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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좌충우돌] 2월 15일 - 최초이자 유일한 미 하원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

시몬 (임상훈 기자) | 2019-02-15 22:53:19

12년 전 오늘,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소재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미 하원 청문회가 외교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훗날 '위안부' 피해자들을 완전히 배신한 한국 정치인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청문회 성사는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의 끈질긴 노력과 뉴욕, 뉴저지 지역 한인 동포들의 풀뿌리 청원운동의 결실이었죠. 일본 측의 조직적이고 집요한 방해도 한인 커뮤니티의 노력과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 애니 팔레오마베가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국회 청문회는 여야 합의가 필요합니다. 한인 세탁업자들이 외교위원회 소속 공화당 중진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의 지역구에 모여 살았던 것도 행운이었죠. 스미스 위원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였습니다.

 

미국의 의회 뉴스레터인 '더 힐'(The Hill)은 한인 커뮤니티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며 '일본 로비스트와 한인들의 풀뿌리 정치력의 싸움'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죠.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청문회가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김군자(79), 이용수(80) 할머니, 호주에서 얀 루프 오헤른(84, 네덜란드) 할머니가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와 손을 꼭 잡았습니다. 

 


청문회 초반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공화당 도나 로라바허 의원이 이런 발언을 했거든요.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사과를 했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있어서는 안된다. 1994년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 일본 총리가 이미 사과를 했고, 사과는 물론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서 보상도 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돈과 로비스트의 위력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청문회를 앞두고 워싱턴 대형 로펌의 값비싼 로비스트 4명과 풀타임 계약을 맺었죠.

 

하지만, 이후 이어진 할머니들의 한과 고통이 배인 절규에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숙연해진 가운데 일본 취재진마저 몸을 움추려들었죠.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사냥당한 동물처럼 구석에서 웅쿠린 채 기도할 시간을 간청했고, 내가 기도하는 시간에 일본 군인은 옷을 벗었고 겁탈당하는 동안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렀다. 찢겨진 옷가지를 들고 목욕실로 달려가서 피가 터질 때까지 몸을 씻고 또 씻었다. 치욕이 물에 씻겨 가기를 바랐지만 밖에는 병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옥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오헤르너 할머니는 책상을 두드리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일본군은 내 청춘을 무참하게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일본은 잔학행위를 시인하고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라!

 

김군자 할머니는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16세에 끌려가서 저항하다가 무수하게 맞아서 고막이 터졌다.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아서 지금도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하루에 40여 명의 성노리개가 되어야 했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남았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사과를 받아낼 수 있겠는지 위원장은 말해달라." 

 

 

이용수 할머니는 공화당 의원의 초반 발언에 대해 이렇게 반박하기도 했죠.

 

사과가 무엇인가? 범죄자가 사과를 한다면 피해자에게 해야지, 내가 피해자인데 나는 지금까지 어떠한 사과도 받아본 적이 없다. 사과를 왜 워싱턴의 로라바허 의원에게 하는가?

 

80세 어르신의 논리에 탄복한 위원장이 "변호사 출신이 아닌가?"라고 묻자,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숨겨진 이러한 잔악성을 폭로하고 국제법에 고발하려고 늙은 사람이 한국의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 법대에 입학해서 국제법을 배웠다. 

 

청문회장이 숙연해졌습니다.

 

이날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처절한 증언이 미국 사회에 생생히 전달됐습니다.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Military Sex Slavery by Japan'(일본군 성노예제도)의 실상을 접한 미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한) 일본 정부는 계속 딴소리를 했습니다. (지금도 총리인) 당시 총리 아베는 그 다음달 이렇게 공식 견해를 발표했죠.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 군이나 관헌(官憲)의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없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청문회를 거친) 미국에서도 반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일본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7월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죠. 일본 총리실 공보비서실이 이를 위해서 워싱턴에 옮겨왔을 정도였고, 일본 대사가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집중 로비를 벌였죠. 자민당 의원들과 일본 기업들까지 로비에 나섰습니다. 극우 정치인 아베 총리는 4월 워싱턴을 직접 방문했죠.

 

하지만, 청문회 이후 굳어진 여론을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해 7월 30일 미국 하원은 만장일치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결의안(H.R. - 121)을 채택했습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대매춘 제도인 '위안부'를 집단 강간과 강제유산, 수치, 그리고 신체 절단과 사망 및 궁극적인 자살을 초래한 성적 폭행 등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일본에 다음 4가지를 권고했습니다. 

 


1.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를 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수준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의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를 따라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그 이후는 저희가 잘 아는 그대로입니다. 네 가지 권고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퇴행적 태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2012년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사과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베는 집권 후 '사과와 반성'을 삭제하고 ‘깊이 고통을 느낀다’고 바꿔 말했습니다.  

 

인터뷰마다 “역사가 토론의 대상이 될 땐 역사가와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18년 간 광주 민주화운동을 연구해온 전문가 지만원의 의견도 귀기울여 들어봐야 한다"는 어느 정당 관계자의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이런 퇴행적 역사 인식에 박근혜 정부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는 한 마디도 안 물어보고, 아베 정부와 합의를 해버렸죠. 국민적 저항의 컸습니다.

 

합의 이후 아베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느냐는 중의원 질문에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죠. 국민적 분노가 끓었습니다.

 


지난 1월 28일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스물 세 분 생존해 계십니다. 모두 90대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아간 날, 다시 한 번 너무 늦기 전에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게임이 나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10대와 20대들이 이 이슈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일본의 태도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년 전 오늘, 워싱턴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에 있었던 정치인은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었습니다. 그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그는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로 '배신'을 싫어한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

12년 전 오늘,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소재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미 하원 청문회가 외교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훗날 '위안부' 피해자들을 완전히 배신한 한국 정치인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청문회 성사는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의 끈질긴 노력과 뉴욕, 뉴저지 지역 한인 동포들의 풀뿌리 청원운동의 결실이었죠. 일본 측의 조직적이고 집요한 방해도 한인 커뮤니티의 노력과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 애니 팔레오마베가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국회 청문회는 여야 합의가 필요합니다. 한인 세탁업자들이 외교위원회 소속 공화당 중진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의 지역구에 모여 살았던 것도 행운이었죠. 스미스 위원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였습니다.

 

미국의 의회 뉴스레터인 '더 힐'(The Hill)은 한인 커뮤니티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며 '일본 로비스트와 한인들의 풀뿌리 정치력의 싸움'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죠.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청문회가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김군자(79), 이용수(80) 할머니, 호주에서 얀 루프 오헤른(84, 네덜란드) 할머니가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와 손을 꼭 잡았습니다. 

 


청문회 초반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공화당 도나 로라바허 의원이 이런 발언을 했거든요.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사과를 했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있어서는 안된다. 1994년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 일본 총리가 이미 사과를 했고, 사과는 물론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서 보상도 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돈과 로비스트의 위력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청문회를 앞두고 워싱턴 대형 로펌의 값비싼 로비스트 4명과 풀타임 계약을 맺었죠.

 

하지만, 이후 이어진 할머니들의 한과 고통이 배인 절규에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숙연해진 가운데 일본 취재진마저 몸을 움추려들었죠.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사냥당한 동물처럼 구석에서 웅쿠린 채 기도할 시간을 간청했고, 내가 기도하는 시간에 일본 군인은 옷을 벗었고 겁탈당하는 동안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렀다. 찢겨진 옷가지를 들고 목욕실로 달려가서 피가 터질 때까지 몸을 씻고 또 씻었다. 치욕이 물에 씻겨 가기를 바랐지만 밖에는 병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옥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오헤르너 할머니는 책상을 두드리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일본군은 내 청춘을 무참하게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일본은 잔학행위를 시인하고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라!

 

김군자 할머니는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16세에 끌려가서 저항하다가 무수하게 맞아서 고막이 터졌다.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아서 지금도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하루에 40여 명의 성노리개가 되어야 했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남았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사과를 받아낼 수 있겠는지 위원장은 말해달라." 

 

 

이용수 할머니는 공화당 의원의 초반 발언에 대해 이렇게 반박하기도 했죠.

 

사과가 무엇인가? 범죄자가 사과를 한다면 피해자에게 해야지, 내가 피해자인데 나는 지금까지 어떠한 사과도 받아본 적이 없다. 사과를 왜 워싱턴의 로라바허 의원에게 하는가?

 

80세 어르신의 논리에 탄복한 위원장이 "변호사 출신이 아닌가?"라고 묻자,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숨겨진 이러한 잔악성을 폭로하고 국제법에 고발하려고 늙은 사람이 한국의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 법대에 입학해서 국제법을 배웠다. 

 

청문회장이 숙연해졌습니다.

 

이날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처절한 증언이 미국 사회에 생생히 전달됐습니다.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Military Sex Slavery by Japan'(일본군 성노예제도)의 실상을 접한 미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한) 일본 정부는 계속 딴소리를 했습니다. (지금도 총리인) 당시 총리 아베는 그 다음달 이렇게 공식 견해를 발표했죠.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 군이나 관헌(官憲)의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없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청문회를 거친) 미국에서도 반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일본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7월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죠. 일본 총리실 공보비서실이 이를 위해서 워싱턴에 옮겨왔을 정도였고, 일본 대사가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집중 로비를 벌였죠. 자민당 의원들과 일본 기업들까지 로비에 나섰습니다. 극우 정치인 아베 총리는 4월 워싱턴을 직접 방문했죠.

 

하지만, 청문회 이후 굳어진 여론을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해 7월 30일 미국 하원은 만장일치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결의안(H.R. - 121)을 채택했습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대매춘 제도인 '위안부'를 집단 강간과 강제유산, 수치, 그리고 신체 절단과 사망 및 궁극적인 자살을 초래한 성적 폭행 등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일본에 다음 4가지를 권고했습니다. 

 


1.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를 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수준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의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를 따라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그 이후는 저희가 잘 아는 그대로입니다. 네 가지 권고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퇴행적 태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2012년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사과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베는 집권 후 '사과와 반성'을 삭제하고 ‘깊이 고통을 느낀다’고 바꿔 말했습니다.  

 

인터뷰마다 “역사가 토론의 대상이 될 땐 역사가와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18년 간 광주 민주화운동을 연구해온 전문가 지만원의 의견도 귀기울여 들어봐야 한다"는 어느 정당 관계자의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이런 퇴행적 역사 인식에 박근혜 정부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는 한 마디도 안 물어보고, 아베 정부와 합의를 해버렸죠. 국민적 저항의 컸습니다.

 

합의 이후 아베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느냐는 중의원 질문에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죠. 국민적 분노가 끓었습니다.

 


지난 1월 28일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스물 세 분 생존해 계십니다. 모두 90대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아간 날, 다시 한 번 너무 늦기 전에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게임이 나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10대와 20대들이 이 이슈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일본의 태도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년 전 오늘, 워싱턴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에 있었던 정치인은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었습니다. 그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그는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로 '배신'을 싫어한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