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TIG 스토리] 지스타에 간 사람들은 정말 '호구'일까?

우티 (김재석) | 2018-11-21 17: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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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4일 (Day 1)

 

TIG 기자들은 부산 가는 KTX에 타자마자 자연스럽게 게임기를 꺼냈습니다. PS 비타, 닌텐도 스위치, 핸드폰, 태블릿까지…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게임을 했습니다. 저는 앉아서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거나 KTX 매거진을 읽었습니다. 선배 기자들은 약 ​300km/h로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 평온하게 게임을 즐겼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지스타가 생애 첫 지스타였습니다. 부산에서 가본 축제는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산락페스티벌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실감이 안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걱정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하는 행사인데,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부산이 게임 열기로 뜨거울까? 어쩌면 저는 게임 기자보단 영화 기자나 락 기자를 하는 게 더 어울렸을지도 모릅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모두가 게임 중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부산에 오면 돼지국밥을 먹어야 합니다. 부산역에 도착한 TIG 기자들도 가장 먼저 한 것이 인근 돼지국밥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국밥집은 수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혹은 무리를 지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시인 최영철의 '야성은 빛난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라는 시구가 그것이었습니다.

 

홀로 앉아 돼지국밥을 먹는 사람을 보면서 그런 야성을 떠올렸습니다. 시인 백석도 털도 안 뽑은 돼지고기가 들은 국수를 한입에 꿀꺽 삼키는 서북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수림왕이며 광개토대왕을 생각했다지요. 게임이랑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무릇 기행문에는 음식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기자의 철칙 때문입니다. 

  

하이고 마 정구지 느 묵는 기를 까무거가꼬

 

너부 기자님! 모자이크 해드렸습니다 ^^;;;

 

 

# 11월 15일​ (Day 2​)

 

아침에 일어나 해운대 바다를 보니 문득 '광안리 대첩'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친구들과 스타리그 결승전을 보러 갔었습니다. 지스타에는 가본 적 없지만, 스타리그 결승전은 본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광안리에 간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게임 보러 부산까지 가다니 정신 차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었던 제가 10년 가까이 지나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쇼에 기자 자격으로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아마 삼성이 르까프를 압도적으로 이겼을 겁니다.

 

2004년 광안리 대첩

첫날부터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건 모인 것도 아니다", "첫날 즐겨둬라"는 선배 기자의 말에 흠칫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도​ 첫날 찾은 B2B관(비즈니스관)은 둘러보기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B2C관(일반 전시장)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카탈루냐 게임 업체와 인터뷰를 진행한 뒤 괜히 업체들 미팅하는 자리 옆에 앉아봤습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영어로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결과까지 듣고 싶었지만, 거래처를 향하던 푸른 눈이 기자를 찌르길래 먼저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게임 관련 콘텐츠를 사고팔러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B2B관​은 실제로 거래가 오가는 곳이니 어쩌면 B2C관보다 치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날 밤 백야차 기자와 해운대 시장을 둘러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부산 시장에서 뭔가를 살 때 부산말을 안 하면 바가지를 씌운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스타 B2B관에서 영어를 못 하면 바가지를 쓸까? 그런 상상도 해봤습니다. 

 

인터뷰를 하러 가던 중 코스어를 만나 사진을 찍는 그루잠 기자

 



 

# 11월 16일 ~ 17일 (Day 3 ~ 4)

 

아침에 프레스룸에서 소니가 'E3'에 불참한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기자는 그때 '100명에게 물었다! '마비노기 모바일' 호불호'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기사를 내고 설문조사를 하러 프레스룸에서 B2C관으로 내려가면서 생각해보니 소니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스타에 부스를 내지 않았습니다. 올해 지스타 B2C관에서 할 수 있는 콘솔 게임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소니는 요즘 자체 팬 페스티벌인 PSX(PlayStation eXperience)까지 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닌텐도는 17일부터 18일까지 부산이 아닌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자체 시연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러고보면 B2C관에서 시연할 수 있는 PC 패키지 게임도 많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즐길 콘솔 게임이나 PC 게임이 많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작년 12월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닌텐도 출시 기념행사 (출처: 한국 닌텐도)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편성된 지스타에 대한 비판은 수년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는 특히 '믿었던' 블리즈컨에서 <디아블로 이모탈>로 속이 상했던 게이머들이 모바일 게임이 강세를 보인 지스타를 보자 더 큰 아쉬움을 토로했던 것 같습니다. 모바일 게임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의 비중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모바일 게임이 들어갔다는 아쉬움이랄까요?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그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대도서관, 풍월량, 선바 같은 게임 방송 스트리머, 유병재, 마미손 같은 연예인, 박지성, 홍진호, 페이커 같은 (e)스포츠 레전드까지 화려한 라인업이었습니다. 부스에 인기 스타가 뜨면 그곳을 중심으로 인파가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기자도 토요일에 '해외 축구의 아버지' 박지성을 코앞에서 보고 감격했습니다.

 

지 성 조 아
'성공한 덕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해버지 좋아하시죠?
4장 정도는 괜찮잖아요?

 

일본의 문학평론가 사이토 미나코가 쓴 <취미는 독서>는 21세기 초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한 책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는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를 사서 읽는 '착한 독자'와 "베스트셀러 나부랭이는 읽고 싶지 않다", "안 읽어봐도 다 안다"는 '나쁜 독자'가 있다고 합니다. 사이토 미나코는 '착한 독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과연 이들이 어리석은 대중일까? 당치도 않다. (중략) '착한 독자'야말로 출판 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소비자다."

 

게이머로서 'BJ들이 모여 모바일 게임만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콘솔 게임, PC 게임이 전시장에 없으면 서운하니까요. 개성이 없다, 다양성이 없다는 비판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BJ들이 모여 모바일 게임만 하는' 모습을 보러 부산에 모인 관객을 '호구'니 '개돼지'니​ '노답'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을까요?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올해 지스타에는 23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습니다.

 

토요일 아침, 전날 오후 6시부터 줄을 선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X.D. 글로벌의 <소녀전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오직 풍월량을 보겠다고 먼 길을 달려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밤을 새워 <디아블로 3>를 기다리는 건 열정적인 일이고, <소녀전선>을 기다리는 건 한심한 일일까요? 지스타에 풍월량 보러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취미는 독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2014년 <디아블로3>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 행사 대기열
2018 지스타 토요일 대기열

<포트나이트> 부스를 찾은 풍월량

 

뿐만 아니라 지스타에는 인디 게임이 전시된 BIC 부스,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컨퍼런스, 학교 졸업 작품 전시 부스도 '숨은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매출은 다른 회사에 양보하고, 우린 우리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CD프로젝트 레드 제작진의 말도 이들이 지스타를 찾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말입니다.

 

대형 부스 사이의 숨은 보석, 팀 '잔다르칸'의 게임 '캣칭' (바로가기) 

지스타의 또 다른 묘미! 많은 인디게임을 만날 수 있는 BIC관 풍경기 (바로가기)

블리자드와 라이엇게임즈가 본 e스포츠의 미래 (바로가기)

"매출은 다른 회사에 양보하고, 우린 우리 가치를 추구하겠다" (바로가기)

 

 

# 11월 18일(Day 5)

 

폭풍 같은 4일이 지났습니다. 집에 갈 시간입니다. 숙소를 치우고 부산역에 가서 삼진어묵을 왕창 샀습니다. 서울로 올라갈 때도 TIG 사람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왠지 기자도 게임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간 멀미가 날 것 같았습니다. 대신 침착맨 게임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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