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미술관](9) 테일즈위버의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에 담다, 넥슨 윤상아 컨셉 아티스트

너부 (김지현) | 2019-03-18 12:04:51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의 여러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이 작업한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넥슨 '테일즈위버' 팀 윤상아 컨셉 아티스트

 

 

# RPG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게임 컨셉 아티스트'의 길

 

윤상아 아티스트는 넥슨 <테일즈위버> 팀에 소속된 3년 차 컨셉 아티스트입니다. 조각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레 미술을 접하면서 자신이 애정하는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숨 쉬듯(?) 즐기게 됐다네요. 

 

그녀가 게임 업계에 입문하게 된 건 순전히 게임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롤플레잉 게임, 그 중 <파랜드 오딧세이>(국내명 파랜드 택틱스 3)를 통해 게임 업계를 꿈꾸기 시작했다는데요. 윤 아티스트는 '게임잼'을 통해 게임 개발의 모든 과정을 보면서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게임잼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제한된 시간 안에 게임을 완성하는 게임 개발 행사인데요. '게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는 점이 좋아 윤 아티스트는 지금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테일즈위버> 역시 윤 아티스트가 학생 시절부터 즐기던 게임이었습니다. 윤 아티스트의 개인작 대부분이 <테일즈위버> 캐릭터인 점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죠. 그녀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음악, 스토리가 한데 어우러져 강하게 몰입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테일즈위버> 티치엘 쥬스피앙(개인작)

 

  

# 컨셉 아티스트,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매력적으로 시각화하는 직업

컨셉 아티스트는 팀원 모두가 같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직업입니다.

가령 기획 단계에서 게임 안에 넣고 싶은 공간이나 물건, 캐릭터를 설명했을 때 이를 들은 팀원들은 모두 다른 것을 떠올립니다. '붉은 사과'를 그려보라 했을 때 사람마다 그린 사과의 구체적인 색상과 모양이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죠. 

윤 아티스트의 일은 모두가 '똑같은 모양과 색의 붉은 사과'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림으로 이를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를 '그림으로 소통하는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아버지와의 대치 상황과 어두운 분위기를 강조한 '막시민 시크릿챕터 타이틀 일러스트'

 

 

# "잘 그리는 것이 아닌 작업의 목표에 집중할 것" 테일즈위버 일러스트 작업 과정

 

윤상아 아티스트는 <테일즈위버> 타이틀 일러스트와 이벤트 일러스트, 인게임 컷신 일러스트, 컨셉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을 소화하고 있는데요. 올해 7월 추가된 신규 캐릭터 '리체'의 타이틀 및 바스트업 일러스트도 윤 아티스트의 작품입니다.

 

그중 핵심 작업인 타이틀 일러스트 한 장을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약 한 달입니다. <테일즈위버> 타이틀 일러스트에는 상당히 많은 정보가 동시에 담기기 때문인데요. 스토리의 배경과 흐름뿐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감정까지 단 한 장의 일러스트에 녹여내야 하죠. 

 

보통 <테일즈위버> 타이틀 일러스트 작업은 기획팀으로부터 구체적인 컨셉과 레퍼런스가 넘어온 후 윤 아티스트가 그에 맞는 러프 스케치를 다수 작업, 팀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퀄리티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최근 윤 아티스트가 작업한 리체 타이틀 일러스트 역시 그랬는데요.

 

리체 타이틀 일러스트의 방향성은 평범한 재봉사로 살아가던 리체가 전투 능력을 얻으면서 생긴 고민과 두려움을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루비와 리체가 붉은 실로 연결된 모습을 통해 나타내는 것이 초기 기획안이었죠. 이러한 컨셉을 중심으로 러프 스케치를 진행하게 됐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현재의 리체 타이틀 일러스트가 완성됐죠.

 

"처음에는 주변에 붉은 실이 엉켜있는 모습으로 그려달라고 방향성을 제안해 주셨어요. 그런데 러프 스케치 단계에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단조롭고 기존 타이틀 일러스트보다 단순하다고 판단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죠" 


<테일즈위버> 리체 타이틀 일러스트 작업 과정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 좌측에는 리체와 관련된 블루코럴 성벽이, 우측에는 해당 챕터의 배경인 필멸의 땅이 그려졌다

<테일즈위버> 리체 타이틀 일러스트 최종 버전

그중 일부 일러스트는 키워드 몇 개만 주어지고 윤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작업하기도 한다는데요. 아래의 <테일즈위버> 15주년 일러스트가 대표적 예입니다.

"14주년, 15주년 일러스트는 비교적 러프하게 기획이 잡혔었어요. 꼭 들어갔으면 하는 부분만 말씀해주셨죠. 예를 들어서 '케익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던가 '축제 같은 분위기를 표현해달라'라는 식으로요."

 

'케이크'와 '축제 분위기'. 두 키워드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작업한 <테일즈위버> 15주년 일러스트

 

전하고자 하는 의미시각화하면서 이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어찌 보면 컨셉 아티스트는 다양한 요구 사항을 만족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컨셉 아티스트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윤 아티스트는 자신의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법'을 가지길 강조했습니다.

 

"컨셉 아티스트는 매력적인 작업물을 만드는 직업이지만 퀄리티를 높이는 것에만 몰두하면 작업의 목적과 다른 뉘앙스가 담길 수 있어요. 작업 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목적을 계속 상기시키는 게 가장 중요해요"

 

<테일즈위버> Grace 스페셜 일러스트

 

 

# 윤상아 아티스트가 일러스트 이질감을 줄이는 방법 '철저한 기존 작업 방식 계승'

윤상아 아티스트가 작업하는 <테일즈위버>는 올해로 서비스 16년을 맞는 장수 온라인 MMORPG입니다. 오래 서비스된 만큼 캐릭터나 게임의 전반적인 비주얼 콘셉트가 어느 정도 굳혀진 편이죠. 그렇다 보니 아티스트가 바뀌거나 캐릭터가 조금만 다르게 그려져도 유저들은 쉽게 '이질감'을 느끼는데요.

윤 아티스트는 이러한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작업 방식과 전혀 다르더라도 기존 일러스트 작업 방식을 철저히 따릅니다. 윤 아티스트는 평소 선이 아닌 색을 먼저 입히는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색상의 섬세한 묘사나 꼼꼼한 처리, 미묘한 명암의 비교나 색상 등 대상의 '밀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한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반면 기존 <테일즈위버> 일러스트는 선을 딴 후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깊이 있는 색감과 밀도보다는 깔끔함에 우선순위를 둔 작업 방식이죠.

물론 작업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질감을 완전히 지우는 것은 어렵죠. 그래서 윤 아티스트는 기존 일러스트의 이목구비 비율이나 빛과 면 처리 방식 등 기존 일러스트의 섬세한 요소들을 반영해 작업합니다. 여기에 유저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는 작은 요소를 더해가며 본인의 색도 입히고 있다네요.

"사실 완전히 이질감을 없애는 건 힘든 일이예요. 저희 게임이 워낙 오래되기도 했고, 그림이라는 게 똑같은 사람이 같은 캐릭터를 그려도 다른 사람이 그린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오는걸요. 그래도 기존 일러스트를 최대한 꼼꼼히 분석하고 반영해서 이질감을 최소화한 일러스트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유저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구도나 캐릭터 인상에 저만의 개성을 약간 넣기도 하고요"

윤상아 아티스트 고유의 화풍과 기존 <테일즈위버> 일러스트의 화풍의 차이는 아래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기존 <테일즈위버> 화풍으로 작업한 '리체 바스트업 일러스트'

윤상아 아티스트 화풍으로 그려진 <테일즈위버> 란지에

 


# 개인의 화풍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었던 전민희 작가와의 e북 커버 작업

 

윤 아티스트는 최근 <테일즈위버>의 근간이 되는 소설 '룬의 아이들' e북 커버도 작업했습니다. NDC 현장에 전시된 란지에 개인작을 본 전민희 작가가 직접 커버 작업을 맡아줄 수 있냐고 요청했다네요. 덕분에 e북 커버에 사용된 일러스트에는 윤 아티스트만의 화풍이 온전히 녹아있습니다.

e북 커버 작업은 윤 아티스트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소설 룬의 아이들은 <테일즈위버>와 엄연히 별개의 세계이기 때문이죠. 게임 <테일즈위버>에서의 친근하고 밝은 분위기가 아닌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담아야 했는데요. 특히 전민희 작가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모습과 감정 등이 아주 구체적이었다고 하네요.

원작과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e북 커버의 이솔렛 의상입니다. <테일즈위버>에서는 다리가 드러난 스커트를 입었던 이솔렛이 e북 커버에서는 노출이 전혀 없는 바지를 입었는데요. 이 부분은 전민희 작가가 생각하는 이솔렛의 이미지를 반영해 변경된 부분이라 합니다. 원작보다 전사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죠?

윤 아티스트는 '원작 <테일즈위버> 작업과 달리 원작자에게 직접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과 상황에 따른 감정, 분위기 등 깊이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인상적인 작업이었다'며 전민희 작가와의 작업에 대한 소감을 남겼습니다.

"e북 커버 작업을 마치고 작가님이 친필 사인이 담긴 '룬의 아이들' 3부와 초콜릿, 퍼즐을 들고 사무실을 찾아주셨어요. 개인적으로 선생님 팬이어서 감동했죠. e북 커버를 맡게 되서 부담도 컸지만 정말 감사한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웃음)"

 

룬의 아이들 윈터러 e북 커버

<테일즈위버>는 윤 아티스트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에 본인을 행복하게 해준 게임이자, 게임 업계에 들어와 진행한 첫 프로젝트, 그리고 <테일즈위버>의 원작 '룬의 아이들'을 쓴 전민희 작가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됐죠. 또 이렇게 인터뷰의 계기가 돼 더욱 의미가 커졌다고 언급했습니다.

윤상아 아티스트의 또 다른 작품은 아트스테이션(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테일즈위버> Essence 스페셜 일러스트 1

<테일즈위버> Essence 스페셜 일러스트 2

'룬의 아이들 데모닉' e북 커버

<테일즈위버> 밀라 네브라스카 (개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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