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접칼럼] 넥슨 지분 논란과 세 번의 긴박한 6월

시몬 (임상훈) | 2016-06-09 11:48:33

1. 2004년 6월, 개발자 엑소더스


정상원이 넥슨을 퇴사했다. 초대형 사건이었다.


정상원은 넥슨 개발팀의 ‘큰 형님’이었다. 개발팀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구심점이었다. 회사에 불만이 있거나 경력을 고민하는 직원들은 그를 찾아왔다. 넥슨에서 신망이 가장 두터운 인물이었다.


4개월 전까지 그는 넥슨 대표였다. 창업자 김정주 부부에 이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퇴사를 했다. 의견 충돌 때문이었다.


넥슨은 2000년 초부터 상장 이슈로 시끄러웠다. 게임 회사들이 한창 상장하던 때였다. 엔씨소프트(2000년 7월)를 시작으로 액토즈소프트(2001년 8월), 한빛소프트(2002년 1월), NHN(2002년 10월), 웹젠(2003년 5월) 등이 줄줄이 상장했다.


상장한 회사 직원 중 돈방석에 앉은 이가 많았다. 넥슨 내부에서는 박탈감이 커졌다. 만나면 주식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당시 대표였던 정상원은 창업 상담을 하는 개발자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떠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그림=김재훈)

김정주는 요지부동이었다. ‘주주 이익을 명분으로 한 외풍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매출 3,000억 원은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2003년 말 정상원은 대표 자리를 걸고 김정주에게 상장에 대한 약속을 해달라고 했다. 약속은 없었다. 넥슨은 2004년 2월 서원일을 후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정상원은 떠났다.

정상원의 퇴사로 많은 개발자들이 흔들렸다. 거기에 태풍처럼 불어닥친 사건이 있었다. 2004년 9월 넥슨의 위젯 인수였다. 주식 교환 대신 현금 400억 원을 썼다. 김정주는 상장 대신 <메이플스토리>를 택했다.


이후 넥슨에서는 개발자 엑소더스가 가속화됐다. <택티컬 커맨더스>와 <비엔비> 등에 참여했던 박종흠, 방경민 등을 비롯해 60명 이상의 핵심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넥슨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퇴직금 규모를 보면 당시 이탈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2002년 약 9,300만원이었던 퇴직금이 2003년 갑자기 약 1억 9,500만원으로 2배 이상 커졌다. 2004년에는 2억 원을 넘겼다. 퇴사가 잠잠해진 2005년 이후 다시 8,700만~1억 원 사이를 오가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된 2009년 약 1억 6,300만원으로 다시 뛰어올랐다.


2003년과 2004년의 개발자 엑소더스는 구조조정 때보다 더 많은 퇴직금 지급이 필요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IT 회사의 핵심은 인력이다. 핵심 개발자들의 이탈은 넥슨의 앞날을 흐리게 했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를 통해 수익은 확보했지만, 미래를 이끌 핵심 인력을 잃어버렸다. 개발력의 대미지는 심각했다. 회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홍콩텔레콤 한국지사 부장으로 있다 1997년 7월 넥슨에 합류한 이 모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같은 해 8월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넥슨 USA의 초대 지사장이었다. <택티컬커맨더스> 현지화를 위해 정상원, 박종흠 등과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나갔다. 게다가 자신이 운영한 미국 지사의 성과도 좋지 않았다. 넥슨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넥슨 주식을 팔기로 마음 먹었다.

 


 


2. 2005년 6월, 4일 안에 샀어야 했던 넥슨 주식


그가 넥슨 지분 매각에 나섰다. 초긴급 상황이었다.


과거 엑소더스와 함께 넥슨을 나간 핵심 개발자들은 가지고 있던 주식은 넥슨 내부인에게 팔렸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 씨는 달랐다. 이미 투자회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왔다. 1주 당 4만 2,500원으로 소유 주식을 팔 예정이었다. 김정주 등에게 먼저 살 기회를 줬지만, 4일 내에 사지 못하면 투자회사에 넘겨줄 판이었다.


넥슨은 당황스러웠다. 주가도 문제였고, 시간도 문제였다.


넥슨은 2005년 <삼국지 무한대전>으로 잘 알려진 엔텔리전트를 주식 교환 방식으로 100% 자회사로 인수했다. 엔텔리전트 주주들에게 넥슨 신주 13만 3,318주가 주어졌다. 1주에 매겨진 가치는 3만 9,273원이었다. 외부 평가기관이 매긴 가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도 안돼 8% 이상 올라간 가격으로 주식을 사야 했다. 2004년 나간 직원들과 형평성도 안 맞았다. 당시 퇴사자들은 1주당 1만~3만원 대로 주식을 팔았었다.  


하지만 다툴 상황은 아니었다. 투자기관에 지분을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넥슨이 사는 것도 불가능했다. 당시 상법상 비상장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일부 예외를 빼곤 불가능했다. 2012년 이후에나 관련법은 개정됐다.


김정주는 당시 박성준(컨설턴트), 진경준(검사), 김상헌(LG법무팀 부사장)과 자주 만나고 있었다. 박성준과 진경준은 서울대 86학번 친구였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다니던 박성준은 부분유료화 모델을 공부하러 넥슨을 자주 찾아오곤 했다. 김정주와 고등학교를 함께 마포 이웃 동네에서 나온 진경준도 IT에 관심이 많았다.



네 학번 빠른 김상헌은 박성준, 진경준과 서울대, 하버드대 동문이었다. 김정주는 내심 김상헌을 차기 넥슨 대표로 점찍고 영입하고 싶어했다.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김정주를 통해 김상헌을 만난 이해진은 그를 네이버로 영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헌은 네이버 대표가 됐다.


이 씨가 주식 매각 의사와 조건을 알려온 후 넥슨은 경황이 없었다. 내부 직원들에게 공유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수십 억 원에 달하는 큰 금액의 현금을 동원할 직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기여도를 따져 합리적으로 지분 매입을 처리할 방법을 짜기도 어려웠다.


언론에 따르면 박성준을 통해 두 사람은 이 씨가 내놓은 이 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김정주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격의 없던 두 친구와 차기 대표로 염두에 둔 사람이 넥슨 주식을 사는 것은 괜찮은 그림이었을 것이다.


세 사람은 각자 4억 2,500만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3~4일 내에 당장 그 금액을 현금으로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로 입출금 가능한 당좌계좌에 그런 규모의 돈을 넣어놓을 이는 드물다. 시간이 없었다. 결국 넥슨은 이들에게 4억 2,500만원씩 빌려줬다. 투자회사에 넘어갈 뻔한 주식은 창업주의 친구들이 나눠서 가져갔다. 넥슨이 이들에게 빌려준 돈은 4개월 안에 회수됐다. (업데이트: 진경준만 갚지 않았다.)

 



 
 

3. 2016년 6월, 금수저 프레임과 잘못된 근거의 오보들


이 같은 주식 거래 사실이 외부에 공개됐다.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진경준은 2015년 검사장이 됐다.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고위공직자의 재산 내역을 매년 밝히게 돼있다. 금융실명제와 함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2016년 3월 법조계 고위 공직자 214명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진경준의 재산도 처음 알려졌다. 156억 5,609만 원. 

 

출처=뉴스타파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jaesan.newstapa.org 

 

법조계 재산 1위였다. 재산 형성 과정에 관심이 모였다. 곧 10년 전 넥슨의 비상장주식을 4억 2,500만원에 샀고, 검사장 임명 후 약 126억 원에 매각한 사실이 알려졌다.


금수저 논란으로 사회가 시끄럽던 때였다. 언론이 달려들었다. 정치권과 법조계까지 논란이 일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조사에 들어갔다.


진 검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부적절한 행위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금수저 프레임’과 '헐값 프레임'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서울대와 하버드대를 나온 친구들끼리 10만원 주고도 못 샀다는 주식을 4만 2,500원에 사서 120억 원의 수익을 낸 이야기는 개미들을 열 받게 했고, 흙수저를 화나게 했다.


게다가 그 주식을 산 현금을 넥슨이 빌려줬다는 내용까지 알려졌다. 짜고 치는 고스톱 냄새가 풍겼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재벌과 검찰의 은밀한 짝짜꿍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까지 얹혀진 것이다. 그에 부담을 느낀 검찰은 공소시효가 끝났어도 의혹해소 차원에서 본격 조사를 들어갈 것을 밝혔다.

 



헐값 프레임과 이후 사태의 전개에는 언론의 역할이 가장 컸다.


대부분의 기성 언론은 2004년 넥슨 핵심 프로그래머들의 엑소더스 사태와 그 영향을 모른다. 당연히 미국 지사장이 자신이 가진 주식을 처분한 근본적인 이유도 모른다. 2004~2005년 넥슨 개발자들이 퇴사하면서 매각했던 주식 거래 가격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미 공개된 2005년 5월 엔텔리전트 인수 시 넥슨 주식 가격(3만 9,273원)은 무시된다.


대신 ‘카더라’와 게시판 풍문에 가까운 10만~15만원을 기정사실화한다. 대부분의 기사가 ‘헐값에 산 비상장주식=뇌물’이라는 근거를 기반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근거가 잘못됐다면 그에 기반한 모든 기사는 오보가 된다. 아직 검사가 편의를 봐줬다는 어떠한 사례도 발견된 바 없다.


일부 매체는 넥슨이 직접 주식을 사지 않은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2012년 이전에 비상장회사가 자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인 불법이었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셈이다.


현직 CEO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가졌다는 것이 기사가 되기도 한다. 11년 전 박지원 대표가 ‘쪼랩’이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마치며

 

넥슨이 분명히 잘못한 점은 있다.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고, 통장에 찍힌다고 해도 회사 돈을 이자와 차용증도 없이 빌려준 점은 잘못이다.


금수저 프레임도 사실에 준한다. 김정주와 친분이 있었던, 소위 잘 나가던 서울대-하버드대 출신 친구와 형은 지분을 얻었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전현직 넥슨 멤버들 중에는 속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촉박했던 상황이었다지만, 내부인을 배려한 다른 방안을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봤더라면 이런 논란은 없었다.

 

비판받을 짓을 했다면 비판받는 게 맞다. 

 

맥락을 모르고, 사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의혹을 만드는 것 역시 비판받을 짓이다.

 

[업데이트]

 

본 칼럼이 나간 이후 진경준 검사장이 넥슨에게 진 채무를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3명 중 유일하게 지분을 공짜로 받은 것이 검찰에 의해 확인됐습니다. 또한 넥슨에 요구해 자동차를 지원받은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이 칼럼은 진 검사장이 채무를 갚았다는 것을 전제로, 당시 넥슨 지분 가치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했습니다. 진 검사장의 명백한 잘못이 밝혀진 상황에서 저 또한 잘못된 전제로 글을 쓴 셈이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사태를 제대로 읽기 위해 지분, 인센티브와 관련된 넥슨의 보상체계에 대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난 이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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