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MMORPG중에서는 실험주의의 대표작 같은 게임 마비노기. 그중에서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름다운것은 가치 있다"
이 개념을 유저들에게 콱 박아 놓았다는 것.
물론 다른 게임에도 있습니다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단순히 예쁠 뿐인 펫이라든지 같은 레벨이라도 뽀대가 틀린 장신구라든지 뭐 그런거죠. 하지만 장비 등에 있어서 예쁘고 능력 낮은 장비와 별로 예쁘진 않지만 능력이 좋은 장비를 선택하라고 하면 기존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90%이상 "예쁘진 않아도 능력좋은...." 쪽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마비노기는 틀립니다. 애시당초 모든 장비들에 몇가지 유형을 정해놓았을 뿐이고 뽀대가 좋든 나쁘든 실제 사용가능한 기능에 있어서는 비슷비슷하거나 장단점을 적당히 조절해놓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외형이 좋은 것에는 비싼 가격을 메겨놓았습니다. 게임내의 골드로든, 아니면 캐릭터카드등에 메겨진 현금이든간에요. 기존 게임에선 별로 통하지 않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개발자들이 무시했거나 게임 내에서 최소화시켜놓은 부분을 말이죠.
....그런데 통했다는겁니다.
그것도 지금 마비노기를 플레이하는 수많은 유저들에게요. 일부에만 이 원칙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게임상의 엄청난 부분에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유저의 즐거움으로 만들고, 또 회사의 수익으로 남겼죠.
자. 엄밀히 따져봅시다.
마비노기의 갑옷이나 의복이나 장비가 리니지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되어있습니까? 물론 양측의 그래픽을 모두 아시는 분이라면 몇초만에 "아뇨....분명히 이쁘기는 리니지가 더 이쁜데....? 'ㅅ'a" 라고 대답하실겁니다.
[뽀대라면 리니지를 따라올 게임도 드뭅니다만, 리니지에서 뽀대를 이유로 아이템을 찾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리니지에서 "예뻐서" 라거나 "컨셉에 맞아서" 라는 이유로 어떤 특정 의복이나 장비를 선호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보다는 "세니까" 라는 의도로 선택합니다.
그렇지만 마비노기에서 "예쁘기때문에" 라거나 "컨셉에 맞아서" 라는 이유로 선택합니다. 객관적인 아름다움의 퀄러티는 마비노기가 리니지의 장비보다 훨씬 떨어지는데 말이죠.
[아름다움이나 캐릭터 컨셉을 기준으로 장비를 찾고 있는 이런 스크린샷은 마비노기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비노기가 장비들의 '능력' 이나 각 장비들이 더 나은 장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에서 형평성을 맞추어 놨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비를 사용하든 형평성이 맞고 어떤 장비든지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장비를 선택해서 사용하든 강약이 크게 차이나진 않습니다. (...나중에 나크님이 뒤로 물러서고 나서는 이런 잘 맞춰진 벨런스가 흐트러지는 사태가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기때문에 강약에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어진 유저들이 장비의 '아름다움' 이나 '개성' 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금 마비노기에서는 백골드짜리 천옷이나 몇십만골드짜리 갑옷이나 '기능' 면에서 따져보자면 그렇게 크게 차이가 안 납니다. 게다가 비싼 장비일수록 수리비는 수리비대로 빠져나가고 내구도는 내구도대로 약한데도......그런데도 "아름다우니까" "뽀대나니까" "컨셉에 맞으니까" 사고 있는것이죠.
기획자가 "이것은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면서 맞춰둔 초점 하나로 MMORPG의 장비가 가지는 가치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고 유저들의 플레이경향마저 뒤집어 엎은 (사실은 그런 유저들을 대량으로 끌어모으고 계속 유지하는) 휼륭한 선례가 되겠습니다.
....
게임은 이미지산업입니다.
실제로 눈 앞에 뭐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저들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즐기는 것입니다. 좋게 말해서 이미지고 나쁘게 말해서 어느 분의 말씀처럼 '맘에 드는 구라'가 있기 때문에 한다는거죠. 뒤집어서 말하자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이미지들은 어떤 것이든간에 게임이 될 수 있는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개발자가 잘 맞춰둔 초점 하나가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던 '즐거움' 에의 가능성을 일깨워 그들을 새로운 즐거움에 몇년동안이나 푹 빠지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MMORPG에서 유저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강함'이나 '폭력의 쾌감' 뿐 이라고 단정짓고 그와 관련된 컨텐츠를 만드는 데에만 급급해진다는 것 - 그리고 다른것을 '기껏해야 부차적인 것들' 이라고 결론내린다는 것은 결국 MMORPG가 갖는 엄청난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ps. 풍류공작소 홈페이지에 올려둔 글을 다시 고쳐 적었습니다. 이런걸 트랙백이라고 하는건가요? 0ㅅ0a
ps2. 제가 그래픽팀이라면, 제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봐야 능력치 수치만 보고 장비 찾는 유저들이 득시글거리는 게임에서 일하는것 보다는- 장비 하나라도 예쁜거나 개성있는것 찾기 위해 전 서버와 전 게시판을 뒤집고 돌아다니는 유저들이 즐비한 게임을 위해 일하고 싶을겁니다.
ps3. 이 외에 비슷한 개념을 가진 게임들이 몇몇 더 있습니다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을 이야기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