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업계 매출을 징수해 기금을 만들자? 최도자 의원 발언, 무엇이 문제인가?

다미롱 (김승현) | 2018-10-12 17: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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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의 질의가 게임업계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 그는 국정감사에서 한국게임산업협회 강신철 협회장에게 "카지노·경마·담배 사업은 매출의 일부를 치유 기금으로 부담한다. 나는 게임 업계도 이렇게 기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증인 중 한 명으로 나온 한국게임산업협회 강신철 협회장은 최 의원의 발언에 차분히 반론했지만, 최 의원이나 다른 증인들의 말은 게임업계에 문제가 있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최도자 의원의 자극적인 주장을 제외하면, 이들의 주장은 얼핏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발언과 논리 구조를 살펴보면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있어선 안되는 논리 오류나 구멍이 곳곳에 숨어 있다. 11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최도자 의원의 질의 내용과 논리 구조, 그리고 그 안의 오류를 정리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 (출처: 최도자 의원 페이스북)

 

 

# WHO까지 뛰어 들었으니 이제 그만 인정하지? 기금 징수 논리

먼저 국정감사 현장에서 나온 주요 발언과 논리 흐름부터 살펴보자. 11일 최도자 의원의 질의 흐름과 논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원문을 읽고 싶은 사람은 요약본 밑에 있는 링크를 참고하자.

 

1. 게임은 중독이 아니나, 게임 중독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 (최도자 의원)

 

2. WHO는 세계적인 보건 기구다. WHO에서 게임 장애를 문제로 제기했다는 것은 그것의 진단·치료 기준이 확정됐고, 국가에서 공중보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해국 교수)

 

3. 게임 중독은 실존한다. 의학적인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국내에 있는 과몰입 치료 센터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일부 게임에는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장치가 포함돼 있다. (김동현 교수)

 

4. 게임업계에선 게임 장애에 대한 WHO의 논의가 내성·금단증상 등에 대한 내용이 부실하다며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의학계는 그런 기준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해국 교수)

 

5. 게임 중독·장애 치료는 현재 건강 보험 적용이 안돼, 현장에선 이를 주의력 결핍 등 다른 질병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복지부는 게임 장애를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에 추가하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라. (최도자 의원)

 

6. WHO가 게임 장애를 인정했으니, 게임의 중독성 논란도 확정됐다. 한국의 게임 업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사행·중독 문제를 외면했다. 매출의 일부를 게임 중독 예방·치료를 위한 기금으로 내라. (최도자 의원)

 

7. 건전한 음주 문화는 순기능이 있지만, 알콜 중독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게임과 게임 중독도 이와 같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최도자 의원)

 

관련기사: (총정리)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 "게임업계, 중독 치료 위해 '기금' 내라"

 

 

# 최도자 의원과 의학계 인사들의 증언. 과연 옳을까?

그렇다면 이들의 논리는 합당할까? 이들의 논리를 기반으로 쟁점을 정리했다.

 

 

1. WHO가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지정하면 의학적 논란이 끝난걸까?

 

최도자 의원을 비롯해 정신의학계 인사들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WHO의 권위다. 이들은 WHO가 세계적인 보건 기구이며, WHO가 게임 장애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학계의 인정과 같은 의미로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학계에서도 WHO의 결정에 대한 찬반이 극명히 나뉘고 있다. 2017년 미국 스테슨 대학 정신의학과 '크리스 퍼거슨'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WHO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외에도 2017년엔 28명의 연구진이 WHO의 게임 장애 질병 코드 등재를 반대한다고 공개 서한을 보냈고, 2018년 초엔 옥스포드 대학 교수진 등 36명이 게임 장애 항목 신설 반대 논문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즉, WHO의 결정은 국정감사 의학계 증인들의 뉘앙스와 달리, 의학계를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의미다. 

 

참고로 WHO의 질병 코드는 회원국이 필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권고 사항에 가깝다. 게임 장애의 질병 코드 등재 또한 2019년 5월 개정안을 확정하기 전까진 아직 추진 사항에 불과하다. WHO의 권위를 빌려 게임 장애, 기금을 얘기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 게임 장애는 '의학적'으로 증명됐는가?

 

그렇다면 게임 장애는 의학적인 근거가 명확할까? 이 부분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당장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동현 교수부터 게임 중독의 실존을 묻는 질문에 "의학적인 부분을 떠나, 한콘진 등 여러 기관이 과몰입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게 증거다"라고 답했다. 뉘앙스론 의학적인 증거도 있고 실제 사례도 있다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론 의학적 증거를 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학계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과거 정신의학편람 5판(이하 DSM-5) 논란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DSM-5 추가 연구 항목에 '게임 이용 장애'를 추가했다가 일부 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중독의 핵심인 금단증상, 내성, 갈망에 대한 내용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에 더해 DSM-5에는 ▲ 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과학적 근거도 부족했고 ▲ 관련 자료와 진단 기준도 제각각이고 ▲ 공존질환에 대한 선후관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때문에 게임 이용 장애는 DSM-5의 추가 연구 항목엔 등재됐지만, 정식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WHO는 당시 문제가 된 금단증상/내성/갈망 등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 국제 질병 분류 11판(이하 ICD-11)에 게임 장애를 추가하려 하고 있다.

 

참고로 이해국 교수가 요즘 의학계 트렌드가 아니라고 한 부분은 DSM-5 논란 때부터 의학자들이 제기한문제다. 최근엔 중앙대학교 한덕현 교수 등 의학계 인사들이 WHO의 결정을 비판하며 이 요소를 이야기한 바 있다.

 

중앙대학교 한덕현 교수

 

 

3. 게임 장애의 원인은 정말로 '게임'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다. 당장 WHO의 ICD-11 초안만 봐도, 게임 장애에 대한 기준은 있어도 원인은 나와 있지 않다. 참고로 WHO의 ICD-11 초안이 정의한 게임 장애는 아래와 같다.

 

게임 장애는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지속적·반복적으로 보여지는 게임 관련 행동 패턴으로 특징할 수 있다.

 

1)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시작, 빈도, 강도, 지속 시간, 종료, 상황)

2) 다른 생명·일상 활동보다 게임 플레이를 우선

3)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

 

이러한 행동 패턴은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해야 한다. 이러한 게임 행동 양식이 최소 12개월 동안 분명하게 나타나면 게임 장애로 간주한다.

 

위의 WHO의 기준만 보면 게임 장애의 원인이 게임인지, 피해자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인지, 피해자 본인의 특성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일부 게임에 청소년들을 게임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장치가 있다는 김동현 교수의 주장과는 다른 얘기다.

 

또한 이 내용은 후술할 기금 징수와 관련해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4. 업계 매출의 일부를 기금으로 걷는 것은 합당한가?

 

마지막으로 게임 업계 매출의 일부를 게임 장애 예방·치료 기금으로 걷자는 최도자 의원의 주장은 합당할까? 이는 2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게임과 게임 장애의 관계다. 만약 해당 기금이 설립된다면 이는 게임 장애 예방·치료를 위한 특별 부담금 성격을 띌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부담금은 정부가 공익 사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이다. 즉, 부담금을 내는 주체가 해당 공공사업의 원인이거나, 공공사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게임 장애 기금 건에 적용하면, 매출의 일부를 기금으로 내라는 주장에는 게임을 게임 장애의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게임 업계 매출의 1%를 징수해 게임 중독 치료 비용으로 쓰려 했던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 당시 여성가족위원회 등은 업계가 게임 중독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대로 최도자 의원이 업계의 이해관계와 별개로 기금을 요구했다면 이는 헌법에 위배될 여지가 존재한다. 부담금은 조세납부 의무자인 국민이 '추가로' 부담하는 또 하나의 세금이다. 때문에 부담금을 징수하기 위해서는 부담의 형평성, 조세 평등성 등을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2번째는 게임 사업의 성격이다. 최도자 의원은 게임업계를 '일반 기업'과 다르게 봐야 한다며, 카지노·경마·경륜·담배 산업 등을 예로 들며 게임 업계 또한 매출의 일부를 기금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 할 때도 게임과 게임 장애를 술과 알콜 중독에 빗대기도 했다. 참고로 카지노·경마·경륜 등은 법적으로 사행 산업으로 구분되고, 담배는 그 자체의 유해성 때문에 국가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상품이다. 

 

즉, 최도자 의원은 게임 산업을 사행 산업과 동일시하며 기금을 요구한 것. 또한 해당 산업은 그간의 연구로 부작용이 증명된 산업인 만큼, 업계 입장에서는 최 의원이 게임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도자 의원이 질의 시작과 끝에 '게임과 게임 중독은 별개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음에도, 업계가 그의 인식에 의구심을 표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이에 대해 현장에 있던 강신철 협회장은 최 의원의 발언에 "그건 도박 산업에 대한 얘기다. 게임 중 일부에 사행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걸 잡는 것이 우리 의무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율 규제 기구를 통해 이를 줄이려 하고 있고. 치료 문제는 기금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케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업계에서도 최 의원이 게임 사업을 사행 산업으로 간주한다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 사행성: 법적으로 사행성은 다수로부터 재물을 모아, '우연적'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해 사람들의 '재산'에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로 정의된다. 강신철 협회장이 말한 사행 요소 있는 게임은 <바다이야기>와 같은 도박 게임을 의미한다.

 

 

또한 최도자 의원의 주장은 법적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최 의원이 예를 든 산업은 '법'으로 사행산업이나 청소년유해매체물 등으로 따로 정의, 구분된다. 또한 해당 산업과 업계에서 내는 기금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의 특별 기구를 통해 관리된다. 

 

이렇게 기존 다른 산업이 법적으로 엄격히 구분되고 관리되는 반면, 게임산업은 법적으로 사행산업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게임 업계가 게임 중독 치료를 이유로 기금을 낸다면, 이는 법적인 근거 없이 사행 산업이라 취급되는 것과 같다. (반대로 게임 업계가 매출의 일부를 국가에 기금으로 낸다는 것은 게임 전체가 사행산업임을 인정하는 것과도 같다)

 

한편, 게임 업계 매출 중 일부를 징수해 기금으로 삼자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은 게임과몰입 예방 기금 조성을 명목으로 업계 매출 1%를 여성가족부가 징수하겠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관련 내용은 2013년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을 통해 다시 부활했다. 

 

2013년 겨울에는 민주당 김영환 의원이 게임업계의 매출로 기금을 모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문인들을 돕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들은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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