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창간 15주년] 게임문화박물관, '라키비움'으로 세우자

이정엽 (이정엽) | 2020-03-16 10: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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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문화공간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맘놓고 찾기 쉽지 않지만, 극장과 오락실과 카페와 밥집이 함께 있는 공간을 그렇게 보곤 하죠. 보통 멀티플렉스(Multiplex)라고 부릅니다.

 

멀티플렉스는 익숙하지만 라키비움(Larchiveum)은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을 합친 복합 문화공간을 뜻합니다.

 

지난 번에 우리에겐 제대로 된 게임 아카이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죠. 마침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문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움직임에 나섰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문화박물관 건립 기본방향 수립 연구' 입찰을 시작했습니다.

 

게임문화박물관이 생겨서 한국 게임의 역사도 공부하고, 예전에 즐겼지만 이제는 할 방법이 없는 게임들을 체험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그래서 게임문화박물관은 '라키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글은 2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게임산업 재도약을 위한 대토론회' 자료를 수정, 보강한 것입니다. 외부 원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게임 아카이브는 도서관과 기록관, 박물관이 어우러진 '라키비움'이 되어야 합니다.


 

[창간 15주년 특집]

게임의 문화적 가치 보존을 위한 게임 아카이브 / 이정엽 교수

 

1. 게임은 문화다? 기억되어야 '진짜' 문화 (바로가기)

2. 게임문화박물관, '라키비움'으로 세우자

3. 외국과 한국의 게임 아카이브 사례 (바로가기)

4. '천만 영화', '800만 관중'... 게임의 흥행 지표는?


지금 한국에는 국내 최초의 상용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남인환의 <신검의 전설>(아프로만, 1987)의 원본이나 최초의 TV용 콘솔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를 복제한 한국 최초의 비디오 게임 콘솔 ‘오트론’, 또는 MMORPG <리니지>의 최초 버전 등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나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히도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넥슨컴퓨터박물관이나 콘텐츠진흥원 도서관에서 게임 아카이빙의 자료 구축을 위한 시도를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 혹은 도서관은 비디오 게임을 엄밀한 의미로서의 학술자료로 취급하지 않고 있어 비디오 게임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는 좌절되게 마련이다.

 

<신검의 전설(1987)>
<그날이 오면(1993)>

국내 초창기 콘솔인 ‘오트론’, 퐁의 복제품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에서는 2015년 4월 19일 성명을 발표하여 “비디오 게임은 창조적인 예술 형식이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적 산물이다. 국제게임개발자협회는 만장일치로 이러한 창조적인 작품을 연구, 수집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노력을 지지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선언에 발맞추어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비디오 게임이 가진 미디어로서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통해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공공적인 전시를 여는 일을 진행해왔다.

 

현재 공식적으로 비디오 게임을 전면적인 보존, 연구의 대상으로 수집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은 다음과 같다.

 

[독일]

 

- 미 의회 도서관 (Library of Congress)

- 스미소니언 박물관 (Smithsonian)

- 더 스트롱: 국립 놀이 박물관 (The Strong: National Museum of Play)

- 컴퓨터 역사박물관 (Computer History Museum)

 

[독일]

 

- 컴퓨터 게임 박물관 (Computerspielemuseum)

 

[호주]

 

- ACMI (Australian Center for the Moving Image)

 

[일본]

 

-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 내 ‘게임 박물관(ゲームミュージアム)

 

[한국]

 

- 넥슨컴퓨터박물관

- 콘텐츠진흥원 콘텐츠도서관

 

이러한 공간들은 세계적으로 20여 곳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게임을 먼저 수집, 분류, 보존해야 할 매체로 선정하고 국립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에서 게임을 수집/보존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이 기관들은 각각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으로 각각의 정체성에 따라 게임을 수집, 분류, 전시, 활용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이 중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한 게임 전시는 대체로 게임을 비롯한 미디어를 일종의 전시물로 간주하고 이를 공공적으로 전시한다. 그러나 사용자가 직접 플레이해야만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게임의 본질을 눈으로만 보는 전시를 통해서는 그 경험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례로 넥슨컴퓨터박물관의 경우 현세대를 제외한 1세대부터 8세대에 이르는 가정용 게임 콘솔과 게임을 수집하고 이를 전시하고 있지만, 개가식(開架式) 형태로 관람객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이 보급되어 시장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은 몇몇 콘솔과 게임에 한정된다. 이러면 게임은 플레이해야만 하는 그 본래의 본질에서 벗어나 외피의 시각적인 정보만을 전해주는 역사적 유물에 불과하게 된다. 

 

 

<길건너 친구들>과 <프로거>, 두 게임은 거의 동일한 메커닉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게임 아카이브에서 수집하는 고전 게임은 당대의 게임 디자이너들이 참고할 수 있는 게임의 역사와 관습, 그리고 메커닉의 참고자료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게임의 메커닉들이 모두 독창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실제로 상당수의 게임은 과거 게임에서 활용되었던 메카닉스를 참고하여 이를 자신의 게임에 알맞게 적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고전 아케이드 게임 <프로거>(Frogger, 1981)를 바탕으로 이를 모바일 게임에 맞게 변형시킨 <길건너 친구들>(Crossy Road, 2014)과 같은 게임들이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는 경우를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역사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행위는 당대의 게임 디자인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다. 더불어 고전 게임은 시대, 미학, 향수(nostalgia)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정의되어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게임에 대한 거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게임학 연구가 보편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자료의 서지 사항과 아카이빙은 필수적인 기초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디지털 게임 아카이브를 위한 이상적인 조건은 전 세계의 주요 게임들을 충분히 수집한 아카이브를 갖추어놓고 일부는 공공적인 형태로 전시하며, 자료 망실을 방지하기 위해 게임 연구자와 학자들을 위해 폐가식으로 자료를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어렵게 수집한 게임들을 유물로 취급하여 유리관 속에 가두어놓고 이 기기와 게임들을 전혀 가동해보지 않는 모순에 빠져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게임 아카이브를 새롭게 설립한다면 도서관, 박물관, 아카이브의 역할을 모두 담당할 수 있는 라키비움(Larchiveum: 도서관(Library) + 기록관(Archives) + 박물관(Museum)이 모두 포함된 공간) 형태의 복합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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