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블록체인 게임판은 지금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는 빈 도화지 상태”

세이야 (반세이) | 2018-08-09 10: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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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에 대한 게임업계의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불어온 ‘투기’ 열풍이 물러난 자리에 비로소 ‘투자’ 자본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업체는 물론 중견, 개인 개발자까지 블록체인 게임을 직접 개발하거나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이 블록체인 게임의 가능성과 개발 동향을 취재했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크립토키티>의 성공으로 대두된 블록체인 게임의 가능성

<크립토키티>의 성공 이후 많은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크립토키티>라는 이름은 암호화를 뜻하는 ‘Crypto’와 고양이를 뜻하는 ‘Kitty’를 합친 것으로, 암호화폐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고양이 수집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담고 있다.   

 

‘크립토키티’의 디지털 고양이

 

게임의 메커니즘은 비교적 단순하다. 온라인상에서 고양이를 구입하고, 교배를 통해 번식시키고, 적당한 가격에 판매한다. 거래에는 암호화폐 ‘이더리움’이 쓰인다. 유전 등급(Gen#)이 높은 고양이일수록 비싸고, 교배에 따라 부여된 특성이 독특해도 비싸다. 수십억 가지의 특성 조합이 가능하며, 각각의 고양이는 블록체인 장부에 기록돼 고유성을 가진다.  

 

美 인터넷매체 복스닷컴은 <크립토키티>를 소개하며 “크립토키티의 고양이는 마치 디지털 비니 베이비(인형 브랜드)나 야구 선수 카드와도 같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현실에서 인형이나 각종 카드를 모으는 것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실체가 없는 수집품을 모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겠지만 놀랍게도 <크립토키티> 내부 경제는 이미 수백억 원 규모이며, 최근 2,500달러(250만 원) 상당의 디지털 고양이가 판매되기도 했다.    

 

 

과열된 모바일게임 시장 경쟁 뒤로 하고, 새로운 기회 찾는 일본 개발사들

일본에는 블록체인 게임이 이미 다수 출시돼 있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게임들도 있다. 게임 디자인은 대체로 <크립토키티>와 유사하다. 게임 내 희소가치가 있는 재화를 구매하고 판매하는데 암호화폐를 이용한다. 블록체인 게임을 여러 개 플레이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풍문도 들린다.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 ‘비트매트릭스’ 김호진 대표는 “아무래도 암호화폐 거래 합법화 영향이 크다. 일본 역시 태동기지만 게임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모양새다. 규모가 작은 개발사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중대형 개발사들은 ‘신사업’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합법적 화폐를 이용하는 게임이기에 일반인들 역시 재미만을 위한 게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산 운용이나 투자 개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의견이다.  

 

비트매트릭스 김호진 대표 

 

일본 전문 프리랜서 마케터 이경훈씨는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매출 100위 안에 들기도 요원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어떻게 보면 소규모 개발사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지금 막 산업이 태동하는 단계에서 이미 매출이 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유의미한 지점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경훈 마케터에 따르면 구미(Gumi), 아소비모 등 일본의 중견 게임사들은 블록체인 게임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토큰스카이’ 컨퍼런스에서 아소비모 카츠노리 콘도 대표는 “10조 일본 게임 시장에 버금가는 블록체인 시장을 만들겠다”라고 선포하고 1천만 명의 자사 게임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아소비코인’을 발표했다. 

 

이경훈 일본 전문 게임 프리랜서 마케터  

 

카츠노리 대표는 “아소비코인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 중고 거래가 가능하다. 만약 <원피스> 전자책 1권을 모두 읽었다면 1권을 판매하고 얻은 아소비코인으로 2권의 중고 전자책을 살 수 있다”라고 구체적 사용 예시를 소개했다. 카츠노리 대표는 “아소비모가 특허를 보유한 2개의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의 복제를 방지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IGAWorks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17년 일본 마켓에 출시된 모바일게임 수는 월평균 약 1,300개다. 그중 매출 순위 100위 안에 신규 진입하는 게임은 월평균 10개 이내였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경우 매출 순위 100위권 내에 신규 진입하는 게임 중 RPG 비중이 눈에 띄게 높다는 것 정도다.   

 

 

1세대 <크립토키티> 모델 사업성 검증돼, 2세대 향한 과도기에서 다양한 시도 이어져

비트매트릭스 김호진 대표는 “<크립토키티>의 게임 디자인이 매출 측면에서 ‘검증된’ 모델이기 때문에 응용/모방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 블록체인 게임 시장은 가이드도, 레퍼런스도 없는 ‘백지’에 가까운 상태기 때문에 소규모 그룹은 직접 이것저것 시도해 보거나, 검증된 모델을 응용/모방하고, 대규모 그룹은 인재를 확보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립토키티>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모으고, 판매하는 형태 외에 다양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 RPG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블루던>은 현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RPG에 ITAM 토큰을 이용한 유저 간 아이템 거래 시스템을 얹었다.    

 

블록체인 모바일게임 ‘블루던’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세븐체인’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넘버스’는 난수생성(RNG)을 통해 게임에 존재하는 각종 확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목표다. 넘버스 조한규 대표는 블록체인 매거진 크로스웨이브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게임사가 중앙에서 관리하는 유저의 승률, 랜덤 뽑기, 아이템 드롭률 등에 대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 확률 부분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탈중앙화를 꾀했다”라고 밝혔다.   

 

<네코유메>는 TRPG <던전월드>의 규칙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는 판타지 MMORPG다. <네코유메>는 ‘해시랜덤’이라는 고유의 시스템을 개발해 게임에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해시랜덤은 게임이 <던전월드> 룰을 채택했기 때문에 동반되는 특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해시랜덤 시스템에 따르면 유저는 게임에서 의도적으로 ‘유리한 수를 내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없다. 만약 시도하게 되면 손해를 본다. <네코유메> 개발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던전월드>는 플레이어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에 여러 사용자가 참여하는 블록체인의 특성에 적합하다. 또한, 사용자의 모든 행동을 6면체 주사위 2회 굴림을 통해 판정하도록 디자인 됐기 때문에 해시랜덤을 사용하기에도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유저의 행동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네코유메>

 

 

 

거래소 인수, 코인 발행 등 국내 게임업체도 많은 관심 보여

국내 기업들도 블록체인 기술에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넥슨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을 인수한데 이어 최근 글로벌 5대 거래소 중 하나인 ‘비트스탬프’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비트매트릭스 김호진 대표는 넥슨의 거래소 인수에 대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IT기업이라면 블록체인 기술을 절대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세계적 흐름에 비해 다소 뒤쳐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넥슨 역시 이후를 도모하기 위해 일단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넥슨은 거래소 인수뿐만 아니라 직접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2009년 NXC 계열사로 편입된 러시모는 지난 7월 16일 사명을 ‘블록체인엔터테인먼트랩’으로 변경하고 법인 사업 목적을 추가했다. 

 

추가된 사업 목적은 ▲통신판매중개업 ▲온라인정보제공업 ▲기술연구 및 용역 수탁업 ▲시스템 구축사업 ▲전자지급 결제 대행업 ▲외국환거래법상의 소액해외송금법 등이다. 다수의 매체는 이를 ‘블록체인 사업을 위한 사전 조치’라고 해석했다. 대표에는 데브캣 스튜디오에서 e스포츠 전용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연구하던 노기태 부장이 선임됐다. 

 

네오위즈의 자회사 네오플라이 권용길 대표는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를 통해 “최근 국내 게임업체 사이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네오위즈는 블록체인 플랫폼 및 블록체인 개발 부서를 운영하는 등 게임 개발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것에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자사 게임 포털 ‘스토브’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상화폐 ‘스토브코인’을 발행한다. 스토브코인은 스토브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대가로 주어지며, 블로그 플랫폼 ‘스팀잇’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조선비즈를 통해 “스토브코인은 채굴 방식이 아니며, 스마일게이트가 전량 발행해 일정량을 이용자에게 나눠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투자자를 모으고 가상화폐를 판매하는 ICO(가상화폐공개)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성장시키겠다”라지만 관련 법안은 ‘계류 중’

정부도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열의를 보이는 모양새다. 지난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2년까지 블록체인 기술력을 해외 선진국의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라며 ‘블록체인 기술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전문 인력은 1만 명, 기업은 100개까지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8일 오후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역과 함께하는 혁신성장회의’에 참석해 “AI, 빅데이터, 수소경제, 블록체인, 공유 경제 등을 고려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짜고 있고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진: 한국경제TV) 

 

성장 중심의 정부 기조와는 달리 입법부는 다소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투기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지만 블록체인과 같은 기반기술은 육성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지난 6월, “블록체인의 활용 가치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지만 이런 기술적 진보가 우리에게 어떤 효익을 가져다줄지 차분하게 숙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후 홍익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당내 ‘블록체인 TF팀’을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바른미래당은 블록체인 법안 발의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세정, 권은희, 채이배, 신용현 의원 등으로 구성된 암호화폐 특별대책단은 블록체인 활성화를 위한 5개 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된 법안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외 3개 안이며, 현재 모두 국회에 계류중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월 “즉시 관련 법을 정비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합법적으로 열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블록체인 기술은 향후 인류 생활에 커다란 공헌을 할 분야임을 인식해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당력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이후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블록체인 TF팀’ 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비트코인 광풍으로 관련 법안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후 정부와 입법부는 앞다퉈 블록체인 산업 육성과 관련 법안 정비를 약속했지만, 뚜렷하게 드러난 성과는 아직 없다. ‘불법(不法)’도 아닌 ‘비법(非)’ 상태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관계자들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야 사업 전략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슈아 호 QCP캐피탈 공동창업자는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18에서 “블록체인을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을 많이 발굴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례를 많이 제시해야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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