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프롬은 왜 ‘세키로’를 ‘다크 소울’과 다르게 만들었을까?

마루노래 (이준호) | 2019-04-05 1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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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소울> 시리즈. 비평가 평도 유저 평도 좋았고, 판매량도 준수한 프롬 소프트웨어의 효자 IP. 그런데 디렉터인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2016년 돌연, <다크 소울 3>를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 <다크 소울>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2017년 말, 프롬 소프트웨어는 새 작품의 티저를 공개했다. 

 

2017년 공개된 티저 영상 캡처. 그래서 도대체 이 후속작은 무엇이냐며 의견이 분분했다. 

 

아무리 봐도 <다크 소울>은 아닌 것 같았다. 이 프로젝트의 정체는 2018년 E3에서 밝혀졌다. 일본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신규 IP의 액션 게임,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이하 세키로)였다. <세키로>는 2019년 3월 22일,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출시됐다. <다크 소울 3>가 나온 것이 2016년이 3월이었으니 꼭 3년 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왜 굳이 잘나가던 <다크 소울> 시리즈를 끝내고 갑자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세키로>를 만들었을까?

 


#그 많던 <다크 소울>은 누가 다 먹었나


프롬 소프트웨어가 <다크 소울>을 끝낸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사의 ‘아이덴티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다크 소울> 시리즈를 통해 프롬 소프트웨어는 ‘어렵고 깊이 있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다크 소울 2>가 다소 미묘한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블러드본>, <다크 소울 3>는 모두 불후의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다크 소울> 시리즈의 깊이 있는 전투 시스템은 많은 마니아들을 만들어냈다. ‘깊이 있는’은 사실 좀 돌려 말한 거고, 처음 하면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플레이하다 보면 어느 새 정말 못 잡을 것 같았던 보스를 잡고 화톳불에 불을 지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플레이어로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뿌듯함이란 정말이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순간순간 패드를 집어던지고 싶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난이도, 그리고 그걸 차근차근 극복하며 성장의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다크 소울> 시리즈 특유의 재미는, 다른 회사들이 쉽게 복제해낼 수 없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전매특허다.


#눈을 뜨세요, 망자여.


문제는 이런 것이다. 플레이어의 성장은 데이터 계승이 필요 없다. 아니, 언제나 계승된다. <다크 소울>을 하고, <다크 소울 2>를 하고, <블러드본>을 하고… <다크 소울>을 오래 플레이한 팬들은 이제 언데드, ‘망자’라고 불릴 정도로 소울류 전투 시스템에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다른 게임들은 새로 시작하면 주인공의 능력치가 리셋이 되는데, <다크 소울> 시리즈는 ‘플레이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리셋이 딱히 의미가 없다. 망자들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 <다크 소울 3>가 나왔을 때, 그래서인지 “너무 쉬워졌다”는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왔다.

그런데, 과연 쉬울까? 인정하자. 망자 여러분들에게나 쉽지, <다크 소울 3>도 처음 하는 사람한테는 충분히 어려운 게임이다. 말하자면 진입 장벽이 분명히 있고 그것도 꽤 높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벽을 기어오르다 중간에 사라졌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자, 이제 문제다. 여기서 기존 유저들을 만족시키려고 더 어렵게 만들면 당연히 진입 장벽은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게임은 더 ‘고인물 게임’이 될 것이고, 신규 유저는 줄어들면서 판매량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게임을 ‘더 많이’ 팔아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지상과제인 회사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악순환인 셈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아예 다른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다른 게임을 만든다고 프롬 소프트웨어가 갑자기 ‘미소녀 수집형 RPG’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상상해보라. 그것도 나름 재밌을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잘 안된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또다른 대표작, <블러드본>.

모든 회사는 각자의 아이덴티티가 있고, 실제로 잘하는 것도 다 다르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다크 소울> ‘같은 것’을 잘 만드는 회사고 그렇게 각인된 상태다. 그러니까 자사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지만, <다크 소울>과는 다른 게임”이라는, 마치 유니콘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한 것이다.

사실 “<다크 소울>과 다른 게임을 만들겠다”라는 이야기는 미야자키 사장이 전부터 해왔던 말이다. 단적으로 2015년 나온 <블러드본> 때도 했다. 물론 <블러드본>은 <다크 소울>과는 별도로 훌륭한 게임이지만, 전투만 놓고 보면 기본적으로 <다크 소울>의 개량판이었지 완전히 다른 게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어려운 것을 프롬 소프트웨어는 해냈다. <세키로>의 전투는 <다크 소울>과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어렵고 또 재밌다. 이제부터 그 의도와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용사의 모험에서 닌자의 혈투로


3월 8일, PR 매니저와의 간담회 이후 공개됐던 <세키로>의 발매 전 플레이 영상

<다크 소울>과 <세키로>는 기본 테마부터 달랐다. 기본적으로 <다크 소울>은 판타지물의 왕도를 따라간다. <다크 소울>의 플레이어는 어쨌든 세계를 구하는 용사로서 출발하고, 그 외엔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 소울>은 기본적으로는 롤플레잉 요소가 강한 게임이다. 기사, 마법사 등 여러가지 프리셋 캐릭터가 제공되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육성할지는 자유다. Min-maxing(가장 효율적인 수치를 찾아가며 육성하는 플레이)을 하면서 효율적인 캐릭터를 구축할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캐릭터를 능력치와 장비를 통해 구현해 ‘롤플레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변태(?) 플레이도 나온다.

그러나 <세키로>는 다르다. 주인공에게는 ‘닌자’라는 명확한 직업과 ‘세키로’라는 명칭이 부여되어 있다. 닌자는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장르적 관습에 있어서도 매우 명확한 특징을 가진 직업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닌자였을까? 프롬 소프트웨어의 PR 매니저인 키타오 야스히로는 이에 대해 게임 출시 전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사무라이보다 닌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일본 배경의 닌자를 만들고 싶다고 한 것이 아니라, 게임 디자인부터 출발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가 <다크소울>을 만들 때 맵을 입체적으로 설계했는데, <세키로>를 기획하면서 이러한 입체적인 맵을 좀 더 입체감 있게 이동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크소울>처럼 무거운 갑옷을 입은 캐릭터가 와이어 액션을 벌일 수 없어서, 적합한 캐릭터를 찾다가 ‘닌자’를 선택하게 됐다." 
- 키타오 야스히로, 프롬 소프트웨어 PR 매니저

그리고 이 시점에서, <세키로>는 <다크 소울>과 매우 다른 게임으로 발전하게 됐다.

※관련기사
“세키로, 다크소울 시리즈 처음 접했을 때 막막함이 느껴질 것” 링크


#스태미나의 제거와 체간 시스템의 도입


두 게임의 전혀 다른 콘셉트는 단순히 게임의 이야기나 배경에서 그치지 않고 이 게임의 핵심 시스템, 즉 전투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세키로>는 어떻게 <다크 소울>과는 다른 닌자식 전투를 구현했을까?

용이한 비교를 위해 우선 <다크 소울>의 근접 전투만 놓고 비교해보자. '거리와 타이밍'에 기반한 <다크 소울>의 근접 전투는 스태미나라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절제된 공격과 방어를 요구한다. 따라서 전투의 속도가 제한된다.

하지만 <세키로>에는 스태미나가 없다. 자원의 제약으로 막기, 거리 재기, 가드 브레이킹, 패링 등 여러 행동의 순간적 선택이 중요했던 <다크 소울>의 근접 전투와 달리, <세키로>의 전투에서 플레이어는 스태미나라는 제약 없이 빠르고 날렵하게 싸운다. 닌자의 전투다.

스태미나가 없으니 마음껏 구르면서 피해 다니면 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세키로>에는 구르기 역시없다. 대신 점프와 회피가 있는데, 이 둘의 성능이 구르기만 못하다. 무적 판정이 거의 없고, 일반 적들의 공격도 추적 성능이 훨씬 좋다. 심지어 적들의 공격 패턴 중에는 후방을 제외한 측면을 모두 공격하는 횡베기가 잦게 등장한다.


<다크 소울>처럼 하면 죽는다는 이야기는 대체로 여기서 나온다. 후방을 노리겠다는 생각으로 파고들면서 회피하거나, 점프로 애매하게 피하면 무조건 맞는다. 그런데 체력은 더 낮아져 2~3대만 맞아도 죽는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릴 수도 없다. 새로 생긴 ‘체간’과 ‘인살’ 시스템 덕분이다. 체간은 일종의 피로도 게이지다. 체력의 감소 여부와 무관하게 공격을 맞을 때마다 쌓이고, 다 쌓이면 자세가 무너진다. 이때 멋들어진 모션의 특수 공격, 인살로 마무리 일격을 가할 수 있다.

<다크 소울>은 2대 때리고 도망치고, 다시 눈치를 보다가 2대 때리는 식의 치고 빠지기 전술이 유효했다. 하지만<세키로>의 적들은 2대를 때릴 수가 없다. 일반 잡졸도 공격을 잘 막아내고, 좀처럼 유효타를 허용하지 않는다. 2대 이상 연타하면 그 뒤에는 무조건 반격한다. 적을 무찌르는 최선의 방법은 체간을 쌓아 자세를 무너뜨리고 인살을 넣는 것이다. 

때문에 <세키로>에서는 적과 거리를 벌리고 공격을 멈추면 제자리 걸음이다. 싸울 때는 확실하게 적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공격을 주고 받아야한다. <다크 소울>의 전투가 서로 거리를 재며 (빙빙 돌며) 공격의 순간을 고민하는 것이 기본 상황이라면, <세키로>는 검격을 주고받으며 공격과 방어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기본 상황인 것이다.


#쉬워진 패링, 그러나 못하면 죽는다

튕기기에 성공했을 때 작렬하는 불꽃 효과

그럼에도 <세키로>의 전투는 <다크 소울>의 근접 전투보다 한편으론 더 솔직해졌다. ‘패링’이 가드와 합쳐졌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다크 소울>과 <블러드본>의 패링은 가드(혹은 회피)와 무관한, 약점 공격('앞잡'과 '내장 공격')을 노리는 튕기기 동작이었다. 하지만 <세키로>의 패링은 근본적으로 타이밍이 정확한 가드다.

가드 버튼과 같은 버튼을 그저 적의 공격에 맞춰 누르기만 하면 되니 조작도 더 간단하다. 정확한 타이밍에 가드 버튼을 누르면, “팅!”하는 멋진 효과음, 불꽃이 튀는 화려한 시각효과와 함께 상대방의 체간을 쌓을 수 있다. 여기선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다.

<다크 소울>에서 패링은 하면 좋지만 필수는 아니었다. 타이밍이 어렵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패링에 실패하면 적의 공격에 맞은 것과 차이가 없었다. 전형적인 하이 리크스 하이 리턴 기술이었다. 패링을 얼마나 잘하느냐로 숙련자와 비숙련자를 구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키로>의 패링은 실패하면 그저 가드가 될 뿐이다. 리스크는 낮으면서도 성능은 출중하다. 그러나 쉬워진 만큼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예를 들어 어떤 미니 보스는 계속해서 같은 패턴으로만 공격한다. 패링에 익숙하면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지만, 패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렵다.


#이 危를 패링에 싸서 드셔보세요

친절하게 危험한 공격이 날아온다고 알려주는 효과. 프롬 소프트웨어의 친절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가만히 누르고 있어도 잘 작동하는 데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잘 누르면 상대방의 체간까지 쌓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키로>의 가드는 그야말로 공방일체의 사기 스킬이 따로 없다. 시각효과와 효과음도 멋있다. 적과 검격을 주고받으며 싸우고 있으면, 마치 내가 멋진 일본 사무라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그런 ‘멋진 기분’을 즐기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危(위험의 '위')를 선물했다. '둥'하는 특수 효과음과 더불어 허공에 危라는 문자를 띄우며 날아오는 3종의 특수 공격, 하단 베기, 찌르기, 그리고 잡기다. 모든 危 공격의 공통점은 가드가 아예 불가능하거나, 가드를 중단하고 회피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파훼법은 정해져 있다. 하단 베기에는 점프, 찌르기에는 간파(전방 회피), 잡기에는 그냥 회피 등, 각 특수 공격에 대응하는 확실한 회피 방법이 하나씩 있다. 어찌 보면 '가위 바위 보'와 비슷하다. 그것도 상대가 무엇을 내는지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가위 바위 보다. 

"느려!"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꽤 어렵다. 반복적으로 가드(패링) 하던 중간에 갑자기 특수 공격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당황하게 된다. 패턴을 잘 모르는 적과 처음 싸울 때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언제 무슨 특수공격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수도 그다지 허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危 공격은 플레이어의 체력을 절반 이상 깎는다. 두 번 이상 맞으면 거의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보상은 확실하다. 특히 찌르기 공격에 대응하는 간파 스킬은 성공시키면 높은 체간 데미지를 주면서 상대방의 칼날을 밟고 올라선다. 마치 “느려!”라고 외쳐야만 할 것처럼.


#그림자는 이제 그만 죽고 싶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그 '손맛'


위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 <세키로>의 전투는 스태미나가 제거되고 구르기가 사라졌지만, 체간과 인살, 가드-패링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다크 소울>식 ‘거리와 타이밍’ 전투와 완전히 결별했다.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상대방의 거리 안으로 들어가 검을 맞댄다. 서로 끊임없이 공격을 주고 받으며 치명적인 한방을 노린다. 그렇게 연출되는 숨 고를 새 없는 전투의 스펙터클. 그것이 <세키로>식 전투다.

그 결과 <세키로>의 전투는 ‘임무와 보상’의 연쇄가 빠르게 돌아간다. 상대방이 공격할 때마다, 危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플레이어는 임무를 받고, 수행하면 확실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 적을 죽일 때에도 그냥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인살로 멋들어진 마무리 일격을 넣는다. 이렇듯 보상이 빠르고 확실하니 ‘손맛’이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다크 소울>이 보여준 넓은 폭의 육성 시스템을 그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세키로>에는 그 정도로 넓고 다양한 플레이는 없다. 요컨대 “나는 원거리에서 표창을 날리며 싸우는 닌자가 되겠어.”라거나, “나는 창잡이 닌자를 할 거야.” 같은 플레이는 어렵다.

그러나 <세키로>는 여전히 프롬 소프트웨어다운 게임이다. <세키로>의 전투는 <다크 소울>과 다르면서도 충분히 도전적이고 즐겁다. 완전히 다른 형태로 아슬아슬한 어려움과 성장하는 재미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더 넓은 유저들을 향해 어필하면서도 “어렵고 재밌는 게임 만드는 회사”라는 자사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고민은 다행히 유저와 평단의 압도적 호평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99%의 평론가들이 이 게임을 좋아합니다." 오픈크리틱에서 평론가 점수 평균 90점, 추천율 99%를 달성한 <세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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