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밸런스보다 재미가 더 중요하다” 하스스톤을 만든 지혜들

다미롱 (김승현) | 2015-05-21 14:03:00

최근 전세계 3,000만 유저를 돌파한 <하스스톤: 워크래프트의 영웅들>(이하 하스스톤)이 NDC 15에서 개발 노하우를 공유했다. 

 

‘빨리 반복해서 개발하라’ ‘처음 하는 사람도 재미있게 해라’와 같은 일반적인 개발론부터 ‘밸런스보다 재미가 중요하다’와 같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까지 각양각색의 조언이 쏟아진 강연이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박종천 엔지니어가 말한 <하스스톤> 개발 노하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박종천 엔지니어

 

 

 빨리, 반복해서 만들어라.

 

프로토타입을 반복해서 개발하고 고치는 것은 이미 많은 게임에서 그 효능이 입증된 개발방법이다. 하지만 <하스스톤> 팀은 보다 간절한 이유에서 이 방법을 택했다. 초창기 <하스스톤> 팀은 블리자드로부터 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2>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중량급 타이틀의 론칭·업데이트가 임박하며 얼마 없던 개발자마저 계속 다른 팀을 지원해야 했다. 손이 비는 것은 기획자와 아티스트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하스스톤>이 카드게임이라는 것이었다. 기획자와 아티스트들은 종이에 카드를 출력하는 방식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의외로 이 과정에서 <하스스톤>의 많은 요소가 완성됐다. 예를 들어 초기 버전의 영웅은 성벽 안에 보호받다가 상대 병력이 성을 무너트리면 멋지게 등장해 전세를 역전시키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게임을 실제 돌려보니 이렇게 등장한 영웅이 도리어 적 병력에게 맞아 죽는 모습이 연출돼 지금의 콘셉트로 바뀌었다.

 

종이로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기본적인 콘셉트와 재미가 검증되니 이번엔 플래시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디지털에서의 구동 모습과 UI를 검증하기 위한 빌드였다. 이 프로토타입에서는 지금 <하스스톤>이 사용하고 있는 카드 배치나 영웅 표현 등의 기본적인 요소가 완성되었다. 그 덕에 <하스스톤> 팀은 지원나갔던 엔지니어들이 오기 전 게임의 기본 틀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카드게임은 굉장히 복잡한 게임이다. TCG의 원조격인 <매직: 더 개더링>만 하더라도 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대지나 드로우 개념, 마법(?) 카드도 집중마법과 순간마법의 분류 등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 

 

<하스스톤>의 과제는 이러한 카드게임 특유의 복잡함을 모두 잘라내는 것이다.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꼭 대지카드가 필요한가’, ‘카드의 특수능력을 발동시키기 위해 꼭 카드를 탭(카드를 가로로 눕히는 행위)해야 하나?’ 등의 의문이 던져졌다. 이것은 자원은 알아서 늘어나고, 카드 특수 능력은 자동으로 발동되는 지금의 <하스스톤>이 탄생했다.

 

<하스스톤>이 이렇게 간결화에 신경 쓴 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다. 오프라인 카드게임은 서로 직접 얼굴을 보고 플레이하기 때문에 수시로 유저가 게임에 개입하고 카드를 만져도 지루함이 덜하다. 기다림도 교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보이지 않는 온라인 환경은 기다림은 그저 지루함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진입장벽이다. 카드게임의 복잡성은 오랜 시간동안 신규 유저의 진입을 막는 요소였다. <하스스톤>은 이를 막고자 튜토리얼이나 UI 단계부터 텍스트의 양을 최소화했다. 이렇게 텍스트를 줄이고 UI만으로 유저를 안내하려면 필연적으로 게임 구성이 간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간결함은 곧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확장 가능성이다. 모든 게임은 서비스를 오래할수록 필연적으로 시스템이 복잡해지게 된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모두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는 것을 원하지, 요소가 삭제되는 것을 바라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요소를 추구하려면 이것을 넣을 만한 충분한 틀이 필요하다.

 

단, 이러한 과정에서 주의할 것은 간결화는 단순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간결화를 한다고 게임의 주요 요소를 단순화시키면 게임의 깊이가 낮아진다. 때문에 특수능력 등을 간결화할 때도 다른 유닛과의 ‘합’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피아 불문하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카드나 능력이 있다면, 피해를 받았을 때 이로운 효과를 얻는 카드도 추가해 유저가 조합을 고민하게끔 하는 것이다. 

 


 

 

‘디지털’만의 재미, 카드게임만의 재미를 보여줘라

 

<하스스톤>의 또다른 숙제는 ‘디지털’ 카드게임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종천 엔지니어는 이러한 과제를 이야기하며 <매직: 더 개더링>의 ‘카오스 오브’라는 카드를 이야기했다. 이 카드는 공중에서 카드를 떨어뜨려 떨어진 카드에 닿은 카드를 파괴하는 카드였다. 박 엔지니어는 오프라인 카드게임에서만 가능했던 이 사례를 이야기하며, 디지털 방식의 카드게임은 디지털 만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랜덤 소환 효과 카드였다. 오프라인 카드게임은 보유 카드의 문제로 임의의 카드를 소환한다는 방식을 사용할 없다. 하지만 디지털 방식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서버에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이런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단,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카드게임’의 틀을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 장르를 하는 유저들은 그 장르가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경험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참신함에 눈이 팔려 이것을 소홀히 하면 유저들은 참신함 대신 거부감을 먼저 느끼게 된다. 때문에 <하스스톤>도 게임의 용어나 주요 기믹도 카드배틀과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넘지 않도록 특히 신경썼다.

 

이에 더해 <하스스톤>은 아예 오프라인 카드게임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실체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문에 게임의 주요 UI도 마치 ‘게임판’을 연상시키도록 만들었고, 필드의 카드도 마치 ‘말’(pieces)처럼 느껴지게 표현했다. 이러한 실체감은 유저들의 몰입도를 높여줬고, 나중에 터치 가능한 테블릿 PC, 스마트폰 버전이 나왔을 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 밸런스보다는 재미가 먼저! 유저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하라

 

마지막은 ‘유저의 스토리’다. 게임에는 2가지 종류의 스토리가 있다. 하나는 개발자가 배경 설정이나 퀘스트 등을 통해 직접 유저에게 전달하는 스토리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저가 직접 게임을 하며 겪는 스토리다. <하스스톤>은 이 중 후자에 집중했다. 유저가 게임 중 경험하는 긍정적인 경험 하나하나가 곧 게임의 재미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스스톤> 개발진은 카드게임 개발진으로서는 놀랍게도 밸런스보다 콘셉트나 재미에 우선을 두고 게임을 개발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코스트 전설카드인 ‘밀하우스 마나스톰’. 이 카드는 2코스트 하수인 주제에 4코스트 하수인에 준하는 능력치를 가진 엄청난 카드다. 다만 한 가지 사소한(?) 단점이 있다. 바로 밀하우스가 소환된 다음 턴, 상대가 사용하는 모든 마법의 비용을 ‘0’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극히) 일부 유저는 극초반이나 극후반에 조커 카드로 이것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 그 때문에 온갖 황당한 패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황당한 사례들은 당사자와 관전자 모두에게 평소 느낄 수 없는 종류의 재미를 선사했다. 밸런스만을 염두에 두고 효율적인 카드만 기획했다면 나올 수 없는 일이다.

 


 

<하스스톤>의 투기장 모드 또한 이러한 ‘유저 스토리’의 측면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다. 카드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대부분 자신의 조합과 전략으로 상대를 이기려는 이들이다. 때문에 등급전의 경우. 승리에 대한 욕구 때문에 수백 장의 카드가 있음에도 맨날 보던 카드 조합만 보이기 십상이다. 새로운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점수가 높지 않다.

 

하지만 투기장의 경우, 애초에 유저가 90장의 임의의 카드로 덱을 짜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임의의 카드’라는 조건 덕분에 평소에는 짤 수 없는 덱을 꾸릴 수도 있다. 실제로 박종천 엔지니어의 경우, 투기장에서 전사 직업의 강력한 돌진 카드인 ‘코르크론 정예병’을 7장이나 뽑아 12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유저에게 끊임없이 ‘작은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다. <하스스톤>은 어떤 면에선 카드배틀보다는 퍼즐의 관점에서 개발된 작품이다. 게임 특성 상 마법 등 카운터 수단이 적고, 대부분의 상황은 필드에 소환한 하수인 카드 위주로 처리해야 한다. 

 


 

유저는 매 턴 상대가 놓는 카드들을 보며 이것을 어떻게 파훼하고 극복할지를 고민한다. 매 턴 유저에게 작은 문제가 주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 쌓이면 ‘이러이러한 상황을 멋지게 극복했어’하는 긍정적인 경험이 축적된다. 설사 게임을 이기지 못했더라도 멋진 문제풀이 과정이 기억에 남아 패배감을 옅게 하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하스스톤>이 특히 신경쓰는 것은 ‘원턴킬’ 등 유저가 대처하지 못하는 불쾌한 감정을 차단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한 때 0코스트 카드였던 전사 직업의 ‘돌진’ 카드다. 돌진은 카드 하나에게 소환 후유증 없이 바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카드였다. 능력 자체는 딱 코스트에 맞았지만 특정 카드와 조합 시 한 턴 만에 게임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카드는 이후 효과는 더 좋아졌지만 코스트 또한 오르는 식으로 ‘사실상 하향’되었다.

 

정신지배​ 카드처럼 아예 밸런스가 아니라 상대 유저의 감정’ 때문에 하향된 사례도 있다.

 

박종천 엔지니어는 이러한 개발 사례 마지막으로 ‘비전의 공유’를 강조하며 강연을 끝마쳤다. 

 

“아무리 훌륭한 기획이 있는 게임이라도 개발진 모두 이것을 알고 있지 않다면 게임은 망가집니다. <하스스톤>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도 바로 이 비전의 공유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매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게임하는 시간을 갖고 새로운 인원을 뽑을 때도 <하스스톤> 경험이 없으면 뽑지 않습니다. 개발자가 게임을 잘 알고 사랑해야만 최고의 게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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