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한국 게임,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듀란달 04-09 조회 14,947 공감 29 10

-. 셧다운제 때와 지금의 유저들의 태도의 차이

 

셧다운제까지만 해도 게임업계는 유저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문제는 계속 쌓여갔고, 결국 이번에 가챠 문제로 터지게 된 것.

 

셧다운제 때 받은 지지가 게임업계가 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뻘짓에 분노해서 한 지지라는 것은 명백했다.

 

업계에서 그것을 깨닫는 것은 한참 뒤가 된다.

 

 

 

-. 우리나라의 게임산업과 다른 산업과의 유사성

 

유명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베끼고 UI를 다르게 한 뒤 과금시스템을 얹어 내놓는 방식은 요 몇년간 크게 유행했다.

 

이 카피의 시작은 오래되었으나 본격적으로는 MMORPG의 끝물 때부터 시작되었다.

 

모바일로 전환되면서 그 버릇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친구는 '하나가 성공하면 우루루 따라가는' 한국 산업의 기괴한 특수성 때문이며 단지 게임산업만의 특징은 아니라고 비평했다. 

 

옳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봉구비어가 뜨자 수두룩빽빽하게 생긴 유사 맥주집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사 산업끼리 경쟁하면서 서비스 강화나 가격 할인 등으로 싸우는 다른 산업과 달리, 

 

게임은 확률을 낮추거나 박스 안에 박스를 집어넣는 식으로 더욱 독랄하게 바뀌어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 제2차 바다이야기 사태가 올까?

 

가챠는 과금 시스템의 한 줄기일 뿐이나, 우리나라 게임은 여기에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온갖 병폐가 생기게 되었다.

 

가챠나 랜덤박스에는 확실히 재미가 있다. 속된 말로 쪼으는 재미다. 

 

포커에서 받은 마지막 카드의 에이스로 스티플이 만들어지는 때, 

 

개패가 순식간에 판을 씹어먹는 패가 될 때의 흥분은 어떤 마약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도박이라고 부른다.

 

게임에서 확고한 게임의 재미가 있고 이러한 가챠나 랜덤박스가 부차적으로 들어갔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메인 시스템은 결국 전에 해 본 게임 느낌을 나게 만드는 법. 남은 건 쪼으는 재미 뿐이다.

 

한번 더 말하지만 우리는 이걸 도박이라고 부른다.

 

바다이야기 사태 때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던 상황을 기억한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지금 그 바다이야기와 비슷해지고 있다.

 

게임 = 바다이야기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순간 끝장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게임산업이 그리스 꼴 나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약인 정부의 개입을 불러서라도.

 

사실 김종득씨 말마따나 지금은 정부의 개입을 받니 안 받니 하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개입은 반드시 온다. 

 

그게 어떤 내용이냐, 그 이후로 어떤 후속타가 터지느냐의 문제일 뿐. 

 

안티 게임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눈을 부라리는 한, 후속타는 반드시 올 거다.

 

모 미드의 명언대로,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 (일부) 개발자와 유저의 인식의 갭.

 

사실 가장 의아했던 부분.

 

자기 밥그릇이 걸린 부분이니 반발이 나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그걸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건 물론이고 유저랑 싸우고 있다!

 

게임판도 사람이 모인 곳이니 한 사안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당장 디스이즈게임의 관련기사 댓글에는 가챠에 비판적인 개발자들의 댓글도 주루룩 달리고 있고.

 

하지만 유저를 바보 취급하는 건 대체 어느 동네 스파이냐?

 

제목에 일부라고 달아놓긴 했는데, 그동안 비판해오던 모 종교의 일부 드립을 나도 쓰게 된 건 아닌가 싶어 께름칙하다.

 

대다수의 개발자들이 가챠에 비판적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도 지금이 미풍 수준의 변화라고 생각하는 현업 개발자들이 있다면 정신 차려야 한다. 이제는 유저라는 지원군도 없다. 

 

 

 

-. 김종득

 

김종득씨의 트위터가 논란이 되는 모양인데 당사자가 디스이즈게임에 올린 칼럼이 있다. 

 

그는 여기서 가챠 시스템을 비판하고 규제 법안은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webzine/news/nboard/12/?n=58440

 

자기 이름을 걸고 매체에 기고한 글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신뢰하게 된다. 

 

가끔 작성자 본인의 의도와 반대되는 뜻으로 트윗이 돌아다니게 되는 경우가 과거에도 종종 있었으니까.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이야기.

 

2000년 5월 1일에 게임판에 처음 들어갔으니, 이번 달 말일이 딱 게임회사 입사 후 16년을 채우게 된다.

 

16년 전의 게임 개발은 가난했지만 희망은 넘치는 산업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에는 IT 종사자가 신랑감 순위 넘버원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스톡옵션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월급 많이 못 주는 대신 성공하면 보너스를 준다는 그거다. 

 

성공한 게임의 개발자가 집을 샀니, 차를 바꿨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던 때였다. 

 

그때는 모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한 달의 반을 진흥센터의 추운 공용회의실 테이블 위에서 깨잠을 자면서 기획서를 짰지만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스톡옵션은 희망과 함께 사라졌다. 업계는 유연성을 잃었다. 

 

베끼기를 강요하는 경영진 앞에서 자신이 생각한 재미 요소 기획서는 종잇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샐러리맨이 되어갔다.

 

입사 후 두 달만에 사직서를 쓴 경우도 있었다. 

 

알고 보니 사장이 회사의 규모를 부풀려 다른 회사에 비싸게 팔아먹기 위해 우리를 단기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희망은 사라졌는데 노동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1세대 개발자는 사장이 되어 옛 영광만 추억하며 자신이 한 방식대로 후배들을 쥐어짰다.

 

그 굴곡을 견디고 버텨 마흔이 되었다. 

 

실력이 있고 경력이 있다 한들 이제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나이다. 

 

그렇게 이류는 남겨졌다. 그래서 떠났다.

 

그리고 떠나온 업계는 가챠 도박으로 뒤숭숭해지고 있다.

 

인생의 삼분지 일을 던진 업계가 도박의 오명으로 더럽혀진다면, 내 오천사백오십칠 일은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나?

 

우울증이 걸릴 것 같다. 

COOL: 27 BAD: 0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듀란달 | Lv. 12
포인트: 3,692
T-Coin: 576
댓글 0
에러
시간
[비밀글] 누구누구님께 삭제된 글입니다 블라인드된 게시물입니다 내용 보기 댓글을 로딩중이거나 로딩에 실패하였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쓰기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