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잃어버린 사행성을 찾아서] 찾으러 가기 전에

디스이즈게임 (디스이즈게임) | 2019-02-26 1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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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행성을 찾아서] ​‘사행성’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행성은 ‘우연한 이익을 얻고자 요행을 바라거나 노리는 성질. 또는 그러한 특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혹할 법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자극한다는 특징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른 엄밀한 법적 개념과 관리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이 이러한 ‘사행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연재물을 선보입니다. 필자 노시흥씨는 2000년대 초반, 일본의 빠찡코, 빠찌슬롯 로컬라이즈 작업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지금도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행성. 뭔가 위험해 보이지만 그간 우리가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미지의 세계.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 외부 연재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2018년 10월 29일 국정 감사 영상에서 이야기를 출발해보겠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6분 55초 즈음을 보면 손혜원 의원이 개평 이야기를 하며 “<리니지M>이 사행성 게임 아니냐”고 압박성 질문을 하자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확률형 아이템은) 아이템을 가장 공정하게 사용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기술적인 장치입니다' 라고 답변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손혜원 의원이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베팅하느냐가 중요하다.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베팅하고 있다”라며 베팅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리니지M>이 사행성 게임임을 주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연합뉴스 

 

이것은 일단 그 대화의 주제로 보이는 ‘사행 성립 여부’ 입증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온 국민이 보는 국정 감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에 대해 단편적으로 대화를 옮긴 수준의 자극적인 기사만 있을 뿐 적절한 해석 기사도 없었던 것 같고 이 문제가 2019년 현재에도 여전히 갑론을박 중인 이슈인 듯하니 저 같은 사람도 뻔뻔하게 한 번 떠들어봐도 되지 않을까 하여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우선 이야기를 풀어갈 제 소개부터 간단히 하겠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해외 콘솔 게임을 라이센스해서 국내에 판매하는 퍼블리싱 담당자였습니다. 네, OO웹에서 한글화하면 칭찬받고 아니면 욕먹는 그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 맞습니다. 

 

그 뒤로는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조차 이제는 새삼스러운 소위 '바다 이야기' 유행기에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빠찡꼬(주1) 전문가 (본인 주장으로는 전두환 정권 당시 일시적으로 빠찡꼬가 허용됐던 시절-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배경인 바로 그 시기- 한국에 들어올 뻔 한 일본 빠찡꼬 업체에서 직접 개발&사업을 배우셨다고..) 보조로 SNK의 일본 빠찌슬롯(주2)을 한국 국내법에 맞게 로컬라이즈해서 ‘메달 밀어치기 게임’이라는 형태로 심의 접수하는 업무를 2004년부터 약 1년 정도 했습니다. 이후로는 온라인, 모바일게임 쪽에서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킹 오브 파이터즈>, <메탈 슬러그> 파치슬롯 등 4~5개의 파치슬롯 로컬라이즈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빠치슬롯 기기 제작 공장의 모습입니다. (필자가 직접 촬영한 영상)

 

(주1) 빠찡꼬와 빠찌슬롯의 정확한 한국어 표기는 ‘파친코’, ‘파치슬롯’인 것 같습니다만..여기에서는 정감있게 빠찡꼬, 빠찌슬롯으로 하겠’읍’니다 :)

(주2) 빠찡꼬와 빠찌슬롯은 게임 방식이 조금 다르며 바다 이야기 시절 나온 것들은 모두 빠찌슬롯 계열을 '메달 밀어치기 방식'으로 변형한 것입니다. 사행 구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둘의 차이가 크게 의미있지는 않으므로 이후 내용 상 둘의 구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다 '빠찡꼬'로 다루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관여했던 당시는 바다 이야기를 포함한 그런(?) 게임들이 정식 등급 분류 심의를 받은 합법적인 게임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상기 게임을 포함한 몇 개의 게임 심의를 실제로 통과시켰습니다. 이건 아닌 듯해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라며 일을 그만두고 약 6개월 뒤 소위 '바다 이야기'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인..

 

이 과정에서 저는 빠찡꼬 비즈니스 구조와 양국 법률의 차이, 어떤 것이 법에 걸리고 어떤 것은 안 걸리는지 등에 대해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행에 대해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을 갖추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벌써 십 몇 년 전 기준 경험을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라 요즘 상황과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최근 법과 규정을 슬쩍 보면서 대략 따져본 바 기본 원리는 동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덧붙여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별로 떠들지 않았던 것은 확률형 아이템이 온라인 게임에 막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빠찡꼬 규제가 그대로 확률형 아이템에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규제'는 보통 효과가 매우 좋은 기획에 대해 이뤄집니다. 이를 반대로 보면 무언가 규제되었다면 효과가 좋음이 검증되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달된 사행 업종에서 규제된 기획이나 뽑기 방식들을 아직 규제가 없는 ‘확률형 아이템' 영역에 적용하면 너무나도 쉽게 ‘효과'를 볼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빠찡꼬에서 규제하고 있는 기획들을 이미 다들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에 넣고 있어서 딱히 숨겨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기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된 것 같습니다. 이미 다 하고 있으니 모방의 우려가 별로 없다(…)라는 이상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제가 법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아니므로 이후 설명할 내용에서 위법, 합법 여부는 법 전문가나 관련 기관의 실제 판결이나 해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간 법률 변경 내용을 보니 관련 법이 한 해가 멀다 하고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세부 변경 사항에 일일이 대응하는 설명보다는 대략 어떤 기준에 따라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게임 웹진을 보는 일반 게이머가 가볍게 볼 수 있는 교양 상식 수준으로 편하게 풀어볼까 합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연혁. 뭔가 계속 바뀝니다. 저처럼 심의 받는 게 업무 중 하나인 사람도 심의 반려 받으면서 배우는 편입니다...

 

이후 뉴스나 기사에서 법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들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 것인지 쉽게 알게 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과정은 한 회에 정리하기에는 긴 내용인지라 다음과 같이 몇 화로 나누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우리 사행이는 어떻게 생겼나?

확률로 뭘 준다고 해서 다 사행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경품 행사 같은 건 사행이 아니겠죠. 또는 인기 게임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에 카지노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드래곤퀘스트>가 사행 게임이라고 하면 뭔가 이상해 보이죠. 그래서 어떻게 생기면 사행인 건지부터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그 다음은 로또도 사행이지만 잘만 운영되고 있는데 애들은 그렇다 치고 성인인 내가 내 돈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인지, 어떤 사업 모델이 사행이라고 판정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빠찡꼬는 돈을 주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사행 게임으로 알려진 빠찡꼬는 사실 돈을 주지 않습니다. 돈을 안 주는데 돈이 된다니…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죠? 빠찡꼬의 사업 구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행성 판단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3. 그 정도 사행성은 경미하다! 큭, 그렇다면 강화해주지!


여기부터 본격적인 본론인 갑론을박의 세계, 함부로 따라하면 안 되는 세계로 가기 시작합니다.

사행에 영향을 주는 기획 요소들을 스위치(on/offf의 성립 조건)와 이퀄라이저(강화, 약화 조건)라는 개념으로 나누어 소개하겠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사행성 판정 항목 - “사행 게임은 등급 분류를 거부하는 것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방침이지만 귀 게임은 사행성으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게임은 사행성으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았습니다만 사행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행 판정 항목에 경미, 심각 등이 정도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행이면 사행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무슨 경미, 보통, 심각 타령이냐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네, 저도 그랬습니다. 당시 심의 준비를 했을 때 ‘한 게임은 4초 이상이어야 하며 1시간 최대 투입 금액은 7만 원 이하여야 하며...’ 등등. 이게 뭔 소린가 했습니다. 

 

국내는 그나마 양반이고, 일본 빠찡꼬 규제는 거의 게임 기획서 수준으로 상세하게 짜여 있어서(기계 규격, 버튼 사이즈, 몇 회전 중 몇 회가 어느 정도 확률로 당첨돼야 하는지 등이 다 정해져 있는 수준) 게임 심의를 준비하는 저조차 이게 뭐하자는 건가 했습니다.

 

일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행이 있다, 없다 같은 성립 개념 뿐 아니라 경미, 심각 같은 사행성의 정도를 구분하는 요소도 있다는 것이죠. 빠찡꼬 규제를 통해 사행성 이퀄라이저의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규제는 다 이유가 있어서 했겠죠. 무슨 이유일까요? 이런! 규제는 '효과가 너무 좋음이 검증된 기획'이란 것을 눈치채셨나요? 'Don't try 빠찡꼬 규제 at 당신 게임 가챠!'

  

 

4. 캐주얼 PvP 게임 빠찡꼬를 공략해보자?

빠찡꼬도 캐주얼과 코어 게임으로 구분이 된다는 것을 아시나요? 혼자 앉아서 구멍에 구슬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얼핏 보면 그저 운빨 게임처럼 보이는 빠찡꼬가 PvP 필승 공략이 필요한 대전 게임이라는 것은 아시는지요? 

 

빠찡꼬 공략 잡지 “알기만 해도 이길 수 있다!”라고 적혀 있네요. (©pachimaga.com)

  

확률형 아이템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는 빠찡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빠찡꼬 규제 중에는 무려 사냥터 규제 같은 것도 있답니다. 이걸 읽으면 당신도 빠찡꼬로 돈 벌 수 있을지도? 

  

 

5. 컴프 가챠는 사행이 아니라고요?

2012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하며 확률 공개 자율 규제를 탄생시킨 컴플리트 가챠(이후 컴프 가챠)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컴프 가챠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PvP나 사용자간 거래 기능이 없는 수집형 게임들은 얼핏 보기에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일본에서 있었던 컴프 가챠 규제 사례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컴프 가챠에 대한 규제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 사건이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끝까지 보시면 확률형 아이템이 단순히 사행이냐 아니냐 관점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오더라도 여러분이 원하는 명쾌한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왜 이 문제가 명쾌한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게이머들이 단순히 사행이냐 아니냐 가지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좀 더 다음 단계의 고민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를 드릴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김택진 대표와 손혜원 의원 두 분의 발언이 사행성 성립과 별 관계가 없는 지 간단히 설명드리며 첫 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택진: 공정하게 나눠주기 위한...

 

누가 봐도 이견이 없을 사행 게임 ‘로또’를 가지고 설명하겠습니다. 

 

 

 

로또. 매우 공정하지만, 사행 게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더 공정하란 말이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공정한 추첨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정하면 사행이 아니라고 할 경우 제일 먼저 사행이 아니게 될 것 같군요. 이후에 추가 설명하겠으나 공정성은 오히려 사행 성립에 매우 중요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사행 게임은 공정하다고 주장하며 그게 기본 조건쯤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분야도 공정하거나 그래야 하죠. 

 

따라서, 공정성 여부는 사행성이냐 아니냐의 성립을 확정하는 요소는 되지 않습니다. 공정하지 않으면 운에 따라 뽑히는 것이 아니므로 사행이 아니라 그냥 사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김택진 대표의 답변은 약간 동문서답인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손혜원: 얼마나 빠르게 베팅하느냐가 중요하다.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베팅하고 있다.

 

손혜원 의원은 베팅이 빠르니까 사행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것 역시 사행 성립 증명과는 별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시사 교양 사행 게임 로또로 돌아가 볼까요? 로또는 1주에 한 번 밖에 베팅을 못 하지만 엄연한 사행 게임입니다. 속 터지게 느리네요. 베팅 속도로 사행 여부를 결정한다면 역시 로또가 제일 먼저 사행 게임이 아니게 될 것 같군요. 

 

그렇다면 더 속 터지게 한 달에 한 번 추첨 해버리면 로또가 더 이상 사행이 아니게 될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요? 즉, 베팅 속도는 사행을 강화, 약화하는 요소는 될 수 있지만 입력에 대한 결과값을 빨리 보여준다는 것 만으로는 사행이 성립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행이 입증되지 않은 시점에서 특정 행위를 베팅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해를 유도하는 발언일 수 있습니다. 

 

즉, 사행을 입증하려는 의도라면 의미 없는 이야기 되시겠습니다. 베팅 속도가 왜 사행을 강화, 약화하게 되는 지는 ‘사행성 이퀄라이저’ 설명 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결국 두 분 다 의도했든 아니든 본질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니 국정 감사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글의 목표는 알 만하신 분들이 왜 그러셨는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 그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들 사행, 사행이라고 관련 기사들만 나오면 댓글란이 난리인데 그 사행이란 녀석은 어디로 간 걸까요? 잃어버린 사행성을 찾아서!

 

사행성을 찾으려면 우리 사행이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봐야겠죠? 그래서 다음 회에는 도대체 사행이 무엇인지, 사행의 법적인 정의나 성립 요소 같은 것을 살펴보는 것부터 출발하겠습니다.

 

다음 회에 만나요. 이만~~ 

 

노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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