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많은 게임들이 '편의성'을 강조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토론할까 합니다.
1. 편의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 유저는 짜증나는 것을 싫어한다
유저들은 점점 핵심적인 컨텐츠 이외의 행동 중 별로 재미없는 행동을 하기 꺼려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냥터로의 이동입니다. 자기가 경험치와 골드를 벌기 위해서 필드를 이동해야 하는데, 기존 필드 시스템은 마을-저렙사냥터-중렙사냥터-고렙사냥터 순서이기 때문에 레벨이 높아질수록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죠.
처음에는 오픈된 필드에 모든 것을 구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이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동을 귀찮아 하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개선되었으면 하는 요소였죠.
그 요소를 확실하게 해결한 것은 인스턴트 던전, 마을 근처 포탈을 통해 방을 생성하면, 난이도에 상관없이 바로 그 전투 공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죠. 이동할 필요 없이 바로 사냥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각광을 받았고, 캐쥬얼함이 MORPG의 특성으로 정착해 MORPG=인던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죠.
실제 MORPG와 MMORPG의 정의 차이는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ORPG)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인데 말이죠. 정의조차 씹어먹을만큼 그 가시적인 효과는 컸다 생각합니다.
덕분에 현재 MMORPG도 자동항법 정도는 마련해주는 추세입니다. 또한 퀘스트를 할 때 어느 NPC를 찾아가야 하고 퀘스트 수행장소는 어디인지 인터페이스로 다 표시해주는 등, 유저가 '머리 비우고 공략 페이지 안 찾아봐도 게임 진행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현 추세입니다.
2. 편의성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1) 국내시장
최근에는 엄청난 시도도 이뤄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사냥조차 귀찮으니까 자동사냥으로 유저 편의를 증진시키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매크로 기능을 게임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파격 조치였죠.
.....근데 잠깐, 생각해봅시다. 1위에서 50위까지 게임 순위들을 보면, 그렇게까지 유저들이 좋아하는 편의성을 극대화한 게임은 순위권에서의 입지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등외입니다. (게임메카 게임순위 참조) 메인 컨텐츠가 이거라고 유저들에게 죽어라 홍보했던 게임 중 순위권을 유지하는 게임이 없다는 것은, 메인 컨텐츠에 유저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는 없습니다만, 편의성 극대화에만 집착하다 게임을 지속적으로 하는 동기, '성취감'을 죽였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노가다 논란'에서 많이 나오는 의견이 'RPG는 자신의 행동이 축적되는 것을 재미로 하는 게임이다. 다른 게임과 달리 노가다가 필연적으로 컨텐츠가 되는 게임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저를 귀찮게 하는 요소임에도 유저들이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장르가 MORPG죠. 즉 성취감을 들게 하는 것이 RPG의 생명력입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알아서 키워주는 자동사냥 방식은 사실 상 유저가 게임 캐릭터를 통해 성취감을 경험할 기회를 빼앗아갑니다. 그것이 1~50위에서 자동사냥이 강조된 온라인 게임들이 등수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의성이 '유저가 귀찮아서 안 하려는 것'을 해소해주는 수단으로 사용되면 그 게임은 흥합니다. 여러 사례를 봤듯이 말이죠. 그러나 '유저가 귀찮아도 감내하려는 것'을 해소해버리면 게임을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편의성도 적당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2) 해외시장
외국인들의 취향과 한국인들의 취향 차이를 나타내는 말 중 가장 인상깊었던 말은 '말에 올라탈 때 한국인들은 바로 말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안장에 손을 얹고, 등자에 발을 걸어 잔등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보고 싶어한다.'였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 말에 올라타는 속도가 2~5초 늦어지니 짜증낼 것을 외국인들은 없으면 심심해한다는 것이죠.
한국 온라인 게임은 현재 4500만 명의 한국시장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북미, 유럽 등 수억의 시장들을 노리고, 실제로도 많이 진출한 바 있습니다.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고요.
따라서 해외시장에서 역효과를 낼 수 있는 편의성 추구는, 4500만 한국시장에만 너무 커스터마이징한 나머지 보다 큰 시장을 놓치는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금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WOW에서 구현한 편의성은 그쪽 시장에서 먹히니까 구현한 거겠지만, 그 이상의 것-특히 자동사냥 같은 것은 굉장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죠.
결론: 편의성은 기본 스펙 중 하나일 뿐
취업을 할 때 우리는 말합니다. 학점, 토익은 기본이라고. 하지만 학점과 토익만 보고 기업에서 뽑아주지는 않는다고.
편의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편의성 높은 게임은 확실히 유저들이 많이 하지만, 편의성 자체가 컨텐츠가 된 게임들의 결과는 썩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편의성 높은 게임 중 성공작들은 마케팅에서 게임이 편리하다는 것을 광고하지 않고, 유저들도 편의성 하나만을 보고 게임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WOW는 워크래프트를 통해 구축된 탄탄한 세계관에서 비롯된 모든 컨텐츠들을, 아이온은 진영 컨텐츠, 자유로운 비행 등을 내세우죠. 자동이동을 광고하거나, 스킬 단축키 누르면 쪼로로 달려가서 때려주니 거리 가늠하는 컨트롤이 필요없어 편리하다 등을 광고하지는 않습니다. 던파는 사냥하기 위해 이동할 필요가 없음을 광고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액션을 더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즉 유저가 '이 게임을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다'를 제시해줘야지 '이 게임을 하면 쉽게 할 수 있다'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고로 편의성은 중요한 요소지만 홍보를 할만큼 게임 자체의 경쟁력으로 쓰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마치 기업 가서 '난 학점하고 토익 높으니 뽑아주세요'라고 면접에서 말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