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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19] 28년차 콘솔 액션 개발자의 좌충우돌 로망 구현기. 드래곤하운드

다미롱 (김승현 기자) | 2019-04-25 01: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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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하운드>를 개발하고 있는 '이현기' 디렉터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개발자다. 그를 간단히 말하면 경력 28년의 '콘솔 액션 게임' 개발자라고 할 수 있다. Xbox 버전 '킹덤 언더 파이어' 시리즈를 만든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콘솔 게임 시장에서 보냈다. 심지어 첫 작품인 <디어사이드 3>는 PC 패키지 게임이다.

 

그가 넥슨에 처음 들어와 잡았던 프로젝트는 모바일 게임이었다. 그게 접힌 이후에도 그는 <링토스 세계여행>, <마비노기 듀얼> 같은 모바일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8년, 하향세라 인식되는 PC 온라인 게임, 그것도 국내에서 대중적이라 하기 힘든 헌팅 액션 스타일의 게임으로 대중에게 돌아왔다. 그가 이런 마니악해 보이는 게임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현기 디렉터가 <드래곤하운드>의 개발을 결심했을 때부터 개발 중 겪었던 어려움까지, 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넥슨 데브켓스튜디오 이현기 디렉터

 

이현기 디렉터의 커리어 대부분은 콘솔 액션 게임으로 구성돼 있다. 그가 만든 Xbox 버전 '킹덤 언더 파이어' 시리즈는 당시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에게 아직도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넥슨에 합류한 2013년 한국 게임계는 더 이상 콘솔 액션 게임의 자리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 또한 넥슨에 와 처음 만든 게임은 <드래곤하운드>의 모바일 횡스크롤 버전이라 할 수 있는(이렇게 말하면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게임 기믹은 앵그리버드와 흡사했던 라이트한 게임이었다) 프로젝트였고 이 마저도 끝까지 가지 못했다. 이후 그는 <링토스 세계여행>, <마비노기 듀얼> 등 모바일 프로젝트만 참여했다.

 

이현기 디렉터가 넥슨에 들어와 처음 만든, <드래곤하운드>의 시초격인 모바일 프로젝트

 

반평생을 콘솔 액션 게임을 만들어서 그럴까? 모바일게임을 만들며 그의 마음에는 무언가 설명하지 못할 미련이 계속 남아 있었다. 당시 그가 만드는 게임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움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현기 디렉터에겐 두려움이 더 컸다. 숙련된 개발자인 그에게 새로운 게임이란 (살아 남으려면) 참고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개발 속도로 막대한 개발량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게임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었고, 신작이 살아남는 것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무엇보다 반평생 콘솔 액션 게임을 만든 그는 시장의 주류인 모바일의 재미를 이해하고 흉내 낼 수 없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지만, 주류 시장에서 다른 게임과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살아남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 마상 수렵부터 중화기까지. 아저씨들이 가진 로망의 총집합

 

이현기 디렉터는 '재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재미를 찾진 않았다. 그가 롤모델로 삼던 유명 개발자들은 시장에서 흔적을 찾기 힘들어진지 오래였고, 시장의 주류는 그에게 별세계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가보려 한 것이었다. 배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원초적'인 재미를 찾고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로망'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로망,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꿈꿨던 로망, 청소년 시절 어른들 몰래 재패니메이션을 보며 꿈꿨던 로망. 이런 수많은 로망은 이현기 디렉터에게 많은 영감을 줬고, 그를 <드래곤하운드>라는 헌팅 액션 스타일의 게임, PC 온라인 액션 게임으로 이끌었다.

 

예를 들어 말 타고 용을 잡는다는 콘셉트는 남자 아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꿈꿨던 '마상 수렵'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이현기 디렉터가 초점 맞춘 것은 무언가를 재미를 위해 죽인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의 숨결을 빼앗았을 때의 변화가 만드는 (아마 옛 사람들이 신성시했을) 사냥의 숭고함이었다. 

 

나를 보고 움직이고 반응하는 살아 있는 무언가가 내 손에 의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생명이 떠난 무언가로 변해가는 과정. 이런 '생기'(生氣)의 변화는 그가 <드래곤하운드>를 개발하는데 많은 모티브를 줬다. 

 

 

또다른 모티브는 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붉은돼지' 같은 재패니메이션이 국내에 알려져 인기를 얻었을 무렵이다. 그는 이런 80~90년대 같은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 당시 꿈꿨던 로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1차 세계대전 수준의 과학 기술, 부적과 같은 주술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드래곤하운드>의 차이니즈 고딕 스팀 펑크 세계였다. 그는 이 세계를 구상하며 처마, 함포, 용, 말, 부적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로망을 적극 차용했다.

 

이현기 디렉터의 말을 빌리면 "민트초코에 홍어삼합을 올린 것 같은" 기이한 결합이었다. 하지만 이 콘셉트는 구룡성채나 종로 조계종 총무원 같은 실제 사례, 스팀 펑크나 차이니즈 고딕이라는 장르적 문법을 통해 잘 구현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유저들이 무장해 용과 대적할 장비였다. 이 부분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총이나 전차, 비행기 같은 장난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드래곤하운드>의 묵직한 중화기, 중완이라는 기계 갑옷, 마을에서 쏟아지는 지원 포격 등은 이런 모티브에서 나온 요소다.

 

 

 

# 살아 움직이는 용을 로망 넘치는 무기로 수렵하라

 

그렇다면 로망들이 준 모티브는 어떻게 구체화됐을까? 시작은 '용'이었다. 그가 넥슨에서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의 영향도 있었고, 무엇보다 용이라는 강대한 존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실감나는 수렵 경험을 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다마고치처럼 용을 키우는 게임을 만들려 했지만, 이후 헌팅 액션 스타일로 바뀌었다)

 

이를 위해 <드래곤하운드> 팀은 용에게 자유로운 움직임, 실감나는 움직임을 선사하기 위해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절차적 애니메이션이란 애니메이터가 몬스터의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AI가 몬스터의 기본적인 움직임 프리셋과 현재 처한 환경 등을 연산해 그 때 그 때 적절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장치다. 

 

용이라는 거대 몬스터에게 뛰거나 날거나 기는 등 자유롭고 다채로운 움직임을 주기 위해 고안한 시스템이다. (물론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통해 개발 리소스를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다)

 

 

움직임 다음은 생태였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몸이나 장기가 다치면 그에 걸맞은 반응까지 하는 '살아 있는'(있어 보이는) 몬스터를 수렵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피부와 장기, 뼈 등의 개념이 추가됐다. 

 

이를 통해 눈을 다치면 못 보고 폐를 다치면 헉헉대고 불꽃샘을 다치면 불을 뿜지 못하고, 뇌나 심장을 파괴할 수 있으면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용이 탄생했다. 단순히 부위 파괴 개념이 아니라, 피부 부위마다 인장강도와 경도가 다 설정돼 있어 효과적인 공격 타입이 다르고 장기를 파괴하기 위해선 탄을 관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파열시켜야 하는 현실에 가까워 '보이는' 시스템이다. 

 

현실적이진 않더라도 사실적인 움직임과 기믹을 통해 진짜(?) 사냥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다.

 

총알 하나로 입천장을 관통해 뇌까지 파괴한 영상. 이처럼 그럴싸 해 보이는 약점 공략을 구현하는 게 <드래곤하운드>의 목표다.

 

유저들이 사용할 장비를 구현할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멋있어 보이는 것, 그리고 사실적인 것보다 '그럴싸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무기 디자인부터 중화기·기계에 대한 로망을 잔뜩 담았다. 예를 들어 신기전처럼 보이는 화전이란 무기는 '유도' 기능이 있어 마지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다탄두 유도 미사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중화기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틀링포다 '가특림포'라고 그럴싸하게 음차해 구현했다. 중화기를 유저가 혼자 다룰 수 있는 당위성은 '중완'이라는 기계 갑옷을 통해 확보했다. (물론 중완 벗고 개인화기를 쓰는 것도 가능)

 

중화기를 쏘는 것 또한 충격파나 불꽃 묘사뿐만 아니라, 급탄이나 가스 배출, 포연 등의 후속 여파도 충실히 구현했다. 특히 포연, 폭발로 인한 먼지 등은 유저가 가로지르면 옷에 먼지 묻는 것까지 구현할 정도로 개발팀이 특별히 신경써 연출했다. 무기를 쏠 때 나오는 불꽃은 순간이지만, 이후 전장에 남는 먼지 구름과 포연은 더 오래 보이고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용을 잡으려 만든 게임이 개발자, 유저들을 잡을 뻔한 사연

 

이런 로망을 구현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뒤따랐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는 시스템을 개발하다 보니 문제는 더 크고 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복잡도'였다. <드래곤하운드>의 콘셉트는 '말 타고 사실적인 용을 잡는다'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치와 수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사실적인 용'이라는 단어 아래는 용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하는 인공지능과 자유로운 행동에 걸맞은 애니메이션, 사실적인 사냥을 위한 각종 장기 피부 유형, (신체가 파괴됐을 때의) 기능 저하 값과 패턴 등을 구현해야만 했다. 

 

이현기 디렉터가 나중에 정리해보니 몬스터 하나에 필요한 각종 수치가 1400여 개에 달했다. 이건 무기도 마찬가지다. 무기도 한 종류의 탄환만 쓰는 화기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 약 80개의 수치가 필요했다. 유저가 피해 받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선 중방패, 중완, 갑옷, 캐릭터, 속상 유불리 등에 따른 수치 변화를 설계하고 계산해야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용을 잡으려고 만든 게임이 사람을 잡을 정도였다. 사실적인 사냥, 유저가 파고 들 수 있는 것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개발팀의 복잡도 관련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에는 유저들에게 이런 시스템을 얼마나, 어느 속도로 학습시키느냐는 문제가 대두됐다. <드래곤하운드> 개발팀이 구현한 모든 것을 바로 유저에게 공개하면 너무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십중팔구는 떠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턴 고생해 만든 것을 하나 하나 감추는 일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말·개인화기만 제공하고 중반부엔 중완과 중화기(이 단계에서 일부 기능 뺀 것이 지스타 2018 시연버전), 후반부엔 관통이나 도탄, 장기 파괴 같은 개념을 공개하는 식이었다. 이런 긴 '튜토리얼' 설계 작업이 끝나자 탄생한 것은 약 50시간에 달하는 튜토리얼 콘텐츠였다. 이 긴 학습 구간은 현재 <드래곤하운드>의 메인 스토리 콘텐츠로 탈바꿈되고 있다. 

 


 

 

# 좌충우돌 끝에 깨달은 것들

 

이현기 디렉터는 <드래곤하운드>가 지금까지 걸어온 개발 과정을 설명한 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청중에게 공유했다.

 

그가 가장 뼈저리게 느낀 문제는 심상의 공유다. 문장뿐인 기획안을 구성원들이 같은 것을 상상하게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모든 개발팀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드래곤하운드>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은 이 부분이 특히나 힘들다. 더군다나 보통 이런 주파수 통일은 결과물이 나와야만 합쳐지기 시작하는데, 새로운 것을 만드는 케이스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참고할 자료조차 없기 때문에 이게 더 힘들다. 이현기 디렉터는 이런 어려움을 설명하며 주파수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빨리 구현하기 위해 리더가 일선 개발자에게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의도한 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리더보다 실무자가 더 잘할뿐더러, 만약 리더가 바로 결과값을 제시한다면 실무자가 수동적으로 바뀌어 장기적으로 프로젝트 효율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이현기 디렉터는 실무자에게 전달해야 할 것은 구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독특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에게 또 하나 필요한 것은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무작정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그 '맥락'을 파악해 수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게임을 접하는 유저가 새로운 틀 안에서 피드백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자신의 게임 경험 안에서 피드백을 준다. 하지만 이것을 간과하고 피드백 그 자체만 수용하면 게임의 틀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개발자는 테스터가 어떤 의도로 이런 피드백을 줬는지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현기 디렉터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너무 잘하려 하지 말 것'이다. 대충 일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잘 하려는 마음 때문에 여유를 잃고, 이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걸 경계하라는 의미다. 

 

그는 "일하다 보면 바빠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이건 네 시야가 좁아졌고 짜증도 많이 낸다는 것을 점잖게 돌려 말한 거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나는 이걸 아는데 30년이 걸렸다"며 여유와 넓은 시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드래곤하운드>를 개발하고 있는 '이현기' 디렉터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개발자다. 그를 간단히 말하면 경력 28년의 '콘솔 액션 게임' 개발자라고 할 수 있다. Xbox 버전 '킹덤 언더 파이어' 시리즈를 만든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콘솔 게임 시장에서 보냈다. 심지어 첫 작품인 <디어사이드 3>는 PC 패키지 게임이다.

 

그가 넥슨에 처음 들어와 잡았던 프로젝트는 모바일 게임이었다. 그게 접힌 이후에도 그는 <링토스 세계여행>, <마비노기 듀얼> 같은 모바일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8년, 하향세라 인식되는 PC 온라인 게임, 그것도 국내에서 대중적이라 하기 힘든 헌팅 액션 스타일의 게임으로 대중에게 돌아왔다. 그가 이런 마니악해 보이는 게임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현기 디렉터가 <드래곤하운드>의 개발을 결심했을 때부터 개발 중 겪었던 어려움까지, 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넥슨 데브켓스튜디오 이현기 디렉터

 

이현기 디렉터의 커리어 대부분은 콘솔 액션 게임으로 구성돼 있다. 그가 만든 Xbox 버전 '킹덤 언더 파이어' 시리즈는 당시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에게 아직도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넥슨에 합류한 2013년 한국 게임계는 더 이상 콘솔 액션 게임의 자리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 또한 넥슨에 와 처음 만든 게임은 <드래곤하운드>의 모바일 횡스크롤 버전이라 할 수 있는(이렇게 말하면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게임 기믹은 앵그리버드와 흡사했던 라이트한 게임이었다) 프로젝트였고 이 마저도 끝까지 가지 못했다. 이후 그는 <링토스 세계여행>, <마비노기 듀얼> 등 모바일 프로젝트만 참여했다.

 

이현기 디렉터가 넥슨에 들어와 처음 만든, <드래곤하운드>의 시초격인 모바일 프로젝트

 

반평생을 콘솔 액션 게임을 만들어서 그럴까? 모바일게임을 만들며 그의 마음에는 무언가 설명하지 못할 미련이 계속 남아 있었다. 당시 그가 만드는 게임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움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현기 디렉터에겐 두려움이 더 컸다. 숙련된 개발자인 그에게 새로운 게임이란 (살아 남으려면) 참고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개발 속도로 막대한 개발량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게임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었고, 신작이 살아남는 것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무엇보다 반평생 콘솔 액션 게임을 만든 그는 시장의 주류인 모바일의 재미를 이해하고 흉내 낼 수 없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지만, 주류 시장에서 다른 게임과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살아남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 마상 수렵부터 중화기까지. 아저씨들이 가진 로망의 총집합

 

이현기 디렉터는 '재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재미를 찾진 않았다. 그가 롤모델로 삼던 유명 개발자들은 시장에서 흔적을 찾기 힘들어진지 오래였고, 시장의 주류는 그에게 별세계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가보려 한 것이었다. 배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원초적'인 재미를 찾고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로망'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로망,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꿈꿨던 로망, 청소년 시절 어른들 몰래 재패니메이션을 보며 꿈꿨던 로망. 이런 수많은 로망은 이현기 디렉터에게 많은 영감을 줬고, 그를 <드래곤하운드>라는 헌팅 액션 스타일의 게임, PC 온라인 액션 게임으로 이끌었다.

 

예를 들어 말 타고 용을 잡는다는 콘셉트는 남자 아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꿈꿨던 '마상 수렵'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이현기 디렉터가 초점 맞춘 것은 무언가를 재미를 위해 죽인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의 숨결을 빼앗았을 때의 변화가 만드는 (아마 옛 사람들이 신성시했을) 사냥의 숭고함이었다. 

 

나를 보고 움직이고 반응하는 살아 있는 무언가가 내 손에 의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생명이 떠난 무언가로 변해가는 과정. 이런 '생기'(生氣)의 변화는 그가 <드래곤하운드>를 개발하는데 많은 모티브를 줬다. 

 

 

또다른 모티브는 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붉은돼지' 같은 재패니메이션이 국내에 알려져 인기를 얻었을 무렵이다. 그는 이런 80~90년대 같은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 당시 꿈꿨던 로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1차 세계대전 수준의 과학 기술, 부적과 같은 주술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드래곤하운드>의 차이니즈 고딕 스팀 펑크 세계였다. 그는 이 세계를 구상하며 처마, 함포, 용, 말, 부적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로망을 적극 차용했다.

 

이현기 디렉터의 말을 빌리면 "민트초코에 홍어삼합을 올린 것 같은" 기이한 결합이었다. 하지만 이 콘셉트는 구룡성채나 종로 조계종 총무원 같은 실제 사례, 스팀 펑크나 차이니즈 고딕이라는 장르적 문법을 통해 잘 구현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유저들이 무장해 용과 대적할 장비였다. 이 부분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총이나 전차, 비행기 같은 장난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드래곤하운드>의 묵직한 중화기, 중완이라는 기계 갑옷, 마을에서 쏟아지는 지원 포격 등은 이런 모티브에서 나온 요소다.

 

 

 

# 살아 움직이는 용을 로망 넘치는 무기로 수렵하라

 

그렇다면 로망들이 준 모티브는 어떻게 구체화됐을까? 시작은 '용'이었다. 그가 넥슨에서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의 영향도 있었고, 무엇보다 용이라는 강대한 존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실감나는 수렵 경험을 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다마고치처럼 용을 키우는 게임을 만들려 했지만, 이후 헌팅 액션 스타일로 바뀌었다)

 

이를 위해 <드래곤하운드> 팀은 용에게 자유로운 움직임, 실감나는 움직임을 선사하기 위해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절차적 애니메이션이란 애니메이터가 몬스터의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AI가 몬스터의 기본적인 움직임 프리셋과 현재 처한 환경 등을 연산해 그 때 그 때 적절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장치다. 

 

용이라는 거대 몬스터에게 뛰거나 날거나 기는 등 자유롭고 다채로운 움직임을 주기 위해 고안한 시스템이다. (물론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통해 개발 리소스를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다)

 

 

움직임 다음은 생태였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몸이나 장기가 다치면 그에 걸맞은 반응까지 하는 '살아 있는'(있어 보이는) 몬스터를 수렵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피부와 장기, 뼈 등의 개념이 추가됐다. 

 

이를 통해 눈을 다치면 못 보고 폐를 다치면 헉헉대고 불꽃샘을 다치면 불을 뿜지 못하고, 뇌나 심장을 파괴할 수 있으면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용이 탄생했다. 단순히 부위 파괴 개념이 아니라, 피부 부위마다 인장강도와 경도가 다 설정돼 있어 효과적인 공격 타입이 다르고 장기를 파괴하기 위해선 탄을 관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파열시켜야 하는 현실에 가까워 '보이는' 시스템이다. 

 

현실적이진 않더라도 사실적인 움직임과 기믹을 통해 진짜(?) 사냥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다.

 

총알 하나로 입천장을 관통해 뇌까지 파괴한 영상. 이처럼 그럴싸 해 보이는 약점 공략을 구현하는 게 <드래곤하운드>의 목표다.

 

유저들이 사용할 장비를 구현할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멋있어 보이는 것, 그리고 사실적인 것보다 '그럴싸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무기 디자인부터 중화기·기계에 대한 로망을 잔뜩 담았다. 예를 들어 신기전처럼 보이는 화전이란 무기는 '유도' 기능이 있어 마지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다탄두 유도 미사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중화기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틀링포다 '가특림포'라고 그럴싸하게 음차해 구현했다. 중화기를 유저가 혼자 다룰 수 있는 당위성은 '중완'이라는 기계 갑옷을 통해 확보했다. (물론 중완 벗고 개인화기를 쓰는 것도 가능)

 

중화기를 쏘는 것 또한 충격파나 불꽃 묘사뿐만 아니라, 급탄이나 가스 배출, 포연 등의 후속 여파도 충실히 구현했다. 특히 포연, 폭발로 인한 먼지 등은 유저가 가로지르면 옷에 먼지 묻는 것까지 구현할 정도로 개발팀이 특별히 신경써 연출했다. 무기를 쏠 때 나오는 불꽃은 순간이지만, 이후 전장에 남는 먼지 구름과 포연은 더 오래 보이고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용을 잡으려 만든 게임이 개발자, 유저들을 잡을 뻔한 사연

 

이런 로망을 구현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뒤따랐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는 시스템을 개발하다 보니 문제는 더 크고 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복잡도'였다. <드래곤하운드>의 콘셉트는 '말 타고 사실적인 용을 잡는다'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치와 수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사실적인 용'이라는 단어 아래는 용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하는 인공지능과 자유로운 행동에 걸맞은 애니메이션, 사실적인 사냥을 위한 각종 장기 피부 유형, (신체가 파괴됐을 때의) 기능 저하 값과 패턴 등을 구현해야만 했다. 

 

이현기 디렉터가 나중에 정리해보니 몬스터 하나에 필요한 각종 수치가 1400여 개에 달했다. 이건 무기도 마찬가지다. 무기도 한 종류의 탄환만 쓰는 화기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 약 80개의 수치가 필요했다. 유저가 피해 받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선 중방패, 중완, 갑옷, 캐릭터, 속상 유불리 등에 따른 수치 변화를 설계하고 계산해야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용을 잡으려고 만든 게임이 사람을 잡을 정도였다. 사실적인 사냥, 유저가 파고 들 수 있는 것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개발팀의 복잡도 관련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에는 유저들에게 이런 시스템을 얼마나, 어느 속도로 학습시키느냐는 문제가 대두됐다. <드래곤하운드> 개발팀이 구현한 모든 것을 바로 유저에게 공개하면 너무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십중팔구는 떠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턴 고생해 만든 것을 하나 하나 감추는 일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말·개인화기만 제공하고 중반부엔 중완과 중화기(이 단계에서 일부 기능 뺀 것이 지스타 2018 시연버전), 후반부엔 관통이나 도탄, 장기 파괴 같은 개념을 공개하는 식이었다. 이런 긴 '튜토리얼' 설계 작업이 끝나자 탄생한 것은 약 50시간에 달하는 튜토리얼 콘텐츠였다. 이 긴 학습 구간은 현재 <드래곤하운드>의 메인 스토리 콘텐츠로 탈바꿈되고 있다. 

 


 

 

# 좌충우돌 끝에 깨달은 것들

 

이현기 디렉터는 <드래곤하운드>가 지금까지 걸어온 개발 과정을 설명한 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청중에게 공유했다.

 

그가 가장 뼈저리게 느낀 문제는 심상의 공유다. 문장뿐인 기획안을 구성원들이 같은 것을 상상하게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모든 개발팀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드래곤하운드>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은 이 부분이 특히나 힘들다. 더군다나 보통 이런 주파수 통일은 결과물이 나와야만 합쳐지기 시작하는데, 새로운 것을 만드는 케이스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참고할 자료조차 없기 때문에 이게 더 힘들다. 이현기 디렉터는 이런 어려움을 설명하며 주파수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빨리 구현하기 위해 리더가 일선 개발자에게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의도한 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리더보다 실무자가 더 잘할뿐더러, 만약 리더가 바로 결과값을 제시한다면 실무자가 수동적으로 바뀌어 장기적으로 프로젝트 효율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이현기 디렉터는 실무자에게 전달해야 할 것은 구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독특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에게 또 하나 필요한 것은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무작정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그 '맥락'을 파악해 수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게임을 접하는 유저가 새로운 틀 안에서 피드백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자신의 게임 경험 안에서 피드백을 준다. 하지만 이것을 간과하고 피드백 그 자체만 수용하면 게임의 틀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개발자는 테스터가 어떤 의도로 이런 피드백을 줬는지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현기 디렉터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너무 잘하려 하지 말 것'이다. 대충 일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잘 하려는 마음 때문에 여유를 잃고, 이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걸 경계하라는 의미다. 

 

그는 "일하다 보면 바빠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이건 네 시야가 좁아졌고 짜증도 많이 낸다는 것을 점잖게 돌려 말한 거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나는 이걸 아는데 30년이 걸렸다"며 여유와 넓은 시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