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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정의로움을 점수로 환산할 수 있을까, 신작 ‘리갈던전’으로 돌아온 소미(Somi) 인터뷰

세이야 (반세이 기자) | 2019-05-06 10: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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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사건: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

 

2010년 6월, 서울 양천경찰서 강력팀 성 아무개 팀장 등 4명이 구속됐다. 이른바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은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이모(45)씨는 해당 수사관들이 범행을 자백하라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다음 폭행했다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20여 년 만에 발생한 고문 사건에 세상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고문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어두운 과거의 표상이었다. 언론은 연일 수사 상황을 상세히 전하며 해당 경찰들을 비판하는 논설을 쏟아냈다. 

두 번째 사건: 항명 파동

 

두 번째 사건은 그로부터 얼마 뒤 일어났다. 채수창 강북경찰청장이 양천서 사건과 관련해 상관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항명 파동’이 발생한 것이다.  

 

채 청장은 “양천서 고문 사건은 단지 경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성과주의와 상명하복 경찰 문화에 이유가 있다”라며 성과 점수제를 만들고 정착시킨 조 청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조 청장은 “꼴지 서장의 항변일 뿐, 한정된 경찰력으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성과주의는 필요하다”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리갈던전>은 소미의 죄책감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첫 번째 게임 <레츠놈>을 통해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아빠의 귀여운 죄책감을, <레플리카>에는 법치주의를 가장해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를 보며 느낀 무거운 죄책감을 담았다.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과 항명파동은 소미의 뇌리에 깊게 남아 세 번째 죄책감으로 응축됐다. 

 

<리갈던전>은 경찰 조직이 직면한 성과주의의 딜레마를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시지만큼이나 무거운 게임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진실은 점점 뚜렷해지지만 확신은 흐릿해져만 간다. 하지만 소미는 전작에서처럼 마술같은 솜씨로 응축된 의미를 한 올 한 올 풀어낸다. “무거운 주제지만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다.”라는 말은 얼핏 자신감처럼 느껴진다. 

 

디스이즈게임이 신작 <리갈던전>으로 돌아온 인디게임 개발자 소미를 만났다. <리갈던전>은 5월 7일, 스팀을 통해 출시된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지원한다.  

 

 

2016년 개발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게임이 늦게 나왔다.

 

한참 늦게 나왔지. 처음 구상할 당시엔 1년 내에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아무 것도 못했다. 작년 초부터 게임과 관련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다. 아내랑 아이랑.

 

 

왜 그런 결심을 했나.

 

전업 개발자가 아니라서 일과 시간엔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게임을 만든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회사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고, 관심도 떨어지더라. 그게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가족과 보내야 하는 시간을 게임 개발에 투자하니 가족과 멀어지는 것 같았다. 불화도 생겼다.

 

전체적으로 삶을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어느 정도 직업에 대한 애착이 다시 생겼고 일도 재밌어졌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힘이 생기더라. 그리고 2018년 10월쯤부터 다시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을 재개하고 게임이 금방 나왔다. 이미 많이 만들어 놨나 보다.

 

스토리라인 기획 할 때부터 전체적인 구상은 돼 있었고, 에피소드도 다 만들어져 있었다. 그 상황에서 1년 정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지. 게임 완성은 진작 했는데 번역 이슈로 시간이 좀 걸렸다. 

 

 

<리갈던전>이 어떤 게임인지 소개해 달라.

 

<리갈던전>은 2007년 2월, 경찰대를 막 졸업해 형사팀장으로 부임한 신출내기가 2007년 말까지 한 해 동안 겪는 일들을 그린 게임이다. 형사팀장은 형사들이 제출한 수사 자료와 판례, 법령을 검토해 사건의 최종 결과를 종합한 ‘의견서’를 작성하게 되며 이 의견서는 검찰로 보내진다. 판결에 내려진 후에는 실제 판결과 의견서 사이에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를 등급으로 평가받는다. 판결과 의견서의 내용이 비슷할수록 높은 등급을 받게 된다.

 

 

 

게임에는 모욕부터 살인까지 각 범죄별로 에피소드(사건)가 존재한다. 유저는 사건을 만나고, 자료를 검토해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는 것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료하게 된다. 에피소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에피소드들을 아우르는 전체 스토리도 있다. 엔딩은 14개다. 

 

의견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마치 타이핑하는 것처럼 만들려고 했다. 유의미한 정보를 찾는 과정은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대사 등을 통해서는 형사팀장이 사건을 서류로만 접했을 때 겪을 수 있는 당황스러움이나 심리적인 갈등 같은 것들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했다. 

 

 

 

경찰관이 사건을 해결하며 겪는 여러 과정이 있을텐데, 하필 서류 작성을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피의자가 죄를 지었다 안 지었다 판단하는 과정이 게임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를 해치우면 보상을 얻지 않나. 실제 경찰 조직에서도, <리갈던전>의 경찰 조직에서도 범죄별로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경찰대를 막 졸업한 신입 간부는 보통 활동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서류만 보고 사건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 작성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수사 내용을 담은 서류들, 성과 점수표, 판례와 법령, 서류를 결제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인들, 예를 들면 팀원의 승진이나 상사와의 사회적 관계 같은 것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을 마주했을 때 사건 내용이나 관련된 사람들의 상황, 그들의 감정을 고려할 여유는 없다. 자연스럽게 ‘사회 정의의 바로미터로 세워진 점수표에 따라 피의자를 검거하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 점수를 얻는 것이 사회 정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게임의 주제는 분명하다. 그걸 말로 하면 촌스러우니까 게임으로 만든건데, 아마 게임을 해 보시면 유저 분들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성과점수제인가, 사건을 실제로 보지 않고 의견서를 쓰는 것인가.

 

사건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서류를 쓰는 게 문제라고 얘기하려던 것은 아니다. 그건 수사하는 과정을 좀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어서 넣은 부분이다. 

 

형사팀장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서원들을 승진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판례와 비슷한 결과를 내야 법집행 점수를 높게 받는다는 점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이런 과정과 환경 속에서 과연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두 번째 에피소드가 ‘무가지 절도 사건’을 다루고 있다. 파지 줍는 노인이 무료 신문을 훔쳐 기소된 이야기다. 이건 실제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는 절도로 송치돼서 벌금형을 받았는데, 그것이 절도인가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게임을 구상한 것은 그런 일들이 한참 많이 이뤄지던 시기다. 점수표라는게, 정량적인 부분은 만점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부족하면 채우기 위해 뭐든 할 수밖에 없다. 사건이라는게 필요할 때 일어나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뭐든 건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판례나 법령 상으로는 당연히 절도에 해당하고, 기소하면 점수를 얻게 된다.  

 

성과점수제가 도입된 이유는 한정된 경찰력으로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그러면 파지 줍는 노인을 기소하고 점수를 얻는 것은 사회 정의에 얼마나 가까운 일인가. 여기서 경찰관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나,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쭉 이어나가게 된다. 내가 목격한 사건에서 느낀 죄책감을 하나하나의 사례들로 풀어나가고 싶었다. 

 

 

 

무가지 사건의 죄책감은 무엇이었나.

 

법령에 정해진 요건을 만족했을 때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처벌받는 엄격한 법치주의 국가에서 피의자나 피해자의 상황을 어느 정도까지 고려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게임 내 무가지 사건의 경우 파지 줍는 노인이 특수절도죄를 범한 것으로 그려진다. 단순 절도가 아닌 이유는 무가지를 허가없이 가져가는 과정에서 손녀가 노인을 도왔기 때문이다.   

 

피의자를 절도범으로 입건하고 송치하는 것으로 경찰의 임무는 완성인데, 결국 경찰이 해야 하는 것이 공공의 안녕, 질서 보호, 법질서 확립이라면 ‘무가지 절도범 두 사람을 기소함으로써 그 목표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를 많이 수정했다고 하던데.

 

처음과 끝은 만들어져 있었는데, 세부 에피소드를 많이 수정했다. 피의자와 피해자를 어떤 인물로 설정할 지, 개별 범죄 사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얘기할 지, 범죄 사실의 특정 부분을 넣을 지 말 지 등이다.

 

인물을 설정하는 과정에서는 성별이 남성이냐 여성이냐, 아동이냐 성인이냐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의자는 남성이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나 아이다. 이 내용을 게임에 적용하는 것이 편견을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또 다른 피해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비록 이게 픽션이라 하더라도 토대는 현실에 있다. 그래서 실제 범죄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닐까. 범죄의 내용을 드러내는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범죄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복합적인 고민이 있었다.  

 

 

 

게임 내 인물 설정이 편견을 강화한다?

 

경찰 내부에서 사회적인 약자로 지칭하는 범주가 있다.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내용이니 그렇게 묶어 놨겠지.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그들은 실질적 약자기 때문에 대부분의 범죄 피해를 입는다. 스토리를 만들어 놓고 보니 나도 사회적 약자를 피해자들로 설정했더라.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다, 피해를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을 사회적 약자로 재차 범주화 시켜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여성은 가정 폭력과 성폭력, 아동은 아동학대의 대상이 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가해자의 범주 역시 강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인물 설정은 결론적으로 좀 다듬어졌다. 성별이 바뀐 경우도 있고,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나이를 좀 높이기도 했다. 피해자가 어릴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잔혹함 정도가 굉장히 달라서.  

 

 

 

어떤 에피소드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나?

 

가정폭력 에피소드다. 경찰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가정 폭력 사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한창 논란이 컸고. (가정폭력을 개인사로 치부하는?) 맞다. ‘신고했더니 미온적으로 대처하더라’ 같은. 이런 얘기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신고 내용에 포함된 폭행 상황, 녹취된 음성, 사건 현장의 처참함... 그런 게 표현되면 유저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돼서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가정 폭력 사건은 넣지 말까 생각도 들었고. 에피소드에 가정 폭력 가정의 아이가 나오는데, 가상 인물에 대한 학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내용에 대한 판단은 유저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관계를 최대한 담담히 서술했다.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했지만, 그것을 게임의 재미나 이야기의 극적 전개를 위해 이용하지는 않았다.  

 

 

 

만드는 과정이 아주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이렇게 게임을 고민하며 만든 적이 있었나 싶었다. 위에서 말한 고민들 외에도 게임에 대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게임이든 영화든 인물들이 틀에 박힌 대사를 하면 작품 자체가 굉장히 경박해지더라고. 그런 것들 피하려고도 많이 노력했고. 얘는 부패에 찌든 경찰이니까, 얘는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니까 하면서 클리셰처럼 하는 대사들. 그런 것들을 배재하려 했다. 유치해 지지 않으려 대화를 많이 수정했다. 

 

 

 

현직 경찰들이 해 보면 좋을까.

 

추천하고 싶다.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들은 특별함을 못 느낄 거라 생각한다. 아주 일상적인 행위라서 별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일부러 게임을 지루하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많이 읽어야 알 수 있는 게임이다. 지루하게 만들었다기보단, 게임을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한 장치를 굳이 넣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경찰들이 겪는 일과 감정을 최대한 잘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유저들이 많이 안 하지 않겠나. 많이 팔릴 것 같나. 

 

잘 안 팔릴 것 같다. 누가 굳이 이런 게임을. (웃음) 게임은 천천히 해 볼 것을 추천드린다. 에피소드 1에서는 서류가 고작 일곱 장이지만 마지막엔 마흔 장이 넘어간다. 서류도 판례도 꼼꼼히 보면서 해 보시길 바란다.  

 

 


 첫 번째 사건: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

 

2010년 6월, 서울 양천경찰서 강력팀 성 아무개 팀장 등 4명이 구속됐다. 이른바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은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이모(45)씨는 해당 수사관들이 범행을 자백하라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다음 폭행했다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20여 년 만에 발생한 고문 사건에 세상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고문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어두운 과거의 표상이었다. 언론은 연일 수사 상황을 상세히 전하며 해당 경찰들을 비판하는 논설을 쏟아냈다. 

두 번째 사건: 항명 파동

 

두 번째 사건은 그로부터 얼마 뒤 일어났다. 채수창 강북경찰청장이 양천서 사건과 관련해 상관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항명 파동’이 발생한 것이다.  

 

채 청장은 “양천서 고문 사건은 단지 경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성과주의와 상명하복 경찰 문화에 이유가 있다”라며 성과 점수제를 만들고 정착시킨 조 청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조 청장은 “꼴지 서장의 항변일 뿐, 한정된 경찰력으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성과주의는 필요하다”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리갈던전>은 소미의 죄책감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첫 번째 게임 <레츠놈>을 통해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아빠의 귀여운 죄책감을, <레플리카>에는 법치주의를 가장해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를 보며 느낀 무거운 죄책감을 담았다.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과 항명파동은 소미의 뇌리에 깊게 남아 세 번째 죄책감으로 응축됐다. 

 

<리갈던전>은 경찰 조직이 직면한 성과주의의 딜레마를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시지만큼이나 무거운 게임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진실은 점점 뚜렷해지지만 확신은 흐릿해져만 간다. 하지만 소미는 전작에서처럼 마술같은 솜씨로 응축된 의미를 한 올 한 올 풀어낸다. “무거운 주제지만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다.”라는 말은 얼핏 자신감처럼 느껴진다. 

 

디스이즈게임이 신작 <리갈던전>으로 돌아온 인디게임 개발자 소미를 만났다. <리갈던전>은 5월 7일, 스팀을 통해 출시된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지원한다.  

 

 

2016년 개발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게임이 늦게 나왔다.

 

한참 늦게 나왔지. 처음 구상할 당시엔 1년 내에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아무 것도 못했다. 작년 초부터 게임과 관련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다. 아내랑 아이랑.

 

 

왜 그런 결심을 했나.

 

전업 개발자가 아니라서 일과 시간엔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게임을 만든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회사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고, 관심도 떨어지더라. 그게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가족과 보내야 하는 시간을 게임 개발에 투자하니 가족과 멀어지는 것 같았다. 불화도 생겼다.

 

전체적으로 삶을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어느 정도 직업에 대한 애착이 다시 생겼고 일도 재밌어졌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힘이 생기더라. 그리고 2018년 10월쯤부터 다시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을 재개하고 게임이 금방 나왔다. 이미 많이 만들어 놨나 보다.

 

스토리라인 기획 할 때부터 전체적인 구상은 돼 있었고, 에피소드도 다 만들어져 있었다. 그 상황에서 1년 정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지. 게임 완성은 진작 했는데 번역 이슈로 시간이 좀 걸렸다. 

 

 

<리갈던전>이 어떤 게임인지 소개해 달라.

 

<리갈던전>은 2007년 2월, 경찰대를 막 졸업해 형사팀장으로 부임한 신출내기가 2007년 말까지 한 해 동안 겪는 일들을 그린 게임이다. 형사팀장은 형사들이 제출한 수사 자료와 판례, 법령을 검토해 사건의 최종 결과를 종합한 ‘의견서’를 작성하게 되며 이 의견서는 검찰로 보내진다. 판결에 내려진 후에는 실제 판결과 의견서 사이에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를 등급으로 평가받는다. 판결과 의견서의 내용이 비슷할수록 높은 등급을 받게 된다.

 

 

 

게임에는 모욕부터 살인까지 각 범죄별로 에피소드(사건)가 존재한다. 유저는 사건을 만나고, 자료를 검토해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는 것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료하게 된다. 에피소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에피소드들을 아우르는 전체 스토리도 있다. 엔딩은 14개다. 

 

의견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마치 타이핑하는 것처럼 만들려고 했다. 유의미한 정보를 찾는 과정은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대사 등을 통해서는 형사팀장이 사건을 서류로만 접했을 때 겪을 수 있는 당황스러움이나 심리적인 갈등 같은 것들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했다. 

 

 

 

경찰관이 사건을 해결하며 겪는 여러 과정이 있을텐데, 하필 서류 작성을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피의자가 죄를 지었다 안 지었다 판단하는 과정이 게임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를 해치우면 보상을 얻지 않나. 실제 경찰 조직에서도, <리갈던전>의 경찰 조직에서도 범죄별로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경찰대를 막 졸업한 신입 간부는 보통 활동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서류만 보고 사건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 작성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수사 내용을 담은 서류들, 성과 점수표, 판례와 법령, 서류를 결제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인들, 예를 들면 팀원의 승진이나 상사와의 사회적 관계 같은 것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을 마주했을 때 사건 내용이나 관련된 사람들의 상황, 그들의 감정을 고려할 여유는 없다. 자연스럽게 ‘사회 정의의 바로미터로 세워진 점수표에 따라 피의자를 검거하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 점수를 얻는 것이 사회 정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게임의 주제는 분명하다. 그걸 말로 하면 촌스러우니까 게임으로 만든건데, 아마 게임을 해 보시면 유저 분들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성과점수제인가, 사건을 실제로 보지 않고 의견서를 쓰는 것인가.

 

사건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서류를 쓰는 게 문제라고 얘기하려던 것은 아니다. 그건 수사하는 과정을 좀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어서 넣은 부분이다. 

 

형사팀장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서원들을 승진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판례와 비슷한 결과를 내야 법집행 점수를 높게 받는다는 점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이런 과정과 환경 속에서 과연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두 번째 에피소드가 ‘무가지 절도 사건’을 다루고 있다. 파지 줍는 노인이 무료 신문을 훔쳐 기소된 이야기다. 이건 실제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는 절도로 송치돼서 벌금형을 받았는데, 그것이 절도인가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게임을 구상한 것은 그런 일들이 한참 많이 이뤄지던 시기다. 점수표라는게, 정량적인 부분은 만점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부족하면 채우기 위해 뭐든 할 수밖에 없다. 사건이라는게 필요할 때 일어나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뭐든 건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판례나 법령 상으로는 당연히 절도에 해당하고, 기소하면 점수를 얻게 된다.  

 

성과점수제가 도입된 이유는 한정된 경찰력으로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그러면 파지 줍는 노인을 기소하고 점수를 얻는 것은 사회 정의에 얼마나 가까운 일인가. 여기서 경찰관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나,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쭉 이어나가게 된다. 내가 목격한 사건에서 느낀 죄책감을 하나하나의 사례들로 풀어나가고 싶었다. 

 

 

 

무가지 사건의 죄책감은 무엇이었나.

 

법령에 정해진 요건을 만족했을 때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처벌받는 엄격한 법치주의 국가에서 피의자나 피해자의 상황을 어느 정도까지 고려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게임 내 무가지 사건의 경우 파지 줍는 노인이 특수절도죄를 범한 것으로 그려진다. 단순 절도가 아닌 이유는 무가지를 허가없이 가져가는 과정에서 손녀가 노인을 도왔기 때문이다.   

 

피의자를 절도범으로 입건하고 송치하는 것으로 경찰의 임무는 완성인데, 결국 경찰이 해야 하는 것이 공공의 안녕, 질서 보호, 법질서 확립이라면 ‘무가지 절도범 두 사람을 기소함으로써 그 목표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를 많이 수정했다고 하던데.

 

처음과 끝은 만들어져 있었는데, 세부 에피소드를 많이 수정했다. 피의자와 피해자를 어떤 인물로 설정할 지, 개별 범죄 사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얘기할 지, 범죄 사실의 특정 부분을 넣을 지 말 지 등이다.

 

인물을 설정하는 과정에서는 성별이 남성이냐 여성이냐, 아동이냐 성인이냐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의자는 남성이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나 아이다. 이 내용을 게임에 적용하는 것이 편견을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또 다른 피해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비록 이게 픽션이라 하더라도 토대는 현실에 있다. 그래서 실제 범죄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닐까. 범죄의 내용을 드러내는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범죄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복합적인 고민이 있었다.  

 

 

 

게임 내 인물 설정이 편견을 강화한다?

 

경찰 내부에서 사회적인 약자로 지칭하는 범주가 있다.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내용이니 그렇게 묶어 놨겠지.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그들은 실질적 약자기 때문에 대부분의 범죄 피해를 입는다. 스토리를 만들어 놓고 보니 나도 사회적 약자를 피해자들로 설정했더라.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다, 피해를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을 사회적 약자로 재차 범주화 시켜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여성은 가정 폭력과 성폭력, 아동은 아동학대의 대상이 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가해자의 범주 역시 강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인물 설정은 결론적으로 좀 다듬어졌다. 성별이 바뀐 경우도 있고,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나이를 좀 높이기도 했다. 피해자가 어릴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잔혹함 정도가 굉장히 달라서.  

 

 

 

어떤 에피소드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나?

 

가정폭력 에피소드다. 경찰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가정 폭력 사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한창 논란이 컸고. (가정폭력을 개인사로 치부하는?) 맞다. ‘신고했더니 미온적으로 대처하더라’ 같은. 이런 얘기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신고 내용에 포함된 폭행 상황, 녹취된 음성, 사건 현장의 처참함... 그런 게 표현되면 유저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돼서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가정 폭력 사건은 넣지 말까 생각도 들었고. 에피소드에 가정 폭력 가정의 아이가 나오는데, 가상 인물에 대한 학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내용에 대한 판단은 유저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관계를 최대한 담담히 서술했다.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했지만, 그것을 게임의 재미나 이야기의 극적 전개를 위해 이용하지는 않았다.  

 

 

 

만드는 과정이 아주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이렇게 게임을 고민하며 만든 적이 있었나 싶었다. 위에서 말한 고민들 외에도 게임에 대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게임이든 영화든 인물들이 틀에 박힌 대사를 하면 작품 자체가 굉장히 경박해지더라고. 그런 것들 피하려고도 많이 노력했고. 얘는 부패에 찌든 경찰이니까, 얘는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니까 하면서 클리셰처럼 하는 대사들. 그런 것들을 배재하려 했다. 유치해 지지 않으려 대화를 많이 수정했다. 

 

 

 

현직 경찰들이 해 보면 좋을까.

 

추천하고 싶다.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들은 특별함을 못 느낄 거라 생각한다. 아주 일상적인 행위라서 별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일부러 게임을 지루하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많이 읽어야 알 수 있는 게임이다. 지루하게 만들었다기보단, 게임을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한 장치를 굳이 넣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경찰들이 겪는 일과 감정을 최대한 잘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유저들이 많이 안 하지 않겠나. 많이 팔릴 것 같나. 

 

잘 안 팔릴 것 같다. 누가 굳이 이런 게임을. (웃음) 게임은 천천히 해 볼 것을 추천드린다. 에피소드 1에서는 서류가 고작 일곱 장이지만 마지막엔 마흔 장이 넘어간다. 서류도 판례도 꼼꼼히 보면서 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