’들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진 어록

 

(오리아나의 궁극기가 사용된 직후 화면이 멈추자) "오리아나의 '공기 팡!'으로 화면까지 멈췄어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오리아나의 충격파가 모니터로 떨어졌습니다!"


(송출 문제로 화면이 검게 변하자 홀로 떠 있는 My K 로고를 보며) 

"녹턴의 궁극기를 맞아도 My K는 여러분을 환하게 비춰 드립니다!"


(바론에 합류해야 하는데 바론 앞에 와드가 없어 미드 라인에 텔레포트를 사용한 상황)

"서울에 가야 하는데 천안 쯤에 내린 꼴 이거든요?"


(게임이 매우 불리하다고 해설했는데 한국 팀이 교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포기해서 죄송합니다! 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맨 오브 매치에 선정된 스코어 선수의 이름이 한왕호-피넛 선수 본명-로 출력되자)

"역시! 대한민국의 정글러 두 명은 한 몸이나 다름 없다는 거죠! 일심동체!"

 

(맨 오브 매치에 선정된 중국 원거리 딜러 Uzi 선수의 국기가 태극기로 출력되자)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탐을 낼 만한, 그런 뛰어난 선수란 거죠?"


3.

KBS(My K)의 <리그 오브 레전드> ‘용어 설명’ 또한 많은 유저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본래 용어 설명은 e스포츠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이 쉽게 게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용어 설명은 ‘라인’ ‘미니언’ 등 섬세한 요소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 중계가 지상파에서 인터넷 플랫폼으로 옮겨가자 용어 설명에는 ‘My K/ 우리 마음대로 한다.’ 라는 말이 실리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 e스포츠 팬이라면 눈치챌 법한 문구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유명 해설가의 3 화염 용에 대한 무한 신뢰(끝났죠?)를 언급하거나 챔피언 ‘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인터넷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많은 e스포츠 팬들은 이런 재치 있는 문구들에 환호하며 수많은 채팅으로 화답했다.

 

 

My K 용어 설명 어록

 

마이케이 MyK/ 

우리 마음대로 한다.


페리아나/ 

페이커+오리아나. "6레벨만 되면 충격파로 폭탄을 날릴 텐데…"

(Faker 이상혁 선수의 할머니가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한 말)


용(드래곤) Dragon/ 

4가지 속성(화염, 대지, 바다, 바람)이 있으며 화염과 대지가 제일 맛있다.


3화염/ 

화염드래곤을 3마리 먹었을 때를 뜻한다. "끝났죠?"


강타/ 

몬스터의 체력을 대량 뺏는 기술. 고동빈 선수가 사용한다. 

(참고: Score 고동빈 선수는 '강타 싸움'에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별명은 '강타의 신')

 

"6레벨만 되면 충격파로 폭탄을 날릴 텐데" (출처: OGN 유튜브 채널)

 

 4.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슈퍼플레이도 빛났다. 

 

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은메달을 획득한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은 8강전부터 준결승전까지 모두 8경기를 내리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 4강전 경기에서는 ‘롤드컵’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특별 스킨을 다섯 선수 모두 착용해 화제가 됐다. 1세트에서는 ‘젠지 e스포츠’(전 삼성)의 2017년 우승 스킨을 착용했고 2세트에서는 ‘SKT T1’ 우승 스킨을 착용했다. 경기에서 스킨을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Faker' 이상혁 선수도 이 때 만큼은 스킨을 착용했다. 

 

10전 10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스타크래프트2> 종목 금메달을 획득한 조성주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성주 선수는 모든 경기를 15분 이내에 끝낼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또한 자신의 시그니쳐 빌드인 ‘전진 병영’ 빌드는 물론이고 ‘빠른 전투순양함(배틀크루저) 빌드’와 테란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전술 핵’까지 선보이면서 경기를 관람하는 <스타크래프트2>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타크래프트2> 조성주 선수. 결국 압도적인 실력차를 뽐내며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