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월 만이로군요.
... 정말 오랫만에 써보는 글 입니다.
... 이렇게 머릿말을 쓰는 건 이례적이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이번 글은 뭔가를 보여 드리고자 썼던 전의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 이번 글은 자전적인, 일기와도 같은 내용으로 썼습니다.
... 그래서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글의 전개도 축~ 늘어지지요.
... TIG.com 에 올리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 그만큼 내용이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 읽으시면서 '뭐야? 이 사람...' 이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올린 건...
... 이러한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변하게 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단계 였습니다.
... 여기 적혀 있는 저의 모습은 결코 남에게 보일만한 모습이 아니거든요.
...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남 앞에 숨기기만 해서는...
...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 그런 다급함과 절실함으로 이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 저는 감히 칭찬을 들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 오히려 바라건데... 질책을 해주세요.
... 인생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삶을 대하는 자세의 안일함 같은 것들...
... 그런 것들에 대한 질책을 듣고자 이렇게 여기 TIG.com 에 글을 올리는 거니까요.
... 그럼...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Part 3 : 1년 뒤...
어느덧 1년 입니다. 1년... 정확하게는 1년 4개월. 시간으로는 계속 기록한대로 10000 시간을 넘겼죠. 물론 근무시간이 아닌 24시간 단위로 계산한거라 반쯤 느낌이 죽긴 합니다. --; 그리고 이 글의 두번째 이야기를 쓴 이후로 거의 6개월 만에 3편이라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요... 6개월 만이라... 지금 느끼기는 어제 있었던 일처럼 지나간 시간에 대한 느낌이 억지 스럽군요...
1년. 이 숫자는 제가 사회에서의 첫 직장을 잡은 지 그 회사의 소속으로 '일을 하게 된' 시간이자 그 소속으로 '삶을 살아간' 시간입니다. 제가 태어난지 27년째이니까... 27분의 1 정도로 볼까요? 단지 숫자로만 보면 27조각 중의 1개 일 뿐 입니다.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되겠죠. 단지 1년이라는 것만 생각한다면 이런 의미 부여가 정말 무의미한 숫자이라고 여겨질 정도죠.
하지만 그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고, 하고,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거의 20여년을 고독하게 보내셨을 그 수많은 시간을 드디어 저도 겪게 된거죠. 단순히 겪기만 한게 아니었죠. 저는 실패도 했습니다. 좌절도 했고요. 방황도 해봤습니다. 고민도 해보고... 한계 또한 느끼기도 했죠. 저 자신의 경험으로만 봐도 지난 26년 간의 경험 보다도 더 많은 '원인에 의한 결과'들을 눈으로 보고, 느껴야만 했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그렇게 살면서 깨달은게 있어요.
게임 기획자 라는 직업은 처음엔 굉장히 재밌고,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1년... 1년동안 저는 그 생각을 뒤집어야만 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치열함이란 요소를 깨달으면서 말이죠.
치열하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선... 재미라는 부분. 기획자는 재밌는 컨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네... 이건 기본적인 입장이지요. 1년 동안 저는 그 기본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 강조를 한 이유는... 지키려고 한 저의 입장이 변화와 정세에 대한 변화를 무디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겁니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누구에게 재밌게 하려는 건지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면 딱 이겠군요.
그러한 기본적인 입장으로 시작된 컨텐츠 기획은 생각대로 맞물려 가지 않았습니다. 우선, 개발자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 했지요. 업무적인 필요에 의한(개발 일정의 단축이라든가, 개발 리소스의 공유라든가, 재활용성 등과 같은 요소들)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할 수 있었지만 '게이머'의 욕구와 흥미를 자극하거나 충족할 만한 컨텐츠로서의 가치는 납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개발은 진행되었지요. 핵심적인 요소인 '재미'는 빠진 상태로 필요와 시기에 의한 결정으로 만들어져 가는 컨텐츠는 아무리 돌려 말해도 재밌지가 않았습니다.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엔... 저는 그게 재밌다고 우겼죠.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컨텐츠는 일정에 의해 제작되고, 기획서와 사양서에 의해 세분화 되어 가고, 테스트에 의해 모양을 갖춰갔죠. 네... 저런 3단계를 거치니 일단 '상품'은 나오게 되더군요. 필요 요소와 상업적인 가치를 지닌 어떤 형태의 '상품'은 나오게 되었지만 그게 정말 '게이머'의 재미를 자극하는 '컨텐츠' 의 역할을 수행했는지는... 1개월 뒤의 통계 자료를 보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컨텐츠'는 단지 판매를 위한 '상품'일 뿐이라는 걸...
또다른 점은... 게임 자체 였습니다. 치열하다는 뜻은 '게임은 변한다' 라는 점 입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도록 커지고, 더 자세한 현상들을 표현하기 위해 세밀해 졌죠. 그 3박자의 조합은 게임을 할 때엔 몰랐지만 게임을 만드는 입장이 되고 보니 목에 칼이 들어온 것 같더군요. 더 잘 만든 게임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걸 봐야 했습니다.
그러한 게임들은 물론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분명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 재미가 사용자에게 선택되어야 한다는 점 이었습니다. 사용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재미 요소를 충분히 납득시켜야만 선택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재미를 택한 사용자들은 더 큰 재미를 찾아나설 확률이 높으면 높았지 다시 옛날의 재미로 돌아오지는 않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게이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매우 당연한 선택일 뿐 이지만... 저는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게이머의 입장을 말이죠. 참 한심하죠...
내가 만든 게임(혹은 컨텐츠)가 사용자들에게 선택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개인의 측면으로만 보면 '참 한심하군~' 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불행히도 저는 '게임 회사' 소속 이었습니다. 재밌는 게임을 만들어 '판매' 하는 기업 소속 사원이었습니다. 선택받지 못하는 게임을 만드는 사원은...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엔 '월급 도둑'이나 다름 없는 셈 이었지요. 게다가 기획자 였으니... 무형적인 가치에 대해 유형적인 결과를 극대화 해야 하는 직업을 택한 사람이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말이죠.
재미도 없고, 결과도 좋지 않은 기획자. 음... 최악이지요. --; 업계로 치자면 '경력서의 모든 내용들이 실패한 게임으로만 채워진' 그런 시시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딴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택한 직업이었는데 냉정하게 1년을 고려해 보면 저는 이렇게 밖에 결론을 못 짓겠습니다.
지난 1년은 그 치열함 속에서 제가 정신 못 차리고 혼자만의 재미에 빠져 온갖 실패와 한계에 맞부딪히면서 바닥의 바닥까지 가본 셈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함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강해지려고 하지, 약해질 기미는 안 보이거든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게이머의 혼을 가슴에 품고 허름한 창고 안에서 세상을 뒤집어 보자는 결심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겠지요.
지난 1년은 그 치열함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이걸 느끼기까지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질 뿐 입니다. 그걸 지켜보고 있었던 제 주위 분들은 또 어떻게 생각했을지... 고개도 못 들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하고 있다!' 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1년이 있지요.
지난 1년은 세상의 치열함을 뼈저리게 느낀 1년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1년이 있지요.
지난 1년은 온갖 실패와 좌절, 한계 앞에 무릎 꿇어버린 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1년이 있지요.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이제야 생각해 보는 거지요.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보낼 것 인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의 1년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잘하고 있어!' 라는 격려가 아닌 '잘하고 있어!' 라는 평가로 변하게 할 것인지를.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손으로, 내 머리로 만든 '컨텐츠'가 게이머들로부터 재밌다! 라는 평가를 듣고 유지하게 할 지를. 이 모든 물음의 앞엔 그게 존재합니다.
앞으로의 1년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계신 분들께서도 저에게 앞으로의 1년이 매우 중요하다고 늘 말씀해 주고 계시죠. 네... 그 말씀의 뜻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눈앞에 뚜렷히 보입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그리고 선택받기 위한 과정과 결과물들이 모두 '치열함'을 뚫고 보여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나 하나로는 안되는... 나 하나를 뛰어 넘어 다른 무수한 '다수'에게 만족시킬 만한 것들을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네... 알 것 같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이젠 알 것 같습니다. 저의 실패보다도 더 큰 무언가가 1년 뒤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요. 그 모습을 결정 짓는 것은 저의 선택이라는 걸 말이죠...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위해 제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죠. 시시한 결론이나, 시시한 논리로는 설명해선 안 될, 정말 중요한 거라는 걸 말이죠.
... 잘 하겠습니다.
...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구한 설명 보다는 저 4마디의 말을 하는게 좋겠군요. 네... 저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1년 뒤에 뭔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게임 기획자 이니까요. 컨텐츠를 만들어서 재미를 창조하고 유형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게이머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멋진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게임 디자이너 이니까요. :) 그러한 모습을, 미래의 저에게 기대하고 계시니 '잘하고 있어!' 와 같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거 겠지요. 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진실한 의미를 말이죠.
... 감사 합니다.
... 정말 감사 합니다.
... 앞으로 나아 가겠습니다.
... 모습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결과를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