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미술관](12) 화풍만으로도 한 게임을 대표하는 원화가. 브라운더스트의 한성현(색종이)

다미롱 (김승현) | 2019-04-08 10:21:29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캐릭터 일러스트만으로도 매번 화제가 되는 게임이 있습니다. 겜프스에서 개발한 수집형 전략 RPG <브라운더스트>가 그 주인공입니다. <브라운더스트>는 본래 전략성 있는 독특한 게임 방식으로 더 화제가 된 게임입니디만, 서비스 기간이 1년이 넘은 지금은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특유의 탱글탱글한(?) 화풍으로 더 화제가 되는 게임입니다.  

오늘 소개할 한성현 파트장은 <브라운더스트> 특유의 화풍을 각인시켰고 현재 게임의 캐릭터 디자인을 총괄하는 아티스트입니다. <브라운더스트> 유저들에겐 이름보다 '색종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여담이지만, 지금 쓰고 있는 '색종이'라는 닉네임도 처음엔 게임 ID에 불과했지만,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를 궁금해한 유저들에게 발굴돼 본래 쓰던 필명을 밀어내고 진짜(?) 닉네임이 됐죠. (본래 쓰던 닉네임은 ing9)   

 

겜프스 한성현(색종이) 캐릭터 디자인 파트장

 

 

# 신출내기 원화가, 한 게임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다 


한성현 파트장은 게임 업계에 들어온 지 4년도 안 된 젊은 아티스트입니다. 심지어 그가 제대로 원화가 일을 시작한 게임도 <브라운더스트>가 처음이죠. 이력만 보면 재능 넘치는 신예 아티스트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게임업계에 첫 포트폴리오를 낸 뒤 1년 반 동안 연락 한 번 받은 적 없는 원화가였습니다. 고생 끝에 처음 들어간 업체도 외주 스타트업이어서 별 경험도 얻지 못하고 5개월만에 퇴사했죠.  

당시에는 <브라운더스트>, '색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화풍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요. 한성현 파트장의 초기 화풍은 실사풍이었는데, 실사풍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어중간한' 화풍이었죠. 

 

한성현 파트장의 <오버워치> 팬아트. 왼쪽 솔저 76 팬아트는 그의 과거 화풍에 가깝고, D.VA 그림은 현재 화풍에 가깝다.

그가 겜프스에 입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그의 화풍보단, 실사풍 그림을 그리며 익힌 양감(量感, 무게감이나 부피감 등 '덩어리' 묘사에 대한 이해) 덕이 컸죠. 겜프스가 원하는 화풍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잠재력을 인정받아 들어갔다고나 할까요? 

 

이런 이력 때문인지 한성현 파트장은 아직도 자신이 <브라운더스트>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잘 실감되지 않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메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달까요? (웃음) 엄청 영광스럽고,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하죠. 일러스트레이터는 원래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솔직히 예전엔 자신감의 근거도 없이 '가져야 하니까' 가진 자신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희 그림을 좋아하시니 정말 뿌듯합니다. 아마 저와 저희 아트팀의 그림도 그림이지만, 개발자 분들이 게임도 잘 만들어서 이렇게 인정받는 것 같아요."  

 

<브러운더스트>의 '라피나' 일러스트

 

 

# 캐릭터의 '매력'을 어떻게 담아 내야 하는가? 


한성현 파트장의 화풍은 겜프스 입사 후, <브라운더스트> 캐릭터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완성됐습니다. 겜프스가 <브라운더스트>를 만들며 원한 화풍은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은 느낌을 주되, 양감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그림이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게임이 수집형 RPG인 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그림이 필요했죠. 

그가 이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했던 것은 90년대 유명 애니메이션과 원화가들의 그림, 그리고 각종 일러스트 공유 커뮤니티에 올라온 성인 취향(!) 일러스트였습니다. 

90년대 애니메이션과 원화가들의 작품에선 전성기 셀 애니메이션 특유의 명암과 화풍을 참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화풍은 지금 서브컬쳐계 주류 화풍보다 데포르메(deformer)가 덜했고, 이 때문에 캐릭터 신체의 '덩어리'나 '질감'이 잘 묘사돼 있었습니다. 한성현 파트장은 당시의 이런 느낌을 <브라운더스트>에 녹이고 싶었죠.  

옛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나 전성기 '가이낙스'의 애니메이션, 원화가 '요시다 아키히코'(일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니어 오토마타의 원화가)의 그림이 많은 영향을 줬죠. 실사풍이었던 그의 그림은 이런 작품들에 영향을 받으며 점점 셀 애니메이션 느낌으로 바뀌어 갔죠. 물론 여기에는 초기 <브라운더스트> 화풍을 구상한 겜프스 이준희 대표(원화가 출신)의 피드백도 한 몫 했습니다. 

 

가이낙스의 전성기를 이끈 작품 중 하나인 '신세기 에반게리온'

성인 취향 일러스트를 연구한 건 '매력'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브라운더스트>는 수집형 RPG 요소를 가지고 있고, 유저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려면 캐릭터의 매력을 잘 어필해야만 하니까요. 이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키워드가 '섹시'였습니다.  

섹시, 즉 성적인 매력은 인간이 가장 본능적으로 캐치하는 매력입니다. 누군가는 단어 안에 담긴 뉘앙스 때문에 '벗기면 끝 아니냐'(?)고 이야기도 하지만, 누가 어떻게 그렸느냐에 따라 헐벗은 그림에서 성적인 매력이 안 느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빈틈없이 옷으로 싸맨 캐릭터에게 섹시함을 느끼도 있죠. 매력을 어디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보는 이가 느끼는 매력·감정이 달라집니다.  

한성현 파트장은 이런 느낌을 알기 위해 한동안 남성·여성 취향 가리지 않고(수집형 RPG의 유저가 특정 성별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양한 일러스트를 살펴봤고, 이 때 얻은 것들을 계속 '정제'했다고 하네요. 캐릭터의 매력이 섹시함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여담이지만, 이런 과정 덕에 한성현 파트장 그림의 상징과도 같은 미묘한 피부 묘사도 탄생했다고 하네요. 

 

<브라운더스트>의 아이, 레비아

 

 

# 의상, 그리고 가림이 만드는 매력 


그렇다면 한성현 파트장은 일러스트를 그릴 때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낼까요?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의상과 몸의 대비입니다. <브라운더스트>의 '제니스'와 '유리' 일러스트가 대표적이죠. 

 

 

왼쪽부터 <브라운더스트>의 제니스, 유리.

두 캐릭터는 전반적으로 옷을 다 두른 것 같지만, 몸의 매력 포인트(제니스는 다리, 유리는 등)만은 훤히 노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그림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작가가 의도한 매력 포인트로 쏠리게 해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다고 합니다. 가림과 노출의 대비가 만들어 낸 효과죠. 

한성현 파트장은 여기에 한 가지 대비를 더해서 캐릭터들의 차밍 포인트를 극대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제니스는 엉덩이 밑에 작은 점을 하나 넣어 보는 이들의 시선을 한 번 더 집중시킵니다. 유리의 경우는 등허리 부분의 그림자가 캐릭터의 선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죠. 

이런 작은 대비가 얼핏 보기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도, 은연중에 유저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눈길을 잡아 끈다고 하네요.  
<브라운더스트>의 드웬

 

때로는 의상 자체가 가진 이미지를 극대화하기도 합니다. 드웬과 세토라는 캐릭터를 그릴 때 사용한 방법이죠. 

 

드웬은 설정상 귀족인데다 모델같이 크고 잘생긴 꽃미남 캐릭터입니다. 흔히 말하는 '테리우스' 같은 캐릭터죠. 이런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드웬의 복장은 허구적인 느낌이 강한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실제로 과거 귀족들이 입었을 법한 플레이트 아머 디자인을 참고해 디자인됐습니다. 현실의 복장이 가진 귀족적인 이미지를 캐릭터에 녹이기 위함이죠. 

 

참고로 드웬의 눈빛이나 분위기는 과거 귀족적인 캐릭터로 유명했던 <베르사유의 장미>의 '오스칼'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네요. 

<브라운더스트>의 세토. 여담이지만 한성현 파트장은 이 그림을 소개할 때, 세토와 같이 있는 와이번을 잘 표현하지 못해 아쉽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세토는 드웬과 달리 의상의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한 사례입니다. 세토는 G-DRAGON처럼 섹시하고 강렬한 남성을 목표로 디자인된 캐릭터입니다. 이를 위해 세토는 2가지 방향성으로 디자인됐습니다. 먼저 캐릭터의 몸과 복장은 가늘고 호리호리하게 디자인됐죠. 여기에 더해 나른한 표정과 안대, 씨스루 상의 등을 통해 이런 느낌을 더욱 강조했고요. 

반대로 캐릭터 외곽의 장식들은 거칠고 야성적입니다. 캐릭터의 외곽선을 그리는 건틀릿과 칼은 가시나 이빨 같은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디자인됐고 물건의 크기도 과장되게 표현됐습니다. 가시와 이빨이라는 야성적인 상징,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 날카로운 외곽선의 이미지로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함이죠. 이를 강조하기 위해 칼과 건틀릿은 시선이 잘 가는 붉은색으로 그려졌고요.  

(물론 지금까지 말한 대비나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요소들이 조화롭게 매력 포인트를 어필하느냐 입니다) 

 

 

# 10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기대 받을 수 있는 원화가가 되고파  

 

한성현 파트장이 겜프스에서 일한지 약 4년이 지났습니다. 신출내기 원화가는 어느덧 한 게임을 대표하는 원화가가 됐고, 나아가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이들의 장이 됐죠. 과거 1년 반 넘게 게임업체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그로서는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자신이 더 커야할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한성현 파트장의 꿈은 딱 하나입니다.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누군가가 '색종이'의 그림을 기대할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 "유저 분들의 관심이 저희가 여기서 일하는 원동력이니까요" 한성현 파트장이 생각하는 (상업)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본이자 본분입니다. 

 

<파이널판타지 7>의 티파, <페이트> 시리즈의 세이버(알트리아)처럼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한성현 파트장의 꿈.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많은 길이 있습니다. 한 파트장도 여러가지를 하고 싶지요. 어떤 때는 '시라누이 마이'나 '티파', '세이버' 같이 독보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아트만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그 세계와 캐릭터들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기도 하죠. 그가 어렸을 때 게임을 즐기며 느꼈던 것처럼요.  

"꿈도 크고 욕심도 큰데, 거기까지 닿으려면 한참 가야할 것 같네요. 아마 제가 이 일을 하며 평생 안고가야 할 고민이 아닐까요? 솔직히 제가 이 자리 설 수 있었던 것도 저보단 유저 분들 덕분이었거든요. 제 그럼, 저희 게임을 사랑해 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도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겠죠." (웃음) 

 

한성현 파트장의 개인 작품 '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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