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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미술관](13)게임에 한복과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더하다, ‘흑요석’ 우나영 작가

백야차 (박준영 기자) | 2019-04-15 11:57:46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2011년 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복 차림을 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씨름하는 토르와 헐크 등 선뜻 상상하기 힘든 소재를 아름다운 ‘동양화’로 풀어내는 ‘흑요석’ 우나영 작가. 우나영 작가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린 그림을 그리는 건 물론이고 동∙서양이 어우러진 개성적인 느낌의 그림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올해로 프리랜서 아티스트 생활 7년 차에 접어든 우나영 작가. 게임미술관 13화에서는 우나영 작가를 만나 그간의 작품 활동과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흑요석' 우나영 작가

학창 시절부터 그림을 공부했기에 장래희망 역시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을 것 같은 우나영 작가.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까지도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미술 입시를 겪으며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던 우나영 작가는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본인에게 있어 그림은 직업이나 성공의 수단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을 이뤄주는 취미생활이자 ‘나’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겁이 났었던 것 같다. 취미라고 하면 좀 못 해도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싫더라. 내가 지금 못하는 거 인정하자, 그러나 더 잘하고 싶고, 언젠가는 그림을 일로써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나영 작가는 한때 '스스로 뭘 그리고 싶은지 모르는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20대 중반까지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던 우나영 작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몰랐기에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 된 건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림 그리기는 자신을 탐구하는 하나의 과정이었으며, 세상을 향해 '나'를 표현하는 가장 긍정적인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돼서 성공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내 작품을 알리지 못했을 거로 생각한다. '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행동을 단순히 '일'로 생각하면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고 결과물만을 쫓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마음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는 마음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라고 전했습니다.

 

2013년 작 '인어공주'

우나영 작가의 그림은 종이에 붓과 먹을 이용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그린 작품으로 보이기에, 컴퓨터를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포토샵’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며, 이 역시도 별도 브러시 프로그램이 아닌 포토샵 ‘기본 브러시’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이에 직접 그린 것 같은 느낌은 그림을 완성한 뒤 ‘텍스처 작업’을 통해 종이 질감을 덧입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방식도 놀라웠지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도 의외의 답이었습니다. 우나영 작가는 인물 그림을 주로 그리기에 작품을 그리는 데 있어 얼굴 표현에 주로 집중할 것 같았지만, 얼굴 표현 못지않게 ‘손 표현’에도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손은 인물을 설명하는 ‘제2의 표정’이라고 강조한 우나영 작가는 손을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준다고 설명하며 “과거에는 손을 잘 그리지 못해 뒷짐을 지는 등으로 숨기곤 했지만, 손의 중요성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 역시도 세심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2013년 작 '장구 춤'

 

 

# 기억에 남는 작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콜라보레이션 작을 떠올리며

 

우나영 작가는 지난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콜라보레이션 그림을 발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공개한 작품은 ‘실바나스 대 안두인’, ‘제이나의 겨울’, ‘와우사인도’ 총 3점. 이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전쟁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실바나스 대 안두인’이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콜라보레이션 작 '실바나스 대 안두인'

작품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단연 ‘역동감’. 우나영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격렬한 싸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신이 생명을 주면서 ‘역사’가 시작하는 순간을 표현한 ‘천지창조’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끊임 없는 전쟁 속에 ‘역사’가 탄생하기에 이를 오마주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은 각 인물의 설정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안두인은 왕들이 입던 곤룡포를 입혀 신분을 나타냈고, 스톰윈드의 상징인 사자는 해태로 변모시켜 ‘사자’라는 특징은 살리되 동양화적인느낌 역시 살렸습니다. '만신'(무녀)으로 재해석한 실바나스는 끝자락이 하얀 붉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실바나스의 옷은 무당 중에서도 큰 무당만이 입을 수 있다는 무복으로 원래는 하얀색이다. 다만, 작품에는 적의 피로 물들어 실바나스 상징색 '붉은색'이 나타난 상황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파도가 휘몰아치고 두 진영 대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는 모습까지. 구도부터 표현까지 모두 신경 쓴 작품이어서 그런지 시네마틱 트레일러 이상의 '역동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제이나의 크리스마스 스킨을 한복으로 바꾼 '제이나의 겨울'

'십장생도'를 모티브로 그린 '와우사인도'

 


# 뜻 깊은 작품,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과 조니 워커 블루라벨

 

여태까지 그린 게임 일러스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나영 작가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고 받은 첫 번째 게임 일러스트 의뢰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그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동양화 스타일 그림은 게임에 쓰이지 못할 거로 생각해왔는데 그 벽을 깨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나영 작가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2002년 2D 도트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규 개발은 3D가 당연해졌고, 이로인해, 게임업계에서 원하는 원화 역시 3D로 만들기 좋은 입체감 있는 그림들을 원했다. 때문에 국내에서 <오보로 무라마사> 같은 동양화 느낌의 게임을 만들지 않는 이상 선적이고 평면적인 그림이 게임에 쓰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때까지 회사나 외주 일은 나 역시 게임업계에서 통용되는 그림체로 작업하고 있었고,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한복 그림은 개인 작업으로만 남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벽을 허문 작품이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어우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우동’은 작업 당시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확산성 밀리언 아서> 제작진은 '어우동 모자를 쓰고 있는 기생 옷차림의 여성'이라는 컨셉 외 구도나 세부 내용이 거의 없이 작가 역량에 맡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구현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가체’. 그 이유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조선 영조 때 이후로 백성들의 사치가 심하다 하여 여러 번 ‘가체금지령’이 내려졌는데 기생은 천인이라 ‘가체금지령’에 해당되지 않았다. 기생은 당시의 패션리더였고 높이 올린 ‘트레머리’는 기생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기생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확실한 사치품이자 상징이 또 없었다. 때문에, 캐릭터 상징 소재로 가체를 꼭 표현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게임 속 캐릭터이기 때문에 고증대로 그리기보다는 가체의 모양도 변형하고, 짧은 한복 치마에 프릴을 달아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호랑이를 추가해 강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전했습니다.

오랜 고민과 시도 끝에 완성된 '어우동'. 작품에는 고전미가, 캐릭터에는 성숙함이 물씬 풍기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발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작품에 대한 우나영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 아닐까요?

 

<확산성 밀리언 아서>에 사용된 일러스트 '어우동'

'어우동' 일러스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당시 ‘어우동’이 공개된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작품이 게임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각종 악플이 쏟아지던 상황. 막 첫발을 내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작품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았던 우나영 작가는 이를 보며 그림에 대한 악평이 자신에 대한 평가로 느껴져 크게 좌절합니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던 이 시기가 오히려 자신과 작품을 나눠서 볼 수 있는 시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악플을 달던 사람들이 우나영 작가가 그린 다른 작품들을 보며 감탄하거나 호평하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고 우나영 작가는 대중에게 자신을 더 보여줘야 하는 계기로 삼고 작품과 자신을 분리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작업에 대해서는 분리가 익숙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그러지 못했다.당시 일로 얻은 교훈은 ‘나’와 ‘내 작품’을 분리할 줄 알아야 건강한 멘탈로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내 작품은 나에게서 나왔지만 ‘나’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내 작품을 지적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또 작품이 많이 알려질수록 호평과 함께 악평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내 그림을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내 그림에 대한 평가가 내 존재가치를 다르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 각성 버전

게임 일러스트 외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스카치위스키 ‘조니 워커 블루라벨’ 캐스크 에디션 '인천' 패키지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인천공항 면세점 한정 상품으로, 2015년 조니워커 영국 담당 에이전시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고 제작한 작품입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게임 외 '상업적 디자인'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영국 에이전시가 인터넷에서 떠돌던 내 그림을 보고 연락했다고 해서 사람을 잘못 찾은 거라 생각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병이지만 하얀 배경에 파란 잉크로만 그려져 있어 마치 한국 '백자'를 보는 듯한 작품. 분명 외국 술이긴 하지만 작품에서 한국 특유의 향취가 느껴집니다.

 

'조니 워커 블루라벨' 콜라보레이션 작


 

# '좋아서 시작한 그림'에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까지, 보람과 책임감 느껴

 

"작품 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해당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한복이나 동양화를 좋아하게 되는 이른바 '입덕' 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덕'을 넘어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희망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큰 감동 했다고 전하며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메일 한 통을 받았는데, 보낸 분은 자세히 밝히진 않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이신 것 같았다. 글쓴이는 어린 시절에는 '공주 놀이'를 하곤 했는데, 어느샌가 '피부가 노란 나는 공주가 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또 많이 우셨다고 했다. 당시 임신 중이라던 그분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는 '너는 상상을 멈추지 말아라’고 말해 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서양 동화나 만화, 게임 캐릭터에 한복을 입히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누군가에게 한복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건 물론 희망과 감동을 줄 수도 있게 된 일. 우나영 작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인해 어깨가 무겁기는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작품을 위해 노력한다고 전합니다.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2011년 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복 차림을 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씨름하는 토르와 헐크 등 선뜻 상상하기 힘든 소재를 아름다운 ‘동양화’로 풀어내는 ‘흑요석’ 우나영 작가. 우나영 작가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린 그림을 그리는 건 물론이고 동∙서양이 어우러진 개성적인 느낌의 그림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올해로 프리랜서 아티스트 생활 7년 차에 접어든 우나영 작가. 게임미술관 13화에서는 우나영 작가를 만나 그간의 작품 활동과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흑요석' 우나영 작가

학창 시절부터 그림을 공부했기에 장래희망 역시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을 것 같은 우나영 작가.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까지도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미술 입시를 겪으며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던 우나영 작가는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본인에게 있어 그림은 직업이나 성공의 수단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을 이뤄주는 취미생활이자 ‘나’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겁이 났었던 것 같다. 취미라고 하면 좀 못 해도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싫더라. 내가 지금 못하는 거 인정하자, 그러나 더 잘하고 싶고, 언젠가는 그림을 일로써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나영 작가는 한때 '스스로 뭘 그리고 싶은지 모르는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20대 중반까지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던 우나영 작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몰랐기에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 된 건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림 그리기는 자신을 탐구하는 하나의 과정이었으며, 세상을 향해 '나'를 표현하는 가장 긍정적인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돼서 성공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내 작품을 알리지 못했을 거로 생각한다. '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행동을 단순히 '일'로 생각하면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고 결과물만을 쫓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마음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는 마음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라고 전했습니다.

 

2013년 작 '인어공주'

우나영 작가의 그림은 종이에 붓과 먹을 이용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그린 작품으로 보이기에, 컴퓨터를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포토샵’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며, 이 역시도 별도 브러시 프로그램이 아닌 포토샵 ‘기본 브러시’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이에 직접 그린 것 같은 느낌은 그림을 완성한 뒤 ‘텍스처 작업’을 통해 종이 질감을 덧입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방식도 놀라웠지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도 의외의 답이었습니다. 우나영 작가는 인물 그림을 주로 그리기에 작품을 그리는 데 있어 얼굴 표현에 주로 집중할 것 같았지만, 얼굴 표현 못지않게 ‘손 표현’에도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손은 인물을 설명하는 ‘제2의 표정’이라고 강조한 우나영 작가는 손을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준다고 설명하며 “과거에는 손을 잘 그리지 못해 뒷짐을 지는 등으로 숨기곤 했지만, 손의 중요성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 역시도 세심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2013년 작 '장구 춤'

 

 

# 기억에 남는 작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콜라보레이션 작을 떠올리며

 

우나영 작가는 지난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콜라보레이션 그림을 발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공개한 작품은 ‘실바나스 대 안두인’, ‘제이나의 겨울’, ‘와우사인도’ 총 3점. 이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전쟁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실바나스 대 안두인’이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콜라보레이션 작 '실바나스 대 안두인'

작품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단연 ‘역동감’. 우나영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격렬한 싸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신이 생명을 주면서 ‘역사’가 시작하는 순간을 표현한 ‘천지창조’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끊임 없는 전쟁 속에 ‘역사’가 탄생하기에 이를 오마주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은 각 인물의 설정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안두인은 왕들이 입던 곤룡포를 입혀 신분을 나타냈고, 스톰윈드의 상징인 사자는 해태로 변모시켜 ‘사자’라는 특징은 살리되 동양화적인느낌 역시 살렸습니다. '만신'(무녀)으로 재해석한 실바나스는 끝자락이 하얀 붉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실바나스의 옷은 무당 중에서도 큰 무당만이 입을 수 있다는 무복으로 원래는 하얀색이다. 다만, 작품에는 적의 피로 물들어 실바나스 상징색 '붉은색'이 나타난 상황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파도가 휘몰아치고 두 진영 대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는 모습까지. 구도부터 표현까지 모두 신경 쓴 작품이어서 그런지 시네마틱 트레일러 이상의 '역동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제이나의 크리스마스 스킨을 한복으로 바꾼 '제이나의 겨울'

'십장생도'를 모티브로 그린 '와우사인도'

 


# 뜻 깊은 작품,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과 조니 워커 블루라벨

 

여태까지 그린 게임 일러스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나영 작가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고 받은 첫 번째 게임 일러스트 의뢰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그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동양화 스타일 그림은 게임에 쓰이지 못할 거로 생각해왔는데 그 벽을 깨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나영 작가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2002년 2D 도트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규 개발은 3D가 당연해졌고, 이로인해, 게임업계에서 원하는 원화 역시 3D로 만들기 좋은 입체감 있는 그림들을 원했다. 때문에 국내에서 <오보로 무라마사> 같은 동양화 느낌의 게임을 만들지 않는 이상 선적이고 평면적인 그림이 게임에 쓰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때까지 회사나 외주 일은 나 역시 게임업계에서 통용되는 그림체로 작업하고 있었고,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한복 그림은 개인 작업으로만 남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벽을 허문 작품이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어우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우동’은 작업 당시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확산성 밀리언 아서> 제작진은 '어우동 모자를 쓰고 있는 기생 옷차림의 여성'이라는 컨셉 외 구도나 세부 내용이 거의 없이 작가 역량에 맡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구현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가체’. 그 이유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조선 영조 때 이후로 백성들의 사치가 심하다 하여 여러 번 ‘가체금지령’이 내려졌는데 기생은 천인이라 ‘가체금지령’에 해당되지 않았다. 기생은 당시의 패션리더였고 높이 올린 ‘트레머리’는 기생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기생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확실한 사치품이자 상징이 또 없었다. 때문에, 캐릭터 상징 소재로 가체를 꼭 표현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게임 속 캐릭터이기 때문에 고증대로 그리기보다는 가체의 모양도 변형하고, 짧은 한복 치마에 프릴을 달아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호랑이를 추가해 강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전했습니다.

오랜 고민과 시도 끝에 완성된 '어우동'. 작품에는 고전미가, 캐릭터에는 성숙함이 물씬 풍기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발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작품에 대한 우나영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 아닐까요?

 

<확산성 밀리언 아서>에 사용된 일러스트 '어우동'

'어우동' 일러스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당시 ‘어우동’이 공개된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작품이 게임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각종 악플이 쏟아지던 상황. 막 첫발을 내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작품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았던 우나영 작가는 이를 보며 그림에 대한 악평이 자신에 대한 평가로 느껴져 크게 좌절합니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던 이 시기가 오히려 자신과 작품을 나눠서 볼 수 있는 시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악플을 달던 사람들이 우나영 작가가 그린 다른 작품들을 보며 감탄하거나 호평하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고 우나영 작가는 대중에게 자신을 더 보여줘야 하는 계기로 삼고 작품과 자신을 분리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작업에 대해서는 분리가 익숙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그러지 못했다.당시 일로 얻은 교훈은 ‘나’와 ‘내 작품’을 분리할 줄 알아야 건강한 멘탈로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내 작품은 나에게서 나왔지만 ‘나’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내 작품을 지적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또 작품이 많이 알려질수록 호평과 함께 악평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내 그림을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내 그림에 대한 평가가 내 존재가치를 다르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 각성 버전

게임 일러스트 외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스카치위스키 ‘조니 워커 블루라벨’ 캐스크 에디션 '인천' 패키지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인천공항 면세점 한정 상품으로, 2015년 조니워커 영국 담당 에이전시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고 제작한 작품입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게임 외 '상업적 디자인'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영국 에이전시가 인터넷에서 떠돌던 내 그림을 보고 연락했다고 해서 사람을 잘못 찾은 거라 생각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병이지만 하얀 배경에 파란 잉크로만 그려져 있어 마치 한국 '백자'를 보는 듯한 작품. 분명 외국 술이긴 하지만 작품에서 한국 특유의 향취가 느껴집니다.

 

'조니 워커 블루라벨' 콜라보레이션 작


 

# '좋아서 시작한 그림'에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까지, 보람과 책임감 느껴

 

"작품 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해당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한복이나 동양화를 좋아하게 되는 이른바 '입덕' 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덕'을 넘어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희망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큰 감동 했다고 전하며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메일 한 통을 받았는데, 보낸 분은 자세히 밝히진 않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이신 것 같았다. 글쓴이는 어린 시절에는 '공주 놀이'를 하곤 했는데, 어느샌가 '피부가 노란 나는 공주가 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또 많이 우셨다고 했다. 당시 임신 중이라던 그분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는 '너는 상상을 멈추지 말아라’고 말해 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서양 동화나 만화, 게임 캐릭터에 한복을 입히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누군가에게 한복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건 물론 희망과 감동을 줄 수도 있게 된 일. 우나영 작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인해 어깨가 무겁기는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작품을 위해 노력한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