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기자수첩] 우리에게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필요할까?

마루노래 (이준호) | 2020-02-12 17: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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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영화가 될 수 없다. 아니, 될 필요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게임은 게임, 영화는 영화다. 그저 그뿐이다. 하지만 지난 2월 10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뉴스피드를 뒤덮는 걸 보면서, 고티나 게임 어워드 같은 말들을 은연중에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았으리라.

 

그게 뭔지 모르는 독자들도 있을 테니 잠깐 짚고 넘어가자. 게임계에도 아카데미상이나 황금종려상 같은 시상식이 당연히 있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어쨌든 가장 대표적인 건 이른바 '최다 고티'라 부르는 건인데, 실은 누가 정해놓고 주는 상이 아니다. 매해 연말 연초 수많은 매체와 평론가들이 'GOTY(Game of the Year)', 즉 '올해의 게임'으로 뽑은 것들을 상당수 모아서, 어떤 게임이 가장 많이 선정됐나 세주는 어느 블로그에서 시작된 일종의 미디어 관습이다.

 

물론 이 외에도 시상식의 형태를 한 여러 행사가 있다.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에서 주는 BAFTA 게임 어워드, 이름부터 게임 느낌 물씬 나는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주는 GDC 어워드, 저널리스트 제프 케일리가 기획하고 주최하는 더 게임 어워드, 인터렉티브 예술 과학 아카데미(AIAS)가 주는 다이스(D.I.C.E.) 어워드 등 다양한 시상식이 있다.

 

 

그런데 이 시상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영화 시상식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특히 이 다이스 어워드는 무슨 무슨 아카데미라는 이름서부터 알 수 있듯 게임계의 아카데미상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생겨 올해가 23회째,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대중적 인지도나 권위는 어떤가. 당장 내일 2월 13일에 시상식이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황금종려상 직전 같이 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기사나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단 다이스 어워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시상식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가장 인지도 높은 '최다 고티' 집계 결과가 나올 때도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영화와 게임이 서로 극명하게 다른 매체인 것은 사실이고, 영화와 게임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나 시선의 차이는 또 다른 문제다. 최첨단의 문화 예술 대우를 받는 영화에 비교하면, 게임은 툭하면 선정성, 폭력성, 심지어 도박성 논란에 휘말린다. 가볍고 단순한 오락거리, 저급한 소비문화로 취급받고 또 주류 미디어에 의해 그렇게 소비된다. 영화가 낫냐, 게임이 낫냐는 문화 위계의 줄 세우기를 떠나, 아주 일차원적으로 '취미로서의 게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여전히 편견에 차 있기도 하다는 의미다. 이것(특히 선정성과 도박성)이 완전히 근거 없는 비난인가 하면, 실은 그렇지는 않은 것이 또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의 문화적 지위 문제와는 별개로, 시상식을 바라보는 게이머 당사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이런 시상식들의 지위, 조금 거창하게 말해 비평적 권위와 타당성이 약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게임은 영화처럼 소비되지 않는다.

 


"게임계에도 그러한 권위를 가진 아카데미가 필요하다"는, 혹은 "왜 우리에겐 기생충 같은 게임이 없을까"하는, 판에 박히고 무의미한 넋두리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플레이어로서, 어떤 좋은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을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제작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서로 다른 창작자들이 존경과 영감을 주고받는, 그 화려한 스펙터클이 주는 만족감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한다면 그 역시 거짓말일 터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경의와 존중의 관습이다. 제작자들은 플레이어들을,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제작자들을 존중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례를 우리는 요즘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의 속성은 어찌 보면 현실의 극히 일부, 파편에 불과한 사건 - 그것들이 때로 '징후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 들의 부정적인 내러티브가 창작자들에게 더 용이하게 전파되도록 한다. 무엇보다 그런 부정 피드백에 의존해 영향력과 자본을 확보하려는 개인과 단체들이 이런저런 콘텐츠, 각종 플랫폼을 활보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내친김에 대중성 혹은 접근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데이트하러 영화는 보러 가고, 심지어 <롤>하러 PC방가서 봇듀오까지는 해도, "우리 2014 다이스 어워드에 빛나는 AAA 어드벤처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하러 플스방 갈래?"라고 말하는 이상한 사람은 없고, 듣는 사람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한 장소에서 2시간, 길게는 3시간을 앉아 있기만 하면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공통 경험이 발생한다. 하지만 짧아도 수 시간, 길면 수십 시간을 플레이해야 시작과 끝을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매체는 서로 다른 수용자 사이의 동질적 경험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고, 게이머라는 모호한 정체성의 배타적 성격을 강화한다. "이 게임 엔딩도 못 봤으면서 무슨 게이머야?" 부분 유료라는 판매방식은 이 괴리를 강화한다. 10만 원을 쓴 사람과 50만 원을 쓴 사람의 게임 경험이 달라지는 순간, 상업적 성과나 지향을 언급 혹은 '비평'하지 않고 그 게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최고의 마케팅상', '최고의 리텐션상' 같은 상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비디오게임'이라는 범주 구분도 영화라는 말만큼 단단하지 못하다. 영화와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장르가 다른 게임과 게임 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약간 과장해 거의 쌍둥이 수준이다. 여러 게임 어워드들이 장르 기준의 수상(최고의 어드벤처상, 최고의 RPG상)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그들이 안일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를 중재하며 각각의 게임들을 비교적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기준선이, 그나마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게임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규정하려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언제나 게임의 '꼬리표'를 달고 판매되는 상품으로서의 무언가를 게임이 아닌 것으로 정의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고도로 기업화, 자본화된 게임이라는 매체의 속성과 적잖은 불협화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나저러나 사면초가다.

 

그래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게임계에도 기생충/아카데미상이 필요한가?" 기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영화/문학 담론에 식민화된 태도의 발로일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상징적 권위를 가진 물리적 공간,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개인들을 창작자 혹은 게이머(마치 시네필처럼)라는 정체성으로 묶어주는, 상호존중과 연대의 공간, 그리고 비록 누군가는 '위선적'이라 비판할지언정, 그러한 공간들이 표면적으로 쏘아내는 가치와 신호들. 그런 장면들은 실로 부럽고, 지금 "대한민국 게임 업계"에 가장 절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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