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9살 꼬마가 23살 카트 황제가 되기까지. 문호준의 프로게이머 춘하추동

다미롱 (김승현) | 2019-04-20 14: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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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경력 13년, 공식 리그 우승 11회, 양대 리그 우승 기록 보유.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문호준'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문호준 선수가 처음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것은 9살 때였다. 어른들에게 통통한 안경쓴 꼬마로 기억되던 문호준은 어느덧 23살의 훤칠한 청년이 됐다. 이제는 그를 귀엽다고 좋아하는 이들보다, 멋지고 서글서글하다며 좋아하는 이들이 더 많다. 물론 프로게이머 생활 13년 간 꾸준히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을 좋아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최근 <카트라이더>와 리그가 다시 한 번 주목받기 시작하자 그가 떠올랐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카트라이더>와 함께한 그가 게임과 리그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문호준 선수가 말하는 게임, 선수, 그리고 문호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영상 인터뷰] 열 살 꼬마 문호준의 13년 카트라이더 인생

 

문호준 선수

 

 

디스이즈게임: 공식 리그 11회 우승을 축하한다. 리그 끝난지 얼마 안 됐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문호준: 리그가 끝나니 더 바쁜 것 같다. 다음 리그 팀원도 짜야 하고 스폰서도 구해야 하고…. 오늘 아침에도 미팅이 있었다. 좀 자고 싶다. (웃음) 물론 이런 공적인 일 외에도, (인터넷) 방송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일주일에 4~5번 가량은 한다. 

 

 

공식 리그에서 11번 우승했다는 것은 <카트라이더>에선 최초 사례다. 기분이 어떤가?

 

기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번 리그에 나오며 '팀전'에 많이 집중했는데, 정작 우승은 개인전에서 하고 팀전에선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게 정말 아쉽다. 특히 이번 리그는 정말 오랜만에 야외 무대에서 결승전이 열렸고, 팀전에 한정하면 최초의 야외 결승전이었다. 팬 분들도 많이 와주셨는데,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많이 아쉽다. 

 

 

그러고 보니 야외 결승전도 약 10년 만에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문호준 선수 입장에서도 감회가 새로웠겠다.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팀전에선 첫 야외 결승전이었고. 개인적으론 팀전 준우승이 그래서 더 아쉬웠던 것 같다.

 

또 놀랐던 게, 다른 선수들도 야외 결승전을 정말 좋아하더라. 나야 예전 기억이 있어 감회가 새롭긴 한데, 이런 경험 없는 선수들은 생소한 환경 아닌가? 그런데 현장에서 팬 분들 보고, 또 VCR 나오는 것 보니 정말 좋아하더라. 오랜만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2019 카트라이더 리그 시즌1 개인전에서 우승한 문호준 선수

 

 

근래 <카트라이더>의 인기가 다시 한 번 좋아지기 시작했다. 리그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13년 간 프로게이머를 한 사람으로서 어떤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13년 프로게이머 기억 중 <카트라이더> 리그가 이렇게 관심 받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팬 분들의 화력도 엄청나고. (웃음) 또 팬 분들의 마음이 단순히 e스포츠 관객으로서뿐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팬으로서 전해진다는 것도 (선수로서) 정말 크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처음으로 전문 경호 인력의 경호도 받아봤다. 현장에서 관객 분들의 격렬한 호응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었고. 여러모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카트라이더> 상황이 어렵더라도 계속 넥슨이 리그를 끌고 와 준 덕에 분위기가 바뀔 계기가 유지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인터넷 방송이 대중화되며, 사이드에서 받춰 주는 각종 스트리머 분들 덕에 <카트라이더>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친숙해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살짝 내 자랑을 추가하자면, 내가 중국 리그에 혼자 가 우승한 것도 영향이 조금 있지 않을까? 그 때 나름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시청자 1만 명을 기록했었다. (웃음) 아무튼 이런 요소들이 시기 적절하게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아무래도 <카트라이더>는 서비스 기간도 길고, 다양한 연령대에게 큰 진입 장벽 없이 '보는 재미'를 줄 수 있어 이런 면이 더 극대화된 것 같다.

 

맞다. 대회 관객석을 나이 있으신 분들도 많이 있더라. 자녀가 <카트라이더> 리그를 보고 싶어해 같이 오신 분도 있고, 예전에 <카트라이더>를 즐겼던 분도 있다고 하더라. 간혹 자녀 따라 왔다가 리그 팬이 된 경우도 있고. 

 

나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그런지 이런 경우를 더 많이 봤다. 어른들 눈에는 9살 꼬마가 프로게이머라는 것이 신기하게, 기특하게 보여진 것 같다. 나이든 분들께 아직도 난 흰색 안경 쓴 꼬맹이로 인식돼 있다. (웃음)

 

2019 카트라이더 리그 시즌1 결승전 영상. 1시간 42분 53초 부근에서 문호준 선수가 뒤따라오던 박인수 선수를 '스톱 막자'로 떨어뜨려 화제가 됐다. (출처: 스포TV의 eSportsTV 유튜브 채널)

 

 

그러고 보니 13년 째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고 있다. 결승전에선 '스톱 막자'라는 과감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상급 실력을 유지한 비결이 뭐라 생각하나?

 

스톱 막자는 즉흥적으로 나온거라…. (웃음) <카트라이더>가 워낙 실시간성이 강한 게임이다 보니, 경기를 하다 보면 나도 생각지 못한 플레이가 몸이 반응해 나올 때가 있다. 사실 나라면 거기서 스톱 막자 같은 위험한 플레이 안 했다. 실수하면 끝장이니까. <카트라이더>는 경기 특성상 실수 한 번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 손가락이 갑자기 반응하더라. 다행히 성공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 손가락 덕이다. (웃음)

 

개인적으로 이렇게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범한 성격 덕인 것 같다. 조금 전 얘기한 것처럼 <카트라이더>는 실수 한 번 하면 멘탈 날아가기 딱 좋은 게임인데, 그런 부분에서 난 유리한 성향을 가진 것 같다. 이걸 오래해서 그런 성향이 된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난 워낙 어린 시절 이 게임을 시작했다 보니, 경험은 경험대로 쌓였으면서도 아직 피지컬은 여전한 케이스다. 어찌 보면 9살 데뷔 자체가 내 가장 큰 강점이겠지. 

 

 

# 9살 꼬마 프로게이머와 아버지

 

예선전까지 생각하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어떻게 <카트라이더>를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 지인 분이 PC방 오픈해 놀러 갔는데 거기서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을 처음 봤다. 아버지를 졸라 계정 만들고 게임을 해봤는데, 처음 한 게임에서 내가 1등 했다. 그 때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이템전이었고, 내가 조종한 카트는 '솔리드 R4' 였다. 그게 계기가 돼 <카트라이더>를 열심히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TV에서 <카트라이더> 리그를 봤다. 김대겸 선수(지금은 해설)가 우승하는 장면이었다. 

 

리그 있다는 것 알았고, 어린 마음에 내가 나가도 잘 할 자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 아버지가 1등할 생각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자신 있다고 말했고.

 

이후 아버지가 사비 털어 뒷받침해주셨다. 나 때문에 팀도 만들고, 감독 겸 코치 일도 하셨으니.

 

 

그 때는 자신이 이런 삶을 살 것이라고 상상했었나?

 

없었지. (웃음) '어차피 한 거 1등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초반에 좋은 성적 거두니 더 좋은 성적 거두고 싶어 계속했다. 또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게 1등 하겠다고 말 했는데 못하거나 다른 거 하면 혼날까 봐 계속 한 것도 있다.

 

2007년의 문호준 선수

 

 

아버지의 역할이 컸겠다.

 

정말 컸다. 아마 아버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어떤 아버지가 초등학생 꼬마가 프로게이머 하겠다 하니 사비 들여 팀 만들고 선수도 영입하겠는가? 그런데 아버지는 그 일을 했다.

 

그 때는 대회 메타가 주행 라인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해 선수들이 타임어택 모드만 줄창 연습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는 팀이 있고 팀원 형들이 있어 대회처럼 (여러 사람들과) 연습할 수 있었지. 나는 다른 프로게이머 형들에게 게임을 배우며, 아버지에게 코칭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 아버지가 <카트라이더>를 잘 하진 않는다. 그런데 옆에서 다른 선수 스타일 많이 연구했고, 또 내 스타일 연구해 코칭하셨다. 전략도 많이 짰고. 아버지 말 따라 우승도 많이 했다. 

 

 

아버지가 매우 엄하게 코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많이 혼났지. 정말 엄청 혼났다. 아버지 입장에선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나만 편애하면 시기나 질투가 있을까 봐 더 엄하게 나를 다뤘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감독이고 나는 아들이었으니까. 지금은 다 이해하는데, 그 때는 그게 정말 서운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노련한 것도 없진 않지만, 아버지 뒷받침없이 여기까지 올 순 없었을 것이다. 

 

 

요즘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시나?

 

평범하게 직장 생활 중이시다. 그런데 요즘 내가 대회 많이 나가고 팀전 준우승한 것 보니 욕심이 생겼는지, 내게 종종 컴백하고 싶단 얘기를 하신다. 

 

아버지가 돌아 오면 기쁘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평범한 삶을 더 누리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오시면 연습을 더 '빡쎄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웃음) 아니면 이번엔 상대팀 감독으로 가셔서 아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성장했는지 느껴보시는 것도 재밌겠다. 농담이다. 이제 자신의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2012년, 아버지 '문성민'씨가 문호준 선수를 위해 만든 트랙별 작전표

 

 

# 부진, 스타2, 그리고 카트라이더

 

처음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때, 이 일을 이렇게 오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너무 오래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음…, 솔직히 말해 내 성적이 나빴다면 이렇게 오래 이 일을 못했겠지. 성적이 나빠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단 게임을 하는 나부터가 재미를 못 느꼈을테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뒀고, 대회 나갈수록 새로운 기록도 생겼다.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겼고. 이런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오래 이 일을 한 것 같다. 

 

 

너무 일찍 프로게이머 생활을 한 것이 아쉽진 않은가?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지 않은가?

 

아마 이 일의 단점이 있다면 그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 별개로, 나는 나름 크게 다르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 물론 내가 프로게이머를 그만뒀다면 그 때의 시간이 아쉽겠지만, 지금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던 것도 같다. 그 덕에 이런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또 설사 후회를 했다고 해도, 내 성격 상 그렇게 오래 하고 오래 기억하지도 않는다. (웃음)

 

 2012년의 문호준 선수

 

 

중간에 부진도 겪지 않았나. 선수로서 부진을 겪기도 했고, 리그 자체가 부진하기도 했고, 중간에 다른 종목을 해보기도 했다. 

 

대회가 2:2:2:2 체제로 바뀌며 많이 부진했지. 그 때 다들 짝이 있었는데 나는 없었던데다가, 대회는 주변의 기대 때문에라도 나가야 했다. 아, 여기서 기대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부담을 줬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동안 대회에서 한 것이 있기 때문에 받았던 기대를 말한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으니 대회가 재미있을 리가, 성적이 좋을 리가 있나. 그래서 잠정 은퇴를 했지.

 

그런데 나중에 대회 방식이 자기 팀을 꾸릴 수 있게 바뀌어 899일 만에 컴백했지. 솔직히 '그동안 내가 해온 게 있지'란 마음으로 나갔는데, 에이스 결정전에서 유영혁 선수에게 져 준우승했다. 그 다음 대회에선 예선 탈락했고. (웃음) 

 

 

당시 <스타크래프트 2>를 연습했는데, 이쪽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욕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스타크래프트2>를 만지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웃긴게, 어느 순간 <스타크래프트2>를 연습하면서도 쉬는 시간엔 <카트라이더> 리그를 보고 있더라. 그 때 느꼈다. '아, 나는 정말 이 게임(카트라이더)를 좋아하는구나'하고.

 

그렇다고 <스타크래프트 2> 시절이 아깝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걸 거쳤기에 내가 <카트라이더>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아깝지 않은 1년이었다. 아니, 소중한 시간이었다.

 

 

놀랍다.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로 13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 일에 쏟았는데….

 

오래 했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예전엔 <카트라이더>가 재미있어서, 1등 하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내가 없는 대회가 어색하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다.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런 분들 때문에라도 이 일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것 같다. <카트라이더>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테일 시절,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한 직후의 문호준 선수. 하지만 문호준 선수는 899일 만에 <카트라이더>로 복귀한다.

 

 

# 프로게이머 생활 13년

 

반대로 그 때문에 프로게이머 문호준이 아닌 '자연인 문호준'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지 않은가. 문호준이란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엔 프로게이머 외에도 학생, 청년 등 다양한 요소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스팟라이트 아래 모습을 주로 인식하고 더 엄한 기준을 들이대니까.

 

다행히 난 남의 눈치를 별로 안 보는 성격이라…. 욕 먹는다고 낑낑 앓진 않는다. 같이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웃음) 또 칭찬해주면 그건 또 좋아하고. 이런 성격 덕에 이 일을 오래 버텼던 것 같다. 반대로 이 일을 오래해서 이런 성격이 된 것 일수도 있고.

 

 

확실히 과거와 비교하면, 최근 사람들을 대하는데 관록(?)이 생긴 것 같더라.

 

아, 요즘엔 정말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도 닦는 기분이다. (웃음) 예전엔 짜증나면 나도 계속 말대꾸 해 일이 커졌는데, 아시다시피 이러면 상대방도 더 심해지지 않는가?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대꾸하지 말고 무시하자, 신경쓰지 말자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게 확실히 좋은 것 같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한 지 13년이 됐다. 이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주변에서 이 일 한다고 하면 말린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재능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도 크고, 설사 잘 해도 게임이 인기 없으면 그동안 투자한 것이 다 날아간다. 직장인의 직장은 계속 다니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순 있지만, 프로게이머의 게임은 그러기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진 못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해서 취업하라고 하지. 

 

나도 이 일을 시작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면, 좋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며 프로게이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엔 게이머로서 최고의 기량만 요구됐다면 이제 점점 엔터테이너나 스트리머로서의 덕목도 요구되는데….

 

프로게이머는 팬이 있어야 의미 있는 직업인데, 예전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대회장 와서 자기들끼리 대회하고 복귀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것 또한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프로게이머라면 게임도 잘 해야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팬들과 소통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이 없다면 게임도, 리그도, 프로게이머도 없을 테니까. 

 

 

간혹 개인 방송 때문에 맹목적인 비난을 받는 사례도 있지 않은가.

 

확실히 우리가 대회만 나왔다면 욕을 덜 먹겠지. 그런데 세상 모든 것이 좋은 것만,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 이 덕에 팬들과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또 힘을 얻는 경우도 있다. 장점과 단점이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판이나 비난을 받을 순 있겠지. 그런데 우리가 완벽초인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순 없지 않은가? 이걸 인정하니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 

 

 

 

# 23살 문호준의 현재, 그리고 미래

 

이제 23살이다. 문호준이라는 사람의 미래를 그린다면 어떨 것 같나?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무언가를 꿈꾼단 얘기인데, 나는 벌써 꿈을 2개나 이뤄서.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이뤘고, 1등이라는 꿈도 이뤘으니까. 현재 진행형으로 꿈을 이루고 있지.

 

그래서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기도 하고, 또 미래를 걱정하다 보면 생각 많아져 지금에 소홀할 것 같기도 해서. 아, 이건 내 성격 상 그럴 것 같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카트라이더>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문호준'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 지금은 1인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박인수 선수나 유영혁 선수 등이 같이 거론되니까. (웃음)

 

2019 카트라이더 리그 시즌 1 당시 'Flame' 팀 사진. (출처: 문호준 선수 유튜브 커뮤니티)

 

 

그래도 지금 목표가 양대 리그 우승이 아니라 다행이다. 지난 리그에서 양대 리그 우승하면 은퇴하려 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그걸 기억할 줄이야. 생각해보면 '듀얼 레이스 시즌 3'(*)에서 은퇴했어야 했다. (웃음) 거기서 양대 우승을 하니 이후 기대도 더 커지고 부담도 커져서…. 승자예측 같은 코너에서 팬 분들은 나를 믿고 찍어주셨겠지만, 그런 믿음 때문에 그 높은 퍼센트가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오더라.

 

이번 리그는 10년 만에 열린 야외 결승전이었다. 내겐 정말 감회가 새로운 무대였다. 이런 자리가 또 언제 올지 몰라, 만약 양대 우승을 하면 멋지게 은퇴하고 싶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지. 그런데 양대 리그 우승을 못했으니 계속 선수해야지. 할 수 있을 때까지. 

 

※ 듀얼 레이스 시즌 3: 넥슨이 2018년 초 개최한 카트라이더 리그. 문호준 선수는 이 리그에서 개인전·팀전 양대 리그 우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런 부담을 느끼고 있음에도 계속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겠다는 게 놀랍다.

 

솔직히 개인전도 우승 못했다면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전에선 우승했고 팀전도 아깝게 져서, 다음에도 좋은 성적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고. 개인전만 우승하고 은퇴하긴 아쉽지 않은가? 언젠간 은퇴를 할 텐데 이왕이면 멋있게 은퇴하고 싶다.

 

어쩌다 은퇴 얘기가 나왔는데, 그렇다고 바로 은퇴하겠단 얘긴 아니다. 일단 양대 우승이라는 것 자체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니까. 양대 리그 우승하면 은퇴하겠단 얘기는 어떤 의미에선 그런 기록 다시 세울 때까지 해먹겠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웃음) 또 은퇴를 해도 개인 방송 같은 <카트라이더> 관련 활동은 계속 할 것이고.

 

2019 카트라이더 리그 시즌1 결승전은 넥슨 아레나가 아니라 광운대학교 체육관에서 개최됐다. 리그 결승전이 넥슨 아레나 외에 다른 곳에서 열린 것은 10여 년 만이다.  

 

 

만약 은퇴를 한다면, e스포츠 쪽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게임쪽에 몸 담갔으니 감독이나 플레잉코치를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내가 코칭한 선수들이 우승하는 것을 보고 싶다. 정말 기분 좋지 않을까? 선수의 우승은 자신의 기량만 끌어 올리면 할 수 있지만, 감독이나 코치의 우승은 '다른 사람들'의 기량을 끌어 올려야 하니까. 

 

 

문호준 선수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한 때 문호준 선수의 감독이자 코치였으니까.

 

확실히 그 때 나보다 아버지가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또 감독이나 코치는 부스 밖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보지 않는가. 큰 화면으로 내가 키운 선수들의 우승을 보면 정말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0년 만에 온 야외 결승전이었는데, 팀전 우승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팬 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에 개인전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다음 리그 성적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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