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냐세요님 말을 듣다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한번 적어봅니다.
와우가 mmorpg에 일으킨 혁신은 '퀘스트로 레벨업' 이라는 부분입니다.
이전의 mmorpg들은 다양한 퀘스트를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대표적으로 에버퀘스트 등이 있죠)
퀘스트만으로 레벨업을 하는 게임은 와우가 최초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왜 '퀘스트만으로 레벨업'이 중요할까요?
그건 노가다를 중화시켜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간략하게
"한국 mmorpg에서 레벨업 디자인 발전사"를 한번 살펴보죠.
1.
처음에는 리니지 및 리니지를 본딴 다른 게임들 모두 '솔로닥사' 식 레벨업이었습니다.
(솔로 = 솔로잉, 닥사 = 닥치고 사냥)
한편 mmorpg의 전투는
당시 가지고 있었던 디자인의 한계나 씽크를 맞추기 어려운 부분들 때문에
단조로울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mmorpg라는 장르 자체가 처음이었고 최초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고 같은 패턴 (솔로닥사)이 지속되자 서서히 싫증이 나기 시작했죠.
2.
이때 등장한 것이 리니지2 입니다.
리니지2가 국내 mmorpg계에 일으킨 중대한 변혁은
'파티플레이를 국내 유저들에게 소개했다' 라는 부분입니다.
당연하게도 탱딜힐로 구성되는 파티 플레이 게임은 린2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단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걸 린2가 깨 준 겁니다.
이제 유저들은 어그로 개념과 탱딜힐의 구성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솔로 닥사' 에서 '솔로' 부분이 깨지는 겁니다.
3.
그러나 여전히 '닥사' 부분은 남아있었습니다.
파티플레이를 통해서 솔로잉이 주는 지겨움을 파괴했을지라도,
여전히 닥사냥으로 렙업을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파티구하기의 어려움' 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이 도출되었습니다.
린2가 일으킨 레벨업 디자인의 변혁은 솔로닥사라는 양대 지겨움 요소들 중 하나를 개선했지만,
새로운 문제점 (파티구하기의 어려움, 특정 클래스의 소외현상 등) 을 도출한 것이죠.
그렇다고 이 새로운 문제점 때문에 다시 예전의 솔로닥사 디자인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4.
여기에 와우가 소개됩니다.
당연하게도 파티플레이를 가지고 있기는 한데요,
'레벨업 과정' 에서의 파티플레이를 일부러 대폭 축소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파티구하기의 어려움이 해결되었죠.
대신 레벨업의 '닥사'를 빼고 '퀘스트로 레벨업한다' 라는 개념을 넣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와우는 린2가 소개한 파티플레이에 이어 '닥사'의 개념을 깨고,
비로소 제가 1번에서 소개한
'솔로닥사' 라는 두 가지 문제점 모두를 커버하는 mmorpg가 됩니다.
실질적으로 와우에서 퀘스트가 중요한 이유는,
퀘스트의 스토리라인이 유저들에게 흥미를 주어서 레벨업을 재미있게 해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상주기를 극단적으로 짧게 만들었다는 점
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는 즉, 제가 이 글의 머리에서 말한
'노가다를 중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게임에서, 특히 '게임 플레이 결과물의 누적' 이 중요한 mmrpg에서
'보상' 이란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많은 유저들이 목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퀘스트로 레벨업을 하는 디자인 이전에는,
레벨업과 레벨업 사이에 별다른 보상채널이 없었습니다.
있다고 해봐야 확실하지도 않고 기대값도 낮은 '득템'이 있었을 뿐이죠.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레벨업의 지루함을 해결하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린2 시절까지 우리나라 mmorpg들은,
'모든 플레이어들이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짧은 주기의 보상'
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해준 것이 '와우' 이며, 구체적으로 와우의 '퀘스트' 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사들은 모두 이점에 주목했고,
와우가 가르쳐 준 교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와우 이후 런칭하는 많은 mmorpg들이
퀘스트를 통한 레벨업을 당연하다는 듯 구현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자들이
'와우의 퀘스트 스토리가 레벨업을 흥미롭게 만들어주기 때문'
이라고 믿어서가 아닙니다.
'와우의 퀘스트 보상이 레벨업의 지루함을 완화시켜주기 때문'
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안냐세요님의 말씀 중
'유저들이 퀘스트의 스토리를 거들떠나 보는가?' 라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개발자들은 당연하게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스토리의 정교함이나 흥미로움보다는
'레벨업 사이의 더 작고 촘촘한 보상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퀘스트들을 넣으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퀘스트를 아예 집어치워' 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PS.
한편, 당연하게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현재의 퀘스트는 지루한 노가다들을 잘개 쪼개놓은 것에 불과하거든요.
린1시대에
레벨업을 하기 위해 오크 1000 마리를 잡아야 했다면,
지금은
오크 10마리 잡으라는 퀘스트를 다른 포장을 씌워 100 번 시키고 레벨업하게 해주는 겁니다.
와우의 퀘스트들도 별다를 바 없었습니다.
적어도 오리지널의 퀘스트는 그랬죠.
그러나 거듭되는 확장팩들을 통해서 꾸준히 이 부분을 개선해온 바 있고,
현재 와우의 1렙 ~ 60렙 퀘스트 및 80렙 ~ 85렙 퀘스트는 주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분명히, 우리나라의 mmorpg들이 이런 시도들을 먼저 하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부지런히 앞선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PS.
업무시간 중에 ^^;; 급하게 쓴 글이라 여기저기 헛점이 많을 줄로 압니다.
이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TIG게시판의 시스템이 글 올리기도 수정하기도 편집하기도 짜증나서
어지간하면 댓글 외에는 눈팅만 하는 편입니다만,
보고있으니 좀 답답한 부분이 있어 써봅니다.