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취재

[게임미술관](17) 웹툰 작가에서 '배그' 헬멧남 원화가까지, 펍지 김태현 팀장의 도전기

우티 (김재석 기자) | 2019-05-13 11:01:27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헬멧을 쓴 한 남성의 뒤로 뭔가 큰 폭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와이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주인공. 한 손에는 권총, 등 뒤에는 소총을 맨 그를 군인이라고 하기엔 그 옷차림이 '캐주얼'합니다. 풀어헤친 넥타이와 걷어올린 팔소매는 대개 '느슨하다'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 그림에서는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 하면 떠올릴 만한 '헬멧남' 키 아트(Key Art)입니다. 이번 게임미술관에서는 '헬멧남' 키 아트의 주인공인 펍지주식회사 캐릭터아트팀 김태현 팀장을 만납니다. 

김태현 팀장은 지금까지 총 4번의 변화를 겪은 끝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원래는 동화풍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였고, 캐주얼 게임 제작팀에서 귀여운 캐릭터를 그렸다가, 판타지 MMORPG의 원화를 담당한 끝에 <배틀그라운드>에 안착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그가 그린 <배틀그라운드> 키 아트처럼 부단히 살아남았습니다.

  

김태현 펍지주식회사 캐릭터 아트팀 팀장

김태현 팀장은 다른 원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짬짬이 '이솝이야기'같은 동화에 쓰일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그는 2005년 "내가 글을 쓸 테니 너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친구의 권유로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웹툰 '모니앤스토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니앤스토리'는 봉제 인형 '모니'와 주인 '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 단편으로 당시 단행본으로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때 김태현 팀장은 '모니앤스토리' 인형, 티셔츠, 팬시용품 등을 만들어 파는 캐릭터 사업도 벌였습니다.

 

모니앤스토리 (2005)

 


#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보다 많이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게임 업계에서 특별한 재능을 갖춘 아티스트가 아니었습니다. '헬멧남' 키 아트 전까지 그의 게임 아트가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적도 없습니다. 그런 김태현 팀장이 업계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김태현 팀장이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07년입니다. 20대 후반이었던 그는 이전까지 게임업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그가 잘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택한 길이었습니다. 그는 캐주얼 온라인 게임 <펀치몬스터>의 2D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담당했습니다. 

오랫동안 동화 느낌의 일러스트를 그렸던 김태현 팀장은 <펀치몬스터>의 SD(Super Deformed, 머리를 크게 만들어 머리와 상반신, 하반신 비율을 비슷하게 변형시키는 일종의 데포르메) 캐릭터 디자인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여운 것을 잘 그릴 줄 알았던" 그의 생각과 달리 동화 일러스트와 SD 캐릭터 디자인은 다른 분야였습니다. 인물의 비율, 시선 처리, 동작, 쓰이는 선, 강조하는 지점, 귀여움의 느낌까지 모두 달랐습니다.  

김태현 팀장의 회고에 따르면, <펀치몬스터> 아트팀에서 그는 그다지 두드러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내로라하는 원화가들과 함께 <펀치몬스터>에 쓰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철저한 노력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동화의 느낌을 지우고 캐주얼 게임에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자부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이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작업량이었습니다.

 

<펀치몬스터>의 소울브레이커

<펀치몬스터>의 소환술사(좌)와
잡화상인(우)

2011년 6월, 그가 지노게임즈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MMORPG <데빌리언>의 캐릭터, 몬스터 2D 콘셉트 아트를 맡았던 김태현 팀장은 그가 처한 난관을 작업량으로 극복했습니다. <펀치몬스터>보다 훨씬 현실적인 비율을 갖춘 <데빌리언>의 원화를 그리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머리 비율을 줄이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4년 동안 SD 디자인을 그리다가 실사 디자인으로 스타일을 바꿔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사에 가까운 비율과 포즈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그는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습관적으로 누드 크로키를 그렸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습작에 습작을 거듭해 자신의 화풍을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웹툰 작가로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게임 원화 경력도 있었던 그였지만 <데빌리언>의 포스터 이미지에 쓰일 '완벽한 한 장'을 그려내는 것도 그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별다른 정보가 없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초기 단계에서 그는 인물의 특징에 대한 구상을 하기 전에 인물의 동작 스케치를 먼저 그렸습니다. 

 

이것은 그가 웹툰을 그릴 때 러프한 콘티를 먼저 그리던 습관에서 온 것인데요. 그는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터, 이펙터와 캐릭터의 방향성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구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 스케치를 우선 작업한 게 도움이 됐다"

<데빌리언>의 카이란

그가 그린 <데빌리언>의 원화

 


# 헬멧남의 탄생 비화

 

<데빌리언>의 제작자는 김창한 PD입니다. 당시 김태현 팀장은 김창한 PD로부터 '신규 프로젝트'의 원화를 담당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가 '중박' 정도를 바라면서 원화를 그렸던 게임은 얼리 액세스(미리 해보기) 단계에서 '초대박'이 났습니다. 이 게임의 이름은 <배틀그라운드>입니다. 

한국 게이머에게 블루홀은 <테라>를 만든 회사였지만 전 세계 유저들이 사용하는 스팀 스토어에서는 무명 회사에 가까웠습니다. 초창기 <배틀그라운드>는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 한 장으로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각인효과'를 노려야 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하면 떠오르는 '헬멧남' 키 아트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전통적인 슈팅 게임의 밀리터리 느낌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에서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저녁에는 전장을 누빈다는 설정,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나 '죽음의 카운트다운'에서 볼 법한 양복을 입은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언노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게임의 중요한 방어구인 헬멧을 씌웠습니다. 

 

* '플레이어언노운'은 <배틀그라운드>의 핵심 개발자인 브렌던 그린의 닉네임입니다. 하지만 김태현 팀장은 세계관에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를 골라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전장으로 들어가서 사투를 벌이는 경험을 연출하기 위한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개념으로 '플레이어언노운'을 사용했습니다. 김 팀장 본인도 '플레이어언노운'이 브렌던 그린의 닉네임인 것을 알고 있지만, 게임의 이름 앞에 7글자가 붙은 이상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생각입니다.

김태현 팀장이 작업한 <배틀그라운드>의 키 아트

 


# 현실적이라면 모든 복장이 가능하다

 

<배틀그라운드>의 캐릭터 아트, 그리고 플레이어가 직접 설정할 수 있는 <배틀그라운드>의 아바타는 대부분을 목표로 제작한다고 합니다. 

<배틀그라운드>에는 총기, 헬멧, 가방, 방탄복 등인 게임에서 파밍 할 수 있는 장구류를 포함해 모자, 마스크, 상의, 하의, 외투 등 다양한 스킨이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이러한 복장을 제작하는 기준은 '옷 가게에 걸려있을 법한 옷', '실생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착장'입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속옷만 입고 플레이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온전히 유저의 선택입니다.

김태현 팀장은 <배틀그라운드>가 "현실적인 아바타 게임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배틀그라운드>는 계급이 있거나 스토리가 있거나 특정 미션을 수행해야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 부담 없이 들어가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배틀그라운드>는 세계관이 꽉 조여진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영화 속 캐릭터를 플레이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이라고 느끼도록 스스로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 하는 것이 김 팀장의 의도입니다.  

 

"<배틀그라운드>는 현실적인 아바타 게임이 됐으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김태현 팀장을 포함한 캐릭터아트팀은 군사적인 요소가 연상되는 아이템을 게임 안에서 루팅하는 것으로 만들고 코스튬에서는 군사적인 콘셉트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배틀그라운드>는 밀리터리 게임보단 생존 게임에 가깝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입니다. 

김태현 팀장은 개인적으로 70~80년대 있었던 레트로풍 캐주얼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트팀에서 작업을 하다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게임 안에 추가시키곤 하는데요. 신고 있던 구두나 재킷을 추가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DC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킨, <언차티드> 스킨 등 다른 IP와 함께 진행하는 콜라보레이션 스킨도 '현실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작업합니다. 원래 IP의 캐릭터성을 <배틀그라운드>에 잘 녹여내면서도 다른 복장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캐릭터아트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신고 있던 구두나 재킷을 추가하기도 한다"

<배틀그라운드>의 콜라보 스킨. 왼쪽부터 할리퀸, 조커, 언차티드, 트위치 프라임 콜라보다. 이들 스킨 역시 '현실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제작한다. (캐릭터아트팀 제작)

 

 

# 동화 → SD  → 판타지 → 배틀그라운드, 그가 4번의 변신에 성공한 비결

 

김태현 팀장의 그림은 동화풍, SD, 판타지를 거쳐 <배틀그라운드>까지 왔습니다. 그가 4번의 변신에 모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김태현 팀장은 자신이 4번의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 빨리 실패하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는 "원화 작업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하나만 계속 보기 때문에 객관적인 눈을 잃어버리기 쉽다"라면서 "피드백은 주관적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객관성이 도출되기 마련"이라고 답변했습니다. 

한 번 열중해서 크게 실패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해 실패를 빨리한 다음 그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시도하는 게 더 좋은 결과물을 낳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김태현 팀장은 계속 질문하는 원화가다. 그림은 <배틀그라운드> 콘셉트 아트.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테마를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이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원화를 작업할 때 한 가지 직관적인 코드를 정합니다. 이를테면 '커리어 우먼'이라는 짧고 확실한 코드를 정한 다음, 이 키워드를 논리적으로 해석한다기보단 머릿속에 도장을 찍듯이 이미지를 만들어나갑니다. 이 과정에 최소 50장에서 100장 정도의 이미지를 모아놓고 살펴보면서 자신의 그림을 그립니다.

김 팀장은 원화가 지망생들에게 "3D 모델링에 대한 이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배틀그라운드> 캐릭터 디자인을 위해 유튜브를 보며 3D 모델링의 기초를 독학했습니다. 전문적으로 툴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면 협업도 쉬워지고, 자기 작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원화가가 3D에 대해 알고 있으면 단순히 스펙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작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라고 김 팀장은 설명합니다. 

 

"원화가가 3D에 대해 알고 있으면 단순히 스펙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작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미지는 <배틀그라운드>)

그는 마지막으로 지망생들에게 "완전히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려 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현실적인 것을 참고하라. 그러면서 자기 색깔을 불어넣는 연습을 하라. 본인이 원치 않는 프로젝트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스타일에 대해 대비하라."라고 조언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계속 참고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왔던 김 팀장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김태현 팀장은 자기 자신을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화 느낌의 그림을 그리던 웹툰 작가, SD 캐릭터 일러스트레이터, 모바일 RPG의 콘셉트 아트 제작자를 지나 <배틀그라운드> '헬멧남'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고 또 그림을 연구했습니다.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자세, 펍지 사옥을 나오면서 이러한 자세가 게임 원화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쓸 만한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한 번에 모아놓고 보면, 그가 얼마나 '적응력이 강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웹툰 '모니앤스토리' (출처: 다음 웹툰)

<펀치몬스터>의 항구

<펀치몬스터>의 소서러

<데빌리언>의 민병대장

<데빌리언>의 엘리멘탈리스트

<데빌리언>의 카이란

<배틀그라운드>의 아바타 콘셉트

<배틀그라운드>의 아바타 콘셉트

김태현 팀장이 아내의 생일 선물로 그린 초상화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헬멧을 쓴 한 남성의 뒤로 뭔가 큰 폭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와이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주인공. 한 손에는 권총, 등 뒤에는 소총을 맨 그를 군인이라고 하기엔 그 옷차림이 '캐주얼'합니다. 풀어헤친 넥타이와 걷어올린 팔소매는 대개 '느슨하다'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 그림에서는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 하면 떠올릴 만한 '헬멧남' 키 아트(Key Art)입니다. 이번 게임미술관에서는 '헬멧남' 키 아트의 주인공인 펍지주식회사 캐릭터아트팀 김태현 팀장을 만납니다. 

김태현 팀장은 지금까지 총 4번의 변화를 겪은 끝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원래는 동화풍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였고, 캐주얼 게임 제작팀에서 귀여운 캐릭터를 그렸다가, 판타지 MMORPG의 원화를 담당한 끝에 <배틀그라운드>에 안착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그가 그린 <배틀그라운드> 키 아트처럼 부단히 살아남았습니다.

  

김태현 펍지주식회사 캐릭터 아트팀 팀장

김태현 팀장은 다른 원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짬짬이 '이솝이야기'같은 동화에 쓰일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그는 2005년 "내가 글을 쓸 테니 너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친구의 권유로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웹툰 '모니앤스토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니앤스토리'는 봉제 인형 '모니'와 주인 '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 단편으로 당시 단행본으로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때 김태현 팀장은 '모니앤스토리' 인형, 티셔츠, 팬시용품 등을 만들어 파는 캐릭터 사업도 벌였습니다.

 

모니앤스토리 (2005)

 


#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보다 많이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게임 업계에서 특별한 재능을 갖춘 아티스트가 아니었습니다. '헬멧남' 키 아트 전까지 그의 게임 아트가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적도 없습니다. 그런 김태현 팀장이 업계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김태현 팀장이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07년입니다. 20대 후반이었던 그는 이전까지 게임업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그가 잘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택한 길이었습니다. 그는 캐주얼 온라인 게임 <펀치몬스터>의 2D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담당했습니다. 

오랫동안 동화 느낌의 일러스트를 그렸던 김태현 팀장은 <펀치몬스터>의 SD(Super Deformed, 머리를 크게 만들어 머리와 상반신, 하반신 비율을 비슷하게 변형시키는 일종의 데포르메) 캐릭터 디자인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여운 것을 잘 그릴 줄 알았던" 그의 생각과 달리 동화 일러스트와 SD 캐릭터 디자인은 다른 분야였습니다. 인물의 비율, 시선 처리, 동작, 쓰이는 선, 강조하는 지점, 귀여움의 느낌까지 모두 달랐습니다.  

김태현 팀장의 회고에 따르면, <펀치몬스터> 아트팀에서 그는 그다지 두드러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내로라하는 원화가들과 함께 <펀치몬스터>에 쓰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철저한 노력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동화의 느낌을 지우고 캐주얼 게임에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자부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이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작업량이었습니다.

 

<펀치몬스터>의 소울브레이커

<펀치몬스터>의 소환술사(좌)와
잡화상인(우)

2011년 6월, 그가 지노게임즈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MMORPG <데빌리언>의 캐릭터, 몬스터 2D 콘셉트 아트를 맡았던 김태현 팀장은 그가 처한 난관을 작업량으로 극복했습니다. <펀치몬스터>보다 훨씬 현실적인 비율을 갖춘 <데빌리언>의 원화를 그리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머리 비율을 줄이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4년 동안 SD 디자인을 그리다가 실사 디자인으로 스타일을 바꿔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사에 가까운 비율과 포즈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그는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습관적으로 누드 크로키를 그렸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습작에 습작을 거듭해 자신의 화풍을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웹툰 작가로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게임 원화 경력도 있었던 그였지만 <데빌리언>의 포스터 이미지에 쓰일 '완벽한 한 장'을 그려내는 것도 그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별다른 정보가 없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초기 단계에서 그는 인물의 특징에 대한 구상을 하기 전에 인물의 동작 스케치를 먼저 그렸습니다. 

 

이것은 그가 웹툰을 그릴 때 러프한 콘티를 먼저 그리던 습관에서 온 것인데요. 그는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터, 이펙터와 캐릭터의 방향성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구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 스케치를 우선 작업한 게 도움이 됐다"

<데빌리언>의 카이란

그가 그린 <데빌리언>의 원화

 


# 헬멧남의 탄생 비화

 

<데빌리언>의 제작자는 김창한 PD입니다. 당시 김태현 팀장은 김창한 PD로부터 '신규 프로젝트'의 원화를 담당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가 '중박' 정도를 바라면서 원화를 그렸던 게임은 얼리 액세스(미리 해보기) 단계에서 '초대박'이 났습니다. 이 게임의 이름은 <배틀그라운드>입니다. 

한국 게이머에게 블루홀은 <테라>를 만든 회사였지만 전 세계 유저들이 사용하는 스팀 스토어에서는 무명 회사에 가까웠습니다. 초창기 <배틀그라운드>는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 한 장으로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각인효과'를 노려야 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하면 떠오르는 '헬멧남' 키 아트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전통적인 슈팅 게임의 밀리터리 느낌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에서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저녁에는 전장을 누빈다는 설정,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나 '죽음의 카운트다운'에서 볼 법한 양복을 입은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언노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게임의 중요한 방어구인 헬멧을 씌웠습니다. 

 

* '플레이어언노운'은 <배틀그라운드>의 핵심 개발자인 브렌던 그린의 닉네임입니다. 하지만 김태현 팀장은 세계관에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를 골라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전장으로 들어가서 사투를 벌이는 경험을 연출하기 위한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개념으로 '플레이어언노운'을 사용했습니다. 김 팀장 본인도 '플레이어언노운'이 브렌던 그린의 닉네임인 것을 알고 있지만, 게임의 이름 앞에 7글자가 붙은 이상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생각입니다.

김태현 팀장이 작업한 <배틀그라운드>의 키 아트

 


# 현실적이라면 모든 복장이 가능하다

 

<배틀그라운드>의 캐릭터 아트, 그리고 플레이어가 직접 설정할 수 있는 <배틀그라운드>의 아바타는 대부분을 목표로 제작한다고 합니다. 

<배틀그라운드>에는 총기, 헬멧, 가방, 방탄복 등인 게임에서 파밍 할 수 있는 장구류를 포함해 모자, 마스크, 상의, 하의, 외투 등 다양한 스킨이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이러한 복장을 제작하는 기준은 '옷 가게에 걸려있을 법한 옷', '실생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착장'입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속옷만 입고 플레이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온전히 유저의 선택입니다.

김태현 팀장은 <배틀그라운드>가 "현실적인 아바타 게임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배틀그라운드>는 계급이 있거나 스토리가 있거나 특정 미션을 수행해야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 부담 없이 들어가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배틀그라운드>는 세계관이 꽉 조여진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영화 속 캐릭터를 플레이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이라고 느끼도록 스스로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 하는 것이 김 팀장의 의도입니다.  

 

"<배틀그라운드>는 현실적인 아바타 게임이 됐으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김태현 팀장을 포함한 캐릭터아트팀은 군사적인 요소가 연상되는 아이템을 게임 안에서 루팅하는 것으로 만들고 코스튬에서는 군사적인 콘셉트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배틀그라운드>는 밀리터리 게임보단 생존 게임에 가깝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입니다. 

김태현 팀장은 개인적으로 70~80년대 있었던 레트로풍 캐주얼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트팀에서 작업을 하다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게임 안에 추가시키곤 하는데요. 신고 있던 구두나 재킷을 추가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DC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킨, <언차티드> 스킨 등 다른 IP와 함께 진행하는 콜라보레이션 스킨도 '현실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작업합니다. 원래 IP의 캐릭터성을 <배틀그라운드>에 잘 녹여내면서도 다른 복장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캐릭터아트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신고 있던 구두나 재킷을 추가하기도 한다"

<배틀그라운드>의 콜라보 스킨. 왼쪽부터 할리퀸, 조커, 언차티드, 트위치 프라임 콜라보다. 이들 스킨 역시 '현실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제작한다. (캐릭터아트팀 제작)

 

 

# 동화 → SD  → 판타지 → 배틀그라운드, 그가 4번의 변신에 성공한 비결

 

김태현 팀장의 그림은 동화풍, SD, 판타지를 거쳐 <배틀그라운드>까지 왔습니다. 그가 4번의 변신에 모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김태현 팀장은 자신이 4번의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 빨리 실패하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는 "원화 작업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하나만 계속 보기 때문에 객관적인 눈을 잃어버리기 쉽다"라면서 "피드백은 주관적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객관성이 도출되기 마련"이라고 답변했습니다. 

한 번 열중해서 크게 실패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해 실패를 빨리한 다음 그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시도하는 게 더 좋은 결과물을 낳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김태현 팀장은 계속 질문하는 원화가다. 그림은 <배틀그라운드> 콘셉트 아트.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테마를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이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원화를 작업할 때 한 가지 직관적인 코드를 정합니다. 이를테면 '커리어 우먼'이라는 짧고 확실한 코드를 정한 다음, 이 키워드를 논리적으로 해석한다기보단 머릿속에 도장을 찍듯이 이미지를 만들어나갑니다. 이 과정에 최소 50장에서 100장 정도의 이미지를 모아놓고 살펴보면서 자신의 그림을 그립니다.

김 팀장은 원화가 지망생들에게 "3D 모델링에 대한 이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배틀그라운드> 캐릭터 디자인을 위해 유튜브를 보며 3D 모델링의 기초를 독학했습니다. 전문적으로 툴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면 협업도 쉬워지고, 자기 작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원화가가 3D에 대해 알고 있으면 단순히 스펙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작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라고 김 팀장은 설명합니다. 

 

"원화가가 3D에 대해 알고 있으면 단순히 스펙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작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미지는 <배틀그라운드>)

그는 마지막으로 지망생들에게 "완전히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려 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현실적인 것을 참고하라. 그러면서 자기 색깔을 불어넣는 연습을 하라. 본인이 원치 않는 프로젝트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스타일에 대해 대비하라."라고 조언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계속 참고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왔던 김 팀장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김태현 팀장은 자기 자신을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화 느낌의 그림을 그리던 웹툰 작가, SD 캐릭터 일러스트레이터, 모바일 RPG의 콘셉트 아트 제작자를 지나 <배틀그라운드> '헬멧남'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고 또 그림을 연구했습니다.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자세, 펍지 사옥을 나오면서 이러한 자세가 게임 원화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쓸 만한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한 번에 모아놓고 보면, 그가 얼마나 '적응력이 강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웹툰 '모니앤스토리' (출처: 다음 웹툰)

<펀치몬스터>의 항구

<펀치몬스터>의 소서러

<데빌리언>의 민병대장

<데빌리언>의 엘리멘탈리스트

<데빌리언>의 카이란

<배틀그라운드>의 아바타 콘셉트

<배틀그라운드>의 아바타 콘셉트

김태현 팀장이 아내의 생일 선물로 그린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