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은 원인보다 결과에 가깝다

시몬 (임상훈) | 2017-02-17 17:59:45

'소외'와 관련된 책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소외된 이웃'처럼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지만, 철학이나 사회학 쪽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죠. 철학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응용, 변용돼 쓰여왔거든요. 

 

 

<디지털 미디어와 소외>는 전반부에 이런 다양한 계보 속에서 변주된 '소외'의 계념을 정리해줬습니다. 후반부에는 최근 쏟아지는 디지털 정보 속에서 현대인이 겪는 여러 부작용을 '디지털 소외'로 정의하고, 그런 소외가 조장되는 방식과 위험성, 그리고 그 대책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나 우리 삶에 의미 있는 일에는 관심이 없거나, 집중하지 않거나, 미루면서

-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 휘둘리고, 포털의 가장 많이 본 뉴스 클릭질만 하고 있고 있다면 

- 게임이나 웹툰만 매달려 있으면서, 가족 사이의 소통은 뜸해진다면

 

그건 저자가 보는 디지털 소외에 해당합니다. 저는 구경거리 정보가 범람하는 현실에 대한 염려, 뉴미디어와 디지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대한 비판 등에는 공감했지만, 디지털 소외의 발생 이유 및 게임에 대한 서술(게임과 살인, 유아 유기 등)에는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저자의 주장과 달리 게이머들이 게임에 몰두할 수는 있지만, 현실과 헛갈리거나 혼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나 제 주변인들의 게임 인생에서 그런 건 한 번도 보지 못 했습니다. 다만, 해야 될 일,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을 내버려두고 게임이나 디지털 정보에만 휘달리는 현상에 대한 우려는 동의합니다.

 

저자는 그것을 디지털 미디어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자가 초반에 썼던 '소외'의 개념을 활용해 제 생각을 거칠게 적겠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정처 없이 휘둘린다면, 먼저 아래와 같은 외부적 요인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1) 불합리한 노동관계 속에서 저녁 없는 고단한 삶에 내몰린 소외(마르크스의 소외)

(2) 관료화, 효율화, 규격화에 따른 회사, 학교 등에서 겪는 소외(베버의 소외)

(3) 가족관계와 공동체의 붕괴에 따른 사회적, 개인적 규범의 해체(뒤르껭의 아노미) 

 

이런 상황에 속한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에 내몰리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할 수도 있겠죠.

(4)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경고했던 정보의 범람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현실이고

(5) 그에 맞는 사회적 규범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고 비판적 학습태도는 제대로 익혀지지 않겠겠죠.

 

빅브라더는 (4), (5)를 통해 주요한 의제로부터 대중의 주목을 분산시켜서, 즉 이슈로 이슈를 덮고, 노이즈로 시그널을 감춰서 (1), (2)의 사회를 유지하며 이익을 취할 거고요.

 

게다가, 게임은 그 성격상 '소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다른 미디어와 달리 목표를 향해 스스로 선택하는 미디어니까요. 정처 없이 인터넷 광고만 클릭하거나, 쇼핑에만 매달렸다면, <조작된 도시> 속에서 묘사된 게이머 주인공들의 활약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새 창에서 영상보기]

 

최근 개봉한 영화 <조작된 도시>는 게임에 대한 편파 가득한 기존 미디어의 보도를 시원하게 비판하고 있죠.

 

게임은 일탈의 '원인'보다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게임이 속한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3꼭지 콘텐츠의 일독을 요청합니다.


게임중독 미혼모 사건이 보여준 ‘슬픈 현실’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게임중독 비극의 이면

 

[허접칼럼] 엄마와 아들, 그리고 게임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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