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은 유망산업이고 문화인데...” 그래서요?

마루노래 (이준호) | 2019-05-24 18:48:57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등록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오고 가고 있다. 지난 셧다운제(2011년), 4대 중독법(2013년) 논란부터 시작, 이처럼 의학계, 게임업계, 문화계 등 다양한 단체와 인물들이 맞부딪힌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은 그 성격과 양상이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셧다운제, 4대 중독법 등이 국내법 수준의 이슈였다면,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는 세계보건기구라는 국제기관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뿐만 아니라 그 통과 가능성 역시 매우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2010년대 초반의 논쟁이 게임을 ‘중독성 물질’, ‘유해한 매체’로 지정하려 했던 의학계가 게임업계와 문화계를 공격하는 양상이었다면, 이번에는 게임 이용 장애라는 질병이 존재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학계의 주장을 게임업계와 문화계가 나서서 반박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요컨대 공수가 교대됐고, 논점도 달라졌다. 의학계는 이전의 “게임은 유해한 것”이라는 단순화된 주장에서 벗어나, “일단 게임을 과하게 이용하며 병리적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특히 청소년들)이 있으니,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질병코드를 등록해야한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호소력 있는 내러티브로 돌아왔다. 그에 비해 게임측이 내세우는 논리와 근거는 일견 부족해보이는 상황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디스이즈게임 이준호 기자

 



 

# 나날이 발전하는 '중독론자'들의 논리... 이제는 그들이 방어자다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하는 측(이하에서는 편의상 ‘중독론자’라고 지칭)의 입장은 날이 갈수록 조직적이고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에서만 91편의 게임과몰입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숫자만 따져도 세계 1위이고, 당연히 이번 질병코드 등재 결정에도 상당 부분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중독론자들은 이처럼 나름 오랜 기간 데이터를 축적하며 내실을 다져왔다.

 

뿐만 아니라 중독론자들은 대중과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하나의 여론을 조성했다. 비단 의사와 학부모뿐만이 아니다. 게임 경험이 있는 일부 유저들조차 “아픈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니까…”라며 의사들의 의견에 동조할 정도다.

 

 

특히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은 유달리 교육열이 강한 이 나라의 문화적 토양과 만나 강력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100분 토론>에 출연한 김윤경 정책국장의 사례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자기 자식을 보호하고자 나선 부모들의 당위 앞에 논리는 힘을 잃는다.

 

당장 게임이라는 유해한 것이 눈앞에 있고, 게임하느라 공부하지 않는 자식이 방안에 있고, 게임하느라 인생 망쳤다는 사람이 TV속에 있다. 합리적인 연구와 이성적 토론은 자식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논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차피 중독이다.”와 같은 강경한 발언은 여기서 나온다.

 

중독론자들은 세계보건기구라는 거대한 권위, 형식적으로 수 년간 축적된 데이터, 그리고 ‘고통받는 환자들’이라는 대중 호소력 짙은 레토릭의 ‘삼위일체’를 무기 삼아 대중 앞에 나섰다. 그래서인지 전에 없이 당당하다. “당신들이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는데”, 혹은 “당신들이 못 봐서 그러는데” 하며 여유롭게 웃는다. 실제로 KBS1 라디오 <열린토론>에 참가한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조근호 과장의 얼굴에서는 토론 내내 웃음기가 가시질 않았다.

 

 

 

# 유망한 부가가치 산업? 게임은 문화다? 슬로건만 앞서는 반론들

 

그러나 게임 이용 장애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러한 의견을 대변하여 대중 앞에 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 셧다운제가 처음 이슈가 된 2009년 즈음부터 근 10년간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단연 진부한 것은 ‘유망한 산업으로서의 게임’이라는 산업진흥론적 관점이다. 게임이 유망산업, 이른바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축인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질병코드 등재가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경쟁력에 타격을 준다면 국가경제적으로 큰 손실일 것이다. 심한 경우, 수많은 게임 회사가 문을 닫고 실업자가 양산되어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게임업계 종사자나 관계자라면 모르겠으나 대중의 입장에서는 와닿는 것이 없다. 와닿는 것은 게임 하느라 수능 망친 옆집 자식이다. 질병코드 등재가 실제로 게임업계 전반에 경제적 타격을 준다 해도, 그것은 우리 아이들과 게임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납득될 수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남의 일이다.

 

한편 문화로서의 게임이라는 관점 역시 그다지 주목받지도, 발전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런 사건들이 있을 때나 "게임도 문화다"라는 약간의 꿈틀거림이 있을 뿐, 여전히 대중의 관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주제다. 거꾸로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그래서, 문화라고 인정받으면 어쩔 것인가? 영국의 문화 연구자 벤 하이모어는 자신의 저서 『문화』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많은 층위의 경우에서 –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 “우리가 ‘의미’라는 단어를 쓰고자 할 때에, 이것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낱말의 의미란 언어 안에서의 그 사용이다.

-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86 [1953]: 20e, section 43.)

 

문화라는 말은 외연이 너무 넓어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문화 연구자들이나 애호가의 입장에서야 어떤 것을 문화로 인정하는 행위 자체가 깊은 울림을 가지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문화는 속이 비어있는 말이다. 게임이 문화다, 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자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가 뭘까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거요.”

“게임도 문화인데요.”

“아, 그래요. 그래서요?” 

 

<리니지2>의 '바츠 해방 전쟁'은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모든 게임에서 그런 유저 상호작용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게임이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되고, 수학 능력을 향상시켜준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특정한 게임이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작품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아무리 많이 소개한다고 해도 게임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모든 것이 이토록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아직까지 대중적 수준에서 “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은 그 내용은 없고 그저 영화, 음악처럼 이미 사회적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타 매체 영역으로부터 권위와 가치를 빌려오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실제로 내용을 채우려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대중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업계로부터 외면당해왔다.

 

“게임은 돈을 버는 것” 내지는 “게임은 영화 같은 것” 수준의 담론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면, 당연히 훈련된 학자들이 포진한 정신의학계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같은 논리와 레토릭으로 오랜 기간 '우려먹다'보니 준비가 부실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 산업/문화 피상적 거대담론 탈피해 생산적 논쟁 시작해야

 

<100분 토론>뿐 아니라, 그 직전에 있었던 KBS1 라디오 <열린토론>에서 이 문제는 더 두드러졌다. 토론의 흐름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등재 찬성(이하 찬): 게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질병코드 등재를 해야 한다. 

 

등재 반대(이하 반): 당신들은 병이 아닌 것을 병이라고 하고 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다.

 

찬: 문화인지 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병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질병코드 등재가 필요하다.

 

반: 질병코드가 등재되면 게임 산업에 큰 타격이 온다. 

게임 산업은 OO원의 가치가 있는 유망 산업이다.

 

찬: 게임 산업이 가치가 높기는 하지만 어쨌든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이들을 위해서 (반복)

 

서로 의견이 오고갔다기 보다는 의학계가 미리 짜놓은 판에 말려들고 만 모양새다. 이 토론이 생산적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게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라는 현상과 '질병코드 등재'라는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다 명확히 따지고, 동시에 이들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가, 게임의 어떤 요소가 문제인가, 이들과 게임 사이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등이 우선 판별될 필요가 있었다. 

 

나아가 이런 질문도 가능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게임은 무엇인가?" 수 백 건의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해 메타 연구를 시행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연구팀은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실 많은 대부분의 게임 중독 연구는 잠재적 환자, 즉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작 ‘게임’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은 배제되었다. 어떤 장르의 게임인지, 어떤 플랫폼이나 디바이스를 사용하는지, 게임의 텍스트적 특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진행한 연구는 거의 없다.

(중략)

대부분의 의약학 분야 게임중독 연구는 내적 차이를 무시한 채 ‘게임’이라는 한 마디로 퉁치거나 당시의 가장 인기있는 게임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게임 외적인 맥락, 즉 게임 산업이나 기술적 환경 등을 고려한 흔적도 없다. 


다시 말해, ‘게임 장르나 플랫폼, 기술적·산업적 환경 변화 등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연구자’가 ‘제한된 피험자’를 대상으로 ‘자의적 게임과 불완전한 진단 도구’로 연구를 한 후 그 결과를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는 주장으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 pp 127.

 

게임 이용 장애라고 명칭을 붙여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연구는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정의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알콜 중독'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알콜'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을 토론에서 제대로 지적한 패널은 없었다.

 

이제 게임측은 산업진흥론과 게임문화론이라는 거대담론에서 탈피해,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화하기 위해 정신의학계가 구축한 논리를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논박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공개되어 있지만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관련 연구자들이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 연구팀의 게임과몰입 메타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수많은 실제 게임과몰입 연구 사례를 분석해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질병코드 등재의 근거로 언급한 데이터 수집 필요성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의 연구를 반박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정의준 교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게임을 즐기는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게임과몰입 진단을 받은 청소년의 절반 정도는 그냥 '가만히 놔뒀더니' 나중에 정상 진단을 받았다.

 


 

이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하나. "50%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알아서 사라지는 게임과몰입 현상을 과연 '질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질병코드를 등재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해진 답은 없다. 2,000명, 5년은 부족하므로 추가적인 데이터 수집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반박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과 '질병코드 등재' 사이에는 여전히 그 어떤 당위도 인과관계도 없다. 정의준 교수의 연구도 질병코드 등재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고, 굳이 질병코드로 등록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양한 측면의 연구가 가능했다. 그러나 정신의학계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로지 게임 이용 장애라는 질병의 존재를 전제한 후에 이를 증명하려는 연구만을 수행했다.

 

의학계는 무엇보다 솔직할 필요가 있다.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한다. 말로만 "앞으로 협업할 용의가 있다"고 하지 말고, 게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과 실제로 협업해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묻고 싶다. 협업과 공동 연구는 질병코드 등재 없이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인데, 그동안은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채 있었는가? 게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게임과몰입은 질병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수많은 연구를 쌓아왔는가? 이것이 병이 아닌 것을 병으로 만드는 '의료화'(medicalization)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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