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아나키스트, 시각장애인, 네버엔딩스토리, 그리고 문희

시몬 (임상훈) | 2017-02-26 02:00:56

촛불과 태극기가 있는 곳으로 갔어요.

 

 

참 오랜만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을 만났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검은 깃발까지 들고 있어, 설마 했더니 정말 그들이었습니다. <도깨비>의 저승사자들은 아니고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었죠.

 

종교나 국가 같은 권위에 억압받지 않겠다는 이상주의... 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저는 잘 모릅니다. 대학 시절 읽었지만, 푸르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같은 이름들만 기억할 뿐이죠. 최근에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만화 속에서 만나기도 했지만요.

 

아니구나. 우리 근현대사의 엄청난 아나키스트들도 기억나네요.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맡았던 의열단 지도자 약산 김원봉, 근대민족사관 설립의 아버지인 단재 신채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귀감이었던 우당 이회영 모두 아나키스트였는데...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이상주의를 광화문 골목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런저런 구호를 따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서촌을 행진했습니다. 그때 제 앞에 걷고 있는 두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시각장애인과 그의 눈이 되어준 사내. 

 

눈을 뜨고도 세상을 망치거나 못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눈을 감고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위험한 길에 나선 이를 보고 놀랐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 창에서 영상보기]

 

광화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대형 화면에 뮤직비디오가 하나 나오고 있었습니다.

 

손 닿은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고개를 들고 눈을 꾸욱 감았습니다.

 

 

 

집에 들어왔습니다. 금요일 문경에서 올라온 막걸리 한 병을 풀며 오늘을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막걸리 문희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기쁜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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