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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캡콤 르네상스', 40년 역사의 회사가 다시 전성기를 맞은 이유

마루노래 (이준호 기자) | 2019-04-02 13: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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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역사의 회사 캡콤이 다시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6년 <스트리트 파이터 5>부터 시작해, 2017년 <바이오 하자드 7>, 2018년 <몬스터 헌터: 월드>와 <록맨 11>, 2019년 <바이오 하자드 2: Re>와 <데빌 메이 크라이 5>까지. 2016년 이후 캡콤이 낸 자사 IP의 대형 신작은 흥행과 비평 모든 측면에서 성공했다. '연타석 홈런'이었다.

 

캡콤의 영업이익은 2010년 순간적으로 저점을 찍었다. 비록 이듬해인 2011년 바로 회복하기는 했지만,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다. 그러던 캡콤의 영업이익은 2015년부터 다시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2016년부터는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2018년에는 역대 최고점을 갱신했다.

 

그렇다면 캡콤은 어떻게 이처럼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캡콤 주요 IP들의 흥망성쇠를 짚어보고, 캡콤이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명료했다.

 

# 제1의 전성기,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 캡콤

 

전설의 시작,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업그레이드판 <터보>. 

 

우선 캡콤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오락실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출발한 캡콤은 1980년대 말 <벌거스>, <1942>와 같은 슈팅 게임을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시장에 진출,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2>(이하 스파)와 같은 걸출한 게임들을 히트시키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아케이드뿐 아니라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에도 진출해 액션 플랫포머 <록맨>, <마계촌>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출시하며 이름을 날렸다. 1996년 <바이오 하자드>가 출시되었을 때, 캡콤은 이미 세계적인 입지를 가진 게임 회사였다.

 

사실 이때부터 캡콤은 성공한 작품이 나오면, 그것을 아주 약간만 개선해 후속작을 발매하는 방식으로 타이틀의 개수를 늘려왔다. 예를 들어 1987년 시작된 <록맨> 시리즈의 경우, 거의 1년에 한 번씩 신작을 내놓았지만 새로운 외형의 스테이지와 보스가 추가되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1991년 <록맨 4>부터 이미 ‘반복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캡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신작을 찍어냈다. 록맨 시리즈는 결과적으로 2019년 기준, 본가 시리즈인 <록맨>만 11개가 나왔고, <록맨 X>, <록맨 제로>, <록맨 에그제>를 비롯한 수많은 스핀오프 작품을 낳았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이오 하자드 2>로 전세계적 성공을 맛본 캡콤은 이후 <바이오 하자드 3>, <바이오 하자드 4> 등 계속해서 시리즈를 양산했다.

 

이러한 ‘사골’ 전략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에는 성공적이었다. 평론가와 유저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캡콤의 매출은 점점 올라갔고 판매량도 호조였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생존 호러 장르의 역사를 시작한 <바이오 하자드>. 이 때만 해도 캡콤은 신 장르의 개척자로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 팬마저 떠나게 만드는 상술과 이미지 악화, ‘CRAPCOM(돈콤)’이 되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아수라의 분노>. 스토리 위주의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DLC를 사지 않으면 결말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캡콤은 IP의 열렬한 팬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만든 ‘DLC 상술’을 구사했다. <록맨 9>, <스트리트 파이터 4>, 그리고 <아수라의 분노>가 대표적이었다. <록맨 9>는 차지샷, 슬라이드 등 게임 내 기술을 DLC로 만들어 팔았다.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경우 이미 구현된 캐릭터 데이터를 게임 안에 내장해 놓고 DLC를 사야만 언락돼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수라의 분노>는 DLC를 사지 않으면 이야기의 결말을 볼 수 없었다.

 

또 한편의 문제는 새로운 시도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이미 만들어져 히트 친 게임에 ‘완전판’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별도로 판매한 뒤, 단 몇 년 후 리마스터해 또다시 판매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식해 발매하고, IP를 가져와서 완전히 다른 게임에 붙여 넣어 판매하는 등, 과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좋은 게임을 만들어왔던 캡콤의 이미지는 사라졌다. 회사의 성장은 계속됐지만, 팬들의 사랑을 갉아먹으며 이루어지는 성장이었다.

 

켄조 와이너리 홈페이지에 등장한 츠지모토 켄조 회장. 게임은 안 만들고 와인이나 만든다며 유저들의 분노를 샀다.

 

CEO 츠지모토 켄조의 와이너리 사업이 알려진 것도 이러한 이미지 악화에 큰 역할을 했다. 자사의 게임은 점점 평가가 떨어져가고, 매출을 높이기 위해 유저들의 평을 깎아 먹는 무리한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대표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한가롭게 와인 사업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미국 나파 밸리에 땅을 산 것은 1990년의 일이었고,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을 시작한 것(포도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다.

 

급기야 아들인 츠지모토 하루히로가 대표직을 이어받은 것과 맞물려 “와인 사업하느라 바빠 사업을 아들이 하게 내버려뒀고 그 뒤로 게임이 좋아졌다”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츠지모토 켄조의 아들인 츠지모토 하루히로가 캡콤의 사장 겸 COO(Chief Operating Officer, 최고운영책임자)가 된 것은 2007년의 일이었고, 회사가 최악의 성적을 보인 것은 2010년이었다.

 

엄밀히 말해 캡콤이 ‘망해가는 회사’였던 적은 없었다. 2001년부터 잠시 급격한 하락을 보인 2010년까지를 모두 놓고 봐도 캡콤의 매출과 영업 이익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캡콤은 타이틀 발매 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대형 IP 신작이 부족해 발을 삐끗했던 2010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10% 대의 영업이익률을 내며 회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2010년의 영업이익률조차 8% 수준이었다. 캡콤은 망할 뻔했던 게 아니라, 유저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망한 회사, 혹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회사로 존재한 것 뿐이었다. 

 


지난 10년간 캡콤의 매출,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 엄밀히 말해 캡콤은 다소 흔들리긴 했어도 '몰락'했던 적은 없다.

 

# “팬들을 사랑한다”는 제스처, <스트리트 파이터 5>와 변화의 시작

 

 

캡콤의 이러한 이미지 악화는 곧바로 경영 악화나 재무 불안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비즈니스 모델 탓도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가 컸다. 일본 시장에서의 매출은 감소하거나 제자리 걸음이었지만 북미, 유럽시장에서의 매출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당연히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캡콤은 2016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이러한 이미지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신호탄은 2016년 발매된 <스트리트 파이터 5>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5>는 출시 당시 미완성작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부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IP에 대한 애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유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하나 내놓았다. 바로 아케이드 모드를 추가한 ‘완전판’을 일반판 소유자에게 ‘무료 업그레이드’로 제공한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게 무슨 대수인가 싶을 수 있지만, 단적으로 2009년에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4>와만 비교해봐도 캡콤이 매우 큰 ‘작심’을 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패키지 버전은 무려 4 종류였다. 기본판인 <스트리트 파이터 4>,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트리트 파이터 4 슈퍼>, 또 다시 업그레이드 버전인 <아케이드 에디션>, 마지막으로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 4>까지 총 4개의 패키지 버전이 존재한다. 따지자면 모두가 확장팩 수준의 DLC지만 문제는 이것들을 모두 별도의 패키지로 팔았다는 점에 있었다. 기존 구매자들도 모두 DLC를 구매해야만 후속 업그레이드 버전을 즐길 수 있었으니, 전형적인 ‘쪼개 팔기’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 5>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2016년,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5>를 발매하며 모든 사람이 단 하나의 패키지만 구매해도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말처럼 <스트리트 파이터 5>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트리트 파이터 5 아케이드 에디션>은 염가판으로 발매되었으며 기존 구매자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5>의 첫 본편은 메타스코어 77점에 그쳤지만, <아케이드 에디션>은 87점을 받으며 호평 받았다. 3.6점이었던 유저 점수도 6.6점으로 크게 올랐다. 판매량은 두 버전을 모두 합쳐 250만 장을 넘겼다.

 

이랬던 점수가...
이렇게 변했다.

 

# 초심으로 돌아가 팬들을 사로잡다, <바이오 하자드 7>과 <바이오 하자드 2:Re>

 

시점이 일인칭으로 변화, 서양식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로 신선한 충격을 준 <바이오 하자드 7>

캡콤의 변화는 판매전략에만 있지 않았다. 캡콤은 실로 오랜만에 IP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바이오 하자드 7>이 그랬다. 시리즈 최초로 일인칭 시점을 도입했고, 좀비 사태가 벌어진 도시를 돌아다닌다는 기존의 콘셉트에서 벗어나, 어둡고 밀폐된 좁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서구식 호러 장르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라갔다.

 

시리즈 차원에서 일인칭이라는 형식은 혁신이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바이벌 호러’라는 시리즈의 원류로 돌아갔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2편까지만 해도 힘이 없는 주인공이 좀비나 괴물을 피해 도망다니며 생존한다는 내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생존’ 호러라는 장르 명칭도 생겨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바이오 하자드>는 액션 게임이 됐다. 좀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니며 도륙하는 플레이가 일상이었다. 2005년 <바이오 하자드 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이러한 기조는 <바이오 하자드 6>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공포 게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IP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2017년 발매된 <바이오 하자드 7>은 달랐다. 캡콤은 이 작품을 위해 전용 엔진인 ‘RE 엔진’까지 만들어가며 정성을 쏟았다. 뛰어난 그래픽과 분위기로 교외의 버려진 폐가에서 괴물을 피해 살아남는 내용을 그린 본편은 <인시디어스> 같은 서양식 공포 영화가 부럽지 않을 수준으로 무서웠고, 메타스코어 86점, 유저 평점 7.9점을 받으며 “정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던 시리즈를 완전히 부활시켰다.

 

그리고 2018년, 캡콤은 <바이오 하자드 2>의 리메이크 소식을 알렸다. 적당히 때 빼고 광 내서 내는 ‘리마스터’가 아니라 0부터 완전히 새로 만드는 ‘리메이크’라는 것을 강조했다. <바이오 하자드 2>는 <스트리트 파이터 2>와 함께 지금의 캡콤을 있게 해줬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작품이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캡콤이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점일 것이다. <바이오 하자드 7>이 생존 호러라는 장르의 바탕으로 돌아가 형식을 새로이 한 작품이었다면, <바이오 하자드 2:Re>는 팬들을 위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바이오 하자드 2>를 플레이한 팬들의 추억을 사로 잡으며 <바이오 하자드 2:Re>는 2019년 1월 출시되어 메타스코어 90점, 유저 점수 8.7점으로 평론가와 유저들의 압도적 호평을 받았다.

 

# 더 정직하게, 더 많은 팬들을 향해, <몬스터 헌터: 월드>

 

역대 최고 판매량을 경신한 흥행작, <몬스터 헌터: 월드>. 휴대용에서 콘솔로 복귀한 것이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돈콤’과 같은 악평을 듣고 있을 때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캡콤을 먹여 살려왔던 시리즈가 있었다. <몬스터 헌터>였다. 문자 그대로 사냥꾼이 되어, 다양한 무기와 장비를 활용하며 각종 거대 괴물을 사냥하는 내용으로, ‘헌팅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게임이었다. 다소 마니악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2004년 PS2 버전의 첫 작품이 출시된 이래 한때 '국민 게임' 소리를 들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판매 전략 측면에서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만큼 '우려먹기'가 심하지 않았다. 다른 IP의 판매량이 점점 떨어지고 유저들의 원성을 들으며 캡콤이 '암흑기'를 보내고 있을 때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만큼은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단점이 있다면 이 작품 역시 뒤에 ‘G’를 붙여가며 매번 확장팩을 포함한 패키지 재판매를 반복, 캡콤식 ‘나눠 팔기’ 전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점, 그리고 PSP, 닌텐도 Wii나 3DS 등 휴대용 플랫폼 위주로 발매되어 왔다는 점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PC 등을 가지고 있는 비디오 게임 시장의 다수 유저들을 놓치고 있었다.

 

2018년, <몬스터 헌터: 월드>를 통해 <몬스터 헌터>는 실로 오랜만에 콘솔 플랫폼으로 복귀했다. ‘헌팅 액션’이라는 틀은 유지하는 수준에서 그 동안 고수해오던 ‘리얼리티’ 콘셉트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불편했던 부분들을 다수 개선하며 타겟의 외연 확장을 노렸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시리즈 프로듀서 ‘츠지모토 료조’가 있었다. 츠지모토 료조는 캡콤 회장인 츠지모토 켄조의 삼남으로 <몬스터 헌터>의 초기 휴대용 버전부터 프로듀서로서 참여해왔다. 콘솔 버전의 <몬스터 헌터>가 보고 싶다며 <몬스터 헌터: 월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본인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프로듀서, 츠지모토 료조. 캡콥 회장 츠지모토 켄조의 삼남이다. 
팬들에게는 "자식 농사 잘 지은 사례"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의 역할은 개발이나 기획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리즈의 '얼굴 마담'으로서 츠지모토 료조는, 2018년 1월 10일 트러스티드 리뷰(Trusted Review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콘솔 게이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시간이나 했는데 이 몬스터는 못 잡을거 같아...'

 

라는 생각이 들 때 말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그냥 돈 좀 써서 더 좋은 장비를 얻어볼까?'

 

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대신에, 집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태도를 썼는데, 이 몬스터에는 아마 쌍검이 좋을 것 같아.'

 

저희는 여러분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장애물에 부딪히고, 또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길 바랍니다. 

혼자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건 정말 멋진 기분이니까요.

 

저희는 돈 좀 벌려고 여러분이 이런 과정을 생략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거니까요.

 

- 츠지모토 료조, 트러스티드 리뷰와의 인터뷰 중


사실 캡콤은 원래도 루트박스와 그다지 관계가 없는 회사였다. '돈콤'이라고 욕을 먹던 시절에도 캡콤의 비즈니스 모델은 여러 버전 출시를 통한 다수의 패키지와 DLC 판매에 방점이 찍혀 있었지 Pay-to-Win 모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츠지모토 료조는 그날, 정확하게 콘솔 게이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했다. "우리는 다르다"라는 일종의 제스처였다.

 

이 인터뷰는 결과적으로 게이머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DLC 판매 정책도 파격적이었다. 새로운 몬스터를 추가하는 모든 업데이트는 무료였고, 돈으로 판매하는 것은 이모티콘, 외형 정도였다.

 

2018년 1월 PS4, Xbox로 먼저 발매되고 이후 PC로도 발매된 <몬스터 헌터: 월드>는 1,000만 장 넘게 팔리며 시리즈 최고 판매 기록을 나날이 경신하고 있다. "캡콤이 부활했다(달라졌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또한 이 즈음이었다.

 

# ‘부활’의 쐐기를 박다, <데빌 메이 크라이 5>

 

10년만에 돌아온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 <데빌 메이 크라이 5>. 
이 작품을 통해 캡콥은 "다시는 우리 IP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는 <바이오 하자드 4> 개발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든 게임이었다. 악마 사냥꾼 ‘단테’가 호쾌한 액션을 선보이며 악마를 사냥하는 내용을 그렸고, 이른바 ‘스타일리시 액션’ 장르의 첫 작품이었다. 난이도 조절 실패와 콘셉트 변화로 인해 팬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작품’ 취급받는 2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는 마니악했다. 얼마나 멋있고 복잡한 콤보로 높은 난이도를 클리어할 수 있는가가 기존 팬들에게는 핵심이었고, 당연했지만 그런 플레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리즈는 자연스럽게 ‘고인 물 게임’(마니아들만 하는 게임)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캡콤은 뜬금없이 시리즈를 리부트했다. 제목도 그냥 <데빌 메이 크라이>였는데, 이후 구분을 위해 그냥 <DmC>로 불렸다. 악마 사냥꾼이 악마를 잡는다는 것 외에 많은 부분이 말 그대로 ‘리부트’됐다. 특히 시리즈의 주인공 단테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외형이 극적으로 바뀌었고, 진지한 이야기에 더 많은 공을 들였으며, 액션의 난이도도 대폭 하향됐다.

 

<DmC>는 2013년 출시돼 준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팬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자사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닌자 시어리(Ninja Theory)라는 영국 개발사에 외주를 맡긴 것도 새삼 화제가 됐다. 사실 캡콤이 외주를 맡긴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팬들은 이것을 캡콤이 <데빌 메이 크라이> IP를 버린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2018년, 캡콤은 Xbox의 미디어 브리핑에서 <데빌 메이 크라이 5>를 깜짝 공개했다. <DmC>의 리마스터 버전이 2015년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3년 만이었지만, 2008년 <데빌 메이 크라이 4> 이후 ‘정식 넘버링 후속작’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10년만의 신작이었다. 작품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팬 서비스에 가까웠다. "우리는 IP를 버린 적이 없다"는 메시지였다.

 

<바이오 하자드 7> 제작에 활용된 Re 엔진을 사용해 수준 높은 그래픽을 선보였고, 4편에 등장한 신규캐릭터 네로를 비롯해 주인공 단테, 시리즈 인기 캐릭터 트리쉬, 레이디, 버질 등이 모두 개근했다. 새로운 캐릭터와 무기의 추가도 잊지 않았다. 신규 캐릭터 V는 스타일리시 ‘액션 장르의 소환사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는 전례를 남겼다.

 

<데빌 메이 크라이 5>는 2019년 3월 초 출시돼 유저와 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고, 출시된 지 2주 만에 200만 장 넘게 팔렸다. ‘캡콤의 귀환’은 기정 사실이 됐다.

 

# 다시, 유저가 먼저다: 캡콤의 '르네상스' 정신

 

리메이크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모범 사례를 남긴 <바이오 하자드 2:Re>. 그야말로 팬들을 위한 리메이크였다.

 

지금까지 <스트리트 파이터 5>부터 시작해 캡콤이 자사 IP를 ‘부활’시킨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봤다. 사실 엄밀히 말해 ‘부활’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2편의 판매량에 못 미쳤을 뿐 꾸준히 많이 팔린 IP였고,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역시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판매량이 모든 버전을 합쳐 900만장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부활’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스트리트 파이터 5>는 패키지 버전이 2종류 밖에 없고 기존 구매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기 때문에 판매량이 300만장으로 더 적다. 꾸준히 잘해온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캡콤은 팬들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자비한 DLC 정책과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자사 IP를 외부 개발사에 맡기고, 게임과는 관련 없는 사업을 하는 등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캡콤은 팬들에게 점수를 잃을 수밖에 없는 길을 너무 오랫동안 걸어왔다.

 

2016년을 기점으로 캡콤은 이러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비판받던 DLC 정책을 완화하고,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낯선 장르에 도전하고, 신규 엔진을 개발하는 등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더 팔기 위한’ 리메이크가 아닌 팬들을 위한 리메이크, 플랫폼 변경과 편의성 개선 등 더 넓은 유저층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 등 캡콤이 2016년부터 보인 행보는 하나하나가 모범답안이었다.

 

2019년 캡콤에게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것은, 어쨌든 이들이 다시금 ‘사람’ 중심의 전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캡콤은 철저히 유저들이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유저들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면서 대안을 찾았다. 단순히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을 넘어, 다시금 사고의 중심에 유저를 놓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 르네상스가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돌아왔다고 한다면, 캡콤의 르네상스는 돈 중심의 사고에서 다시금 유저 (경험) 중심의 사고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같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주목해야 할 것이다.

 

40년 역사의 회사 캡콤이 다시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6년 <스트리트 파이터 5>부터 시작해, 2017년 <바이오 하자드 7>, 2018년 <몬스터 헌터: 월드>와 <록맨 11>, 2019년 <바이오 하자드 2: Re>와 <데빌 메이 크라이 5>까지. 2016년 이후 캡콤이 낸 자사 IP의 대형 신작은 흥행과 비평 모든 측면에서 성공했다. '연타석 홈런'이었다.

 

캡콤의 영업이익은 2010년 순간적으로 저점을 찍었다. 비록 이듬해인 2011년 바로 회복하기는 했지만,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다. 그러던 캡콤의 영업이익은 2015년부터 다시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2016년부터는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2018년에는 역대 최고점을 갱신했다.

 

그렇다면 캡콤은 어떻게 이처럼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캡콤 주요 IP들의 흥망성쇠를 짚어보고, 캡콤이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명료했다.

 

# 제1의 전성기,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 캡콤

 

전설의 시작,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업그레이드판 <터보>. 

 

우선 캡콤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오락실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출발한 캡콤은 1980년대 말 <벌거스>, <1942>와 같은 슈팅 게임을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시장에 진출,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2>(이하 스파)와 같은 걸출한 게임들을 히트시키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아케이드뿐 아니라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에도 진출해 액션 플랫포머 <록맨>, <마계촌>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출시하며 이름을 날렸다. 1996년 <바이오 하자드>가 출시되었을 때, 캡콤은 이미 세계적인 입지를 가진 게임 회사였다.

 

사실 이때부터 캡콤은 성공한 작품이 나오면, 그것을 아주 약간만 개선해 후속작을 발매하는 방식으로 타이틀의 개수를 늘려왔다. 예를 들어 1987년 시작된 <록맨> 시리즈의 경우, 거의 1년에 한 번씩 신작을 내놓았지만 새로운 외형의 스테이지와 보스가 추가되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1991년 <록맨 4>부터 이미 ‘반복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캡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신작을 찍어냈다. 록맨 시리즈는 결과적으로 2019년 기준, 본가 시리즈인 <록맨>만 11개가 나왔고, <록맨 X>, <록맨 제로>, <록맨 에그제>를 비롯한 수많은 스핀오프 작품을 낳았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이오 하자드 2>로 전세계적 성공을 맛본 캡콤은 이후 <바이오 하자드 3>, <바이오 하자드 4> 등 계속해서 시리즈를 양산했다.

 

이러한 ‘사골’ 전략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에는 성공적이었다. 평론가와 유저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캡콤의 매출은 점점 올라갔고 판매량도 호조였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생존 호러 장르의 역사를 시작한 <바이오 하자드>. 이 때만 해도 캡콤은 신 장르의 개척자로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 팬마저 떠나게 만드는 상술과 이미지 악화, ‘CRAPCOM(돈콤)’이 되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아수라의 분노>. 스토리 위주의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DLC를 사지 않으면 결말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캡콤은 IP의 열렬한 팬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만든 ‘DLC 상술’을 구사했다. <록맨 9>, <스트리트 파이터 4>, 그리고 <아수라의 분노>가 대표적이었다. <록맨 9>는 차지샷, 슬라이드 등 게임 내 기술을 DLC로 만들어 팔았다.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경우 이미 구현된 캐릭터 데이터를 게임 안에 내장해 놓고 DLC를 사야만 언락돼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수라의 분노>는 DLC를 사지 않으면 이야기의 결말을 볼 수 없었다.

 

또 한편의 문제는 새로운 시도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이미 만들어져 히트 친 게임에 ‘완전판’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별도로 판매한 뒤, 단 몇 년 후 리마스터해 또다시 판매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식해 발매하고, IP를 가져와서 완전히 다른 게임에 붙여 넣어 판매하는 등, 과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좋은 게임을 만들어왔던 캡콤의 이미지는 사라졌다. 회사의 성장은 계속됐지만, 팬들의 사랑을 갉아먹으며 이루어지는 성장이었다.

 

켄조 와이너리 홈페이지에 등장한 츠지모토 켄조 회장. 게임은 안 만들고 와인이나 만든다며 유저들의 분노를 샀다.

 

CEO 츠지모토 켄조의 와이너리 사업이 알려진 것도 이러한 이미지 악화에 큰 역할을 했다. 자사의 게임은 점점 평가가 떨어져가고, 매출을 높이기 위해 유저들의 평을 깎아 먹는 무리한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대표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한가롭게 와인 사업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미국 나파 밸리에 땅을 산 것은 1990년의 일이었고,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을 시작한 것(포도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다.

 

급기야 아들인 츠지모토 하루히로가 대표직을 이어받은 것과 맞물려 “와인 사업하느라 바빠 사업을 아들이 하게 내버려뒀고 그 뒤로 게임이 좋아졌다”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츠지모토 켄조의 아들인 츠지모토 하루히로가 캡콤의 사장 겸 COO(Chief Operating Officer, 최고운영책임자)가 된 것은 2007년의 일이었고, 회사가 최악의 성적을 보인 것은 2010년이었다.

 

엄밀히 말해 캡콤이 ‘망해가는 회사’였던 적은 없었다. 2001년부터 잠시 급격한 하락을 보인 2010년까지를 모두 놓고 봐도 캡콤의 매출과 영업 이익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캡콤은 타이틀 발매 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대형 IP 신작이 부족해 발을 삐끗했던 2010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10% 대의 영업이익률을 내며 회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2010년의 영업이익률조차 8% 수준이었다. 캡콤은 망할 뻔했던 게 아니라, 유저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망한 회사, 혹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회사로 존재한 것 뿐이었다. 

 


지난 10년간 캡콤의 매출,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 엄밀히 말해 캡콤은 다소 흔들리긴 했어도 '몰락'했던 적은 없다.

 

# “팬들을 사랑한다”는 제스처, <스트리트 파이터 5>와 변화의 시작

 

 

캡콤의 이러한 이미지 악화는 곧바로 경영 악화나 재무 불안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비즈니스 모델 탓도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가 컸다. 일본 시장에서의 매출은 감소하거나 제자리 걸음이었지만 북미, 유럽시장에서의 매출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당연히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캡콤은 2016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이러한 이미지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신호탄은 2016년 발매된 <스트리트 파이터 5>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5>는 출시 당시 미완성작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부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IP에 대한 애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유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하나 내놓았다. 바로 아케이드 모드를 추가한 ‘완전판’을 일반판 소유자에게 ‘무료 업그레이드’로 제공한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게 무슨 대수인가 싶을 수 있지만, 단적으로 2009년에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4>와만 비교해봐도 캡콤이 매우 큰 ‘작심’을 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패키지 버전은 무려 4 종류였다. 기본판인 <스트리트 파이터 4>,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트리트 파이터 4 슈퍼>, 또 다시 업그레이드 버전인 <아케이드 에디션>, 마지막으로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 4>까지 총 4개의 패키지 버전이 존재한다. 따지자면 모두가 확장팩 수준의 DLC지만 문제는 이것들을 모두 별도의 패키지로 팔았다는 점에 있었다. 기존 구매자들도 모두 DLC를 구매해야만 후속 업그레이드 버전을 즐길 수 있었으니, 전형적인 ‘쪼개 팔기’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 5>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2016년,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5>를 발매하며 모든 사람이 단 하나의 패키지만 구매해도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말처럼 <스트리트 파이터 5>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트리트 파이터 5 아케이드 에디션>은 염가판으로 발매되었으며 기존 구매자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5>의 첫 본편은 메타스코어 77점에 그쳤지만, <아케이드 에디션>은 87점을 받으며 호평 받았다. 3.6점이었던 유저 점수도 6.6점으로 크게 올랐다. 판매량은 두 버전을 모두 합쳐 250만 장을 넘겼다.

 

이랬던 점수가...
이렇게 변했다.

 

# 초심으로 돌아가 팬들을 사로잡다, <바이오 하자드 7>과 <바이오 하자드 2:Re>

 

시점이 일인칭으로 변화, 서양식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로 신선한 충격을 준 <바이오 하자드 7>

캡콤의 변화는 판매전략에만 있지 않았다. 캡콤은 실로 오랜만에 IP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바이오 하자드 7>이 그랬다. 시리즈 최초로 일인칭 시점을 도입했고, 좀비 사태가 벌어진 도시를 돌아다닌다는 기존의 콘셉트에서 벗어나, 어둡고 밀폐된 좁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서구식 호러 장르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라갔다.

 

시리즈 차원에서 일인칭이라는 형식은 혁신이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바이벌 호러’라는 시리즈의 원류로 돌아갔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2편까지만 해도 힘이 없는 주인공이 좀비나 괴물을 피해 도망다니며 생존한다는 내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생존’ 호러라는 장르 명칭도 생겨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바이오 하자드>는 액션 게임이 됐다. 좀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니며 도륙하는 플레이가 일상이었다. 2005년 <바이오 하자드 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이러한 기조는 <바이오 하자드 6>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공포 게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IP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2017년 발매된 <바이오 하자드 7>은 달랐다. 캡콤은 이 작품을 위해 전용 엔진인 ‘RE 엔진’까지 만들어가며 정성을 쏟았다. 뛰어난 그래픽과 분위기로 교외의 버려진 폐가에서 괴물을 피해 살아남는 내용을 그린 본편은 <인시디어스> 같은 서양식 공포 영화가 부럽지 않을 수준으로 무서웠고, 메타스코어 86점, 유저 평점 7.9점을 받으며 “정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던 시리즈를 완전히 부활시켰다.

 

그리고 2018년, 캡콤은 <바이오 하자드 2>의 리메이크 소식을 알렸다. 적당히 때 빼고 광 내서 내는 ‘리마스터’가 아니라 0부터 완전히 새로 만드는 ‘리메이크’라는 것을 강조했다. <바이오 하자드 2>는 <스트리트 파이터 2>와 함께 지금의 캡콤을 있게 해줬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작품이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캡콤이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점일 것이다. <바이오 하자드 7>이 생존 호러라는 장르의 바탕으로 돌아가 형식을 새로이 한 작품이었다면, <바이오 하자드 2:Re>는 팬들을 위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바이오 하자드 2>를 플레이한 팬들의 추억을 사로 잡으며 <바이오 하자드 2:Re>는 2019년 1월 출시되어 메타스코어 90점, 유저 점수 8.7점으로 평론가와 유저들의 압도적 호평을 받았다.

 

# 더 정직하게, 더 많은 팬들을 향해, <몬스터 헌터: 월드>

 

역대 최고 판매량을 경신한 흥행작, <몬스터 헌터: 월드>. 휴대용에서 콘솔로 복귀한 것이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돈콤’과 같은 악평을 듣고 있을 때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캡콤을 먹여 살려왔던 시리즈가 있었다. <몬스터 헌터>였다. 문자 그대로 사냥꾼이 되어, 다양한 무기와 장비를 활용하며 각종 거대 괴물을 사냥하는 내용으로, ‘헌팅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게임이었다. 다소 마니악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2004년 PS2 버전의 첫 작품이 출시된 이래 한때 '국민 게임' 소리를 들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판매 전략 측면에서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만큼 '우려먹기'가 심하지 않았다. 다른 IP의 판매량이 점점 떨어지고 유저들의 원성을 들으며 캡콤이 '암흑기'를 보내고 있을 때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만큼은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단점이 있다면 이 작품 역시 뒤에 ‘G’를 붙여가며 매번 확장팩을 포함한 패키지 재판매를 반복, 캡콤식 ‘나눠 팔기’ 전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점, 그리고 PSP, 닌텐도 Wii나 3DS 등 휴대용 플랫폼 위주로 발매되어 왔다는 점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PC 등을 가지고 있는 비디오 게임 시장의 다수 유저들을 놓치고 있었다.

 

2018년, <몬스터 헌터: 월드>를 통해 <몬스터 헌터>는 실로 오랜만에 콘솔 플랫폼으로 복귀했다. ‘헌팅 액션’이라는 틀은 유지하는 수준에서 그 동안 고수해오던 ‘리얼리티’ 콘셉트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불편했던 부분들을 다수 개선하며 타겟의 외연 확장을 노렸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시리즈 프로듀서 ‘츠지모토 료조’가 있었다. 츠지모토 료조는 캡콤 회장인 츠지모토 켄조의 삼남으로 <몬스터 헌터>의 초기 휴대용 버전부터 프로듀서로서 참여해왔다. 콘솔 버전의 <몬스터 헌터>가 보고 싶다며 <몬스터 헌터: 월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본인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프로듀서, 츠지모토 료조. 캡콥 회장 츠지모토 켄조의 삼남이다. 
팬들에게는 "자식 농사 잘 지은 사례"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의 역할은 개발이나 기획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리즈의 '얼굴 마담'으로서 츠지모토 료조는, 2018년 1월 10일 트러스티드 리뷰(Trusted Review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콘솔 게이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시간이나 했는데 이 몬스터는 못 잡을거 같아...'

 

라는 생각이 들 때 말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그냥 돈 좀 써서 더 좋은 장비를 얻어볼까?'

 

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대신에, 집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태도를 썼는데, 이 몬스터에는 아마 쌍검이 좋을 것 같아.'

 

저희는 여러분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장애물에 부딪히고, 또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길 바랍니다. 

혼자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건 정말 멋진 기분이니까요.

 

저희는 돈 좀 벌려고 여러분이 이런 과정을 생략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거니까요.

 

- 츠지모토 료조, 트러스티드 리뷰와의 인터뷰 중


사실 캡콤은 원래도 루트박스와 그다지 관계가 없는 회사였다. '돈콤'이라고 욕을 먹던 시절에도 캡콤의 비즈니스 모델은 여러 버전 출시를 통한 다수의 패키지와 DLC 판매에 방점이 찍혀 있었지 Pay-to-Win 모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츠지모토 료조는 그날, 정확하게 콘솔 게이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했다. "우리는 다르다"라는 일종의 제스처였다.

 

이 인터뷰는 결과적으로 게이머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DLC 판매 정책도 파격적이었다. 새로운 몬스터를 추가하는 모든 업데이트는 무료였고, 돈으로 판매하는 것은 이모티콘, 외형 정도였다.

 

2018년 1월 PS4, Xbox로 먼저 발매되고 이후 PC로도 발매된 <몬스터 헌터: 월드>는 1,000만 장 넘게 팔리며 시리즈 최고 판매 기록을 나날이 경신하고 있다. "캡콤이 부활했다(달라졌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또한 이 즈음이었다.

 

# ‘부활’의 쐐기를 박다, <데빌 메이 크라이 5>

 

10년만에 돌아온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 <데빌 메이 크라이 5>. 
이 작품을 통해 캡콥은 "다시는 우리 IP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는 <바이오 하자드 4> 개발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든 게임이었다. 악마 사냥꾼 ‘단테’가 호쾌한 액션을 선보이며 악마를 사냥하는 내용을 그렸고, 이른바 ‘스타일리시 액션’ 장르의 첫 작품이었다. 난이도 조절 실패와 콘셉트 변화로 인해 팬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작품’ 취급받는 2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는 마니악했다. 얼마나 멋있고 복잡한 콤보로 높은 난이도를 클리어할 수 있는가가 기존 팬들에게는 핵심이었고, 당연했지만 그런 플레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리즈는 자연스럽게 ‘고인 물 게임’(마니아들만 하는 게임)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캡콤은 뜬금없이 시리즈를 리부트했다. 제목도 그냥 <데빌 메이 크라이>였는데, 이후 구분을 위해 그냥 <DmC>로 불렸다. 악마 사냥꾼이 악마를 잡는다는 것 외에 많은 부분이 말 그대로 ‘리부트’됐다. 특히 시리즈의 주인공 단테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외형이 극적으로 바뀌었고, 진지한 이야기에 더 많은 공을 들였으며, 액션의 난이도도 대폭 하향됐다.

 

<DmC>는 2013년 출시돼 준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팬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자사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닌자 시어리(Ninja Theory)라는 영국 개발사에 외주를 맡긴 것도 새삼 화제가 됐다. 사실 캡콤이 외주를 맡긴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팬들은 이것을 캡콤이 <데빌 메이 크라이> IP를 버린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2018년, 캡콤은 Xbox의 미디어 브리핑에서 <데빌 메이 크라이 5>를 깜짝 공개했다. <DmC>의 리마스터 버전이 2015년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3년 만이었지만, 2008년 <데빌 메이 크라이 4> 이후 ‘정식 넘버링 후속작’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10년만의 신작이었다. 작품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팬 서비스에 가까웠다. "우리는 IP를 버린 적이 없다"는 메시지였다.

 

<바이오 하자드 7> 제작에 활용된 Re 엔진을 사용해 수준 높은 그래픽을 선보였고, 4편에 등장한 신규캐릭터 네로를 비롯해 주인공 단테, 시리즈 인기 캐릭터 트리쉬, 레이디, 버질 등이 모두 개근했다. 새로운 캐릭터와 무기의 추가도 잊지 않았다. 신규 캐릭터 V는 스타일리시 ‘액션 장르의 소환사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는 전례를 남겼다.

 

<데빌 메이 크라이 5>는 2019년 3월 초 출시돼 유저와 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고, 출시된 지 2주 만에 200만 장 넘게 팔렸다. ‘캡콤의 귀환’은 기정 사실이 됐다.

 

# 다시, 유저가 먼저다: 캡콤의 '르네상스' 정신

 

리메이크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모범 사례를 남긴 <바이오 하자드 2:Re>. 그야말로 팬들을 위한 리메이크였다.

 

지금까지 <스트리트 파이터 5>부터 시작해 캡콤이 자사 IP를 ‘부활’시킨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봤다. 사실 엄밀히 말해 ‘부활’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2편의 판매량에 못 미쳤을 뿐 꾸준히 많이 팔린 IP였고,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역시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판매량이 모든 버전을 합쳐 900만장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부활’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스트리트 파이터 5>는 패키지 버전이 2종류 밖에 없고 기존 구매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기 때문에 판매량이 300만장으로 더 적다. 꾸준히 잘해온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캡콤은 팬들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자비한 DLC 정책과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자사 IP를 외부 개발사에 맡기고, 게임과는 관련 없는 사업을 하는 등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캡콤은 팬들에게 점수를 잃을 수밖에 없는 길을 너무 오랫동안 걸어왔다.

 

2016년을 기점으로 캡콤은 이러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비판받던 DLC 정책을 완화하고,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낯선 장르에 도전하고, 신규 엔진을 개발하는 등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더 팔기 위한’ 리메이크가 아닌 팬들을 위한 리메이크, 플랫폼 변경과 편의성 개선 등 더 넓은 유저층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 등 캡콤이 2016년부터 보인 행보는 하나하나가 모범답안이었다.

 

2019년 캡콤에게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것은, 어쨌든 이들이 다시금 ‘사람’ 중심의 전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캡콤은 철저히 유저들이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유저들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면서 대안을 찾았다. 단순히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을 넘어, 다시금 사고의 중심에 유저를 놓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 르네상스가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돌아왔다고 한다면, 캡콤의 르네상스는 돈 중심의 사고에서 다시금 유저 (경험) 중심의 사고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같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