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예술관] 쿠키들은 어떻게 생명을 얻었을까? 이은지 디렉터

무균 (송주상) | 2019-11-25 09: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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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게임은 ‘게임예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동그란 얼굴, 짧은 팔과 다리, 인간을 닮은 쿠키인 진저브레드맨.

이 진저브레드맨에서 따온 ‘용감한 쿠키’와 함께 시작한 <쿠키런: 오븐브레이크>(이하 쿠키런)는 여전히 많은 팬에게 사랑받는 게임입니다. 100개가 넘는 쿠키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괴도맛 쿠키나 호두맛 쿠키처럼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쿠키가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용감한쿠키는 <쿠키런>의 알파이자 오메가 아닐까?

이번 게임예술관에서는 <쿠키런>의 쿠키 탄생의 비밀을 듣고자 이은지 쿠키런 아트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났습니다. 2013년 데브시스터즈에 입사한 이은지 디렉터는 <쿠키런 for kakao>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3년 뒤 디렉터의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맡고 있습니다. 쿠키런IP와 함께 성장한 셈입니다.

이은지 디렉터는 <쿠키런>의 매력적인 쿠키들은 매년 특정 기간에 열리는 ‘쿠키톤’에서 탄생한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100개가 넘는 새로운 쿠키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네요. 다른 게임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몇 개월간 개발하곤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이은지 쿠키런 아트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즐겁게 생각하자! 쿠키런의 곳간 '쿠키톤'

 

데브시스터즈의 연례 사내 행사인 쿠키톤은 '쿠키런'과 '마라톤'의 합성어입니다.  모든 아티스트가 약 일주일간의 쿠키톤의 기간에는 '쿠키'에만 집중합니다. 한 번의 쿠키톤으로 백 개 넘는 쿠키가 새롭게 세상에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4번이나 진행됐으니, 이미 수백 개의 쿠키가 유저를 만나기 위해 '쿠키런의 곳간'에서 만남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쿠키런> 스토리처럼 마녀의 오븐을 탈출하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쿠키톤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아티스트들은 자유롭게 소재를 선정해 쿠키를 그릴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막는 규칙은 단 하나. 실제 출시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쿠키이어야 합니다.

또 아티스트들은 6~7종의 쿠키만을 제출해야 합니다. 쿠키수 제한은 수십 종의 쿠키를 그리기보다는, 소수의 쿠키를 자기 자식처럼 아끼며 설정을 다듬고, 기술도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했다고 하네요.

 

쿠키톤 당시 스케치다. 이미 대부분의 설정도 잡혀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이벤트 '탐정런' 역시 이런 설정에서 시작했다. 쿠키톤부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 괴도맛 쿠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우유(건강)이라는 컨셉과 어울렸던 우유맛 쿠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무엇보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수의 쿠키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더 매력적인 쿠키가 눈에 띈다고 하네요.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처럼, 참여한 아티스트들에게 자신만의 '원 픽(one pick)'이 생긴다고 합니다. 단 하나의 쿠키만을 개발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수많은 쿠키가 모이면서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근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마라맛 쿠키, 괴도맛 쿠키 모두 쿠키톤 기간 동안 아티스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쿠키라고 하네요.

쿠키톤 기간 동안 데브시스터즈 아티스트들의 '쿠키 덕질' 역시 이어집니다. 아티스트들은 자기가 직접 디자인하고, 특별한 설정을 넣은 쿠키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며 아낍니다. 심지어 쿠키들끼리의 사랑, 갈등, 이별까지 다양한 이야기도 만들 정도로 쿠키 삼매경에 푹 빠진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새롭게 등장한 쿠키들의 설정은 더 단단해지고 입체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얼핏 보기에는 편하고 즐겁게만 보이는 쿠키톤이지만, 사실 생각보다 강행군입니다. 아티스트들은 쿠키톤 기간 동안 하루에 하나의 쿠키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쿠키톤이 지금까지 네 번이나 펼쳐졌고, 평범한 연례 사내 행사를 넘어서 '쿠키런의 든든한 곳간'이 된 이유는 <쿠키런>만의 캐주얼 아트에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그릴 수 있을 만큼, <쿠키런>의 쿠키들은 단순한 선 몇 개와 면으로 이루어진 캐주얼 캐릭터잖아요? 하지만 캐주얼 아트는 그림자처럼 세세한 부분을 부각하긴 쉽지 않습니다. 대신 캐주얼 아트 기반의 쿠키들은 유저들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됩니다. 쿠키의 스토리를 읽지 않아도, 성격과 매력이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더 <쿠키런> 아티스트들은 아트만큼 쿠키의 설정에도 신경을 씁니다.

 

이미 복숭아맛 쿠키와의 구체적인 스토리가 생겼던 자두맛 쿠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자색'과 '고구마'가 이런 이미지도 가질수도 있다. 척박한 이미지와 맞물려, 더 멋졌던 자색고구맛 쿠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 "이토록 다양한 인간, 이토록 다양한 쿠키"

 

쿠키톤에서 승리한 쿠키들이라고 해서 바로 유저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쿠키런의 아트는 단순하게 그림 한 장에서 끝나지 않아요. 캐주얼 캐릭터인 쿠키에 생명을 불어넣는 재밌는 '설정'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은지 디렉터는 쿠키를 처음 설정할 때 3가지를 고려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로 '맛', '성격' 그리고 '직업'입니다. 여기에 맛과 관련있는 음식의 형태, 색감, 물성도 최대한 아트에 반영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아트와 세 가지 요소를 잘 고려한 설정으로, 새로운 쿠키가 하나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최근 스토리에서 등장한 '마라맛 쿠키'는 '마라'라는 음식 특징과 쿠키가 잘 맞아떨어졌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키만의 '행동 원리'를 넣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설정으로, 쿠키의 생명과 개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나온 <쿠키런: 오븐브레이크>의 3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생일케이크맛 쿠키는 상냥한 파티플래너로, 세상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랑스러운 쿠키입니다. 생일케이크가 주는 행복하고 달콤한 설정을 입힌 것이죠.

하지만 모두가 행복하고 완벽한 파티를 열어야한다는 중압감도 느끼는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도 보이는 입체적인 쿠키죠. 스파클링맛 쿠키의 주스바에서 레몬주스 한잔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개성 있고, 통일된 이미지를 가진 쿠키는 유저들에게 살아있는 듯 다가오기 쉽습니다. 덕분에 유저들은 다시 쿠키들과 함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고요.

 

'모히또가서 시원한 몰디..' 아니, 생일케이크맛 쿠키는 레몬주스를 마시며 피로를 푼다.

"이토록 다양한 인간, 이토록 다양한 쿠키"

어렵사리 나온 쿠키들의 디자인에 대해 이은지 디렉터는 위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은지 디렉터의 발언에는 쿠키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쿠키의 모티프가 되는 인간은 60억 명이 넘지만,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쿠키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또 수많은 쿠키가 있는 만큼, 유저들에게 원하는 쿠키가 단 하나라도 있을 것이고, 마음에 든 쿠키에 공감하고 이입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쿠키들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고, 모험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고요. 단순해 보이는 <쿠키런> 쿠키지만, 이런 의도와 디테일한 설정이 있기에 유저들과 우리에겐 단순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인기 있는 악마맛 쿠키의 초기 컨셉 아트 / 쿠키런 아트팀 제공

귀여운 펫들에게도 탄생 전까지 다양한 모습이 있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 놀이충동: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창조는 엄격한 지성이 아닌 놀이충동에서 나온다'

이은지 디렉터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의 말을 인용하며, 바로 이 '놀이충동'을 강조했습니다.

이 놀이충동이 충만한, 다시 말해 잘 놀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즐거움을 잘 전달하는 거죠. 그리고 이 놀이충동이 있는 아티스트이 남이 더 좋아하는, 더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은지 디렉터는 실제로  쿠키런 아트팀 구성할 때도,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이런 점을 신경썼다고 밝혔습니다.

 


게임이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는 플레이어에게 큰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에 있습니다.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잘 전달하기 위해선, 결국 즐거움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아티스트보다는 자신이 느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아티스트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은지 디렉터는 팀원들과 '즐거움'에 대한 키워드로 많은 대화로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 트렌드, 우연히 본 영화, 또는 전시 등에서 발견한 즐거움의 요소를 서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즐거움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즐거움에 대한 통찰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아티스트들이 창조한 쿠키들에 녹아들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오너십(주인의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만든 쿠키에 대한 오너십이 있어야, 새롭게 탄생한 쿠키에 디테일한 설정과 일관된 이미지가 생기고, 단순해 보이는 쿠키에 생명력이 부여될 테니까요. 

 

달빛술사 쿠키 초기 컨셉아트. 조금 긴 모델(?)도 확인할 수 있다 / 쿠키런 아트팀 제공

 


# "그림은 가장 강력한 이야기다"

 

이은지 디렉터가 그림을 시작한 이유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그림이라고 생했고, 자연스럽게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백여 개가 넘는 쿠키가 유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티스트들이 만든 설정을 넘어, 유저들은 <쿠키런>의 쿠키에게 또 다른 설정을 주기도 하고, 또는 점수를 위해 든든한 쿠키를 모으며 자신만의 쿠키 스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쿠키에게 진정한 생명을 부여하고, 오븐에서 탈출시켜 준 유저들에게, 이은지 디렉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오븐을 탈출한 쿠키들이 세상에서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쿠키런>에서 쿠키들은 마녀가 실수로 생강가루 대신 생명가루를 넣으면서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 정체 모를 이 생명가루는 결국 디테일 설정이나, 귀여운 이미지보다는, 사실 '쿠키와 유저, 그리고 아티스트 사이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캐릭터에서 끝나지 않고, 기술과 이펙트도 그렸다 / 이은지 디렉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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