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차이나랩] 사드와 한국게임 판호금지령

모험왕 | 2017-03-07 18:21:44

이번주 사드 배치에 따른 한국 게임 신규 판호 금지 이슈가 게임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금지령)​은 문서로 전달되지 않는 터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 실정이죠. 지나친 공포심을 자제할 것을 권한 김두일(모험왕) 퍼틸레인 고문의 페이스북 글을 편집해 소개합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1. 한국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시각

우선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 이슈를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대단히 복잡한 정치 이슈가 혼합된 것이지만, 최대한 짧게 중국 내 정치적인 이슈로만 요약하자면 

1) 시진핑 주석은 덩샤오핑 이후 최초로 일인 권력 집중에 성공했고 
2) 본인의 집권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는 2018년 이후에도 좀 더 장기적인 집권을 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3) 이를 위해 높게 평가될 만한 업적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그중 외교(혹은 외치)적 업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4) 이번 한국 내 사드 배치는 시진핑 주석의 계획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의 체면에도 직접적인 손상을 준 셈이 되었다.

중국이 대국이라 주변의 작은 나라를 대할 때 막 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옛날부터 ‘명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였다. 중국 입장에서는 국경절 때 박근혜 대통령을 천안문에 초청해서 양국 간의 우의를 강조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통보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발표했던 일정인 2017년 11월이 아닌 5월로 사드 배치 시점을 후다닥 앞당겼기 때문에 한국이 ‘자신들을 호구로 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경제적 보복에 대한 언급은 진작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외교부나 황교안 총리 등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중국을 자극한 부분도 ‘중국이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어쨌든 배경에 대한 것은 전문가들이 더 많을 테니 대강 이 정도로 생략한다.


2.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다

화장품, 관광, 면세점 등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분야들은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것은 당분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작년 여름까지 끊기지 않던 한류스타에 대한 섭외가 지금은 딱 끊겼다. 따라서 엔터테인먼트 쪽도 당분간 찬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게임의 신규 판호 금지령’에 대한 기사가 어제 떴다.
 
시진핑 曰 : 한국 사드 배치? 내가 가만히 안있음 ㅇㅇ

이후 ‘한국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도 판호가 금지되었다'는 연합뉴스의 기사가 나왔고, 모 매체에서는 아예 대놓고 360마켓, 텐센트 등의 실명을 거론해 가며, 이들이 ‘한국게임 수입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혀와서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의 중국 사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360마켓 측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인데, 놀랍게도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정말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일단 중국에서는 ‘어떤 믿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지금부터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확보된 정보를 통한 의견이니 맹신하지는 말고 참고만 하시길 바란다.


3 . 중국 퍼블리셔는 웃고 한국 게임 회사는 울상

작년 하반기와 올 초 중국 퍼블리셔들은 여전히 한국개발사와 계약을 진행했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묘한 조건을 제시했다. ‘외국산 게임의 판호는 늦어지니 국내산 게임으로 판호 신청을 해야 한다’는 명목을 제시하면서 저작권(IP 권한)에 대한 부분을 중국 측에 넘기는 형태의 계약조건 제시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계약금도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로열티도 정상적으로 지급한다. 단지 외주개발용역의 형태로 지불하면서 저작권을 중국에 넘기라는 것이 특이점이다. 혹은 합자회사 설립을 해서 지분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경영권은 중국 쪽이다. 모든 IP의 권한을 합자회사에 귀속시키는 조건으로 지분도 주고 계약금도 그 합자회사에서 준다는 묘한(?) 제안을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계약조건은 한국 입장에서 게임의 성공 후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중국 모바일 게임 특성상 IP 권한을 넘긴 후 최근에는 아예 소스코드째 넘어가서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작업을 하는데, 위의 계약조건에서는 계약 기간이 지나면 이를 해지하고 자체 서비스 시작 후 100% 다 중국에 먹히는 구조가 된다. 또한, 2차 저작권도 100% 중국회사가 먹는 셈이 된다.

급한 자금 상황으로 인해 계약금이라도 필요한 회사이거나 혹은 중국진출이 우선 목표인 경우 어쩔 수 없이 계약 조건을 수용하겠지만, 보통의 경우 사실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사드 배치 이슈가 본격화 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국회사는 판호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 중국회사의 주장이었는데, 갑자기 사드 정국이 양국 관계를 냉랭하게 만든 최근 시점에 와서 ‘한국게임은 판호를 받기 힘들다'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신규 판호가 나올지 말지 모르겠지만, 탐나는 한국게임이 있고 만약 계약을 원한다면 중국 회사들이 사드 배치와 관련된 양국 간의 정치 상황에 따른 흐름을 최대한 이용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이미 그런 제안을 하는 회사들도 있다.


4. 실제 중국 퍼블리셔 및 플랫폼 관계자의 입장은?

현재 중국 퍼블리셔와 플랫폼들에서 한국 관련 업무 혹은 외국 게임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부서의 부문장 혹은 담당자 10여 명과 어제 급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한국게임의 신규 판호 금지령'에 대해서는 통보받은 일도 없고 구두로 전해 받은 일도 없다고 했다. ‘누구 장사 망치려고 하는 일 같은데 출처가 어디냐?’고 묻는 곳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어제 모 개발사의 경우 ‘계약이 중단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 계약 진행이 홀드가 되거나 늘어지는 곳도 있다고 하니 좀 더 다양한 표본의 사실 확인을 해 보긴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중요 퍼블리셔 중 한 곳의 관계자 말에 따르면 ‘빈익빈 부익부가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신규 투자나 퍼블리싱 계약에 대단히 보수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지금 시점에 진행되는 협상을 중단하기 위한 ‘적절한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격’이라는 의미이다.


5. 한국발 관련 기사의 신뢰도

연합뉴스에서 기사의 출처로 거론한 一遊網(일유망)이라는 곳은 필자도 처음 듣는 곳이라 들어가 보았다. 확인해보니 전형적인 다운로드 플랫폼이었다. 다운로드 플랫폼이란 웹게임과 모바일게임 다운로드를 유도해서 해당 퍼블리셔 등에게 광고비나 혹은 수익 쉐어를 받는 곳이다. 때문에 트래픽을 필요로 하고 주로 자극적인 사진과 뉴스, 유머 글이 올라온다. 한 마디로 공신력은 없는 곳이다.

그 一遊網(일유망)에 올라온 ‘한국 게임과 IP는 모조리 불허한다'는 내용도 또 다른 출처가 있었는데, www.sootoo.com 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접속해 보니 역시나 공신력이 없는 곳이었다. 왠지 Sootoo 글에도 또 다른 출처가 있을 것 같아 읽기를 포기했다. 필자가 확인한 중국 매체의 출처를 보면 사실 한국 카카오톡에서 돌고 있는 괴담 수준의 내용이 워낙 많았고, 사실 일일이 체크를 하기도 어렵고 신뢰가 가는 내용도 없었다. 다만 문제는 한국 매체가 신뢰성을 얻기 힘든 내용을 가져다가 기사로 인용한다는 것이 조금 심각해 보인다.

일단 연합뉴스가 한국에서 기사를 쓰면 파급력이 상당하고 타 매체도 그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는 일이 많을 텐데,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그저 다운로드 플랫폼에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사를 쓴 것은 유감스럽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고 있는 <드래곤 네스트>와 <라그나로크> IP를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이 ‘최근 계약을 진행했다면 판호 받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이건 한국을 싫어하는 혐한 중국 네티즌의 악플 수준이다. 

IP 로열티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중국 회사가 돈을 벌어가는 구조인데, 전체 매출에서 그리 큰 비율을 차지하지 않는 한국 로열티를 막기 위해 한국 회사와의 계약을 통째로 막는다면 원성은 한국 회사보다 중국 회사에서 더 크게 나올 것이다. 당장 <미르의전설2>로 먹고 사는 샨다게임스는 망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자폭해서 저쪽을 한 대 때리는 것은 중국식은 아니다.


6. 중국 보복의 현실,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어떤 게임이 신규로 판호 발급이 되는지 관련 기관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볼 수 있다. 하나하나 다 뒤져 보기엔 중국어도 약하고 노안도 있어 대충 훑어 보았는데 2017년도에는 <던전앤파이터 모바일>과 <별에서 온 그대> 등이 신규 판호를 발급받은 것으로 나왔다. 

지난번 '한한령과 도깨비'라는 글에서 언급했듯 현재 상황에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쪽에서 더 답답한 것은 중국 쪽이었다. 일단 중국 자체 콘텐츠만으로는 높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화권 스타들의 몸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높은 품질의 콘텐츠 제작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꾸준하게 스타성 있고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한국드라마는 그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대안이자 가성비 좋은 콘텐츠인데 이것이 막혀 버리니 ‘우리가 더 죽을 맛이다'는 언급을 사석에서 하는 것이다. ‘빨리 이 사드 정국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들이 더 간절하게 외친다.

한국 때리다 우리도 죽겠어요..

게임은 좀 상황이 다른데, 지금 중국 모바일 게임이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은 한국시장 점유율 20%를 넘어갈 정도로 커지고 있지만, 한국의 신규게임은 판호 문제를 떠나서 중국에서 수익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를 중단시켜 버린다면 모를까 당장 한국 게임 업계가 받는 피해는 솔직히 미비하다. 하지만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를 셧다운 시키면 텐센트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이것도 내가 자폭해서 저쪽을 때리는 격이니 실효성이 별로 없다.

‘앞으로 중국에 가서 벌 수 있는 돈이 막힐 것'이라는 기회 소득에 대한 박탈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부분이 현재 업계에서 느끼는 주요한 요소인데, 이것도 조금 설득력이 떨어진다. ‘<리니지 레볼루션>이 중국에서 얼마나 벌 수 있을 것인가?’ 를 고민하는 넷마블 관계자나 증권사 애널리스트 말고는 딱히 직접적인 피해를 받을 곳이 확 떠오르지는 않는다.


8. 괜한 공포감 조성은 그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때

하지만 서두에 이야기했듯 중국은 ‘까라면 까는 나라'이고 사드 문제로 인한 양국 간의 긴장이 지속되면 더 강력한 조치들을 얼마든지 취할 것이다. 어쩌면 정말 구두로 문화부 혹은 광전총국 관계자가 한마디 했을 수도 있다. 사실 텐센트하고 넷이즈 같은 탑티어 회사의 초 고위층 두 사람만 불러서 이야기해도 되니 필자가 모를 수도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소문이 너무나 신속하게 퍼지지 않는가?

그리고 더 강력한 조치는 사실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중국과 연관된 모든 산업군 자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인지라 이런 분석이 어쩌면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국가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해결의 의지가 있는지가 가장 큰 열쇠가 될 테니까 말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 공포감을 만들어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기사 중에서 가령 ‘한국게임산업에 대한 걱정'을 토대로 쓴 글인지 혹은 ‘공포심을 자극해서 조회 수를 올리려고 하는 글'인지는 읽어보면 논조는 금방 나오고 사실 확인도 해 보면 대강 보인다. 

문제는 대체로 후자의 자극적인 글들이 네이버 등을 통해 일반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이 ‘이런 중국놈들! 불법 어선 때려잡고 조선족 추방시켜야지' 식의 악플을 유발하는 것이다. 명동이 한산해졌다고 기뻐하는 댓글을 보니 정말 한숨이 나오는 것과 유사한 기분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제 내용에 따르면 3월 3일 이후 판호가 금지된다고 하니 이후 추이를 지켜보면 될 것 같다. 작년 말 혹은 올해 초에 계약한 모 회사의 판호가 신청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 될 것 같다. 혹은 거액의 계약금으로 수출된 <리니지 레드나이츠>가 제대로 판호가 나오는지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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