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허접칼럼] 텐센트 게임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7

시몬 (임상훈) | 2016-07-06 10:47:47

텐센트가 슈퍼셀을 인수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한국 게임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 텐센트는 한국 게임과 회사를 벤치마크하며 커왔습니다. 많은 질문을 들었고, 답변을 해줬습니다. 역전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묻고, 벤치마크해야 할 때입니다. 10여 년 봐왔던 텐센트 이야기를 씁니다. 허접한 글이지만, 질문하고 벤치마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1. 생존: 중국의 수치, 텐센트의 실패

2. 수성: 중국 게임 시장의 정리와 텐센트의 1위 등극

 

# 상하이 파와 베이징 파, 메이저 중심의 중국 게임 시장 재편


정부, 즉 국가신문출판총서의 적극적인 개입 이후 판이 정리됐다.


2000년대 중후반,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정책 등을 통해 중국 게임 업계는 메이저 중심 체제가 구축됐다. 업체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고, 정부는 관리하기 쉬웠다.

 

중국 게임회사들은 성장의 토대가 마련됐다.

 

비슷한 시기(2005~2011년)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셧다운제 법안이 거의 매년 발의됐다. 베타테스트에 청소년 참여를 금지하는 황당한 법안도 제출됐다. 급기야 게임회사 매출의 1%까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부과할 수 있는 무서운 법안도 발의됐다.

 

[게임과 권력] ① 게임규제 법안의 역사 (과거형) 

 

그 사이 정부의 보호주의적 정책지원을 받은 중국 메이저 업체는 성큼 커갔다. 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샨다, 더나인, 나인유 등은 한국 게임 퍼블리싱을 통해 메이저가 됐다. 샨다는 <미르의 전설2>를 통해 중국 온라인게임 시대를 열었다. 나인유는 <오디션> 통해 여성 유저를 꽉 잡았다. 더나인은 웹젠과 합작법인을 만들어 <뮤 온라인>을 서비스했다. 세 업체 모두 ‘글로벌 도시’ 상하이에 있었다.

 

이 업체들은 모두 한국 개발사들과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개발력 약한 회사의 한계였다.

 

 


넷이즈, 창유, 퍼펙트월드 등은 직접 개발한 MMORPG를 통해 메이저가 됐다. 넷이즈는 <대화서유2>와 <몽환서유>로 중국 최고의 개발사로 인정받았다. 창유와 퍼펙트월드 역시 <천룡팔부>와 <완미시공>으로 중국 유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개발사들은 베이징에 본사가 있었다.

 

이 회사들은 상하이에 있는 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떴다. 하지만, 상하이 회사들보다 더 견고하게 성장했다. 모바일 환경 변화에도 적응할 힘이 있었다. 자체 IP(지적 재산)과 개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한국 게임의 성과가 궁금했던 나는 2000년대 중후반 상하이를 쏘돌아 다녔다. 한국 게임 소싱에 관심 많은 업체들은 어렵지 않게 만났다. 그들은 한국에 자신을 알리고 싶어했다. 한국어를 하는 담당자도 있었다. 상하이는 익숙한 도시가 됐다.

 

베이징은 달랐다. 게임 전시회 등에서 만난 그 지역 사람들과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양쪽 다 자부심이 강했다. 근시안적이었던 나는 그들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 한국 게임의 힘, 텐센트의 1위 등극


선전에 본사가 있던 텐센트는 두 도시의 회사들과 달랐다. 자체 개발한 캐주얼 게임의 성공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여전히 한국 게임을 원했다. 2006년 한국계 직원 한 명을 서울로 보냈다. 헤이룽장성 출신의 켈리스 박이었다. 그녀는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얻었다. 8 월 텐센트 코리아 연락사무소가 세워졌다.


성과가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떨어졌다. 샨다나 더나인 등에 밀렸다. 웬만한 한국 게임회사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사석에서 만났던 텐센트 코리아 사무소장은 설움을 푸념하곤 했다. 몇 년 뒤 많은 한국 업체들이 크게 후회했다.

 

 

2007년 8월에는 마틴 라우(Martin Lau)까지 한국에 찾아왔다. (슈퍼셀 인수 때 일카 파나넨과 사진을 찍은 그 사람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의 마틴 라우는 2005년 텐센트에 합류한 뒤, 이듬해 총재(President)가 됐다. 회사 총책임자가 한국에 와서 "투자금액에 상한선이 없다"고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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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뛰어다녔던 텐센트 코리아는 그해 4개의 게임을 소싱에 성공했다. <아바>, <나나이모>, <크로스파이어>, 그리고 <던전앤파이터>였다.


2008년 6월과 7월, 그 중 두 개가 중국에서 연달아 론칭했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였다. 한꺼번에 두 게임을 내보내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였다. 미친 짓이었다. 미친 결과가 나왔다.


중국과 한국의 게임 역사가 바뀌었다. 두 게임은 번갈아가며 동시접속자수 신기록과 매출 신기록을 갱신해나갔다. 이전까지 중국 온라인게임 동시접속자 기록은 <몽환서유>의 220만 또는 260만 명이었다. <던전앤파이터>는 400만 명을 돌파했고, <크로스파이어>는 450만 명을 넘어섰다.


10위 언저리의 게임 운영사 텐센트는 단숨에 ‘넘사벽’ 1위가 됐다. 텐센트 코리아 연락사무소는 2011년 법인을 설립하고 지사로 승격했다. 한국 법인의 대표 켈리스 박은 텐센트 그룹의 비즈니스 총괄까지 맡았다.


한국 게임계의 지형도 바뀌었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스마일게이트 권혁빈은 중국 올인으로 인생역전 대박을 터뜨렸다. 상장 대신 네오플 M&A를 선택한 넥슨 김정주의 베팅 역시 역사적인 잭팟으로 판명났다. <크로스파이어>보다 먼저 텐센트의 구애를 받았지만, 매몰차게 걷어찼던 업체는 훗날 인수합병당했다.



# MMORPG에 대한 로망, 텐센트의 갈망


MMORPG는 많은 게임회사의 로망이었다.


넥슨은 2000년대 중반 <제라>를 만들었다. 100억 원이 넘는 넥슨 사상 최대 프로젝트였다. 하드코어 MMORPG 시장을 잡고 싶었다. <카트라이더>의 장악한 캐주얼 시장, <메이플스토리>로 잡은 소프트코어 RPG 시장에 만족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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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은 2007년 이후 의욕적으로 MMORPG를 라인업을 확보했다. 해외에서 <반지의 제왕 온라인>, <몬스터헌터 프론티어 온라인>, <워해머 온라인> 등을 소싱했다. 국내에서는 <KUF2>, <테라>, <트리오브세이버>, <아스타>, <이오스>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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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 모두 <리니지>가 부러웠다. <뮤>가 부러웠다. 캐주얼 게임은 트래픽은 많았지만, 수익은 적었다. 라이프사이클도 짧았다. 웹보드 게임은 사행성 논란이 컸다. 정치권으로부터 트집 잡히는 게 싫었던 NHN에게 부담이었다.


MMORPG 하나만 터지면 해결될 수 있었다.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의 텐센트도 그랬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로는 불충분했다. <몽환서유>(넷이즈)나 <천룡팔부>(창유)가 부러웠다. <세피로스>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

 

<QQ환상>

 

2000년대 중반 직접 MMORPG를 만들었다. 역시 QQ로 시작됐다. 공들여 만든 <QQ환상>(2005년)이나 <QQ삼국>(2007년)은 나름 준수한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몽환서유>나 <천룡팔부>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MMORPG는 ‘고양이’를 ‘사자’로 그리기엔 너무 복잡했다. 텐센트가 자랑하던 ‘창조적 모방’을 하려면 내공을 더 쌓아야 했다.


한중 양국 모두 ‘차세대’가 유행이었다. 유저들은 더 화려하고 깊이 있는 3D MMORPG를 원했다. 텐센트도 같은 것을 원했다.



# 차세대 MMORPG 경쟁, 뜻밖의 승자 LOL


아직 중국에서 <던전앤파이터>나 <크로스파이어>가 뜨기 전이었다. 2007년 11월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의 중국 수출 계약을 했다. 샨다였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안전한 선택이었다. 샨다는 한국 MMORPG를 가장 많이 서비스해 온 회사였다. 계약금과 미니멈 개런티 5,000만 달러(약 580억 원)도 나쁘지 않았다.


2009년쯤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다. 텐센트의 위상이 달랐졌다. 지갑도 두터워졌다. 2009년 2분기부터 텐센트는 매출 기준 중국 1등 게임 회사였다.


2010년 9월 송재경의 <아키에이지>는 텐센트와 손을 잡았다. 2010년 10월 조기용의 <더 데이>는 텐센트에게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퍼블리싱 판권을 줬다. 2011년 5월 배재현의 <블레이드앤소울>까지 텐센트에게 갔다. '네임드'들의 대작 MMORPG가 속속 텐센트 품으로 가고 있었다. MMORPG를 향한 텐센트의 꿈이 영글어갔다.


텐센트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른 중국 게임회사들도 차세대+대작+3D+수백 억 MMORPG를 향해 달려갔다. 2008~2009년부터였다. 넷이즈는 <드래곤소드>을 만들었다. 창유는 <녹정기>를 만들었다. 완미세계는 <소호강호>를 만들었다. 샨다는 <영세계>를 만들었다. 스네일게임즈는 <구음진경>을 만들었다.

 

중국의 '블소'로 불렸던 <드래곤소드> 동영상

 

중국 게이머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차이나조이를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본 한국 게이머들도 퀄리티에 놀랐다.


하지만, 이 화려한 라인업 중 <몽환서유>나 <천룡팔부> 흥행의 절반이라도 닿은 타이틀은 없었다. 대부분 초반에 반짝였을 뿐, 안정적으로 동접 50만을 유지하지 못했다.


대신 전혀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불쑥 튀어나왔다. 시장을 완전히 바꿨다. <LOL>이었다. 텐센트가 2011년 7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텐센트와 다른 퍼블리셔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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