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용 현황 관련 소비자 설문 조사'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블리자드 코리아의 발주를 받아 '리서치 인터내셔날'라는 회사에서 하는 리서치였다.
본인이 와우를 접은지 제법 오래된 탓인지, 질문내용에는 '너 왜 와우 안하니?' '얼마나 오래 안했니?' 등의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너 길드원이랑 자주 게임하니?' '친구들이랑 게임 많이하니?' '겜방에서 와우는 자주 하니?', '친구나 길드원이랑 같이 즐겁게 게임하려면 뭘 보완했으면 좋겠니?' 등등 제법 상세하고 많은 질문들이었다.
이걸보고 과연 전세계 MMORPG 시장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회사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어쩌다보니 한게임이나 PlayNC등 여러 게임포탈 사이트에 가입은 되어 있지만, 그런 우리나라 게임회사에서 시행하는 리서치를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게임에서 간담회나 좌담회 같은 걸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게임을 출시하기전 FGT네 CBT네 OBT네 하면서 많은 테스트를 거친다.
하지만 그게 리서치만큼 많은 사람과 다양한 표본으로부터 정확한 의견을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간담회나 좌담회 같은 행사는 열의를 가진 이들이 참여하기 마련이다. 고로 잠재고객의 요구를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그럴 생각과 마음조차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다가가 물어봐야 한다.
여러 테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애정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다. 불만족스러운 잠재고객들은 그냥 휙 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니 그들을 붙잡고 물어봐야 한다.
(이에 관해 "FGT 결과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4가지"라는 제목의 강연을 참조하시길.
/board/view.php?id=301262&category=102)
그럼에도 많은 게임회사들은 리서치를 하지 않거나, 리서치 결과를 무시하거나, 잘목 해석한다. 그리고 결국 게임은 망한다.
특히나 제일 중요한 기획단계에서 제대로 된 리서치를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기획단계에 리서치를 하기엔 많은 예산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 말마따나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니까.
하지만 이것은 호미로 막을거 가래로 막는 짓이다. 이때 철저하지 못한 탓에 나중에 돈과 시간,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고도 실패하는 수많은 게임들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는 사람은 다 알듯, 엔터테인먼트 매체에서 리서치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는 바로 영화 '괴물'이다.
<영화 괴물의 포스트>
(출처 :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영화는 개봉 9개월 전에 제작사와 투자사, 기획사와 리서치 회사가 팀을 결성해 미리 마케팅 전에 사전 리서치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응답자들은 괴물 영화는 스토리가 뻔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괴물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낮았다."고 하여, "괴물’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특수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가족애’를 부각시킨 ‘재난’ 컨셉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Movist 기사 참조)
이렇게 사전 마케팅 전략에서 미리 리서치를 통해 적절한 전략을 수립한 결과,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웃도는 좋은 성과를 거둔게 바로 영화 '괴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도 리서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와 달리 초기 기획단계에서부터 리서치와 전문적인 FGT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시스템'의 오류를 사전에 차단하는데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처 : 망하는 게임의 조직도
/board/view.php?id=300662&category=102)
특히나 '혁신적인 컨셉'의 게임일 수록, 이러한 사전 조사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적인 게임일수록 위험도가 높은데, 사전 리서치를 통해 미리 반응을 예상함으로서, 너무 낯설거나 어렵거나 하는 등의 위험요소를 피해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온라인 게임은 그 특성상 계속 업데이트 되므로, 중요 업데이트 전과 후에 필히 전문적이고 정확한 리서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의 예가 바로 와우다.
많은 사람들이 '와우빠'라고 하면서, 와우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사실 와우는 리서치라는 측면에서는 그만큼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와우만큼 많은 설문조사를 많이하는 회사를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객의 의견을 성의있게 받아들이고, 라이트 유저를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도 없다.
반면 대다수 게임회사에서 종종 날아오는 것은 뉴스레터나 광고가 전부일 뿐이다. 리서치도 없고, 그냥 소수의 게이머들이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의견이나, 자체 아이디어만 받아들이다보니,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굳어져 간다.
나중에 제대로 망하고 나서야 개발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문제점을 파악해서 개선해보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요, 흘러간 강물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입맛에 꼭맞는 훌륭한 게임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기대일 뿐이다.
결론 : 그러니 제발 기획단계부터 꾸준히 리서치 좀 해라.
맨날 혁신적인 게임이라고 홍보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게임들 하기에도 지겹다. 그래픽만 번드르한 게임도 지겹다. 정말 새롭고 재미있는 게임좀 해보자.
덧1. 나는 게임업계 관련자가 아니다. 비전문가다. 고로 이 글은 일반인의 상식적인 기준에서 쓴 글이다.
그렇다고 "업계 사정도 모르면서 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개발자가 있다면, 게임 개발을 관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게임산업도 결국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고객에게 변명은 통하지 않으며, 고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덧2. 그리고 이런 문제의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문제가 무려 삼중으로 숨어 있다.
우선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디자이너, 마케터, 기획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통문제가 심각하다. 통역이 필요할 정도다.
두번째 소통의 문제는 수직적인 상하관계의 소통문제다. 군사문화로 인해 생긴 것인데, 문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조직관계에서 좀 더 쉽게 나온다고 한다.
세번째 소통의 문제는 개발자와 고객간의 소통문제다. 바로 이 글에서 지적하는 부분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고객에게 물어봐야 한다.
소위 '빅3' 등 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서 개발했음에도, 게임의 개발자들이 오만과 자만에 빠져 망한 게임이 한 두개가 아니라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이런 소통의 문제에 관해서는 기존에도 이미 많은 논의가 나왔고, 현대 철학의 주요 화두중 하나로 인간문명이 '언어'라는 '기호체계'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하다. 혹여 기존에 논의된 것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타이거 클럽의 글을 참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