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FAQ]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 심리학계의 반격이 시작됐다

우티 (김재석) | 2019-07-04 18: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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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게임중독 문제의 다각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재 문제는 아직 뜨거운 감자입니다. 추진 세력의 한 인사가 지난달 어느 토론회에서 통계청이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KCD)의 등재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었죠. 이에 지난 7월 2일 이에 통계청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게 "중립적 입장에서 범용적인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통계청이 법에 따라 KCD를 개정, 고시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업계에는 "추진 세력과 반대 세력이 민관협의체 구성 단계부터 접점을 좁히지 못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린 오늘 토론회는 나름의 의의가 있습니다.

 

※ 본 기사는 독자님이 묻고, 디스이즈게임이 답변하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의의? 무슨 의의가 있는데요?

 

오늘 토론회는 3명의 국회의원 주최로 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그리고 바른미래당의 이동섭 의원으로 소속 정당이 모두 다릅니다.

 

토론회가 열린 시간에 국회 본회의가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토론회 현장에서 국회의원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는데,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찾아와 축사하고 갔습니다. 부산 금정구에서만 3선을 한 김세연 의원은 이번 국회의 남은 회기에서 보건복지위원장을 맡을 확률이 높죠. 

 

김 의원은 현장에서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는 성급한 결정으로 보건의료와 심리학적 차원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러한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길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업계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도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죠.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도 근래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신의진, 손인춘의 '중독법' 때와 비교하면,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해 반대 주장을 내는 의원들이 많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가 얼마나 힘을 가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당장 내년에 총선이 있죠. 제가 언급한 의원분들이 앞으로도 같은 주장을 계속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국회의원들보다 우리가 지금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새로운 이들의 출현입니다.

 

 

토론회에 누가 새로 나왔나요?

 

바로 심리학자들입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중독심리학회가 주관하고 한국심리학회가 후원했습니다. 심리학 박사인 이장주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이 게임 이용 장애 문제에 반대 의견을 적극 개진해오기는 했지만, 한국심리학회는 지난 5월 출범한 공대위에는 빠져있었고, WHO 총회 이후로도 잠잠했습니다. 그랬던 심리학회가 토론회를 통해 전면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면 심리학자들이 '갑툭튀' 한 건가요?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작년 8월 17일, 한국심리학회 제72차 연차학술대회에서는 '게임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 문화적 접근'이라는 이름의 분과발표가 진행됐습니다. 

 

당시 학술대회에서는 "이번 ICD-11은 게임의 과몰입을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를 가진 특정 세력의 입김이 지나치게 들어간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게임의 과몰입을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만 몰아간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작년 8월 17일 열린 한국심리학회 제72차 연차학술대회

 

관련기사: 게임 과몰입은 ‘질병’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이 합리적 (바로가기)

지난 5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가 만장일치로 통과됐는데도 심리학계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난 6월 24일, 한국심리학회 산하 한국임상심리학회가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등재 찬반을 논할 게 아니라 행위 중독에 초점을 맞춰 악화 예방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수면 위로 등장했습니다.

 

오늘 토론회는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 결정 이후, 심리학자들의 첫 공식 무대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오늘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주제발표에는 한국중독심리학회의 신성만 회장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안우영 교수가 나왔으며 패널토론에는 조현섭 한국심리학회 회장(총신대 교수)을 좌장으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진영 교수, 동명대학교 교양대학 고영삼 교수, 이장주 소장과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이 배석했습니다.

 

신성만 회장은 '게임 이용 장애'라는 진단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게임의 문제적 이용은 존재하고 그 폐해 역시 동의하지만, 이것을 질병 코드로까지 다루어 의료화할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또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기준 자체가 도박 중독과 굉장히 흡사해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조한 내용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신 회장은 '과잉 진단'을 언급했습니다. 게임 이용 장애가 보편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문제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논리지요. 쉽게 말해서 놔두면 알아서 게임을 줄이게 될 수도 있는데 누군가 환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 회장은 10세에서 65세의 국민 중 67.2%가 게임을 한다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 조사를 인용하며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면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진단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중독심리학회 신상만 회장

 

안우영 교수는 게임 이용 장애가 신경학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가정하면, 쉽게 말해서 뇌의 기능이나 구조를 바꾼다고 한다면 꼭 그를 고치기 위해 약물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게임을 많이 하면 뇌에서 순발력과 연관된 영역이 커지거나 연결성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게 문제고 약을 써서 고쳐야 하는 걸까요? 택시 운전을 오래 하면 공간 기억 능력을 담당하는 해마가 커지고, 나이가 들면 뇌의 구조가 바뀐다고 합니다. 먹방을 볼 때나 SNS에서 좋아요를 받을 때, 잘생긴 사람을 볼 때도 우리의 뇌에 보상회로가 활성화되고 도파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안 교수는 게임중독 프레임이 아시아권에서 부각되고 집중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문제를 나타낸다면 그것이 게임 때문인지 아니면 ADHD나 우울 등의 문제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아직 연구가 부족합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안우영 교수

 

최진영 교수: 정신 장애는 다른 신체 질환과 다른 점이 있다. 다른 장애와 달리 그 질환을 진단하는 데 사용하는 생리적 지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형상 연구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뇌는 전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신 장애를 규정할 때에는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  

 

고영삼 교수: 우리 사회가 정보화 과도기에 지나치게 중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온 경향이 있다. 세간에서 쓰이는 중독과 아카메딕한 중독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 게임의 문제적 이용은 중독이나 장애가 아니라 증후군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한다.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근거를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장주 소장: (추진 세력은) 게임 이용 장애는 비정상으로 정의하고, 그 바깥에 있는 자신들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게임 이용 장애를 게임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지표들을 종합해서 분석해야 한다.

 

 

 

한국심리학회는 왜 이런 토론회를 열었을까요?

 

신성만 회장은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화에는 사회적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문제를 도울 수 없다며,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상담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우영 교수는 게임의 문제적 이용을 의료적 진단과 약물치료가 아닌 심리사회적 개입을 통한 상담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중독포럼 등을 필두로 한 정신과 의사들이 '게임 이용 장애' 문제를 가져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안의 해결책을 바꾼 것이죠. 심리사회적 모델로 게임의 문제적 이용을 풀어내자고 말입니다.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 코드로 등재되면 각 지역마다 있는 기존의 중독 심리 상담센터는 의료법 상 운영이 어렵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의료기관에서 의료인들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는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한국심리학회는 오늘 자리를 통해 약을 투여할 게 아니라 지역사회 기반의 상담센터를 확대하고 심리적 건강함을 유지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이들이 게임 이용 장애를 막을 우군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의학의 권위를 바탕으로 질병 코드 등재를 추진하는 세력에게 오늘 토론회 발표는 산업진흥론이나 게임문화론보다 훨씬 논리적이며 효과적인 응수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한계는 분명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심리학자들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냄과 동시에, 심리 상담센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선 것입니다. 게임의 실제 사용자인 게이머의 목소리는 여기에 얼마나 반영될지 의문이 듭니다. 

 

둘째로 오늘 토론회 발표는 '우리 아이들'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게임은 청소년이나 자녀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장주 소장의 말처럼 이들 세대는 학업에 쫓기느라 게임을 할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그런데 토론회 발표에는 심리 상담을 통해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논리가 빈번하게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심리학회는 게임 산업의 이해당사자가 아닙니다. 장기전이 될 이 문제를 다루면서 대중과 소통할 때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게임 업계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토론회 좌장을 맡은 조현섭 한국심리학회 회장은 "이런 학술 대회를 앞으로도 열 것"이라며 "의사도 함께 모셔서 난상 토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추진 세력의 의사들이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해보죠.

 

모쪼록 한국심리학회는 게임 이용 장애에 반대 스탠스를 취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공대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기자는 이 지점을 관전 포인트로 보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교통정리'가 될지, 아니면 '파워 게임'이 일어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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