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연재) 서울 2033 포스트모템① 반지하게임즈 이들은 누구인가?

반지하게임즈 (반지하게임즈) | 2020-01-17 10: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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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 1위, 2019년 구글플레이 선정 '올해의 인디게임', 모바일 양대 마켓 인기차트 1위. 모바일 텍스트 어드벤처 <서울 2033>은 2019년 한국 인디게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될 만한 게임입니다.

 

<서울 2033>은 어떻게 만들었고, 무엇이 부족했는가?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이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가 <서울 2033>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게임 개발 과정에서 어떤 일들과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등의 내용을 담은 포스트모템을 보내왔습니다. 

 

오늘(17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총 5회에 걸쳐 디스이즈게임에서 <서울 2033> 포스트모템을 만나보시죠. 외부 연재 원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 프롤로그: "ㅋㅋㅋ 수고했다" 기획자가 개발자보다 더 힘든 게임 <서울 2033>

 

2020년 1월 12일, <서울 2033>의 확장팩 업데이트가 있었다. 

 

<서울 2033>에서 확장팩이란 일종의 유료 DLC 같은 개념인데, 유저들과 1월 12일에 출시하겠다고 섣부른 약속을 해버린 탓에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했다. 종강과 동시에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밤낮없이 글을 썼다. 그 결과 다행히 7만5천 자짜리 새로운 스토리 뭉치가 탄생했고 무사히 제 시간에 출시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단편 소설 1권 분량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ㅋㅋㅋ’

‘수고했다’


탈고를 마치자 개발자에게 온 카톡이었다. 아니, 세상에 어디 이런 게임이 있나? 업데이트 때면 개발자가 허덕이는 게 업계의 흔한 일상일 텐데, 이 게임은 기획자인 내가 오롯이 고생을 하고 있다. 그래도 확장팩 출시 직후 환호하는 <서울 2033> 커뮤니티와 팬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세상 모르고 자는 동안 확장팩의 최강 히든 보스 ‘기계히드라 X-999’는 출시 4시간 만에 잡혔다.

 

확장팩 업데이트 당일 개발자와의 카카오톡. 마치 남의 일인양 방관하는 태도가 가관이다.

 

<서울 2033>은 모든 UI와 게임플레이가 오직 텍스트로만 구성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체력, 멘탈, 돈이라는, 그마저도 3칸짜리 아이콘으로만 표시된 지극히 제한된 자원을 관리하며 글자로만 이뤄진 핵전쟁 이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울을 탐험해 나가야 한다. 

 

종말 이후의 묘사를 보며 탐험을 계속하다보면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이 지겹게 많이 등장한다. 이 선택에 따라 플레이어는 자원을 얻거나 잃을 수도 있고, 특별한 아이템이나 능력을 획득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아이템이나 능력 역시 오로지 텍스트로만 표현된다.

 

이 게임이 그래서 뭐 하는 게임이냐면 사실 명확히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이벤트에 맞추어 자원 관리와 위기 관리를 하는 생존 전략 게임이라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다양한 분기와 스토리, 엔딩이 있는 인터랙티브 픽션이라고 말한다. 

 

다 무척 좋은 표현인 것 같아 마음에 든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게임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딱 떨어질 것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나의 기준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이게 정확히 ‘내 취향’인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마이너한 감성과 타겟 취향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출시 직후 꾸준히 설치 수와 유저 수가 늘어나더니, 2018년 12월과 2019년 1월 즈음에는 트위치(Twitch) 스트리머들의 스트리밍에 힘입어 두 달간 약 4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그때 유입된 유저 분들 중 일부는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든든한 매니아 유저 층으로 남아계셔서, 기획자조차도 모르는 모든 이벤트와 스토리를 줄줄이 꿰고 계신 상태로 뉴비들을 친절히 지도하고 계신다.

 

인기 스트리머 '풍월량'이 <서울 2033>을 플레이하며 화제가 됐다.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을 쓴 조지 마틴 옹이 글을 쓰다가 등장 인물의 디테일이 기억나지 않으면 팬클럽 회장에게 전화 걸어 물어본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무척 슬프고 외로웠을 텐데, 덕분에 1년 넘게 <서울 2033>을 꾸준히 업데이트 할 힘을 얻고, 게임을 더 풍부하고 재밌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게임들을 ‘자식들’이라 부른다. 어떤 자식들은 성공해서 부모를 먹여살리기도 하고 어떤 자식들은 정은 가지만 성공은 못 해서 부모로서 옆구리에 딱 끼고 데리고 산다. 가슴 아프게도 빛을 못 보고 죽은 자식도 많다. 

 

그런데 이 <서울 2033>이란 자식은 뭐랄까, 일단 빛은 봤으니까 성공한 자식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 속을 엄청 썩이는 잘난 첫째 같은 느낌이다. 태생적으로 계속 부모의 관리를 필요로 해서 손도 많이 가고 힘들다. 판교의 그 어떤 부모도 이런 애는 키워본 적이 없다 할 것 같다.

 

때로는 좀 더 대중적이고 평범한 게임을 만들 것 그랬다고 팀원들과 불평할 때도 많았다. 먹고 살기 위해 꼭 필수적인 BM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컨텐츠 수명을 늘릴 것인지, 어떻게 유저 리텐션을 확보할 것인지까지, 선례가 없어서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오히려 이 독특한 아이가 우리와 유저들 양쪽에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과 스토리들에 감탄을 하고 흥분하기도 했다. 글밖에 없던 녀석의 고지식함이 시각장애인 유저들로 하여금 비장애인 유저들과 함께 커뮤니티에서 게임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단순한 UI 덕에 아버지와 처음으로 함께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지난 6월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우리 게임을 한참 동안 플레이하던 초등학생 유저의 어머님께서는 ‘평소에 책도 안 보던 아이가 이렇게 많은 글을 읽는 건 처음 봤다’며 좋아하셨다. 이번 달에는 텍스트 게임에 온라인 기능을 접목하는 방안을 아이디어로 냈다.

 

부모된 심정으로 서울 2033이 차트에 오를 때마다 스크린샷을 찍었다. 양대 마켓 1위를 달성했을 때 무척 기뻤다.

반지하게임즈가 어떻게 출발했는지부터, 초보 기획자로서 <서울 2033>을 만들고 서비스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경험한 것들, 그리고 우리의 목표까지 부담없이 써내려가보려고 한다. 처음엔 단순한 포스트모템도 아니고, 5부작이나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무척 놀라서 겁을 먹었다. 

 

나는 그다지 좋은 기획자도 아니고 작품도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것일까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 글이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인디게임 개발자 분들, 게임업계 종사자 분들, 그리고 게임을 사랑하는 다양한 많은 게이머 분들께 조금이나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창조적인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무척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 생각하여 부족한 지식과 솜씨를 총동원하여 글을 써보기로 하였다. 

 

귀여운 업계 후배, 동네 게임 친구, 또는 갓 취업한 동아리 선배가 술자리에서 털어놓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


반지하게임즈의 서울 2033 포스트모템

  

① 반지하게임즈, 우리는 누구인가

② 이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③ 사람들은 이 게임 왜 할까

④ 이 게임으로 어떻게 먹고 살까

⑤ 우리 이제 뭐할까

 

 

① 반지하게임즈, 우리는 누구인가 

 

사실 내가 게임 기획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제부터 게임 기획자였는지도 잘 모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취미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인데, 우물쭈물하는 사이 내 정체성이자 직업이 되어버렸다. 무척 행운이라 생각하면서도 정말 낯설고 신기할 때도 많다. 로스쿨 재학생, 인디게임 개발사 대표, 게임 기획자라는 독특한 커리어를 신기해하는 분들께도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도 제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해, 2006년은 바야흐로 플래시의 황금기였다. 네이버 붐, 플래시365, 주전자닷컴 등 다양한 사이트에서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만든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플래시 게임이 탄생했다. 그 중 특히 어린 내 눈길을 끈 것은 플래시 게임들이었다. 

 

물론 그 당시엔 메이플스토리 같은 재미난 온라인 게임도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다른 유명한 게임도 무척 많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열두 살 때에도 어느 게임을 해도 얼마 하면 금세 질리고 항상 새로운 규칙과 시스템에 끌렸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플래시에 매료되어 무작정 독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든 RPG. 당시엔 팬도 많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플래시 게임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많이 만들게 되었다. 기숙사 학교에 살면서 핸드폰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어 놀 거리가 없으니 자연스레 친구들과 다인용 플레이가 지원되는 ‘피카츄 배구’ 같은 고전게임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재능이 빛을 발했다. 

 

온갖 종류의 2인용 게임을 만들었고, 인기가 정말 많아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수십 회의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스매시 브라더스’ 같은 격투 게임을 만들어 고등학교 친구들을 캐릭터로 넣기도 했고, 1대1 버전의 ‘피파 온라인’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만든 게임을 USB에 담아가 자기들끼리 즐기는 친구들을 보며 뿌듯했다. 나름대로 공략법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 반지하게임즈의 대표로 함께 일하고 있는 백승민 개발자도 이 때 같이 게임을 하며 친해졌다. 그때의 철없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사람 됐다.

 

<경찰 대 마피아>. 군중 속에서 총격전과 심리전을 벌이는 2인용 게임, 명작이다.

 

<GGHS 브라더스>. 백승민의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게임 개발이 내 직업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그냥 조금 독특한 취미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게임이나 프로그래밍 등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전공으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은 행복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힘들었다. 미래도 불투명한데 스펙 쌓기에 열중하느라 재미도 없고 허무하기만 했다. 그때 보드게임 동아리를 통해 독창적인 보드게임들을 많이 접했는데, 게임을 하면 할 수록 즐겁기보다는 ‘와, 이 아이디어 엄청 좋네. 나도 다시 게임 만들 때로 돌아가서 이런 게임 만들고 싶다’ 하는 생각으로 아쉬움만 남았다. 

 

그렇지만 그 때 더 이상 플래시 게임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없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어려웠다(컴퓨터에 플래시 플레이어가 깔려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인 개발로 만들어진 모바일 게임들이 플레이스토어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 플래시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이 생각나 더 슬펐다. 나도 코딩 공부를 해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반지하게임즈 일당

그러던 중 구세주가 나타났다.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한 내 고등학교 친구 승민이로부터 대뜸 “이제 네가 예전에 만들던 게임들 모바일로 다 만들어줄 수 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승민이는 예전부터 자신만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사람들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서비스하는 데에 큰 관심이 있었다. 

 

승민이는 그중 특히 게임에 꽂히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내가 만들었던 게임들이 떠올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배우자마자 연락을 한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때 백승민은 모바일 앱의 터치 버튼조차 만들 줄 몰랐다.)

 

승민이 말에 따르면 디자이너 역시 이미 구해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윤지였다. 윤지는 고등학교 때 한 마디도 나눠본 적 없었지만, 동창회에서 나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음에도 돈을 안 내고 그냥 간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승민이는 윤지와 어플리케이션 개발 과제를 함께 수행해본 적이 있었고, 윤지 역시 게임과 게임 UI 디자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셋이 만났고, 서로의 게임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팀 이름을 정할 때가 되었다. 반지하 방구석에서 우리가 만들 게임의 기획을 위해 오랜만에 플래시를 만지고 있던 내가 어렵지 않게 아이디어를 냈다. 반지하 자취방에 살면서, 누구 하나 해주는 사람 없어도 혼자 게임을 만들고 즐거워하던 이 때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반지하게임즈’로 하자. 

 

2016년, 그렇게 반지하게임즈가 시작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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