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잃어버린 사행성을 찾아서] 5화: 빠찡꼬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로’들의 세계

디스이즈게임 (디스이즈게임) | 2019-04-02 16:22:32

[잃어버린 사행성을 찾아서] ​‘사행성’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행성은 ‘우연한 이익을 얻고자 요행을 바라거나 노리는 성질. 또는 그러한 특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혹할 법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자극한다는 특징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른 엄밀한 법적 개념과 관리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이 이러한 ‘사행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연재물을 선보입니다. 필자 노시흥씨는 2000년대 초반, 일본의 빠찡코, 빠찌슬롯 로컬라이즈 작업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지금도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행성. 뭔가 위험해 보이지만 그간 우리가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미지의 세계.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 외부 연재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빠찡꼬에 무관심하던 시절, 저는 일본 출장을 다니며 다음과 같은 피상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빠찡꼬 가게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가?'

'왜 같은 기계가 수십 대 줄 지어 놓여 있는가?'

'그래봤자 기계 쳐다보다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 맥없는 게임을 왜 하는가? 업소가 수수료 떼니 어차피 손해가 확정인 게임 아닌가? 빠찡꼬로 돈을 번다는 게 무슨 멍멍이 소리?'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오늘 이야기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 

빠찡꼬는 어떻게 플레이하는 게임이라는 인상이 있으신지요? 슬롯머신은요?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언젠가 당첨되기를 바라며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구슬이나 메달을 계속 넣는 장면도 떠오르고요. 굉장히 재미없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전 편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저도 그랬습니다.

 

MMORPG도 몇 시간이고 멍하니 마우스 클릭을 하며 몬스터를 잡는 반복 행동을 해야 하니 누가 보면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빠찡꼬는 여전히 금지입니다만, 게임이라면 오토가 대부분 포함되어 이제는 그마저도 안 합니다. 액션이 강조된 게임의 경우, 좀 더 조작이 필요하거나 타이밍에 맞춰서 공격을 피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게임들에도 오토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실 만한 분들이라면 이런 자동 진행 게임의 경우, 그 뒤의 더 큰 그림이 있어서 오토를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빠찡꼬도 사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멀티 플레이 PvP 게임으로 MMORPG와 마찬가지로 그 뒤의 더 큰 그림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PvP 게임 빠찡꼬 공략의 세계와 함께 사행성과 게임성이 무언가 뒤섞인 상황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빠찡꼬의 기본 구조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게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일단 최근 빠찡꼬 쪽 규제를 보니 전편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기지도 지지도 않게 하는 성격의 규제가 많이 들어가서 PvP의 재미를 거의 없앤 것으로 보입니다. 2019년 시점에 일본 놀러가서 빠찡꼬로 돈 좀 벌어보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보실 분이 있다면 ‘다행히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하는 게임 방식이나 구조는 제가 잠깐 관여했었던 2000년대 중반, 일본 빠찡꼬의 좋았던 시절(북두의 권, 겨울 연가 나오던 시절)을 기준으로 합니다. 오래전 상황이라 모방 우려가 적으므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간 빠찡꼬, 빠찌슬롯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동안 다룬 것이 게임 방식이 아닌 영업 방식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좀 더 상세하게 들어가므로 둘을 필요에 따라 구분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수입되어 제가 주로 경험한 것은 빠찡꼬가 아니고 빠찌슬롯이므로 슬롯 쪽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또한 아래 나올 이야기는 빠찡꼬 전문가가 제게 설명해준 구조를 중심으로 <겨울 연가> 빠찡꼬 기획서를 운 좋게 보게 되면서 얻게 된 정보, 기타 자료들을 종합한 내용입니다. 제가 빠찡꼬 개발사나 빠찡꼬 업소에서 일해본 것은 아니므로 실제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빠찌슬롯’이란 무엇인가?

 

빠찌슬롯의 게임 규칙은 별다를 것은 없습니다. 게임 머니를 충전하고 특정 조작(레버를 당긴다 등)을 해서 릴을 돌리면 3개의 릴이 돌아갑니다. 릴은 버튼(총 세 개)을 누를 때 하나씩 멈춥니다. 다 멈췄을 때 사전에 지정된 몇 가지 종류의 특정 릴 상태(777같은)가 맞춰지면 당첨이고 아니면 마는 것의 연속입니다.

 

이게 1게임(소위 베팅)이고 바다 이야기 시절 국내에는 1게임이 끝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4초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규제가 동일하다면 당연히 베팅 속도가 빠르면 시간당 투입 금액이 높아져서 판이 커지기 때문에 최소 속도 규제가 생기는 흐름입니다. 이는 지난 편에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당첨이라는 것은 그냥 O, X 게임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반, 상위, 레어, 전설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각각 발생 확률이 다르며, 얻을 수 있는 점수도 다릅니다. 단 이것도 기획서를 방불케하는 빡빡한 규제로 인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습니다. 규제가 없는 부분을 찾기가 더 힘들군요. 온라인게임 아이템 등급표 같은게 규제로 정해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릴은 어느 정도 눈으로 보고 멈출 수 있으며, 전체 그림 순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워둔다면 특정 그림 2~3개 뒤에 뭐가 나올지 알고 미리 눌러서 세우는 등의 테크닉도 가능합니다. 당시에 해본 경험으로는 쉽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가능했습니다. 소위 피지컬이 좋은 사람이면 따박따박 맞출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보고 맞출 수 있으면 무조건 '777'가능한 것 아냐?’ 라고 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아래의 본격 공략 파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MMO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빠찡꼬는 타겟팅 전투, 빠찌슬롯은 논타겟팅 전투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좀 더 젊은 사람들이 빠찌슬롯을 즐긴다고 합니다. 

 

오토가 금지이므로 조작은 무조건 본인이 다 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대신 시켜도(알 방법은 별로 없지만) 안 됩니다. 버튼은 한 번 누를 때 한 번만 반응하고, 물건을 올려 놓아도 떼었다가 다시 누르기 전에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토 규제가 매우 꼼꼼합니다. 

 

 

피말리는(?) 경쟁의 세계, PC방과 다를 것 없는 빠찡꼬 업소의 생리

 

이제 업소의 규칙입니다. 

 

업소는 지역별로 규정에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만, 도쿄 기준 밤 11시에서 오전 10시까지 강제 셧다운입니다. 18세 이상 이용인데도 셧다운이라니 당황스럽습니다. 한국에서 이거 보고 18세 이상도 셧다운 할까 봐 겁나네요. 

 

업소는 각 기계의 확률을 1~6단계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 확률은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수치를 변경하면 잡혀가는 거고 그냥 1~6 사이의 옵션을 조절하는 것은 영업 센스이므로 법적으로 문제없습니다.  

 

 

1이 가장 낮은 확률이고 6이 가장 높은 확률입니다. 6일 때는 확률이 100%가 넘습니다. 손님이 100을 넣으면 105~6 정도를 돌려주는 얼핏 보면 손해 보는 세팅입니다. 업소가 '6'으로 세팅하면 대놓고 '오늘은 6의 날'입니다 하고 홍보를 합니다. 6으로 설정한 기계에 깃발을 꽂아 놓기도 합니다. 

 

평균 내서 보통 85% 전후가 빠찡꼬의 환원율(100이 들어가면 업소 수수료 떼고 얼마를 내 놓는가)이라고 합니다. 만약 빠찡꼬를 사행 게임이라고 한다면 중 운영 수수료율이 매우 낮은 축에 속합니다. 고객이 즐긴 전체 금액의 10%~15% 정도만 업소 수익으로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로또나 토토가 50~60%까지 수수료, 세금으로 가져가는 것에 비하면 정말 적게 가져갑니다. 

 

그나마 이 정도 수수료율도 지키기 힘듭니다. 이유는 아무나 빠찡꼬 가게를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골목마다 있다는 이야기는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냥 국내 PC방 생각하면 됩니다. 바로 건너편 가게에서 '6' 걸어놓고 홍보하면 손님 다 거기로 가버립니다. '정식 사행'(?)은 보통 독과점으로 아무나 못 하게 하지만 그게 아니므로 업소 간 피 말리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운영 노하우가 쌓인 프렌차이즈 위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국내 PC방처럼요. 

 

  

 

빠찡꼬 개발사는 무조건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빠찡꼬/슬롯 게임 개발사의 입장입니다.

 

개발사는 이 구조에서 사행이나 환금과는 일단 제일 거리가 멉니다. 말 그대로 ‘재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미있어서 게임을 하러 오는 초기 사용자 수가 많아지고, 업소가 기계를 많이 사줄 테니까요. 

 

적어도 제가 관여했던 시기에는 PC방처럼 기기 사용 시간당 요금을 개발사나 퍼블리셔가 받아가는 게 아니라 업소에 팔면 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질려서 재미없어하면 기계의 수입이 줄고, 업데이트나 신작 게임을 투입하게 됩니다. 겉보기엔 일반 게임 수명 주기와 별 차이없습니다. 초기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유명 IP에 거금을 쓰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좀 더 상세한 규칙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소개하겠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공개적인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용자가 넣은 총 게임 머니의 90%는 사용자에게 반드시 돌려드립니다.

(정확성보다는 설명 편의를 위해 90%로 하겠습니다)

 

이제 제일 중요한 PvP 규칙이 나옵니다. 

 

근데 그걸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준다고는 말 안 했습니다!

 

즉, 업소는 ‘너무나도 공정하게’ 사용자를 당첨시킵니다. 공정성만 따지자면 ‘사행성이 아니어서’ 확률 공개 대충 해도 되는 게임들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무려 일본 경찰(....)이 공정함을 보증해 줍니다.(경찰 산하 기관에서 심의하고 기기에 위변조 방지 씰을 붙입니다) 이제 빠찡꼬 게임은 다른 플레이어가 즐겁게 즐기면서 사용한 게임머니를 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회수할 수 있느냐를 겨루는 PvP가 됩니다. 

 

이 흥미로운 규칙에서 출발하면 나머지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설명됩니다. 빠찡꼬에서 이기고 싶다면 해당 게임이 언제, 어떻게 게임 머니를 모았다가 내보내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다면 이깁니다. 상대 평가입니다. 절대적으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똑같이 다 잘한다고 가정하면 아무도 이기지도 지지도 못합니다.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맞는가? 로또처럼 완전 무작위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이미 규제 내용에 꽤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일본 빠찡꼬 규제는 0.2% 같은 느슨한 기준은 이미 다뤘습니다. 2/1000인지 20/10,000인지, 20/10,000이면 그 중 20은 대략 몇 번에 나눠 줘야 하는지 몇 번까지 연속으로 합쳐서 줄 수 있는지 법으로 상세히 정해져 있습니다. 게임 오픈 전에 아이템 드랍 규칙 기획서가 반쯤 까발려져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지난 번에 나온 화면 상단의 그래프가 의미를 가집니다. 주식 차트 같은 빠찡꼬 게임 점수 추세 그래프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기계가 이미 다 나눠줘서 줄 것이 없는, ‘당분간은 모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계인지 아니면 들어간 건 많은데 나온 건 없는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계인지 일차적으로 대략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공정하게' 나눠주므로 언젠가는 들어간 것이 나옵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주식과 달리 하락장이 지속되면 반드시 반등한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뜻입니다. 하락장의 지속이 그래프로 확인된 기기라면 비교적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식보다 나은...가요? 

 

만약 한 기계에 무한히 앉아서 계속 게임을 돌릴 수 있다면 환원율이 위에서 말한 85~90%에 수렴합니다. 모두가 한자리에 앉아서 무한히 게임을 돌린다면 그야말로 확률 검사 심사장이 되겠죠(제가 그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기계에 무한히 앉아서 계속 게임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우선 체력적, 생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오토 금지이므로 당신은 자리를 비울 수 없고 게임을 안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자리를 대신 맡아주거나 대리 게임 금지라는 것은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체력, 생리적으로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문제의 셧다운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그래프 계산상 대박이 날 것 같은 기분이 아무리 들어도 셧다운되면 하다 말고 나가야 합니다. 개고생해서 레이드 보스까지 왔는데 전원 내려버리는 꼴입니다. 

 

이것만 보면 빠찡꼬 하는 분들 보살입니다. 확률이 아무리 100%가 넘는다고 해도 그 기계가 모은 게임 머니(구슬이나 메달)를 내보내려는 순간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서 받아가면 끝인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빠찡꼬 개발사들도 규정이 허용하는 한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만듭니다. 규정 내에서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들어 놓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확률이 오르거나 내리게 하고, 특정 화면 연출에서 암시를 준 후에는 어떤 상황에 들어가고, 거기서 특정 조작이나 상황이 겹치면 어떤 상태로 빠지고 등 공략 요소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걸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개발사의 노하우 중에 큰 부분에 해당합니다. 

 

규정 내에서 문제가 없지만 결과적으로 최대 당첨금이 커질 방법을 찾아내 그 패턴을 넣은 게임은 초대박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너무 재미있어지면 새로운 규제가 생깁니다(....) 빠찡꼬를 하는 사람 중에는 그냥 이 ‘패턴'을 알아내고 맞추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게 너무 무작위거나 반대로 알기 쉬우면 시시한, 못 만든 게임이 되는 거죠.

 

위 내용을 유명한 IP를 사용한 가상의 미드코어 대작, 빠찌슬롯 '게임 A'의 흐름을 통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빠찡꼬/슬롯에 무슨 캐주얼, 코어 찾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운 좋게 '캐주얼 빠찡꼬' <겨울 연가>기획서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빠찡꼬도 캐주얼, 코어 구분이 있더군요. 당시 <겨울 연가 빠찡꼬> 컨셉은 빠찡꼬를 깊이 있게 즐기지 않는 중, 장년 여성 사용자를 타깃으로 캐주얼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소셜 게임 붐을 보는 듯하네요. 역시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고 전문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략 요소가 별로 없고

그나마도 알기 쉬운 연출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복잡한 조작도 요구하지 않고, 

조금만 해도 중박이 계속 터져서 

일정 시간 하면 큰 손해도 이익도 나지 않는 게임

 

이면 캐주얼이고 그 반대면 코어 게임으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중박이 비교적 짧은 간격으로 계속 나오면, 모인 만큼 돌려줄 수 있는 게임 특성 상 크게 모이지 않으므로 크게 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PvP 관점에서는 심심해지므로 강렬한 승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미드 코어면 '적당히 공략도 들어있고 조작도 어느 정도 타이밍 맞춰서 해줘야 하고 원하는 상황이 안 나올 때는 계속 안 나와서 답답하게도 해주지만 그 구간이 너무 길지는 않은' 게임입니다. 

 

코어면 이게 더 심해지는 것이겠죠. 분석은 기본으로 깔고 가고 특정 타이밍이 왔을 때, 마치 보스를 그냥 잡는 것보다 특정 조건(시간 내, 특정 기술로)을 맞추면 보상이 더 큰 것처럼, 특정 상황이 왔을 때 조작을 잘하면 점수를 더 올릴 수 있는 게임을 말합니다. 승리의 쾌감은 아무래도 코어 쪽이 더 클 것 같습니다.

 

빠찌슬롯의 경우, 보너스 타임에 들어가면 게임 시작만 누르고 아무 조작 안 해도 자동으로 777이 맞게 되는데 문제는 타임이 턴이 아닌 실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줄어들고 보너스 타임은 끝나버립니다. 따라서 타임 내에 최대한 많이 맞추려면 최소 게임 시간에 맞게끔 누르면서 숫자가 맞아 떨어지게 누르는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또, 보너스 타임 중에 특정 조작으로 추가 보너스 타임을 얻어내거나 하는 방법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고급으로 가면 숨겨진 루트를 타기 위해 특정 상황에서 일부러 그림을 어긋나게 맞춰 보너스를 받지 않는 방법 등등 별 것이 다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계는 이미 누적 1,000점을 가지고 있는데 보너스 타임에 무조작으로 손놓고 있으면 최소 150점을 받고 끝나지만 타임 내에 최대한 조작을 잘 해내면 250점까지 얻어낼 수 있다 같은 식입니다. 이 무조작과 컨트롤의 점수 갭이 클수록 조작 실력이 요구되는 코어 게임이겠죠. 

 

여기에 강제로 특정 방식으로 플레이하면 기계가 소위 '천장'을 뚫어서 10,000점까지 모은 상태에서 1,500~2,500점을 내보내는 숨겨진 상태로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다시 이야기하지만, 숫자는 완전히 가상입니다). 보스를 몇 분 동안 공격하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숨겨진 패턴이 나오는 경우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겨울 연가>는 위와 같은 고급 공략, 테크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개발 방향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위와 같은 테크닉 때문에 캐주얼 사용자가 '항상 진다'라고 생각하여 빠찡꼬를 하지 않는 현상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초기 기획서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빠찡꼬도 코어, 캐주얼, 성별, 연령 등을 모두 고려해 시장 분석을 한 뒤 게임 만듭니다. 말하고 보니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빠찌슬롯 게임의 수명

 

이제 가상의 미드 코어 빠찌슬롯 '게임 A'의 PLC(Product Life Cycle, 제품 수명 주기)를 봅시다.

 

출시 전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엄청 홍보해야 합니다. 초기 유입이 중요합니다. 없는 게임 점수를 만들어서 줄 수는 없으므로, 처음에는 이 게임을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해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재미있게 즐기고 가 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에 한 번 이겨보려는 사람들도 모여들어서 분위기가 더 무르익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이 게임을 해보고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공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놓고 간 것을 '회수' 할 수 있습니다. 

 

말했다시피 공략은 상대 평가이므로 모두가 아는 순간 의미없는 정보가 됩니다. 모두가 국콤, 국트리 쓰는 것과 같습니다. 유명 IP를 써서 빠찡꼬 안 하던 사람들까지 오게 하면 대성공입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그냥 재미있게 즐기고' 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선순환의 첫 단계를 성공적으로 밟을 확률이 확 높아집니다. 

 

특정 분기까지 공략해내면 원작에 없는 연출, 노래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식으로 기대감을 막 높입니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를 보고 빠찡꼬 업장 업주들이 기기를 대량으로 주문합니다. 출시 날에 대작 신기종이 늘어선 가게로 손님들이 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출시 초반

똑같은 기계 수십 대가 한 줄로 나란히 놓입니다. 위와 같은 여러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다행히 열심히 합니다. 말 그대로 아닌 경우에는 금방 사라지기도 합니다. '즐기는' 사람들이 적어서 동접이 떨어지면 게임 점수가 모이는 게 느려집니다. 똑같이 1,000 게임을 채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풀가동 되는 인기 게임에 비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기려는' 사람들도 심심해집니다.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그냥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많이 꾸준히 붙잡아 놓는 것이 의외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놓고가야 누가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게임은 코어 사용자들도 붙지 않습니다.

 

똑같은 기계 수십 대가 가지는 의미는 대세라는 기분상의 의미도 있지만 '똑같은 알고리즘을 가진 기계들'이라는 것이 공략 측면에서는 큽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이 기계들은 모두 같은 알고리즘이라는 것은 내가 이 기계에서 파악한 공략 정보가 옆자리에서도 통한다는 뜻입니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동일 게임의 A,B,C 서버가 모두 같은 게임인 것과 같습니다. 만약에 B 서버만 확률이 다르거나 하면 난리 나겠죠. 개발사에서 인정한 모바일이나 콘솔용 '빠찡꼬 시뮬레이터'가 많이 팔리는 이유도 이제 알만합니다. 집에서 부담 없이 연습, 분석해서 업소에서 승부 보라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막 출시된 게임이면 아무도 정보가 없어서 사실상 모두가 운에 맡기되 정보 하나라도 얻어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합니다. 다른 사람 하는 것을 슬쩍 보면서 패턴 단서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 것 조작하랴, 남 상황 보랴, 가설 세우고 이 조작 저 조작 시도하면서 검증하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넋 놓고 있는 것 같지만 머리 속은 매우 바쁩니다. 누가 빠찡꼬 쉽다고 한거야! 

 

 

출시 중반

이 게임이 꽤나 흥행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정보력과 실력이 뛰어난 누군가는 이길 수 있습니다. 여전히 즐기고 있는 사람과 공략을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즐긴 후에 '자리를 비우면', 거기로 자리를 옮겨서 그 사람들이 놓치고 간 것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빠찡꼬에서는 '승리'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치킨 먹어야겠네요. 

 

출시 후반

빠찡꼬를 재미로 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 게임에서 ‘콘텐츠를 다 봤다’고 생각해 이탈합니다. 공략을 아직 몰랐던 사람들도 이제 공략집이니 공략 사이트니 하는 곳에서 경쟁적으로 공개한 연구 결과를 읽고 와서 잘 잃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이기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실력을 통해 적게 잃게 되면 적당히 만족합니다. 아케이드 원코인으로 오래 살아남기와 기본적으로 같은 재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남아 있는 모든 사용자가 만렙이 되어 버리니 아무도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상태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재미없어집니다. 만약에 이 게임이 진짜 히트했다면 이탈, 휴면 사용자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업데이트 버전'이 발표됩니다. 새로운 그래픽과 패턴을 가지고 말이죠. 

 

기존 사용자도 잡아야 하므로 아주 새로운 패턴보다는 기존 편 공략 일부와 새로운 공략이 뒤섞여서 나오게 됩니다. 전작이 히트했으니 가장 어려운 초기 고객 모으기(대세감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신작'이 발표, 투입됩니다. 

 

음, 요점은 빠찡꼬라고 해서 별 대단한 것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이 시장 분석하고 소위 제품 생명 주기 계산하고 업데이트, 신작 투입합니다. 업소는 PC방처럼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있고 개발사는 엄청난 규제 안에서 새로운 패턴을 가진 신작을 밀어내야 합니다. 

 

초기 붐이 중요하다 보니 IP 구매에 거금을 써야 합니다. 입소문으로 뜨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행이 아니라 시장 진입 제한이 적으므로 경쟁은 계속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여했던 SNK 처럼 한 번 해보겠다고 진입하기도 하고 얼마 뒤에 그만두기도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냥 사행이어서 아무나 사업할 수 없는 로또, 경마가 부러워집니다.

 

 

 

빠찡꼬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로’들의 세계

 

그러면 이제 그냥 한 두 번 이기는 수준이 아닌 이걸로만 먹고 살 정도로 꾸준히 이기는 소위 '빠찌프로' 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상당한 수준의 규제 위반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만, 어떠한 종류의 게임과 매우 비슷한 패턴이어서 재미로 소개합니다. 혹시라도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단 이미 승리를 위한 방법은 위에 다 나와 있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공략 정보를 파악하여 잘 될 만한 자리를 차지하자!'

 

일종의 의자 빼앗기 게임을 엄청나게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말 그대로 배틀 그라운드가 됩니다. 

 

일단 솔로 플레이의 경우를 먼저 보겠습니다. 어느 정도 공략 정보를 안다면 우선 점포 안에서 적당히 그래프를 확인하거나 상황을 둘러보면서 괜찮을 것 같은 자리에 낙하산 펴고 내려갑니다. 빠찌슬롯의 경우, 타이밍이 아닐 때는 아무리 매의 눈으로 맞춰도 릴이 어긋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맞추려고 노력하면 맞는 타이밍이 왔을 때, 일반 점수를 챙길 수 있습니다. 일반 점수 챙길 타이밍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면 더 캐주얼 한 게임이고 잘 안 보여줄수록 코어 게임입니다. 

 

이렇게 짤 파밍을 하며 충전한 게임 머니를 최대한 적게 소모하면서 타이밍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플레이어들의 상태를 살핍니다. 지금 앉은 자리는 대박은 없지만, 짤짤이 아이템은 계속 나오는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임 머니가 매우 느리게 소모되므로 버티기 용으로는 좋은 자리입니다. 

 

다음 자기장 빨이 어디로 올지는 모릅니다만, 다른 자리의 그래프나 다른 사람 표정을 보면 슬슬 감은 옵니다. 내가 돌리는 게임은 1개지만 2~30명의 상황을 시각, 감으로 분석하면 다음 자기장 후보군은 좁혀집니다. 자리를 잘 잡은 것이면 중박 보급 상자 하나 떨어져서 꽤 게임 머니를 재충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최소 금액 소모로 버티기를 하다가 누군가 여차한 사정으로 자리를 비웁니다. 

 

그러면 여기서 고민이 생깁니다. 저쪽으로 옮길 것인지, 그냥 여기서 계속 버틸 것인지. 며칠 지켜봤는데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다 안 좋은 표정으로 계속 있다가 큰 당첨 연출 한 번 못 보고 자리를 떴다면고민이 커집니다. 이 하락세가 오늘도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오늘은 대박 한 번 내줄 것인지. 크게 마음먹고 자리를 옮깁니다. 

 

 

돌아보니 나 말고도 앉으려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자 빼앗기 성공. 예측이 맞아 레어 상황이 펼쳐지면서 보너스가 연속으로 나옵니다. 이 타이밍에 조작을 잘해서 최대한 점수를 내야 합니다. 이러면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가 됩니다. 운, 실력, 체력 모두가 받쳐줘야 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네요. 빠찡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몇 번이나 졌나 보다는 ‘오늘 치킨 먹었나'를 따집니다. 어차피 즐거운 것이 중요하니까요. 전체 손익은 충분히 즐겼다면 나머지는 게임비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악착같이 매번 이기겠다고 한다면 솔로 플레이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가 솔로 플레이인 줄 알 때, 파티원 짜서 티밍을 해야 승자가 될 확률이 올라갑니다. 

 

일단 빠찡꼬/슬롯에서 티밍은 규제 대상인 것으로 압니다만(정말 규제 많네요...) 아무튼, 솔로 플레이어는 정보력에 한계가 있고 동일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지라도 물리적으로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스타벅스처럼 가방 올려놓으면 되는 것 아냐?’ 그런 것 인정 안 됩니다. (화장실 5~10분 정도는 허용했다, 안 했다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되는 기계가 확실할 경우, 파티원 중 한 명이 교대로 그 사람이 자리 뜨기만 기다리며 교대로 화장실을 갔다 오며 협공을 하면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프 보니 내놓을 타이밍이 된 ‘6’ 걸어 놓은 자리를 누가 '즐기다' 갔다고 합시다. 이러면 농담 아니고 다른 길드의 파티원과 사냥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그냥 즐기는 손님이 많은 '물 좋은' 업소라면 업소 단위의 사냥터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가게는 우리 길드 사냥터인데 어디서 다른 길드가 감히...

 

보통 이 정도 레벨로 진지하게 한다면 '리더' 한 명과 '팀원' 여럿(4~6명 정도라네요)으로 나뉘어서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들을 구분하는 속어는 까먹었습니다만 중요하지 않으니 생략합시다. 리더는 빠찡꼬/슬롯을 잘 알고 큰 그림(일대의 동일 게임의 상태 전체)을 분석해서 작전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고 팀원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서 온종일 리더가 시키는 대로 빠찡꼬/슬롯 업소를 오가며 정보 수집 일을 하거나 지정된 기계에 앉아서 타이밍 왔을 때 최대 점수를 뽑을 수 있는 피지컬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 길드는 특정 업소 몇 개를 영향권에 두고 팀원들이 사냥터를 지키며 그래프나 여러 정보(오늘은 A 업소가 '6' 걸었다, 이 상황에서 이 조작을 해봤는데 통했다 안 통했다 등)를 리더에게 전달합니다. 리더가 작전을 짜줘서 특정 업소, 자리에 가서 열심히 하고 하루 일을 마치면 모여서 공략 정보와 보상을 나누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불성실하면 길드에서 방출되겠네요. 공략 정보를 경쟁 길드에 알리면 안되니 입도 무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셧다운이 등장합니다. 셧다운 때문에 어쨌든 서버(업소)는 닫힙니다. 하지만 그 상태는 그대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업소가 임의로 게임을 돌려서 충전, 회수한다면 우회적인 확률 조작이겠죠. 

 

이 상황에 아침에 줄을 서면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전날 셧다운 전에 그래프 상태를 기억한다면 어느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가급적 여러 기기의 상태를 알아야 하므로 역시 티밍이 유리합니다. 모두 셧다운으로 서버에서 쫓겨났으므로 모든 자리는 비어있습니다. 옆자리에서 매의 눈으로 좋은 자리 빌 때까지 오줌 참으며 지켜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되는 자리를 아침에 열리자마자 가서 앉으면 됩니다. 

 

두 번째로 아침에는 당연히 손님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라도 손님이 있어 보이게 하기 위한 업소의 필요에 개발사가 맞춰줬는지 오전 시간에는 '확률'이 상승합니다.(지금은 특정 시간대 확률 상승은 금지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뭐만 하면 다 금지. 물론 ‘게임'은 해도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 저녁 때 직장인이나 그냥 잠깐 들러 한두 시간 즐기고 셧다운 때문에 나가버린 사람들의 세이브 파일을 아침에 이어받아 막타 칠 수 있게 됩니다. 이삭줍기도 쏠쏠히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줄 설만 하죠? 물론 빠찡꼬로만 먹고 살겠다는 사람들 기준입니다. 셧다운이 역설적으로 캐주얼 게이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물론 24시간 영업이라고 해도 솔로잉 즐겜 플레이어가 어부지리 치킨을 몇 번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해서 이기긴 매우 어려울 겁니다. 

 

 

 

남두신권의 계승자 라이거가 숙적 라왕과 3연전의 마지막에 패한 후, 옛 연인을 추억하는 신이 보이면 최종 배틀에 돌입하고 여기서 만약 이기면 규정 안에서 줄 수 있는 최대 점수를 온종일 주는 상태에 돌입하는 인기 빠찌슬롯 게임이 있다고 합시다. 이 정도 초 레어 상황은 기기를 한 달 내내 돌려야 한 번 정도 볼 수 있다고 합시다. 이 정도 상황 연출하면 업소에서 깃발 꽂아주고 축하해주고 갤러리들이 다들 쳐다보고 난리 날 겁니다. 

 

누군가가 진지하게 팀을 짜서 한 달 내내 일대의 기기 상태를 모니터링한다고 합시다. 어이없게 초심자가 와서 해당 상황을 연출해서 고득점을 가져가 버리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운빨 0킬 치킨도 있어야 게임이죠. 이렇게 예측 못 하게 초 레어 상황이 나와서 놓친 기기는 제외합니다. 점점 제외하다 보면 일대에서 해당 연출을 한 달이 다 되도록 한 번도 안 보여준 기기를 손에 꼽을 수 있는 상황이 옵니다. 

 

이러면 여기부터는 더 이상 예측의 영역이 아닙니다. 운빨 탓할 수 없습니다. 유명 길드 사이에서는 이미 다 소문났을 것이고 이 초 레어템 확정인 사냥터를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 작전이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정도 승부는 돈을 떠나 길드의 명예가 걸린 일이겠네요. 한 달 내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정보력과 실력이 있다면 '공정함'이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루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 분기 단위로 손익을 계산하며 움직이는 조직적인 그림이 나와야 합니다. 이걸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전국, 세계 단위로 길드전을 할 수 있으면... 

 

 

빠찡꼬의 엔드콘텐츠,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팀플레이

 

종합하면 빠찡꼬의 엔드 콘텐츠는 ‘여럿이서 길드를 짜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유리한, 팀플레이가 요구되는 PvP’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팀 플레이 효과가 별로 없고 그냥 누가 해도 비슷한 운빨 게임으로 만드는 규제를 계속 넣게 되면 ‘재미 없어진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오토'가 된다면 훨씬 재미있을 것 입니다. 위에 잠깐 언급한 대로 저는 기기 테스트를 위해 여러 대를 오토로 돌려봤는데 꽤 신났습니다. 여러 대를 돌리다 보니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충전해주고 결과 확인하고 등등. 

 

정리해보면 사실 이 빠찡꼬 생태계의 흐름, 구조의 핵심은 사행성에 관심이 별로 없는, '즐겁게 빠찡꼬를 즐기는 사람들'을 얼마나 모으고 유지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즐기는 포인트도 여러가지로 구분됩니다. 에반게리온이 내 눈 앞에서 변신하는 장면이나 욘사마의 오리지널 키스신을 볼 수 있다면 몇 십만원 정도는 기쁘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빠찡꼬 자체를 좋아해서 패턴을 예측하고 공략하는 즐거움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해당 게임을 ‘재미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해 주는 기간이 길 것인가가 제품 수명 주기가 됩니다. 

 

콘텐츠 다 즐겼다고 생각하거나, 공략 다해서 이 게임 만렙 찍었다고 생각하거나, 특정 상위 고인물 길드가 아니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으로 옮겨갑니다. 동접이 떨어지면 게임 수가 줄어들고, 일정 게임 수를 채워야 점수를 내주는 공정함 때문에 레어 템 드랍 주기가 길어지니 템포가 느려져 더 재미없어지는 내리막이 가속됩니다. 여느 게임과 구조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빠찡꼬는 사행이 아니라서 독점적으로 사업할 수가 없습니다. 경쟁은 심하고 개발사는 높은 기기 값이 아깝지 않을 수준의 게임 이용률을 업소에게 계속 보여줘서 신뢰를 얻어야 신작 게임의 초도 주문량이 확보됩니다. 기존 히트작이 있는 대형 게임사가 점점 유리해집니다. 

 

업소도 골목마다 있는 가게들 사이에서 박리다매로 '6'을 걸어놓고 손님을 모으느라 힘듭니다. 전국 단위로 점포를 관리하며 노하우와 관리 툴을 갖춘 프렌차이즈들이 점점 유리해지고, 개인 점포는 살아남기 힘들게 됩니다. 재미없는 빠찡꼬를 사행성으로 무장시켜 사람들을 중독시킨 다음 날로 먹는다는 생각만으로는 이 구조가 안 나올 것 같습니다. 아마 사행으로 확정했다면 독점 사업자가 똑같은 게임을 굳이 바꿀 필요 없이 계속 돌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 좋은 걸까요? 어려운 문제네요.

 

그리고, 빠찡꼬/슬롯은 의외로 운빨 망겜이 아니라 철저한 공략을 통한 예측, 식사 및 생리 현상도 참을 수 있는 체력, 타이밍을 강제로 유도하거나 타이밍이 왔을 때 제대로 버튼을 눌러서 최대 점수를 얻어야 하는 조작 실력이 모두 요구되는 PvP 게임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냥터를 두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수면 아래의 길드전도 있습니다. 이게 성립하려면 확률의 ‘공정함’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장돼야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큰 그림을 이해하면 수 십 대의 기계가 따로 돌아가고 있지만 운과 실력이 섞인 멀티 플레이 게임으로 다르게 보입니다. 마치 오토 돌리는 걸 무슨 재미로 하냐고 옆에서 이야기해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아닌 것처럼 말이죠. 

 

뭐 이렇다 저렇다 해도 PvP나 교환 가치를 통해

소위 ‘환금성'이 애매하게라도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아닌가?’

 

다음 편에서는 PvP가 아닌 듯한, 없는 듯한 게임들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했지만 아무튼 규제된 ‘컴플리트 가챠(컴프 가챠)’ 건을 다루겠습니다. ‘환금성'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도 규제되는 세계를 한 번 보면서 ‘잃어버린 사행성' 시리즈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노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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